야인시대
1. 개요
야인시대! 그렇다.
그것은 바로 그가 몸 바쳐 살아왔던 이 나라 격동기의 또 다른 역사의 한 장이었다.
백야의 아들, 조선의 영웅이 되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방황하는 어린 소년 김두한
그 어린 소년이 후에 겪는 일은 멀고도 험하다, 일제시대와 좌우익의 대립, 6.25 전쟁, 근현대 까지
우리의 역사에는 그가 존재했다!
조선의 주먹으로 불의를 처단하라
SBS에서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방송되었던 근대 사극/대하드라마. 극본은 이환경 작가, 연출은 장형일 감독.[8] 2002년 7월 29일 ~ 2003년 9월 30일까지 총 124화에 걸쳐서 방송되었다.우리 근대사에서 당대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된 지점에 놓여 있던 인물 김두한
독립군 총사령관인 김좌진의 아들로서 일제시대를 살았고
좌·우익의 극한 대립의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독재 대 민주의 치열한 정치투쟁의 현장에 속해 있었던 김두한을
심층적인 접근으로 '인간' 김두한을 그린다
또한 그가 살았던 시대의 진실을 또다른 각도에서 드러낼 것이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제4공화국 시대까지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다 간 실존인물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9] 김두한의 자서전과 회고를 바탕으로[10] 여기에 살을 붙여서 만들어진 이야기.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부터 광복까지가 1부고, 광복 이후부터 자유당 집권 말기인 4.19 혁명 및 5.16 군사쿠데타 직후 제3공화국의 출범, 그리고 유신헌법 투표일(김두한의 사망일)까지가 2부.
최초 1부 50화, 2부 50화 총 100화로 기획되었으나, 이후 2부 방송 도중 작가의 요청으로 24화 연장이 결정되었다. 기사
2000년대 가장 성공한 드라마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히고, 종영된지 20년이 다되어가는 지금에도 인터넷 밈으로 계속해서 회자되는,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11] 이다. 동시에 대한민국을 가장 크게 뒤흔든 느와르물로 꼽힌다.[12]
여담으로 야인시대에 등장했던 많은 배우들이 현재는 활동을 안하는 경우가 많다. 중년 김두한 역의 김영철과 개코 성동일을 제외하고는 청년 김두한(안재모)[13] , 김무옥(이혁재), 문영철(장세진), 김영태(박영록), 신영균(윤용현), 하야시(이창훈), 가미소리(이상인), 시바루(이세창), 나미꼬(이세은), 시라소니(조상구), 삼수(성우진) 등등이 이에 해당한다.
2. 인기
2.1. 한국
한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이자 'SBS 드라마의 2차 전성기'[14] 와, 종영 이후에는 합성으로 인기를 이어가는 드라마 중 하나. 시청률이 최고 57.1%, 평균 30%대나 되는 등,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방영 동안은 물론 방영 후에도 부천시 상동 야인시대 세트장은 관광지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 어른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물론이고 시대극치고는 드물게 어린아이들에게까지도 인기있었다.
그 인지도와 인기는 2020년 기준으로 종영한 지 20년이 다 돼 가는 데도 대단한 수준으로, 당장 나무위키에 개설된 관련 개별 문서의 숫자와 양만 보아도 이 야인시대를 능가하는 드라마는 거의 없다고 해도 될 정도다. 있다고 하더라도 닥터 후처럼 시즌제로 이루어져 있어 수십년간 시리즈가 계속 이어져온 작품 뿐이다. 게다가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나 게임, 애니등 타 매체의 경우도 관련 개별 문서의 숫자에 있어서 야인시대보다 많거나 맞먹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본디 드라마 방영 당시엔 안재모의 액션활극이 중심이 된 1부의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매일 악당의 부하, 두목을 쓰러뜨리는 김두한의 모습이 마치 울트라맨이나 가면라이더 같은 특촬물같은 느낌이 났는지 본래 사극이나 시대극 시청자층과는 거리가 먼 어린이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필살기는 김좌진 장군의 회상. 2003년 당시 미취학 아동[15] 및 초등학생들[16] 도 "나는 김두한이다! 나는 시라소니다!" 하고 다녔다고 한다. 약간 싸움 좀 한다 소리를 들었던 초등학생 친구들은 너나할 것 없이 "ㅇㅇ의 김두한"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살집이 있는 어린이들은 죄다 김무옥이었으며 여자 어린학생들이 약간만 새침하게 굴면 바로 나미꼬 소리가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많은 전국 사립초등학교에서 자체 내에서 교복으로 팔던 겨울 코트들이 단종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주조연출들이 입던 코트들 때문. 또한 본방사수를 하려는 중고등학생들이[17] 집단으로 야간자율학습을 튀는 바람에 월, 화요일에는 감독하는 선생님을 충원하기도 했고 학용품은 물론 각종 게임에선 학생들을 겨냥한 야인시대 상품(대부분 코트, 중절모 코스튬)을 팔기도 했다. 전술했듯이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에는 1부가 2부보다 훨씬 인기가 있어서 시청률은 1부가 훨씬 높았고 심지어 50% 이상의 어마무시한 시청률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2부는 시청률이 반토막이 나버렸는데, 주된 이유로 1부에서 인기 절정이던 김두한의 배역이 안재모에서 갑작스레 김영철로 바뀐 것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드라마 방영 시작 전 김영철이 2부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일찌감치 공표가 되었고 1부의 시작인 1화 또한 김영철이 연기한 김두한의 국회 오물 투척 사건부터 시작하기에 아는 사람들은 다 알긴 했지만, 1부의 끝인 50화의 마지막에서 김두한이 뒤돌아보며 배역이 바뀌는 신에서 충격받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던터라 오랫동안 '야인시대 시청률 반토막나는 순간' 같은 제목의 유머글로 돌아다녔다. 심지어 훗날 SBS에서 직접 이 장면을 두고 시청률 떨어진다 꽉잡아!!! 끄아아아아아아!!! 같은 자학개그를 할 정도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단 '배역 전환에 대한 말들' 단락을 참조.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2부의 작풍이 1부의 액션활극에서 진지한 정치극으로 노선이 180도 바뀌어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2부의 시작인 51화의 시청률은 39.3%로 1부의 평균 시청률을 상회하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지만, 해방 직후의 이념 대립과 정파 싸움 등에 대한 복잡한 묘사가 계속 이어지면서 1부의 높은 시청률을 견인했던 10대~20대 시청자들의 상당수가 이탈해버렸다. 물론 중·장년층들 위주로 정치극으로 바뀐 2부를 더 좋아해서 챙겨보기 시작한 시청자들도 있긴 했지만 이탈한 시청자들을 메꾸기는 역부족이라...그래서 시청률은 1부 리즈시절의 절반 수준인 20% 중반대의 드라마로 주저앉고 만다. 물론 정치극이 20% 중반대 시청률이라는 것은 상당한 수준이긴 했으나, 전술했듯이 1부의 시청률이 워낙 높았던지라 그에 직접적으로 비교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18]
그러나 이 2부는 오히려 세월이 지나서 재평가 받게 되는데, 야인시대 종영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누구도, 심지어 제작진들조차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고자라니로부터 시작된 야인시대 합성물의 유행.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심영의 내가 고자라니가 크게 회자된 것을 시작으로 온갖 패러디 합성물들이 범람하면서 하나의 인터넷 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실제로 2부에서 또다른 인기요소는 4딸라고, 지금은 SBS 다시보기 홈페이지에서도 저 주요장면들을 썸네일로 쓴다.[19]
결국엔 인터넷 문화로 시작한 내가 고자라니가 역으로 그 야인시대를 만들어낸 본진인 지상파에도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나아가 2부 방영 당시에는 신나는 액션은 줄어들고 고리타분한 정치극만 나온다며 외면했었던 당시 팬층이 내가 고자라니의 열풍을 타고 원본을 정주행하면서 2부 자체에 대한 평가도 올라가는 등, 여러모로 오랜 세월을 돌아온 역주행까지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영 당시 2부를 외면했던 10대~20대들이 훗날 30~40대가 되고난 후 2부를 정주행하면서 "어렸을 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1부보다 2부가 훨씬 낫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그 때는 몰랐을까."라는 식으로 뒤늦게 2부의 진가를 알아보게 되었다는 후기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1부와 2부는 같은 드라마긴 하지만 성격 자체가 다르다. 1부는 사실 선역과 악역이 명확히 나뉘어져 있고 우직한 성격의 주인공이 하나하나 장애물을 격파해나가는 단순한 구도의 액션활극이다. 또한 악역들도 격파당하면 "크윽...제법이군" 하고 조용히 퇴장하는, 어찌보면 게임과도 같은 단순한 형태. 그러나 2부는 주인공의 절친 중 한 명이 주요 악역으로 등장하며 서로 애증과 배신, 정치적 이념의 대립과 이로 인한 갈등 등 복잡한 인간관계가 맞물리며, 시대적인 배경으로 인한 요소 (전쟁과 정치인들과의 인연 등)까지 아우러지며 복잡한 갈등 관계가 일어난다. 물론 2부에서도 전설의 고수인 시라소니나 금강같은 무협지적 요소가 있지만, 이들의 캐릭터성이나 엮이는 스토리 자체가 단순히 싸움 잘하는 것 외에 더 입체적이 되었다. 사실 야인시대는 원래부터 복잡한 현대사를 다루는 역사극이었고, 이런 측면을 더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었기에 신나는 액션활극인 1부는 일종의 양념역할에 가까웠다. 당시 사극에서 하던 것처럼 중년의 유명배우(김영철)을 20대 초중반 시절 김두한(2부 시작)부터 역할을 맡기고 아직 젊고 많이 유명하지 않은 안재모를 청년 역할에 캐스팅한 것만 봐도 어느 부분을 강조했는지는 명확하다.[20] 그런데 의외로 단순한 주먹싸움 얘기가 인기를 끌자 본말이 전도된 것.
