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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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8월 16일 뉴스데스크 내일의 날씨
1935년 2월 10일경북 김천시에서 태어났고 대구공업고등학교[1]를 졸업하고 1959년에 현 기상청의 전신인 중앙관상대에 들어가[2] 1965년에는 기상예보 담당 사무관(오늘날의 5급 공무원)으로 승진해서 1981년까지 중앙기상대 예보관을 맡았다. 생계가 어려워 비번 시간을 이용해 택시 운전을 하거나 연탄 가게를 열어 연탄 배달을 하는 등 투잡을 뛰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TV뉴스의 날씨예보는 기상캐스터가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기상대를 현장 연결해서 예보관(공무원)이 딱딱하고 무뚝뚝하게 전해주는 날씨예보를 내보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딱딱한 날씨예보는 사람들에게 별 관심을 끌지 못했고, 이 역할을 맡게된 그는 선배들과는 달리 나름 많은 공부와 연구를 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날씨예보에 관심을 가지게끔 예보 전달에 생기를 불어 넣으려 노력했다. 덕분에 그의 일기예보는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1972년부터는 기상대가 아닌 방송국 스튜디오에 직접 출연해서 날씨만 전문적으로 전달하는 코너가 신설되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TV뉴스 마지막에 기상캐스터가 날씨를 전하는 코너의 시초라고 볼수있다. 요즘이야 기상캐스터가 나와서 날씨를 전해주는 별도의 코너가 있다는 것이 별로 이상할 것이 없겠지만, 당시로서는 신선한 모습이었다.
1982년에 MBC 기상 보도위원으로 초빙되면서 중앙기상대를 퇴직하고 1996년까지 뉴스데스크와 아침 뉴스 프로그램에서 일기 예보를 담당했는데, 특히 아침 뉴스 시간에는 '''일기도를 직접 그려가면서'''[3] 설명하기도 했다. 뉴스데스크에 오래 출연한 관계로 단순한 기상 캐스터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확히 말하면 오늘날의 기상캐스터의 직책과는 엄연히 다른 기상대 공무원(→ 퇴직 후 보도위원) 자격으로서의 출연이었다. 물론 넓게 보면 오늘날의 기상캐스터 역할의 원조격 정도라고 볼수는 있을 것이다.
1996년에 방송에서 은퇴했고(1996년 마지막 방송) 이후 민간 기상 정보 업체인 K-Wearher의 이사로 활동하다가, 2000년 제16대 총선때 자유민주연합의 공천을 받아 고향인 경북 김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였다. 그러나 겨우 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한나라당 임인배 후보는 물론 민주당 박영우 후보에게도 밀리며 3위로 낙선했다. 본인은 당연히 당선될 것이라 믿고 있었으나 낙선한 후 자신에게나 지역주민들에게 원망하는 마음도 가져봤다고 했다. 이때 많은 빚을 져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는데, 30억원 가량을 날렸다고 한다. 또한 부인이 당뇨병 치료시기를 놓쳐 실명까지 하게되어 이후로는 부인의 뒷바라지를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으며 가끔씩 방송에 출연한다. 2007년에는 ebs 다큐멘터리에 출연했고(1 2 3 4) 2010년 10월 5일에는 뉴스데스크 40주년을 맞아 오랜만에 일일 기상캐스터가 되어 날씨를 전해줬다. BGM[4]이나 그래픽도 그 시절 그대로다! 김동완 캐스터도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느낌 그대로 날씨를 전해줬다. 뒷배경으로 흘러나가는 영상에는 빈 지도에 일기도와 전선을 죽죽 그려가는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2013년에는 채널A 분노왕에, 2016년 4월에는 mbc 능력자들에 출연했다.
