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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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綺秀
1. 생애
김기수는 1832년[1] 서울에서 김준연의 아들로 태어났다.
1875년[2] 음서직 현감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늦은 벼슬 길에 올랐다. 마침 다음해인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으면서 외국과 교류를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앞선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그래서 우선 가까이에 있는 일본의 여러 사정을 직접 알아보기 위해 수신사를 보내기로 하였다. 이때 수신사로 당시 예조 참의로 있던 김기수가 뽑혔다. 김기수는 일행 76명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것이 근대 일본과의 첫번째 교섭이었다.
일본에 건너간 수신사들은 20여 일간 일본에 머무르면서 일찍 외국과 교역을 시작한 일본의 전신과 철도, 군함 등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군사, 기계, 학술, 교육에 관련한 여러 시설들을 관람하였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일동기유>와 <수신사일기>다. 김기수는 이 책에서 쇄국 정책만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였다. 일본의 곳곳을 관람한 결과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야 나라가 부강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김기수의 이 기행문으로 일본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져 1880년 2차 수신사로 김홍집 일행을 일본에 보냈다. 또 1881년에는 박정양을 포함한 신사 유람단을 일본에 파견하고, 더 나아가 영선사 김윤식 등을 중국에 보내어 새로운 문물을 배워 오게 했다.
김기수는 이후 덕원 부사, 대사성을 거쳐 여러 벼슬을 지냈다. 그 후 황간, 청풍 지방에서 민란이 발생하자 안핵사로 파견되어 민란을 수습하였다. 이 공으로 김기수는 참판에 올랐다.
김기수는 글씨를 잘 써서 서예가로도 이름이 높았으며, 시 <영매> 등이 전해져 온다.
2. 참고 자료
• 강화도 조약
• 김윤식
• 김홍집
• 박정양
• 쇄국 정책
• 수신사
• 신사 유람단
• 안핵사
• 영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