아무튼 이로 인해 야인시대는 2000년대에 방영한 드라마 중에서는 현 시점까지도 가장 인기가 많았던 드라마 중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으며, 야인시대 합성물도 2000년대 후반부쯤 합필갤을 비롯한 몇몇 커뮤니티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부터 시작하여, 현재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이 영향으로 야인시대 방영 당시에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기억조차 없는 2000년대 이후 출생자들에게까지 단순한 옛날 드라마 그 이상의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야인시대가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되면서, 출연 배우들도 TV 프로그램, 광고, 유튜브 출연 등이 늘어나 다시 주목받게 되고 야인시대가 다른 의미로 든든한 적금형 드라마가 되었다(...).
2.1.1. 인터넷 문화
컬트적인 부분에서 대한민국 드라마사(史)에 엄청나게 큰 한 획을 그은 드라마이다. 인터넷 상에서는 온통 야인시대 합성물이 도배하고 있으며, 수많은 합성에 써먹기 좋은 요소가 노다지로 들어있는 작품이라 과거 디시인사이드의 인터넷 문화 최전성기를 이끌던 합필갤이 주도하던 영상합성 문화의 뿌리인 작품이다.[21]
"내가 고자라니", "사딸라", "똥이나 처먹어" 등의 명단어 명대사가 여전히 인터넷 유행어로서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고 2020년에도 계속해서 패러디 영상[22] 이 만들어지니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로 불릴 만하다.[23] 게다가 디씨인사이드의 드라마 관련 갤러리들 가운데 종영 드라마중 야인시대 갤러리만큼 글이 계속 꾸준히 올라오는 작품도 드물다.
이 정도가 너무해서 야인시대에 출연한 배우들의 다른 작품까지 합성 대상이 되어 야인시대 합성물에 포함되었는데, 중년 김두한 역의 김영철이 배역한 태조 왕건의 궁예,[24] 상하이 조 역의 조상기가 배역한 미지왕의 왕창한, 신마적 역의 최철호가 배역한 천추태후의 경종과 불멸의 이순신의 선조와 대왕의 꿈의 비담, 김좌진 역의 최동준이 배역한 여러 배역들, 심영 역의 김영인의 모든 다른 작품들 등이 이에 해당된다.
2.2. 몽골
2004년 몽골로 수출되어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됐다. 무려 시청률 80%라는 믿을 수 없는 대기록을 세우고[25] 주연인 안재모는 나차긴 바가반디 대통령에게서 국빈으로 방문 초청을 받기까지 하였다.# 야인시대의 인기로 몽골에 '김두한'이라는 이름의 식당까지 생겼다고 했다.
2.3. 북한
북한에서도 중후반부의 반공성향에도 불구하고 몰래 보던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그런데 북한에서 《야인시대》를 보다가 간부에게 들켜 총살형을 당한 주민이 있었다는 소식이 보도된 바 있는걸 보면 역시나 북한측에선 대대적으로 금지한 듯.
2.4. 일본
일본 KNTV에서도 <'''野人時代 -将軍の息子 キム・ドゥハン'''(야인시대: 장군의 아들 김두한)>[26] 이라는 제목으로 2008년 5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자막 방송되었다.
어지간한 외화는 전부 더빙해서 들여오는 일본의 사정을 고려하면[27] 아무래도 1부가 일제강점기를 다루고 있는 터라 반일 정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했고, 자국의 정서와 많이 동떨어진 작품이라 흥행을 기대치 않았기에 자막판으로만 방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일본에서도 생각보다 인기를 끌었는지 2010년에 따로 DVD 세트가 발매되기도 하였다.
흥행은 그저 그런 수익을 내었지만 합필갤산 심영물 영상들이 니코동에 수출되면서 일본 쪽에서도 인기를 조금씩 끌게 되었다.
3. 내용
요약하면 1화~8화는 김두한의 어린 시절, 9화~50화는 일제시대 아래 청년 김두한(안재모)의 항일운동(이라 쓰고 주먹활동이라고 부른다.) 시기, 51~76회까지는 미군정 아래 해방 직후 절친이던 김두한과 정진영의 이념 대립, 76~90회까지는 이념 대립에 따른 좌우익 싸움과 6.25 전쟁, 90회~124회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김두한의 정치인생과 명동 VS 자유당의 힘을 업은 동대문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김두한에 비길 수 있는 인물은 1부의 하야시, 2부의 시라소니 정도이지만, 6.25 전쟁부터 사형 전까지는[28] 이정재가 사실상 주인공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이정재 역시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100회 정도를 지나면서 사실상은 극중의 중요한 일은 거의 다 동대문의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과 이기붕, 곽영주 위주로 나온다. 김두한은 자유당과 이정재의 동대문파가 난동을 부리면 신문으로 그 소식을 접하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탄식하는 역 정도. 또 2부에서도 이 이정재가 중심인 2부 중반 이후 분량은 김두한 개인의 일대기 이상으로 제1공화국 시기를 전체적으로 조명해서 흡사 공화국 시리즈의 제1공화국(드라마) 같은 느낌이 난다. 이는 유지광의 동명의 자서전에 기초한 이환경 작가의 전작인 무풍지대(드라마)의 영향이 크며, 2.5부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다.
2부는(51화~124화) 1부의 화려한 액션 느낌은 많이 퇴색되고 정치적인 싸움이 중심이 된 바람에 인기가 반토막으로 떨어졌다. 특히, 2부 파트 가운데 대부분은 정진영과 김두한-자유당, 이정재와 김두한, 명동파의 파벌 싸움을 묘사하는 데 할애되어 있어서 화려한 액션의 재미는 반감되고 애초에 그 시대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대였기에 비장함과 무거운 분위기가 다소 루즈함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1부에서 한때 40~50%대의 높은 시청률을 거둬서 인기가 하락했어도, 평균 20~25% 정도의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하긴 했다.[29][30] 장년층들에게 나름의 추억물 드라마로도 인기가 있던 듯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2부가 1부보다 내용면에서 고평가받는다. 합성물의 주 내용이 모두 2부 시점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2부도 인기가 아주 바닥까지 떨어졌던 건 아니다. 당장 위 문단에서부터 어린이들이 흉내냈던 인물이 김두한과 '''시라소니'''였는데, '''시라소니는 1부에 없었다가 2부에 등장한 인물이었다.'''
2부 초중반, 즉, 공산당이 주된 악역인 파트에서 작중 비중있게 등장하던 주연들이 대부분 죽어나간다. 제일 먼저 김무옥이 죽고 또 얼마 못 가서 개코가 죽는다. 그리고 우미관패의 배신자이자 공산당 파트의 최종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정진영의 죽음은, 알다시피 본작에서 손꼽히는 비극적인 장면이다. 그나마 오래 살아있었던 문영철도 6.25 전쟁통에 결국 전사한다.
사실 새드 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영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김두한은 국회 오물 투척사건 이후로 옥고를 치르면서 몸이 매우 쇠약해졌다. 때가 때인지라 김두한은 중정에 끌려가서 수난을 당했다. 이종석 교수가 어느 강연회에서 말한 걸 옮기면 희대의 협객도 중정에 끌려간 후로 '''흐물흐물해져서''' 생을 마감한다는 것. 그리고 일제시대 파트에서는 김두한이 표면상으로나마 일본에 저항하였고, 그 과정에서 일본 헌병대에 본인과 부하들이 고문당한 때 번개가 전기고문으로 감전사했고, 와싱톤 역시 김두한의 자수로 인한 석방 후에 조용히 우미관패에 벗어났다.[31] 그리고 우미관패 두목인 김두한이 정치에 입문하면서 해산하였던 우미관패 사람들은 김두한이 따로 지원해 줄 형편이 못 되어 사회의 최하류계층으로 떨어저 병사(신영균[A] ), 알콜중독으로 인한 병(김관철[A] , 홍만길[A] )과 정신병원(휘발유[A] , 아구), 자살(갈치), 이민(김영태), 군부에 의한 체포 및 재판(김삼수[32] ) 등, 좋지 않은 결말을 맞게 된다.[33] 또한 김두한 역시 나중에 사기를 당하게 되어 처지가 곤란해지고 고혈압과 심근 경색이 악화되어[34] 1972년 11월 21일, 길거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장례식 때 우미관 원년멤버 중 휘발유만 등장한 것으로 보아, 한국에 남아있던 원년 우미관패 중에선 휘발유만 생존했거나 적어도 움직일 수 있었던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35]
그의 장례식에 참여한 최동열 기자는 김두한이 활약했던 시기를 되짚어보며 '그것이 바로 야인시대'라는 말과 함께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참고로 최동열 기자는 작가의 극중 개입용 캐릭터로, 김두한보다는 20살 남짓 많다. 흔히 김두한보다 30~40살 정도 많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동환 씨가 최동열의 학생시절부터 연기를 하다보니 생긴 오해다. 실존 인물이었다고 해도, 70대 중후반 정도였을 것이다(사망 당시 김두한은 향년 55세).
다만, 김두한 패거리 대부분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것은 드라마의 창작이며,[36] 실제 역사에서는 김두한, 문영철, 김무옥, 정진영을 제외한 대부분이 요절하지 않고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다.
