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언

 


1. 선천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광언
2. 3.1운동 관련 독립운동가, 김광언


1. 선천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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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김광언(金光彦)
생몰
1919년 3월 18일 ~ 1993년 8월 5일
출생지
평안북도 선천군 신부면 안상동
사망지
서울특별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김광언은 1919년 3월 18일 평안북도 선천군 신부면 안상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8살 때 홀로 중국으로 망명했고, 1943년 3월 광복군과 접선되어 다음해 3월 제3지대장으로부터 화북지구 특파원으로 임명되었다. 제3지대장 김학규는 초모공작의 조직확대와 강화를 위하여 그에게 단기특별교육을 시켜 북경지구로 파견하였다.
그는 중국대학에 재학 중인 정기엽에게 한국독립당 화북지구 지하조직 및 광복군 초모공작을 하도록 하는 등 지하공작을 하였다. 그는 또한 광복군 초모작전으로 동지를 규합하여 지하조직을 확대하였다. 이로써 적의 정보를 탐지하고 후방에서 가져온 광복군 기관지 '선봉(先鋒)'을 비밀리에 배포하기도 하였다. 특히 1945년 3월 일본군 위문공연이 있던 베이징 대륙극장에 시한폭탄을 터뜨려 많은 일본 병사를 살상하기도 했다.
8.15 광복 후 국내로 귀환한 그는 김구의 한국독립당에 가담했다. 그러나 김구가 암살된 후 자유당 정권에 의해 2차례 투옥되었고, 이후엔 생활고를 극복하기 위해 쌀장사, 막노동 등을 수행했다. 별세 몇년 전엔 독립군동지회 지도위원과 광복회 이사를 지냈다. 그러나 임정선열 다섯 분이 국내로 봉환되어 진행될 영결식에 참석하기를 희망했던 그는 영결식 하루 전인 1993년 8월 5일 혼자 살던 아파트에서 사망했다.# 사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김광언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헀고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2. 3.1운동 관련 독립운동가, 김광언


성명
김광언(金光彦)
생몰
1848년 ~ ?
출생지
미상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포장
김광언은 1848년생으로, 1919년 3월 11일 황해도 안악군 은홍면 온정리에서 발발한 독립만세시위에 참석할 때는 72세의 고령이었다. 그는 시위대에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 헌병의 총격으로 인해 중상을 입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김광언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