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제
1. 개요
'''기우제'''(祈,雨,祭)는 비를 내려 달라고 하늘에 비는 제사를 말한다. 무우제(舞雩祭), 한제(旱祭), 수제사(水祭祀)라고도 한다.
기우제의 반대는 기청제(祈晴祭)라고 한다. 이쪽은 비를 멈춰 달라는 제사. 기우제보다 빈도는 낮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몇 번 등장한다. 또 겨울 가뭄 때는 기설제(祈雪祭)를 지냈다고 한다.
영어로는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rainmaking ceremony라는 표제어가 흔히 말하는 샤머니즘적인 '기우제'를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인다.
2. 역사
기우제의 역사는 문명의 여명기까지 올라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가 안오는 날이면 하늘이나 신,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지역과 민족을 막론하고 농경사회에서는 흔하디 흔한 형태이다. 비가 안내리면 마땅히 대체할 농업용수 공급원이 없던 예전엔,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가 되지 않고 농사가 안되면 식량 자급자족이 힘들어지며 이는 곧 나라의 사회와 경제, 문화 등의 붕괴와 직결되기 때문. 역사적으로 봐도 폭정이나 극심한 차별대우를 견디던 민중들조차 먹을 것이 부족하면 참지 않는 사례가 무수히 많다. 댐을 지어 수십억톤의 물을 저장하고 수십키로의 수도를 깔고 다시 전기모터를 돌려 물을 공급하는 현대국가조차 심심하면 비가 안와서 농지가 쩍쩍 갈라지는 뉴스가 나오는 판국이다. 현대 문명의 기술로도 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한 판국이니, 전근대 농업국가에서 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이론의 여지조차 없다.
대개 축생을 제물로 바친다. 좀 심하면 사람을 제물로 바치기도 한다. 부여에서 날씨가 안 좋을 경우 제정일치의 군장이었던 왕이 물러나거나 '''산제물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왕에게 책임을 물린다는 개념이 아니라, 왕에게 깃든 신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보고 문제가 없는 새삥으로 바꾼다는 개념이다. 원시적 종교개념에서는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서만이 아니라, 단순히 왕이 늙기만 해도 왕이 늙었다 => 신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왕을 갈아치우거나 죽인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구절상으로 전해 내려오는 기우제는 재물을 올려놓고 제사를 지낸 다음, 끝에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땅먼지가 나도록 뛰놀거나, 강강술래를 하는 행위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니면 짚으로 만든 용을 만들어서 끌고 다녔는데, 이를 본 용이 화가 나서 비를 내린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호랑이의 머리를 잘라 강물에 넣었다. 용호상박이 돼서 비를 내리는 용이 움직이기를 바랬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라오스는 기우제가 특이한데 '분방파이'라고 해서 하늘에 수제 폭죽을 쏘아올리는 축제를 연다고 한다. 태국에선 원래 동물을 제물로 바쳤는데 동물학대 문제로 요즘은 인형을 쓴다고 한다.
이렇듯 어떤 자연을 뛰어넘은 존재에게 비는 것이 기우제의 주된 골자이므로, 가뭄이 닥치면 이는 지도자의 부덕을 신 또는 정령이 징벌한다고 생각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어떤 수를 써서든 기우제를 충실히 준비해야 했다.
한번 하고 안 되면 그냥 끝인 경우도 있지만 올 때까지 무한정 지내는 기우제도 많다. 그런 뜻에서 어떻게 보면 성공률 100%, 즉 가장 확실히 비를 부르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비가 올 때까지 지내면 되니까.''' 자기계발서 등을 통해서 이것이 '인디언 기우제'라고 하여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하던 방법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기우제 자체가 최후의 수단인 만큼 지내서 효과가 없으면 누군가 원성을 받아주어야 하는데, 지배자가 평소 나라를 말아먹었다면 하늘도 버렸다 해서 반란이나 민란이 벌어질 수 있지만, 권력이 공고하다면 아무도 감히 뭐라 못 한다. 한 번 더 지내자는 수밖에.
사실 위에서는 비가 올 때까지 지내는 기우제를 '인디언 기우제'라고 불렀지만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당장 조선만 봐도 그랬다. 조선시대에 가뭄이 길어지면, 기존에 공적인 차원에서 제사를 지내던 모든 신령들에게 한 번씩 다 제사를 지냈다. 그래도 비가 안 오면 과거에 제사를 지냈다가 중간에 끊은 신령에게 제사를 지내거나[1] , 혹은 지방 각지의 안 알려진 신령들에게도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꼭 하늘이나 기후와 관련되지 않았더라도 신령이라면 일단 다 제사를 지냈다. 또한 그렇게 모든 신령들에게 다 제사를 지내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제사 사이클(?)을 또 돌렸다. 조선에서는 그 외에도 양기를 상징하는 남문을 닫고 음기를 상징하는 북문을 열거나, 억울하게 잡힌 죄수가 있나 살피고, 가벼운 범죄자들을 방면하며, 왕의 수랏상의 반찬을 줄이는 등 온갖 것을 다했다.