3.1. 2부 배역 전환에 대한 말들
원래 야인시대는 중년 김두한의 정치 인생을 다룬 2부가 중심이었고, 야인시대 제작진은 싸움꾼 김두한이 아닌 정치인 김두한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치 얘기를 하면 시청률을 얻기가 어려울 뿐더러[37][38] 어쨌든 김두한의 생애에서 주먹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기에, 야인시대 제작진은 김두한의 주먹 시절을 중점으로 다룰 1부에 시청률을 견인하기 위할 요소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즉, 1부는 2부를 이끌어 줄 베이스가 될 인기를 확보하기 위한 서막이었다. 따라서 1부는 《장군의 아들》처럼 액션 활극 위주로 흘러갔고, 김두한을 중심으로 액션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실제로는 맞붙지도 않은 김두한 vs 신마적을 비롯해서 주요인물들 과반수가 차례차례 김두한과 맞붙도록 묘사했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이는 야인시대가 MBC 드라마 《복수혈전》 이래로 최고의 액션 드라마로 각광을 받는 요소로 크게 작용했고, 야인시대 제작진이 처음에 의도했던 계획은 성공한 듯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2부 전환 후 시청률이 반토막 났다. 야인시대를 순수하게 액션 하나 때문에 보던 시청자들이 대거 이탈함으로 인해 시청률이 떨어진 탓이 가장 컸지만 갑자기 팍 늙어버린 김두한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거부감을 느낀 탓도 매우 컸다. 8.15 광복 당시 김두한의 실제 나이는 '''28세'''였는데, 야인시대가 1부에서 2부로 넘어갈 무렵의 안재모는 '''25세''', 김영철은 '''51세'''였기 때문. 게다가 장년기의 정진영(차광수), 개코(성동일)[39] , 이정재(김영호)[40] 등을 맡은 배우들은 당시 30대 후반이라 큰 위화감이 없었던 것도 시청자들이 받은 큰 충격에 한 몫 했다. 2부 개시와 동시에 김영철로 바뀐 것이 아니라 김두한이 아직 젊었던 시기인 미군정 시기부터 6.25 전쟁까지는 안재모가 계속 연기하다가 1954년 정도를 기점으로 해서[41] 김영철로 바뀌는 것이 시청자들에게는 좀 더 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김영철 본인도 《가로채널》에 출연해서 '궁예 때는 시청률 견인기였는데 야인시대에서는 오히려 시청률이 반토막이 났다'는 양세형의 질문에 '''그때 50살인 자신한테 28살 김두한 역을 맡겼으니 반토막 안 나고 배기냐'''고 너스레를 떨었으며 《라디오 스타》에서는 결국 (사딸라 짤방으로) 살아남은 건 2부의 김두한이니 승자는 자신이라며 유머 감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야인시대 1부와 2부는 애초 기획부터 시대 배경, 등장 인물[42] , 극의 방향점과 분위기 등 많은 부분에서 너무나도 달랐다. 1부는 일제강점기이며, 일본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나왔고, 김두한이 주먹패 오야붕이 되는 과정 및 주먹으로 일제에 항거한다는 것이 주제라면, 2부는 광복 이후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고 김두한이 정치에 발을 들이면서 공산당과 독재에 맞선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배우 교체 시기는 오히려 해방 직후가 적절했다. 그나마 한국전쟁 전까지는 여전히 김두한의 액션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진행되었으나, 이 액션 장면마저도 배경음악으로 주로 야인 또는 영웅주의가 이 깔리던 1부와는 달리, 중후하면서도 위압적인 성악풍의 나 사나이다가 깔리면서 바뀐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줬을 정도. 배우도 1부는 청년 배우들이, 2부는 중년 배우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니 1부와 2부는 같은 이름의 다른 드라마로 봐야 할 정도이다.
6.25 전쟁 전후로 김무옥과 문영철이 퇴장한 이후 김두한은 국회에 입성하면서 파이터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해방 후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의 국회 입성이다보니 김영철의 비중을 줄이면서까지 안재모를 광복 이후의 배역으로 내세우기가 애매한 부분이 확실히 있다. 게다가 다른 인물들이 거지반 다 바뀌는데 주인공이 안 바뀌기도 좀 그러니…그래도 몇 년 후라는 이야기도 없이 그 시점에서 갑자기 나이를 먹고 배우가 바뀌면 어색해지는 건 어쩔 수 없긴 하다.
김영철의 김두한이 진 주인공인 것은 1부의 스틸컷을 봐도 알 수 있다. 분명 1부 스틸컷인데, 2부에만 나오는 김영철이 안재모를 제치고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1부 오프닝에서도 제일 먼저 비추는 인물이 안재모가 아닌 김영철이다. 이런 구도는 진짜 야인시대의 주인공은 김영철이 연기한 김두한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작가의 의도는 국회 오물 투척사건을 1화 첫 장면에 넣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만약 김두한의 주먹 인생을 중점으로 다룰 것이었으면 종로의 오야붕으로 군림한 상태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묘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사에 '김두한'이란 이름을 강하게 남긴 국회 오물 투척사건을 드라마 시작 부분에 두고 그 후 취조받을 때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서 건달이 아닌 정치인으로서의 김두한의 인생을 주 내용으로 다룰 것을 암시한 것이다.
'''즉, 정리하자면 1부는 애피타이저이고 2부가 메인 메뉴인데, 애피타이저가 너무 맛있는 바람에 정작 메인 메뉴가 상대적으로 죽어버렸다는 소리다.''' 그나마 세월이 지나고 재평가를 받았기에 망정이지.
아무튼 김영철 배우는 저 장면에서 시청률이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다고 했다. 다만 설마 그렇게 잔뜩 떨어질 줄은 몰랐다고.
4. 촬영지
종로 이문설농탕집과 더불어 야인시대투어 중 한곳..
상동영상문화단지에 SBS 드라마 야인시대 세트장 - 2002년 2월 10일 더부천 기사. 기사 본문에 당시 건설중인 화신백화점 세트장 사진이 있다.
부천에 30년대 종로거리 재현…SBS드라마 ‘야인시대’ 세트장 - 2002년 3월 3일 동아일보 기사
드라마 야인시대의 촬영을 위해 SBS는 2001년에 대규모 오픈세트장을 건설할 것을 계획하였는데, 부천시에서 22억의 자금을 전액 지원하여 부천 상동에 건설되었다. 2002년 3월 5일에 개장한 야인시대 세트장은 메인건물인 화신백화점 세트장과 함께 우미관과 종로경찰서는 물론, 청계천 움막과 수표교, 원노인의 설렁탕집인 사동옥, 김두한 패거리들이 자주 드나드는 술집인 종로회관, 나미꼬가 운영하는 카페인 사쿠라 카페, 그리고 백병원(!) 등의 건물이 설치되었고, 1930년대 종로거리를 다니던 전차 2량을 제작하기도 했다. 세트장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화신백화점 건물과 전차 2량이 동시에 움직이는 종로거리의 풍경은 이 세트장의 특징이자 대표적인 풍경인 셈.
방영 당시 야인시대 출연진들이 인천시 선관위의 주도로 대통령 선거를 홍보했다.[43] 후에 야인시대 세트장 옆으로 하류인생과 태극기 휘날리며의 세트장이 설치되면서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라는 명칭으로 규모를 확대하기도 했었다.
부천시 야인시대 세트장은 야인시대 방영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애초에 오픈세트장으로 설계되어 일반관람이 가능했고,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지리적인 이점으로 부천시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기도 했었다. 한창 인기였을때는 야간개장을 하여 화신백화점 세트를 비롯하여 불 밝힌 화려한 종로거리를 걸으면서 여름밤을 보낼 수 있었을 정도. 2004년에는 이곳에서 토이스타에서 신제품 홍보이벤트로 서바이벌 게임을 개최해 당시 서바이벌 게임 유저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드라마 종영과 함께 인기가 시들해진 영향에 원래 세트장이라는 특성상 콘크리트로 지은 영구건물이 아니라 목조로 만든 가건물이 대다수였으므로 빠르게 노후화되면서, 태풍피해와 화재 등으로 인해 2011년 8월 4일을 끝으로 운영을 종료하였고 2012년 3월 5일에 철거되었다.
철거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세트장 건물 5동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철거 후에는 캠핑장으로 조성되었는데 '야인시대' 라는 명칭은 유지하여 야인시대 캠핑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44]
세트장을 철거하면서 기념비석을 세웠고, 당시 촬영 세트장 건물 일부와 전차 2량, 보신각, 혼마치 입구 간판을 남겼다. 한국만화박물관 뒤편 한옥마을과 그 일대 농지근방 (부천 문화동산)이 원래 세트장의 위치였던 것. 2018년 초에도 혼마치 입구 간판 등이 흔적으로 남아있는 모양이다.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안내하는 야인시대 세트장 흔적
2020년부터 야인시대 세트장 자리인 부천 상동영상문화단지의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그나마 남아있는 세트장의 흔적도 근시일내에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전차 2량은 2017년부터 인근에 위치한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 입구로 옮겨져서 보존 중이다.
5. 비판
야인시대 합성물이 고인드립 논란이 있는데도 아무도 이를 비판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분명히 드라마상 '''각색'''된 건달들의 일화를 실제인 것인 양 믿는 바람에 그들의 '''미화'''되거나 영웅화된 내용을 고대로 믿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 그 때문인지, 이제는 시시해서인지 이 이후로는 조폭미화물들이 줄줄이 퇴짜신세가 되었다.
드라마 방영 당시 전국의 각급 학생들 사이에서는 ''''야인시대 놀이''''가 유행한 적이 있다. 룰은 가지각색이지만 대표적으로 여러명이 빙 둘러싸고 극중의 싸움 장면을 재현하거나, 단체로 패싸움 시늉을 하는 것이다. 가끔씩 신문지를 말아 일본도라 하며 혼마찌 패거리를 흉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냥 싸우는 시늉하면서 노는 것도 모자라 2003년 광주에서 중학생 15명이 '''드라마를 모방하여 패싸움한 사건이 일어났다.'''
6. 최강자 논쟁
네이버 지식인의 드래곤볼 다음가는 VS놀이로 미와 Vs 왕눈이, 박인애 Vs 설향, 와싱턴 Vs 눈물의 곡절[45] 등등 별별 해괴한 질문이 올라오기도 한다. 심지어 '''원노인 Vs 최동열[46] '''도 존재한다.[47] 이런 장난성 질문을 제외한 vs 질문놀이들은 '''종영한지 10년이 넘은 2014년에도''' 수시로 올라온다! 심지어는 5년 전 글에서 키배를 뜨기도 한다. 지식인 문서에도 있는 '''8년 키배'''는 이미 전설.