기상 예보 분야에서 워낙 유명하다 보니 김동완 위원이 우산을 들고 나오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이 그날 비가 오는줄 알고 너도 나도 우산을 챙겨 들기도 했고[5], '감기 조심하세요'로 유명한 동아제약의 판피린 감기약 광고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반대로 일기예보가 틀릴 경우엔 비난 세례를 당하기 일쑤였는데, 하루에도 수십 통씩 항의전화가 오는 바람에 입맛을 잃고 점심을 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한다. 한번은 5월 5일 어린이날 날씨가 맑을 것으로 예보했다가, 하필 방송국 정문을 나오는 순간 소나기가 쏟아지는 경험을 한적도 있었다고 한다.[6] 1998년 MBC에서 방영된 휴먼 TV 즐거운 수요일에 출연했을 때 회고한 바에 따르면 예보가 빗나가서 항의를 받는 일이 하도 많아 한밤중에 남몰래 뒷산으로 올라가서 날씨 맑을 거라고 예보한 날에는 기청제를, 비가 올 거라고 예보한 날에는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하루는 어느 집에서 기와 교체 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날 아침에 김 위원이 "오늘 오전에 한두 차례 비가 오겠다"고 예보한 바 있어 이를 곧이 듣고 비가 두 번 내렸다가 그친 뒤 지붕의 기와를 걷어냈는데, 그때 또 비가 내리는 바람에 집안이 물바다가 되었고 때문에 집주인과 인부들이 김 위원에게 따지러 왔었다는 일화가 소개되기도 했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에도 걸린 적이 있었다. 결혼식 주례를 서게 되었는데 결혼식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이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익[7]을 부르는 거였다. 이에 그들을 노려보는 눈빛이 매서웠고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고는 어이없어 했다.
의외로 딱딱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재치있는데, 전두환과의 일화에서도 그러하듯이 당시 그는 인지도가 제법 있어서 당시 일요일 낮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12시 올스타쇼[8]에도 출연해서 심사평을 해달라는 MC의 부탁에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라는 멘트로 청중이 폭소를 자아내게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도 출연해서 낯선 시간 속으로(몰래카메라 출연자가 몰래카메라 장면이 나가기 전에 나오는 단막 콩트)에도 등장해 감투를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날씨대감 역으로 출연해서 내일의 날씨를 조선시대 식으로 예보한 적이 있다.# 이후 뉴스를 패러디한 소식대감(아나운서) 편에서는 날씨대감이 고뿔에 걸려서 일기예보를 하루 결방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1] 전두환고등학교 선후배 관계이다(전두환은 24회, 김동완은 26회). 나중에 김동완이 백담사에서 전두환을 만나 자신이 대구공고 출신임을 밝히자, 전두환은 "나 청와대에 있을때 한번쯤 찾아오지 그랬냐"라고 말했고, 이에 김동완은 "그랬다면 저는 '''지금쯤 청문회장에 불려 다니고 있겠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2] 원래는 사범대학 진학을 준비중이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실력을 점검하기 위해 관상대 채용시험을 쳤는데 덜컥 합격한 후 주변의 조언에 따라 취업을 결정했다고.[3] 그린 스크린을 사용한 일기예보가 익숙한 젊은 세대는 언뜻 이상하게 들릴텐데, 간단히 말해 CG 기술이 전무하던 시절이라 종이에 매직으로 기압골을 일일이 그러가며 예보를 했다.(...)[4] Frank Mills의 The Happy Song. 요즘은 종종 날씨 패러디 영상에 쓰이는 BGM으로 유명하지만 이 BGM은 1980-90년대 MBC뉴스의 일기예보에 쓰인 BGM이다. 이 BGM이 쓰였던 당시엔 김동완 기상캐스터가 현역이였을때이다.[5] 칸트가 정확한 시간에 산책을 다니는 것으로 유명해서 그게 산책하는게 보이면 사람들이 태엽을 돌려 시계를 맞췄다고[6] 비를 맞으며 귀가하니 부인이 예보가 틀렸다고 타박을 주고, 라디오에서는 "오늘의 어린이날 행사는 '''예보와는 달리''' 비가 내려 취소되었습니다"라는 방송을 수시로 날렸다고 한다.[7] "이 밤이 지나가면 나는 가네, 원치않는 사람에게로~"라는 가사의 노래. 오늘날로 치자면 결혼식장 축가로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을 부르는 것과 같은 짓이다.[8] 매주 일요일에 방송된 박상규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으로 당대의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해 청팀, 백팀으로 나뉘어 게임을 벌였다. 1990년부터 mbc의 우리말 순화 방침에 따라 'MBC 일요큰잔치'로 바뀌고 1996년까지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