어떤 제사든 임금이 직접 지내는 제사가 가장 정성스러운 것이었다. 이는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심지어 공식적인 형식을 갖추어 하늘나라의 최선임자(...)에게 제사를 지낼 권리는 지상의 최선임자인 왕의 특권이다. 따라서 기우제도 임금이 직접 지냄이 가장 정성스러운 뜻을 나타내지만, 만약 임금이 기우제를 친히 지냈는데도 비가 안 온다면? 안 그래도 가뭄 때문에 임금이나 조정에 불만이 커졌을 텐데, 하늘이 임금을 완전히 저버렸다는 소문이 돌아 민심이 더욱 흉흉해진다. 과거 왕조는 왕권신수설에 따라 하늘로부터 왕권을 받아 통치한다는 정통성을 내세웠기에, 섣불리 기우제를 지냈다가 실패하면 정치적으로 좋은 공격거리가 되기 십상이라, 심하면 불만이 폭발하여 왕조가 바뀔 수도 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가뭄이 극심해도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내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게다가 임금이 제사를 지낸다면 하늘의 상제에게 빌어야 할 텐데, 하늘에 제사를 지냄이 제후국의 분수에 참람하다고 꺼리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큰 재해가 오면 아무리 골수까지 유학을 숭상하는 관료라 해도 별 수 없이 이 얘길 꺼냈다. 그래서 태종우라는 말이 있고... 또 소위 역대급 기후이변이 있었을 때는 왕이 나서야 했다. 당연하게도 왕이 직접 주관하는 제사인 만큼, 이 시기에는 수라상에 단촐한 죽만 올랐으며, 제아무리 권세가라도 사치를 자제해야 했다.[2] 조선 중종 때는 한여름날에 뙤약볕 아래서 기우제를 지내는데 어딘가에서 풍악소리가 들리자, 중종이 빡쳐서 풍악을 울린 사람들을 몽땅 잡아다 가두었다는 기록도 있다.
독특하게도 중국 고대의 사상가 순자는 기우제를 까다 못해 아주 욕을 해 댔다. 기우제에 대해 논하는 부분에서는 시작부터 기우제는 사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기우제를 까는 이유는 바로 '어차피 기우제는 안 해도 결국 비는 때가 되면 온다.'였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경우가 허다함을 보면 나름 현실적이고 정확한 통찰에 기반을 둔 비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우제를 안 지낼 수는 없었다. 만약 기우제라도 안 지내면, 백성들은 지배층이 백성들에게 아무 관심도 없다고 불만이 폭발할 테니...
기우제를 지낸 뒤 비가 내리면 신령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다시 제사를 올렸다. 꼭 기우제가 아니더라도 뭔가 신령에게 빈 뒤 이루어지면 감사하는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보사(報祀)라고 불렀다. 급할 때엔 열심히 제사를 올렸는데 이루어진 뒤엔 외면하면 도리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3. 현대
현대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농업용 용수를 빗물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조달받을 수 있게 되면서 기우제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물론 아직도 일부에서는 이뤄지기도 하지만 국가적 규모로 이뤄지는 일은 거의 없다. 필요하다면 인공강우라는 방법이 있는데, 아직 시작 단계의 기술인데다가 부작용을 생각하면 마냥 좋은 것은 아니긴 하다. 나중에 내릴 비를 일단 땡겨 쓴다고 볼 수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옆 나라에 내릴 비를 우리나라에 땡겨 내리거나 그 반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토가 넓은 나라의 내륙에서나 잘 쓸 법한 방법이지만, 나비효과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가 겪는 황사만 해도 1000 km는 거뜬히 넘는 거리를 날아온다.
마침 가뭄이 심할 때 전통재현이란 명목으로 문화행사의 형태로 행하기도 한다. 2015년 6월 강원도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자 각 지자체까지 나서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위에 언급한 기청제도 이렇게 문화행사의 형태로 치르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과학 교과서 등지에서는 기우제를 설명할 때 "제사를 지내면서 향을 많이 피우면 향 연기가 상공으로 올라가 응결핵 역할을 해서 비를 내린다."라는 어처구니없는 근거를 서술하는 경우가 잦았다. 인공강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단순히 향 피운다고 구름이 생긴다면 돈을 들이부어 인공강우를 일으킬 이유가 없다. 위에도 서술되어있지만 기우제의 가장 확실한 원리는 그냥 비 올 때까지 지내는 것이다. 현재는 교과서가 바뀌면서 이런 언급들은 전부 사라졌다.