7. 잘못 알려진 것
구마적, 마루오까, 김영태, 박인애 등, 실제인물 사진이라며 인터넷에 유포되기도 했는데 잘못 알려진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실제 김두한의 정신적 지주는 부친 김좌진이다. 마루오까라는 인물 사진은 한호산이며 첫사랑이라는 인물사진은 본처 이재희다. 구마적이라는 인물 사진은 이원조[48] 이며 박정희와 찍은 사진을 비롯해 권력과 손잡았다는 사진은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수여 뒤에 박정희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과 찍은 기념사진이다. 마지막으로 부인과 함께 찍었다는 김영태의 사진은 1944년 부인과 함께 찍은 최영의다. 또한 실제 최동열이라고 알려진 사진 또한 해방직후의 박헌영 사진이다.
무엇보다도 '''심영은 고자가 아니었다.''' 상하이 조가 아닌 김두한에게 하복부를 맞은 것뿐이며, 김두한의 자서전을 각색한 야인시대에서 이환경이 직접 각색한 내용 중 하나다.
8. 관련 매체
8.1. OST
대부분의 OST가 '''십수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드라마 자체가 워낙에 유명했고, OST 자체가 주먹 다툼 하는 남자들의 심금을 울리거나, 근현대사의 격동을 표현하기에 너무 적절했기 때문. 전체적으로 남성적이고 사나이의 감정을 울리는 노래들이 많다.
강성이 부른 주제가 야인#s-5은 청년 파트에서 싸움할 때 자주 흐르던 곡이라 그런지 이후 각종 매체에서 싸움하는 장면이 나오면 이 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초반에는 가사가 없는 연주곡만 나왔다. 김두한이 한창 세력을 키우던 도중 술에 취해 구마적의 부하들에게 털릴 때도 이 노래가 나오는데 주인공 일행이 얻어맞는 장면에서 주제가가 나오니 기분이 묘하다. 보통 그런 분위기의 장면에서는 아리엘 돔바슬(Arielle Dombasle)의 Odysseus 가 나왔다.[49] 참고로 '야인'은 한 회차당 '''절대로''' 두 번 이상 나오지 않으며, 김두한 외의 다른 인물의 결투 장면에선 나오지 않는다. 이 때는 2대 주제가라 봐도 되는 영웅주의#s-2나 전술한 Odysseus가 나온다.
2부에서는 나 사나이다가 주제가로 바뀌었으며, 굳이 김두한 결투 장면이 아니더라도 결투장면에선 어지간해선 나오며 야인과는 달리 한 회차당 몇 번이고 나온다. 차이점이라면 가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 후반부에는 거의 연주곡만 나온다.
- 야인 (강성) - 청년기 전체,[50] 차회 예고 BGM : 청년기 - 1회 ~ 50회, 장년기 - 53 ~ 58회.
- 영웅주의 (강성) - 청년기 중후반, 차회 예고 BGM : 장년기 - 59회 ~ 90회.[51]
- 나 사나이다 (테너 김지현) - 장년기 전체, 차회 예고 BGM : 장년기 - 51회 ~ 52회, 91회 ~ 121회.[52]
- Legend of the Hero - 청년기 전체.
- 전설의 영웅 - 장년기 전체.
- 어깨동무 - 청년기 - 장년기, 스포일러의 사망 장면.
- 희망가 - 흑화된 캐릭터들의 노래 : 신마적, 이정재
- 달의 약속 - 장년기 : 이정재 테마곡.
- 용서[53] - 청년기 히로인들이 김두한과 영원히 작별할 때 나오는 BGM
이외에도 같은 주제를 바탕으로 변주된 여러 테마들이 있었지만, 음악에 참여한 작곡가들이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분실하며 아쉽게도 시리즈 사운드트랙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음악감독 이혁준 본인이 2013년 '''사비를 털어서''' 미발표곡들이 담긴 사운드트랙 앨범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저작권료를 얼마 받지도 못했고, 야인시대 음악들은 알아도 작곡가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운 부분. 그나마 이후 평창의 꿈으로 유명세를 많이 올린 것이 불행 중 다행.
오상사는 돼지를 상대할 때 고유 OST를 재생하지만[54] , 이 곡이 야인시대 OST에 등장하진 않는다. 이는 제작진이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분실했거나, 실수로 소각했다는 말이 있다. 만약, 보존이 되었다면, YTPMV같은 소리매드에서 자주 쓰였을 거라는 말이 된다.
8.2. 학습만화
'''특이하게도 대원씨아이를 통해 학습만화로도 나왔다.''' 이 만화는 <천재들의 합창>과 <학습만화 한국사/세계사> 등을 낸 베테랑 작가인 오수 화백이 지었으나 그러나 내용은 전혀 딴판에 생략에 알 수 없는 일 투성이. 전형적 양산형 학습만화에 가깝다. 막말로, 돈에 눈이 먼 출판사가 흥행에 편승하기 위해서, 평생 주먹질이나 하면서 깽판치고 다니던 사람을 가지고 위인전 비스무리한 학습만화를 뽑아내는 뻘짓을 한 것.
내용은 광복 이전의 소년기와 청년기 김두한 일생기를 다루고 있으며 드라마 2부에 해당되는 광복 이후 이야기는 마지막 장에서 간략하게 다룬다.
8.3. 게임
게임 리뷰
2003년에 드라마 1부를 바탕으로 제작된 PC 패키지 게임. 제작사는 '''아트록스'''로 악명 높은 조이맥스.
드라마와는 좀 다르게 젊은 시절의 시라소니도 등장한다. 그 시절은 아동용 벨트스크롤 액션게임 장르 붐이 일었던 시기인데, 이것역시 그러한 유행에 편승하여 양산된 게임으로, 부족한 게임성 등으로 여러 혹평을 받으며 흑역사가 되었다. 게다가 게임 내에 나오는 캐릭터의 스프라이트 그래픽 등을 다른 일본 액션 게임에서 그대로 따오는 등, 표절 행태까지 보여 더더욱 질타를 받았다. 특히 김두한은 아예 복장, 기술 등, '''대놓고 꽁지머리만 없는 로버트 가르시아'''다.[55]
까일 만한 요소에 대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부족한 게임성 - 들 수 있는 무기가 없다. 작중에서도 가미소리 패거리와의 결투 빼고 든 적이 없지만서도. 아이템도 별로 없었다.
- 캐릭터 표절 - 위의 각주 참고.
- 뜬금없는 스토리 - 어디가 습격을 받았다→거기로 간다→공격한다. 끝. 중간에 이벤트 영상 그런 거 없다.
- 패치가 패치가 아니다 - 패치라고 했더니 기껏 미와가 나오는 스테이지 하나만 추가해 놓았다. 그 외에는 미와 경부의 캐릭터나 공격에 대한 디자인이 장난 수준이다. 권총을 쏘는데 페이크 공격으로 태극기가 나온다든지 고개 돌리고 주먹을 휘두르거나 물건을 던져댄다든지… 이거 80년대 게임 아니다. 또한 이 패치 파일에는 웜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있었기도 해서 답이 없다(...)
영어판 위키피디아에는 드라마 문서 대신 이 문서만 작성되어있고 영어로 검색하면 구글 이미지 검색에도 드라마 관련 사진보다 게임 스크린샷이 더 많이 뜨는 등 드라마 야인시대의 인지도가 전무한 외국에서는 오히려 게임을 아는 사람이 더 많다. 하지만 이후 2016년 5월 12일에 드라마 문서도 만들어졌다.
차라리 김두한과 주먹패들 자체를 다룬 게임을 하려면 본작보다는 1990년대에 FE사에서 제작한 야화1을 하는게 훨씬 낫다. 게임 난이도가 높다고 알려져있으며 이쪽은 경영적인 요소가 많지만 전투 역시 벨트스크롤로 진행된다.
그 외에 겜티즌[56] 이라는 사이트에서 만든 플래시 게임이 있다.
8.4. 소설
작가가 쓴 소설도 있으며 7권까지 출판되었다. 다만 엄청난 인기를 끈 드라마와 달리 딱히 존재감이 없다. 게다가 구하기도 어렵다. 내용은 드라마와 비슷하나 차이점도 많다.
8.4.1. 드라마와의 차이점
전체적 줄거리는 같지만 설정, 내부 요소들이 살짝 다르다.
- 소설판에선 김좌진과 박계숙이 어떻게 만났는지 몇 장 씩이나 길게 언급되지만 드라마판에선 1917년에 숨어다니던 김좌진이 박계숙의 집에 도피해있다가 정을 나눴다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 개코가 양코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왕눈이가 갈치[57] 로 나온다. 발음에 의한 차이인진 모르겠지만 와싱턴이 톤으로 나미꼬와 마루오까는 나미코, 마루오카로 애란은 아이란으로 불린다. 그런데 정작 오민섭은 차민섭이라고 제대로 나온다.
- 소설판에선 왕발이 등장하지 않고, 드라마판에서 초반에 잠깐 등장했다가 배우 손호균의 스케쥴 문제로 증발한 구마적패의 상하이 박이 그의 역할을 대신한다. 한마디로 소설판에선 왕발이 상하이 박으로 대체된 것이다.[58] 두 인물의 행적과 리타이어 과정은 똑같지만 상하이 박은 김두한에게 굴욕을 당한 이후, 또다시 종로로 돌아와 독자적 주먹패를 만들어 반항하다 김두한에 의하여 잡힌 다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손목을 도끼에 잘린다. 드라마에선 보여주기 너무 잔인한 장면이라 삭제한듯.[59]
- 빡빡이가 소설판에선 '셔츠'로 이름이 변경되어 등장한다.
