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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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백담사
1. 개요
2. 유명해진 이유 1
3. 유명해진 이유 2
4. 입장료 폐지
5. 전설
6. 교통편

한자 : 百潭寺 / 로마자 : Baekdamsa
홈페이지

1. 개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 2리 설악산 기슭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의 말사이다.

2. 유명해진 이유 1


만해 한용운이 머물며 여러 저작을 남긴 로 유명하며, 전두환, 이순자 부부가 노태우 정권 시절 '5공 청산'의 일환으로 자의반 타의반 유배 생활을 했던 절로도 유명하다.[1] 사실 1980년 10.27 법난[2]의 원인이 전두환이었음을 생각하면 얄궂고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전두환은 몰랐다고 우기지만.
전두환이 머물렀던 백담사 내 화엄실에 그의 옷과 유배 당시 사진을 놓고 '대통령 왔다감' 투의 문구를 걸어서 유배지를 관광지로 만들었다.# 메가쇼킹탐구생활 2에서 "맑은 물 가득한 백담사에서 유일하게 물이 흐린 곳 같다." 하고 깠다.#
1995년에 전두환이 구속되자 부인 이순자는 다시 백담사로 갔지만, 인제군 의원들이 "여긴 만해 한용운 선생이 머무른 곳이지, 죄인의 은둔지가 아니니 나가달라." 하고 요구하였다.#
결국 2019년 12월 들어 전두환이 사용했던 물건들을 철거했다고. 기사

3. 유명해진 이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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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덕여왕 16년(647)에 한계리에다 자장율사가 세우고 한계사(寒溪寺)라 하였는데 소실되었다. 그래서 다시 세웠는데 또 불에 타고...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다시 세웠더니 불에 타기를 반복하여 절집 160여 칸이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6.25 전쟁으로 모두 불탄 것을 1957년에 다시 세웠다.
하지만 백담사가 인터넷에서 재조명을 받은 것은 짤방 한 장 때문이었다. 중간에 해당 사이트 편집자의 불찰로 중복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3], 이를 감안하더라도 '''총 8번이나 소실되고도 계속 복구되었다'''는 점에서 근성을 느낀 네티즌들이 많았다.
사실 백담사 말고도 한국의 들 중 저렇게 여러 번 타고 다시 지어진 곳들이 제법 있지만, 아무래도 전두환이 기거했다는 사실로 유명한 절이므로 가중치를 얻은 듯하다.
짤방에서도 나오듯 사실 『백담사』라는 이름도 원래 이름이 아니다. 소실되어 중창할 때마다 이름을 바꾸었으며, 백담사라는 이름은 11번째 이름이다. 하도 에 자주 소실되어 중창하기를 계속하니, 이름만이라도 기운 가득하게[4] 지어 화기를 억제해보려는 비보풍수적 처방이다. 하지만 그러고도 또 이 났고 다시 지었다. 근성

4. 입장료 폐지


국립공원의 대다수 산사들이 길목을 떡하니 막고 입장료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다반사지만[5], 백담사는 2007년에 입장료를 폐지하였다. 백담사도 엄연히 보물급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인데도 문화재 관람료를 받지 않음은 굉장히 이례적이다.

5. 전설


낭천현(狼川縣: 오늘날 강원도 화천군)에는 비금사(琵琴寺)란 절이 있었는데, 주변 산에 짐승들이 많았으므로 사냥꾼들이 자주 찾아와 사냥하였다. 이런 살생 때문에 터가 부정해졌지만, 비금사 승려들은 그것을 모른 채 샘물을 길어 부처에게 공양하였다. 산신령이 이런 부정함을 싫어하여 어느날 밤 신통력으로 비금사를 설악산의 대승폭포 아래 옛 한계사(寒溪寺) 터로 옮겼다. 승려들이 이튿날 일어나 보니 절은 틀림없이 비금사인데 주변 지형은 생판 달라져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몰라 우왕좌왕하는데 갑자기 관음청조(觀音靑鳥)가 나타나 알려주었다.
"낭천에 있던 비금사를 옛 한계사로 옮겼느니라."
춘천 부근의 절구골, 한계리의 청동골이란 지명이 있는데, 절이 옮겨질 때 청동화로와 절구를 떨어뜨린 사연으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백담사는 그 뒤로 여러 번 불이 나서 위치를 옮겨가며 재건하기를 반복하였다. 또한 사찰의 명칭 또한 자주 바꾸었다. 조선 정조 7년(1783)에 현재의 '백담사'라는 사명을 지었는데, 여기에도 전설이 있다.
당시 주지승이 꿈을 꾸었는데, 도포를 입고 머리가 백발인 산신령이 나타나서 "대청봉에서 절 터까지 웅덩이가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라." 하였다. 날이 밝자 주지가 일어나 꿈에서 들은 대로 산에서부터 절까지 물 웅덩이 수를 세어보았더니 꼭 100개였으므로 절 이름을 백담사(百潭寺)라고 지었다 한다.

6. 교통편


자동차는 46번 국도, 대중교통은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백담입구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하면 된다. 원통터미널에서 출발하여 고성 진부령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백담입구터미널로 올 수 있지만, 1일 10회밖에 안 들어오므로 반드시 다이어를 숙지해야 한다. 용대리 백담마을 백담사입구에 주차장이 있는데, 이곳부터 백담사까지는 걸어가거나 용대향토기업에서 운행하는 마을버스[6]를 이용해야 한다.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운행하지만 주말 등 성수기에는 빗자루질을 한다. 동절기에는 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다. 백담사 입구부터 백담사까지 거리는 7 km, 걸어서 2시간 정도다. 2019년 11월 기준 버스 탑승료는 편도 2500원인데 약 10~15분 정도 걸린다.
길이 외길인데다 한쪽은 낭떠러지라 백담사에서 내려오는 버스와 백담사로 향하는 버스가 마주쳐 후진을 하거나 살짝 버스를 비틀어 비켜주는 일이 자주 있다. 이때 어쩔 수 없이 한 버스는 낭떠러지 쪽으로 차체를 갖다대야 하기 때문에 손님 입장에선 마치 버스가 떨어질것만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7] 다만, 당연한 얘기지만 이미 이와 같은 경험을 수백 수천 번 이상 하신 버스 기사들은 태연하게 운전한다.
미래에 춘천속초선 백담역 신설이 예정되어 있다.

[1] 물론 전두환은 백담사에 그냥 은거만 하지는 않았다. 절 옆에 비닐 하우스를 지어 관광객들을 상대로 불교와 자신을 주제로 강연하고, 단체 관광객들이 요청하면 센터에 앉아서 사진도 같이 찍어주는 등 서비스(?)도 곧잘 했다.[2] 승려들 대부분을 체포, 구금하여 삼청교육대 수준으로 핍박했다. 이 때문에 불교 신자는 가히 '''반감'''되었다.[3] 6째 줄 '신라 진덕여왕' ~ 11째 줄 '절터 위 20리' 부근이 중복[4] 백담(百潭)이 '연못 백 곳'을 뜻한다. 백담사 이외의 이름들도 삼수변이나 이수변, 비 우 부수자 등 어떻게든 물과 관련된 이름들이다.[5] 신흥사가 대표적이다. 근데 그래도 여기는 설악산국립공원 땅 태반을 갖고 있었던지라 그 대신 수입을 얻는다고 치면 그러려니 하지만[6] 마을버스 한정면허 노선이다.[7] 실제로 외마디를 지르는 손님들도 간혹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