가챠 게임에서 어떠한 캐릭터가 나올때까지 돈을 들이붓는 것을 기우제라 하기도 한다. 이유는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기우제를 지내도 비가 안 오면 또 지내고 그래도 안 오면 또 지내고 하는 식으로 비가 올 때까지 계속 지내는 것과 비슷해서. 2차 창작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특정 캐릭터가 나올때까지 해당 캐릭터를 그리는 걸 기우제라고 하기도 한다.
날씨에 민감한 종목인 야구에서도 상황에 따라 비가 내리길 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기우제를 지내기도 한다. 비가 내릴때는 가수 비의 본명을 따서 정지훈이 등판했다고 표현한다.
또한 군대에서도 아침점호를 실내에서 받으면 편하기 때문에[3] 기우제를 지내는 경우가 있다는 카더라도 있다(...).
시험을 망쳐서 시험지가 작대기로 가득 채워졌을때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장대비가 내린다", "기우제를 지냈다"고 시험을 망쳤다는 표현을 돌려 말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4. 대중매체에서
원피스에는 댄스 파우더라는 물건이 나온다. 이 가루를 불태우면 비가 내린다. 단어의 유래는 인디언 기우제에서 나온 듯. 인디언이 모닥불 주위를 춤추며 하늘에 빈다는 대중적인 이미지와 맞다. 작중에선 이 가루를 막 발명했을 당시엔 그야말로 춤을 출 정도로 기뻐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설명된다. 문제가 있다면 이 가루는 태우면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비가 내릴 수 있을 정도의 먹구름으로 성장시켜 비가 내리는 원리인데, 이렇게 하면 원래 그 구름으로 비가 내렸어야 하는 지역엔 가뭄이 와버린다. 따라서 지역간 혹은 국가간의 분쟁의 씨앗이 되어버리기에 세계법으로 사용이 금지되었다. 현실의 인공강우와 단점이 똑같다.
포켓몬의 비바라기 항목도 참조해볼 것.
조이온(구 HQ Team)의 RTS 게임 임진록2와 확장판 임진록2+ 조선의 반격에서는 마법 계열 장수들에게 비를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을 시장 상인에게서 구입할 수 있다. 비가 자주 와야 감자와 대나무가 다시 자라서 자원 자급자족이 수월해지는만큼 있을 때 쓰는 게 좋다. 문제라면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도 혜택을 받는다는 것이지만... 다만 적군이 얕은 물가에 있으면 수공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사극 용의 눈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승하하게 직전까지 가뭄에 고통받는 백성과 임금을 위해 기우재를 지냈다는 태종 이방원의 태종우 전설을 모티브로 한 각색이다.
켈트 설화를 주제로 한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 Eluveitie의 노래 Calling the Rain은 기우제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차만 하면 비가 온다는 속설을 이용한 21세기 기우제도 있다 1990년대에 활동했던 듀엣 더 클래식의 1집 앨범 수록곡 '오비이락'의 가사 중에도 '어쩌다 차를 닦는 날엔 여우비가 내려버리고'라는 구절이 나온다. 애니메이션 개구리 중사 케로로의 국내판 오프닝에서도 '큰 맘 먹고 세차하면 비 오고 소풍 가면 소나기'라는 가사가 나온다.
기상청의 기상 예측 정확도를 비꼬는 의미에서 '기상청 체육 대회 날에는 비가 온다'는 농담이 존재한다. 즉 자신들의 체육 대회 날짜의 일기도 제대로 예측 못할것이라는 디스.
웹툰 작가인 가스파드에게는 독자들의 '기우제 지내겠다'가 협박(?)이라고 한다. 자세한 이유는 해당 문서 참조.
인터넷 상에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4] 계속 될때까지 시도하는 행동이나 수많은 자본 투입 끝에 그것을 이뤄내는 것을 인디언식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 될때까지 하는것이 공통점이기 때문. 한편으론 '존버'나 수주대토처럼 가능성이 희박한 일에 무작정 매달리는 모습을 두고 인디언 기우제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1] 신령이 제사를 받지 못하게 되자 가뭄을 불러들이진 않았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2] 고려 시대에는 극심한 가뭄을 겪은 백성들을 위해 내로라하는 권력자들이 자기 재산을 기부하고 절에서 불공을 드렸다는 기록이 나온다.[3] 실내점호면 뜀걸음을 안해도 된다.[4] 특히 게임에서 확률성 도박을 통해 희박한 확률로 얻을 수 있는 희귀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