- 드라마판에서는 구마적과 신마적은 김두한에게 패한 이후 종로를 떠나며 극에서 하차하지만, 소설판에선 김두한이 마루오까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시점에 잠깐 등장해 김두한을 치켜세워주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그 이후로 등장이 없는 것은 동일하다.
- 드라마판에선 황병관이 스쯔끼의 발을 밟지만 소설에선 그 반대.
- 나미꼬가 차린 사업장의 이름이 드라마에선 사쿠라지만 소설에선 파라다이스.
- 몇몇 등장인물들의 최후 또한 다르다. 가미소리는 드라마에서 장충단 혈투 이후 할복하지만 소설판에선 하야시가 막았고 광복까지 잘만 살다 시바루와 조선을 떠난다. 또 개코와 양코의 사망이 다르다. 개코는 강간당했다고 억울하게 죽으며 마지막에 김두한의 폼에서 비극적인 유언을 남기지만 양코는 정말로 강간했으며 헤드샷을 당해 그냥 즉사한다. 그리고 드라마와 달리 정진영이 개코의 장례식에 등장한다. 애기보살 역시 납북되지 않고 요정을 쭉 운영하다가 죽기 전 불교에 귀의해 전 재산과 저택을 절에 기부했다고 나온다.
- 말단간부들의 비중이 달라졌다. 소설판에서 병수는 마루오까가 등장하는 시점에서도 출연하고 털보와 번개는 죽었다는 언급도 없이 어느 순간 사라진데다 와싱턴은 양코의 죽음 이후 이념에 실의를 느끼며 떠나지만 드라마판에서 병수는 뭉치의 습격 이후부터 사라지며 번개는 김두한의 스즈끼 대위 폭행 사건때 끌려가 고문받다 죽으며 털보는 2부부터 등장하지 않는다. 와싱턴은 개코의 사망 루트 변경으로 인해 번개의 죽음 이후 퇴장.
- 김두한이 미군정 시기 재판 당시 할복할때 드라마에선 그냥 피가 흐른다고 묘사되었지만 소설판에서는 피가 분수저럼 쏟아졌다고 묘사된다(...).[60]
- 드라마에선 중앙극장 습격 사건 이후 김두한과 우미관패가 직접 백병원에 있는 심영을 찾아가서 확인사살을 가하고 전향서를 받지만, 소설판에선 심영이 고자가 된게 짧은 언급으로만 나온다. 그러나 심영이 고자인 것은 소설판에서도 마찬가지다.
9. 기타
- 안재모는 드라마 이후 일본에서 가수로 활동하려고 5년 동안 준비했으나,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계약 기간 10년 동안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진출하려고 했던 일본은 물론 야인시대로 올라간 인지도도 잊혀지면서 그렇고 그런 배우(?)가 되어 버렸다. 일본에서 앨범도 내고 가수로도 활동하려고 했건만…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2014년에서야 정도전에 이방원 역으로 출연하면서 재기의 불씨를 틔웠다.
- 지식인을 잘 검색해 보다 보면 원래 없는 내용을 있다고 주장하는 유저들도 가끔 있다. 예를 들면 극중 나온 고대생 습격 사건에서 김두한과 함께 일하던 학생인 이찬오가 동대문패와 싸워서 이겼다고 하거나, 맹수파라는 없는 조직을 만들어내는 등이다. 일종의 환상의 에피소드인 셈이다.
- BGM이 왠지 묘한 장면들이 몇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이승만의 3선 출마 결의와 선언 장면은 엄연한 자유당과 이승만의 독재를 담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배경음은 희망찬 느낌이 강하다. 자유당 당원들이 이승만에게 대통령 출마를 설득하느라 온갖 수를 다 쓰다가 이승만이 '그래, 그럼 출마할 수밖에' 라고 결정하자 자유당 당원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는 장면이어서인데, 사실 이 드라마에서 자유당은 악역이기 때문에 배경음이 좀 묘하긴 하다.
- 정동환은 극중 최동열 기자로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역의 안재모를 취재했는데, 재미있게도 2010년 방영된 KBS 드라마 자유인 이회영에서는 안재모와 정동환의 배역이 바뀌어서 안재모가 기자로, 정동환이 인터뷰이(interviewee)로 나오게 되었다.
- 총기 고증에 오류가 있다. 극중에 베레타 92 모델이 등장하는데 이 권총이 처음 공개된 시기가 김두한이 사망하던 1972년이라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1930~60년대)과는 맞지 않다. 뭐 지나가는 장면에 잠깐씩 나왔던 데다 총덕들이 아니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부분이기에 대부분은 잘 모를 것이다. 6.25 전쟁과 김동진을 습격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그리고 유년시절의 김두한이 원노인과 함께 아버지 김좌진 장군을 만나러 가던 도중 마적에게 쫒길 때에도 마적들이 당시(1920-30년대)에 등장하지도 않았던 MP40 기관단총을 들고 등장한다. 유명한 사딸라 장면에서도 김두한과 김종원이 서로 권총을 겨눌때 나오는 총이 CZ75다. CZ75는 김두한이 사망한 후인 1975년에 처음 등장했다.
- 2부 들어선 아무래도 정치적인 사건들이 주로 등장하므로 내레이션이 계속 등장하여 여러 사건을 해설하거나, 사건에 대한 여러 역사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는 걸 설명해주기도 하는데, 내레이션의 십중팔구는 '그랬다' 로 시작하여 '○○했던 것이었다', '○○했다고 한다' 로 끝난다.
- 성우들이 일부 출연하기도 했는데 제일 강렬했던 것은 일본 총독 미나미 지로를 맡았던 오세홍과 젊은 시절 김영삼을 맡았던 정명준. 그리고 훗날 반란군 때려잡는 장군으로 열연했던 김기현(박인애의 친일파 아버지)과 서윤석(공산단 사상검증관), 이주창(공산당으로 위장한 김기홍과 동석한 사람) 또한 출연하였다.[61] 특히 미나미 지로를 더빙한 오세홍은 후덜덜 그 자체(출연은 30화). 사실 목소리 출연인데, 실사 배우와 전혀 다르게 생겼음에도 직접 출연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 퍼진 오해인 듯. 참고로 두 번째 영상 후반에 김기현의 출연 분량도 있다.
- 출연배우 중에는 실제 혈연 지간인 케이스도 4쌍이나 있었다.
- 이 작품의 제작대행사인 SBS 프로덕션은 작가 이환경#s-1이 쓴 KBS 1TV 용의 눈물이 끝난 뒤 이환경을 1999년 스카우트하여 KBS 1TV 대하사극과 경쟁하기 위해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로 편성할 예정이었으나, 이환경과 KBS와의 관계가 끝나지 않자 무산됐다.[62] 이후, <야인시대>는 뒷날 사극 여인천하 후속으로 편성될 예정이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여인천하>가 SBS 자체제작이었던 것과 달리 <야인시대>는 SBS 프로덕션 제작대행이었다. 하지만, <야인시대> 제작대행사인 SBS 프로덕션 측은 이 작품이 100회나 되는 긴 드라마인 데 이어 MBC, KBS의 미니시리즈와 맞붙게 될 경우 편성상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주말 특별기획드라마로 되돌렸지만 당시 이환경 작가가 집필하고 있었던 KBS 1TV 대하사극 제국의 아침과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어 한 작가의 드라마가 다른 채널을 통해 동시 방영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발생된다는 이유 탓인지 <여인천하> 후속 월화드라마로 기획된 미니시리즈 라이벌과 편성을 맞바꿨다.
- 제16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작가가 심사위원으로 임명된 작품은 수상이 불가피하다", "한번 드라마 작가상을 받은 작품은 재수상이 불가능하다."[64] 는 규정에 걸려 탈락했다.
- 2018 국민의 선택에서는 "서울시대"라는 바이폰으로 패러디되었다. 야인시대를 패러디해 서울특별시 각 자치구별 투표율, 실제 개표에서는 서울특별시장의 각 자치구별 개표상황을 전한다. 참조.
- 유일하게 야인시대 21화만 19세 이상 시청가였다.#[65] 그 외에도 1부는 흡연 장면이 많이 나왔지만, 2부 시작인 51화부터는 금연 규제의 영향으로 줄어들었다.
- 지금 보면 충격적이고 남세스러운 장면이 하나 나오는데, 어린 개코가 어떤 상인을 놀릴 때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까지 내리는 장면이다. 모자이크도 하지도 않은 체 적나라하게 나오는데, 아마 현재 시점에 이런 장면이 대놓고 나온다면 제작진이 징계를 먹었을지도 모르며, 지금 나왔다면 혀 내밀고 얼굴을 찡그리며 놀리는 것으로 대체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현재의 방송 심의가 너무 억센 감이 없진 않지만...
- 최태환 무술감독은 김두한 역 및 시라소니 역의 액션 대역을 맡았다. 본래 조상현 무술감독이 시라소니를 맡았는데, 시라소니 vs 금강의 격투를 촬영하다가 부상당하여 시라소니의 대역을 최태환 무술감독에게 넘겨주었다. 이후 낙화유수의 대역을 맡았다고 한다.
9.1. 겹치는 출연진
이환경이 작가를 맡은 태조 왕건과 후속작 제국의 아침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야인시대에도 다수 등장했다. 두 작품에 등장한 배우들 다수가 사극이나 정치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였기 때문에, 두 작품을 본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얼굴들이 야인시대에도 보일 수밖에 없던 것. 해당 출연자들은 다음과 같다.
10. 유튜브에서 공개되다
2019년 10월 18일, SBS DRAMAi CLASSIC에서 실시간 재방송을 하기 시작했다.[72] # 그리고 대망의 64회, 65회가 12월 2일부터 3일까지 방송되었는데 심영이 나올 때마다 실시간으로 시청자수가 폭등하고 채팅창이 들썩였으며 '''그리고 2019년 12월 3일 새벽 2시에 전설의 야인시대 64화가 방영되면서 채팅창이 폭☆8했다.'''[73] 그 장면에서는 3000이 넘는 시청자수를 자랑하기도 했었다. 그 밖에도 64화 이전에도 심영이 나오거나 필수요소가 등장할때마다[74] 채팅창이 들썩였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채팅창에서 저속한 대화를 나누는 문제가 발견되면서 11월 11일에 채팅창 운영을 중단했다가 11월 20일에 재개했다. 관리자는 채팅창에서 저속한 내용 등을 작성할 경우 채팅창 이용 금지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75] .
2부 첫 공개 이후 엔딩 시그널이 나올 때마다 채팅창에서 떼창을 하는 경우도 보이고 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공지도 없이 방송 펑크가 났으나 단순한 지각으로 12시 25분 정상적으로 방영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제대로 야인시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나 심영물로만 알아온 사람들이 전편을 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소스들이나 별명들이 붙기 시작했는데 2부 후반부 항상 사건이 터지고 난 후 명동파들이 한데 모여 사건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반복되면서 '명동TV : 정치평론'이라고 불린다던가 2부 공산당 세력중 김해숙을 보고 '공산당 북화요비'라고 이름 붙이곤 했다.[76]
2020년 3월 31일 오후 6시에[77] 스트리밍이 사실상 종료되었다. 그냥 무한반복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지만 들어줄 수가 없다고 한다. 채팅창 관리를 직원이 해야하며, 기타 걸림돌이 있어서 광고도 어렵고 수익을 내기도 어려운 구조라 한다.
11. 인터넷에서
'''내가 고자라니!'''
'''4딸라!'''
한동안 맹위를 떨치던 조폭미화물이 사장되고, 야인시대 역시 '그때 그 드라마'로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종영된 지 몇년 후 디씨인사이드에서 '''심영의 내가 고자라니''' 소스가 발굴되는 바람에 과거의 명작 드라마들보다 더한 인지도를 얻는 것에 성공하였다. 이런 이유로 청년 시절 안재모 파트보다 '''중년 시절 김영철 등장 파트가 더욱 유명해졌다.'''[78]
인물별로 합성대상을 분류하자면 제일 먼저 심영이 고자라니로 시작, 김두한의 4달러가 발굴되면서 합성의 명맥을 이어갔다. 이후엔 야인시대 2부 전체가 소스화되면서 심영과는 접점이 없는 이승만, 시라소니, 조병옥 등도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드라마 종영 직전에나 등장하는 박정희도 이 대열에 합류했고, 얼굴 없는 내레이션 양반마저 추가되는 기염을 토했다.[79] 그러니까 야인시대 2부의 등장인물이라면 너도나도 추가되는 셈이다.
심영 소스를 밀어주던 합필갤이 망하면서 합필갤과 더불어 오래 못 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유튜브로 활동 무대를 옮긴 영상 제작자들의 힘으로 인해 생존에 성공했다.''' 오히려 디시에서 유튜브라는 양지로 나오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정치적인 요소나 디씨 내수용 험한 밈들이 대부분 필터링되면서 심영이나 놀려먹다 사라질 수도 있었던 합성물이 합필갤 시절보다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작자들이 본격적으로 영상만으로 개그를 짜려는 연구 덕에 이제는 단순한 심영물이 아닌 더욱 다채로운 야인시대 합성물로 진화했다.
초창기에는 내가 고자라니의 장면만 쓰이면서 여타 극중 인물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64~65화, 넓게 잡아도 62~65화까지의 소스만 활용했다. 그러다가 심영물이 계속 만들어지면서 음원요소, 짤보다는 극의 상황을 비틀어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는 스토리적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범위를 넓혀나가다 4달러가 발굴된 이후 '중공군이라고?! 어림도 없다! 암! 아아아아암!!!' 하는 장면[80] 이나 조병옥, 시라소니 등 심영과는 무관한 인물들까지 합성에 동원되기 시작했으며, 더 나아가 이제는 유년기나 청년기 에피소드, 김두한의 사망 장면까지 활용되더니 백병원 앞을 지나가는 지프차와 지프차가 지나갈 때 들리는 음성, 야인시대 OST까지 활용되면서 '''야인시대라는 드라마 자체가 전체적으로 소스화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다시금 재조명된 '''4달러'''의 협상장면과 김두한 역을 맡은 김영철분의 다른 배역인 궁예도 만만찮은 인지도와 캐릭터성을 자랑하고 있어서 야인시대 소스에 더욱 탄탄한 효과를 주어 인기를 올리는데 한몫했다. 이게 발전해서 야인시대 배우분들이 출연한 타 작품의 소스[81] 및 내레이션 조교[82] 와 대화까지 활용하는 등 그 범위를 최대한 확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발견으로 야인시대에서 가려졌던 등장인물들의 색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작중의 묘사에 비해 창작자들의 아이디어로 너프를 먹이면서 원작의 캐릭터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캐릭터를 재창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예로 떼쟁이 이승만, 안습한 시라소니,[83] 동네북 김두한,[84] 폭발물 심영, 변태 조병옥[85] 등 새로운 소스들이 재발견되었다. 보통의 유행어나 필수요소들이 길어도 1~2년 정도밖에 흥하지 못하는데 반해 야인시대는 2008년 즈음에 발굴되어 10년이 넘게 관련 합성물이 제작되고 있다. 물론 중간에 심영 배역을 맡은 김영인의 언급으로[86] 약간의 정체기가 있었지만 얼마 뒤 디씨 인터뷰에서 대범하게 넘어가셨고 합성물을 직접 허락하시면서 다행히 지속될 수 있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야인시대/합성물 참고.
12. 관련 문서
12.1. 등장인물 목록
12.2. 작중 사건사고
※ 연도순으로 작성하였다.
-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사건[87]
- 종로회관 습격사건
- 일장기 말소사건
- 수양동우회 사건
- 조선어학회 사건
-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
- 중앙극장 습격 사건[88]
-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 반민특위
- 한국 전쟁
- 국민방위군 사건
- 거창 양민 학살사건
- 제주 4.3 사건
- 사사오입 개헌
- 단성사 저격 사건
- 황금마차 습격사건
-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
- 충정로 도끼 사건
- 3.15 부정선거
- 고대생 습격 사건
- 4.19혁명
- 5.16 군사정변
- 국회 오물 투척사건
12.3. 참고 문서
- 김두한(야인시대)
- 의사양반
- 형사양반
- 심영(야인시대)
- 문예봉
- 조선청년전위대
- 님
- 무풍지대
- 백병원
- 삼우회
- 종로회관
- 혁명재판
- 인민재판
- 우미관
- 국군준비대
- 4달러
- 야인시대 2차 창작물 저작권 위반 논란
- 야인시대 마이너 갤러리
- 야인시대/합성물
- 김근육 시리즈
12.4. 외부 링크
- SBS NeTV
- “(클립뉴스 ②) 세트장 극과 극 "주말 관광명소vs지역 천덕꾸러기"
- 몽골의 한류
- "'야인' 안재모, 몽골 최고 한류스타로 떴다"
- "안재모, 일본 팬클럽 창단. 8월 2일 현지서 회원 1000여명"
- 북한 "남조선 상품이 좋아요"
- 김두한·시라소니·하야시 실제 사진
- 다시 보자 '인간 김두한'. SBS '야인시대' 29일 첫 전파
- (격동의 역사와 함께 한 조선일보 90년) 이육사·원조·원창 3형제, 조선일보 기자로 일해
- 43年前(연전)의感激(감격)되살아
- KBS. 전설의 승부사 - 최배달
[1] 일단 SBS의 공식 영문 제목은 이렇게 되어있는데, Rustic에 '거친, 투박한'이란 의미도 있어 뜻이 통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목가적인, 시골의, 소박한'이라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는 점. 격동의 시대 속에서 싸워나가는 인물을 그린 드라마라고는 연상되지 않는 생뚱맞은 느낌의 제목이다. 차라리 Turbulent가 쓰였다면 좀 더 나았을 것이다. 외국의 한국 드라마 팬들은 아예 그냥 'Yainsidae'로 부르기도 한다.[2] 서양에서는 드라마보다 게임판이 더 유명한데, 이 게임판은 'Age of Wanderers'라는 제목으로 알려져있다. 이혁준의 야인시대 OST 음반집인 'Dramatic 1.5'에는 영문 표기를 'The Age of Wild Men'라고 해놓았다. 이 두 영문 표기가 원제의 뜻을 더 잘 살린 편이다.[3] 왼쪽부터 하야시, 장년 김두한, 청년 김두한.[4] 2002년 5월 1일에 방송 프로그램의 등급 분류 및 표시 등에 관한 규칙이 일부 개정됨에 따라(다만, 6개월 유예가 적용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시행일은 2002년 11월 1일이었다.) 22화부터 15세 이상 시청가로 방영하였다(관련 기사). 유일하게 21화만 19세 이상으로 분류되어 있었는데, 술집 싸움 장면에서의 많은 잔인한 장면 때문인 듯하다. 종영 이후 유료방송 등에서 재방송을 했을 때는 20화 이전 방송분도 15세 이상 시청가로 소급 분류하였다.[5] 단, 38, 40화는 10시 35분에 방송했고, 45화와 46화는 연속 방송되었다. 그리고 104화는 10시 5분에 방송했다.[6] 제작사업 부문은 SBS Plus(당시 SBS 드라마 플러스)로 합병되었으며, 유통 및 기타사업부문은 SBSi와 합병하여 SBS콘텐츠허브가 되었다.[7] SBS 고전 드라마를 실시간 스트리밍하고 하이라이트 클립을 업로드 하는 SBS 공식 유튜브 채널이다.[8] 이환경 작가와 장형일 감독은 KBS에서 훠어이 훠어이(기업극화)를 같이 했고, 이후 유지광의 자서전인 대명을 토대로 한 무풍지대를 같이 하다가, 오래간만에 SBS에서 야인시대를 같이 작업했다.[9] 드라마에서 주요 묘사하는 시기는 주로 1920년대 중후반 ~ 자유당이 집권하던 시기에 집중되었다.[10] 김두한/창작물 문서에서 자서전 격인 <피로 물들인 건국 전야>(1963)과 노변야화 김두한 편(1969)가 뼈대가 된다. 물론 야인시대는 일종의 연의로서 역사를 고증한다기보다는 김두한이 허세를 섞어 이빨 깐 이야기를 고증하며 여기에 살을 붙이는 형태로, 야인시대 역사왜곡 관련 문제의 대부분은 여기서 비롯된다. 또한 후반부 동대문파 관련 이야기의 대부분은 유지광의 자서전 무풍지대에 기반을 두어 각색 되었는데, 이환경 작가의 전작 무풍지대의 장면을 그대로 옮겨오다시피한 대목도 많다. 물론 아예 앞뒤가 맞지 않는 삼국지평화 수준의 김두한 회고록 등을 여하간 앞뒤는 맞는 '연의'로 엮어 대중적으로 성공한 것은 전적으로 이환경 작가의 공로이다. 그러나, 야인시대의 인물들의 실존성은 몰라도 대부분의 사건은 허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11] 평론적 평가도 매우 좋고, 특히 대중적 인기는 역대 드라마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최고시청률 기준으로 가면 20위 정도이지만, 이 드라마는 종영된지 20년 뒤에도 인터넷에 회자됨을 반드시 유의하자. 이정도로 인터넷 세상에 큰 영향을 준 드라마는 야인시대 말고는 야인시대와 견줄 드라마조차도 찾기 힘들 정도로 적다.[12] 정작 인터넷에서 유명한 2부는 당시 시청률 약 25% 정도로 그다지 높지 않았다. 전성기인 1부(안재모가 김두한 하던 시기)에는 시청률이 허준같은 넘사벽 드라마들과 견줄 수준이었다.[13] 다만 최근 메모리스트에 출연했다.[14] 2002년부터 2009년까지의 시기[15] 1997년생 ~ 2000년생[16] 당시 기준 1991년생 ~ 1996년생[17] 2002년 당시 중학생(1987년~1989년생) 고등학생(1984년~ 1986년생), 2003년 당시 중학생(1988년~1990년생) 고등학생(1985년~1987년생)[18] 그러나 코어층인 20~40세대 중, 안재모하차 후 20대들은 떨어져 나갔으나 30~40대들 인기는 여전히 건재했고, 해당 시절을 경험했던 50대들의 열성적인 인기에 힘입어 24부가 연장되었다. 물론 당시 시청률 하락이 1부보다는 큰 편이고 SBS 특유의 자사 드라마 밀어주기도 적어져서 망한 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당시 시청률만 봐도 중대박 수준은 분명했다.[19] 물론 방영할 당시의 처지 면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야인시대가 계속 회자되는 원동력이기에 그렇다.[20] 안재모는 방송 이전에도 탄탄한 아역 커리어와 더불어 성인 연기자로서도 신인상을 탈 정도의 배우였지만, 궁예로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대상까지 탄 김영철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21] 그 전까지는 영상이 아닌 짤방합성 문화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내가 고자라니의 떡밥이 식으면서 합필갤은 급격히 몰락했는데, 영상 제작자들은 활동무대를 유튜브로 옮기면서 다시 야인시대 합성물 흥행에 불을 지피게 됐다.[22] 이 영상은 곽철용 vs 4딸라이다.[23] 하지만 그만큼 논란이 제기되기도 한다. 밑에 비판 문서를 볼 수 있듯이 여러 의미로 문제작으로도 불리고 있다.[24] 특히나 둘의 대결이라는 기막히는 배우 개그까지 나왔다.[25] 한국 방송 역사를 통틀어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한국vs멕시코 전의 79.2%를 능가하는 엄청난 수치이며, 전세계의 시청률 기록을 뒤져봐도 찾기 힘든 대기록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한국 vs 멕시코 전 당시에 길거리에서 사람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시피 한걸 생각하면..[26] 로고의 한문 서체가 미묘하게 다르다.[27] 이환경 작가의 전작 태조 왕건 또한 일본어로 더빙 방영되었다.[28] 84~123회 정도.[29] 당대 기준으로도 평균 시청률을 20~25%나 찍는 드라마는 지금처럼 초대박까지는 아니어도, 나름은 선방하는 편에 속했다. 겨울 연가, 상도, 여인천하의 방영분이 완전히 겹치던 10주간의 시청률 비교표를 보자. 세 드라마가 모두 25%를 넘긴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세 드라마의 시청률이 전부 20%를 넘겼던 적도 총 20회차 중 절반도 되지 않는 8화에 불과하다. 여인천하가 야인시대의 바로 직전 방영작이므로 TV의 위상은 야인시대 방영 당시와 차이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오히려 같은 시기 경쟁하던 상도조차도 망했다고는 하지 않았다.) 세 드라마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드라마들임은 물론이다.[30] 다음으로 2004년 방영작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사례를 보자. 미사의 평균 시청률은 20.3%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 내용과는 다르게 당시나 지금이나 미사는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로 평가된다. 따라서 앞선 서술과 달리 시청률 평균 20~25% 정도 찍는 드라마는 TV의 위상이 높았던 2000년대 초 기준으로도 절대 그냥 그런 수준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시청률이 유지된 것이 대체로 50~60년대를 실제로 살았던 중장년층 덕분이고, 1부에 열광하던 어린 시청자들이 대부분 이탈해버렸던 것은 사실이다.[31] 원작 소설에는 해방 이후 미군정기 좌우익 대립 시기에도 남다가 친한 후배였던 양코(드라마의 개코와 동일한 인물)의 죽음에 충격을 먹어 이념 대립에 실의를 느껴서 김두한에게 자신이 쓴 편지를 전해준 후, 우미관패에서 나갔고, 나중에 언급된 바로는 본인이 시골에서 여자들을 후리며 살기 시작한 듯하다. 삼수, 개코, 번개와 같은 말단이었던 병수#s-2와 털보는 따로 생사가 언급되지 않고 1부에서 증발하였다(병수는 21화가, 털보는 50화가 마지막 등장. 아마도 배우의 사정으로 조기하차한 듯).[A] A B C D 실제로는 1987년에 경향신문에 우익단체 활동 관련 증언을 한 것을 볼 때 1990년대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오히려 김두한보다도 훨씬 오래 살았다. 다시 말하면 병사하거나, 죽느니만 못한 수준이 된 것은 '''야인시대에서 각색된 것'''. 그나마 휘발유는 유일하게 병이 완치되었다는 묘사가 나오긴 했다.[32] 명확히 어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았으나, 혁명 재판 이후엔 언급이 전혀 없다. 결국 처형당했거나, 살아남았더라도 옛 동료들과 인연을 완전히 끊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다만, 원작 소설에서는 김두한의 장례식에 참여하는 등, 김두한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33] 해방 이후부터 6.25 전쟁 당시까지 포함하면 김무옥은 좌익과의 총격전 중에 사망했고, 개코는 여공들에게 의해 강간 누명을 쓰고 김두한에게서 자결을 종용받다가 김두한에게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되었고, 정진영은 좌익에 투신하여 활동하다가 붙잡혀 대한민청 본부에서 김두한에게 총(사실 빈총이었다.)을 겨누며 같이 죽자며 김두한을 자신의 길동무로 삼으려다가 김두한에게 의해 사살되었고, 문영철은 6.25 전쟁에서 전투하다 사망했다.[34] 야인시대 마지막화를 보면 콜록거리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결핵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35] 되려 김두한이 정치인 시절에 밑에 있었던 이들인 정대발(기술 배워서 먹고 산다고 말함.), 채원기(실존인물 김두한의 비서실장으로 드라마에서 밝히기를 작은 사업을 한다고 말함.), 그리고 김두한과 연을 맺은 이찬오(이 사람은 현대자동차 부사장까지 올라간 인물이며, 드라마에서도 현대에 입사했다고 나온다.) 등이 본인의 옛 조직원들보다 더 잘 살게 된다. 원작 소설보다 더 비참하게 끝났는데, 우선 1부에서 죽은 번개는 헌병대에서 석방 된 시점에서도 살아남았고, 나중에도 남아 있다는 언급이 있었으며, 와싱톤 역시 2부까지 남아있다가 퇴장했고, 김무옥은 용산 철도파업이 아닌, 한국전쟁에서 문영철과 마찬가지로 전사했으며, 신영균 역시 끝까지 살아남아 김두한의 장례식에 참여하였고, 김삼수는 안 배신하고 살아남아서 김두한의 떠나는 길을 지켰다. 김영태는 미국으로 이민했단 건 동일하나 드라마와는 달리 장례식에 참여하였다. 참고로 여기서 아구와 갈치가 언급되지 않았는데, 이 셋은 소설판에 등장하지 않은 드라마 오리지널 인물이다.[36] 야인시대가 조폭을 소재로 한 드라마였던 이상 조폭들의 결말이 좋게 묘사되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다보니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피했다.[37] 텔레비전 드라마는 일정 수준의 시청률이 나오지 못하면 조기종영을 당하기 때문에 제작진은 어떻게 하면 시청률을 상승시킬 수 있을 지 머리를 싸매며 고민한다. 야인시대 역시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에 야인시대 제작진은 조기종영을 당하지 않도록 드라마를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구성했다. 1부의 시청률이 매우 탄탄하면 2부에서 1부보다 인기가 못하더라도 고정 시청률은 확보할 수 있고, 고정 시청률만 있으면 조기종영을 당하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38] 결론적으로 제작진 예상은 적중했다. 시청률이 엄청 좋았던 1부에 비해 시청률이 반토막 난거지 시청률은 20%대로 안정적이었다.[39] 이 둘은 외모로썬 청년기와 장년기의 위화감이 크지 않았다. 개코는 그냥 그대로 나이 든 것 같은 이미지에, 배우가 베타랑 성동일인 것을 보고 오히려 기대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다만, 정진영의 경우 외모의 변화는 자연스러우나, 열렬한 공산주의자로서의 모습이 부각되어 상당히 차가운 이미지에 성격 또한 매우 달라졌다.[40] 이정재는 위화감이 좀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외모의 차이도 그렇고, 1부의 이정재가 과묵하고 카리스마적인 모습만 나왔으면 2부 초반의 이정재는 털털한 동네 형같은 느낌이었기 때문(물론 6.25 이후로 동대문을 중심으로 조직을 만든 뒤부터는 보스의 카리스마가 제대로 터졌다.). 하지만 이 문장의 요지는 나이 측면에서 김두한처럼 말도 안되게 삭은 건 아니란 얘기이다. 두 배우의 나이 차는 7살 차이로 다루고 있는 시대를 감안하면 상당히 적절한 나이였다.[41] 1954년은 실제 역사에서 김두한이 37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해다. 37세면 방영 당시 기준으로 안재모와 김영철의 딱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연령대이며, 마침 김두한의 직업이 주먹패에서 정치인으로 바뀌기도 했고 시대상 또한 한국전쟁 직후인 만큼 배우를 변경하기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을 것이다.[42] 물론 1부에서 이어져 2부에도 출연한 배우나 캐릭터들이 있긴 했지만, 극 전체로 보면 소수나 다름없다.[43] 세트장은 경기도 선관위 및 부천시 선관위 관할 지역이지만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인천시 선관위(또는 부평구 선관위)가 왔다.[44] 사이트 삭제[45] 그나마 이는 쉽게 답변을 할 수 있다. 평범한 성인 남성보다도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눈물의 곡절보단 적어도 졸개쯤은 정리할 실력을 지닌 와싱톤이 훨씬 강하다. 사실 이건 와싱톤이 워낙에 개그케여서 생긴 오래로, 그는 김영태와 비슷한 짬을 지닌 주먹패로서 건달생활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반면 눈물의 곡절은 깡패의 비서일뿐 깡패도 아니고 오히려 인텔리라서 일반인들보다 약하니 비교대상이 아니다.[46] 둘 다 김두한과는 우호적 관계의 인물이다. 원노인은 김두한의 은인이고 최동열은 김두한을 돕는 조언자 정도의 위치.[47] 도축업에 오래 종사해 온 이들의 완력과 칼 다루는 솜씨는 어마어마하며 최동열은 일생을 펜대만 굴려 온 인텔리이다. 다만 동시대에 둘 간의 나이 차이가 워낙 나는 점도 감안하면 승부는 미궁 속으로...[48] 2번 문단. 이육사의 동생이다.[49] 해당 노래의 String 버전을 사용했다. 링크 하야시의 처제인 나미꼬와 김두한의 첫 대면 장면에서도 카페 BGM으로 깔린다.[50] 청년기 후반 영웅주의가 많이 나왔지만 야인도 간간히 나왔다.[51] 참고로 가사없는 버젼은 이미 2화부터 나왔다.[52] 122회부터 마지막회(124회)까지는 예고를 방영하지 않았다.[53] 영턱스클럽의 멤버 임성은이 불렀다. 다만 이때는 본명이 아닌 MIZ라는 예명으로 불렀다.[54]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 곡 자체는 시라소니 복수전에서 이석재와의 단독 액션씬에서도 사용되었으며 황금마차 습격사건이 나온 회차(111회)에서 한번 더 쓰였다. 단 오상사가 돼지를 상대할때는 약간의 리믹스/편집이 추가된 것.[55] 로버트 가르시아의 비연회전각이나 환영각 등을 김두한이 그대로 쓴다. 사실상 김두한이 쓰지 않는 로버트 가르시아의 기술이라고는 용격권과 패왕상후권밖에 없다. 나머지는, 심지어는 용호난무도 쓴다.[56] 당시 인티즌이라는 사이트의 게임 커뮤니티. 현재는 커뮤니티 부분을 드림위즈에 매각하고, 게임 부분(군주 온라인)은 그대로 남아 엔도어즈가 되었다.[57] 당연히 드라마의 갈치와는 별개의 인물이다.[58] 드라마판에선 정반대다.[59] 사실 이외에도 소설판을 보면 너무 잔인하거나 야해서 드라마에선 삭제된 부분 몆가지가 있다.[60]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려면 그가 할복할때 쓴 캔뚜껑같곤 어림없다.[61] 성우 중 야인시대에서 가장 많이 출연한 성우는 장경근 역할을 맡은 김강산 성우.[62] 결국 SBS의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부활작은 유리구두가 됐다.[63] MBC는 인어 아가씨에 앞서 <해바라기 가족>을 내보낼 예정이었지만, 이승연, 이영후, 지수원, 노주현, 도지원, 신애라, 유동근, 전광렬 등의 캐스팅이 실패하여 좌절됐으며, 결국 2002년 11월 4일부터 2003년 1월 30일까지 경인방송에서 월~목 9시 30분에 간신히 편성됐는데 <야인시대> 출연진에 속했던 윤용현, 이영후 등은 <해바라기 가족>의 MBC 편성설 당시 캐스팅 물망에 한때 거론됐다.[64] 집필자 이환경 작가가 KBS 1TV 태조 왕건으로 14회 드라마 부문 수상.[65] 구마적패의 종로 2정목 습격사건으로 인해 등급이 올라갔다. 당시 어떤 가정집에서는 같이 드라마를 보려던 부모님이 19금으로 올라간 등급을 보고 "너 몰래 야한거 보려고 했냐?"라고 화냈다는 카더라가 있다.[66]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제국의 아침이 2002년 3월부터 2003년 1월까지 방영했고, 야인시대가 2002년 7월부터 방영했다는 것이다. 제국의 아침이 끝날 무렵 야인시대에서는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는 중이었는데, 같은 작가 다른 작품에 출연한 완벽한 시기였다.[67] 다만, 최지몽은 실제 낭주 최씨이지만 야인시대의 최동열은 가상인물이라는 점.[68] 구마적 이원종이 아닌 1944년생 원로배우 이원종.[69] 당시 '임진일'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70] 이대로의 아들.[71] 당시 '정태수'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다.[72] 2020년 1월 31일 '빽드' 라는 이름으로 채널명이 변경되었다.[73] 실제로 채팅창에 '''이젠 대하드라마가 시트콤으로 보인다.''', '''원본이 합성물들보다 웃기네.'''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74] 대표적으로 박용직이 나오면 채팅창이 대도서관으로 가득찼으며 염동진이 등장하면 벌처로 가득찼다.[75] 자세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시리즈의 인터넷 생방송처럼 형법 제243조, 제33장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3조 등을 근거로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는 것도 작품 내용의 특성상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수 있는 내용을 단속하려는 의도로 보인다.[76] 그 외에도 전위대: 북켓단, 홍만길: 리오넬만길, 임화수+곽영주: 'DIE'나믹 듀오, 이석재: 난타클로스, 최동열: NPC, 김상태: 북태우 등 다양한 별명과 드립들이 난무했다.[77] 최종회가 아닌 정해진 시각에 종료를 하다보니 마지막 장면은 시라소니가 동대문파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고 병원에 실려가는 장면이 되었다.[78] 사실 청년파트에 비해 중년 파트가 절반 이상을 차지해서 분량 면에서도 더 긴데다, 실제 김두한에게 있어서도 주먹깡패 시절보다는 국회의원도 해 본 광복 이후가 진짜 리즈 시절이다. 하지만 평균 시청률은 일제강점기, 즉 '김두한의 청년파트'가 더 높다. 50%를 찍은 것도 김두한이 신마적, 구마적과 싸울 때 뿐이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안재모의 청년 파트가 '한 물 간 그때 그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79] 얼굴이 안 나와서 애꿎은 라디오를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라디오의 기종은 제니스 트랜스오셔닉 H500. 하지만 '탈모대회에 나간 심영' 편에서는 이강식씨 본인이 등장하여, 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심영을 비롯한 다른 참가자들을 폭사시킨다.[80] 물론 이전에도 국회 오물 투척사건 때문에 유명해진 '똥이나 쳐먹어 이 새X들아'는 쓰이기도 했다.[81] 대표적으로 바리바리 짱에 출연한 김영인의 장면이 있고, 위에서 서술한 김영철 분의 배역 중 하나인 궁예와도 자주 엮이며, 비주류로써 간혹 상하이조 역할의 조상기가 출연한 골든 타임이나 뮤직비디오 등이 있다.[82] 특히 마지막화 김두한의 사망 장면에 나오는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은 쓰러졌다."라는 대사가 등장인물들의 처형용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83] 원작에서는 주먹계 최강자 급이었지만, 야인시대 합성물에선 까불다가 총에 맞아 죽거나, 면박과 구박을 당하는 역으로 등장한다.[84] 시라소니와 마찬가지로 원작에서는 최강자 급이었고, 내가 고자라니로만 합성하던 시절에도 심영을 제압하는 세계관 최강자 이미지였으나, 드라마 전체로 합성 범위가 확장된 이후로는 세계관 최약체로 완전히 추락했다.[85] 당장 옷 벗으라는 대사가 있다.[86] 충격을 좀 받으셨다고 한다.[87] 어린 김두한이 사건을 목격하는 장면으로 나온다. 김두한은 나석주의 죽음을 목격하고 독립운동을 결심한 계기가 된다. 물론 현실은 결국 깡패의 길을 걷지만.[88] 이 사건 이후로 심영은 한 명대사를 남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