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환

 


(1897-?)
조선공산주의독립운동가였다가 '''변절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로 본명보다는 가명인 김일성(金一星)으로 유명하다. [1]
경상남도 양산 출신으로 본래는 부산 범어사에서 승려로 있다가 3.1 운동에 가담하여 본격적으로 독립운동가가 되어 중화민국 베이핑으로 건너가게 된다. 베이핑에서 공산주의를 접하고 공산주의자가 된 이후 1929년 북만주로 건너가게 된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시 북만주의 한족총연합회는 김좌진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김봉환은 한족총연합회를 장악한후에 공산주의 단체로 변모시키기 위해 암약했지만 김좌진과 뜻을 같이하던 아나키스트 김종진과 이응규가 이런 김봉환의 의도를 알고 저지하여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김좌진에게 앙심을 품은 김봉환은 아나키스트인 박상실,박상규에게 김좌진을 무고했고 이에 박상실이 김좌진을 암살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김좌진 암살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의 연구성과로 인해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김봉환은 여류소설가 강경애와 내연관계로 동거중이었는데 일본이 이를 알아낸 뒤 강경애를 만나러 오던 김봉환을 체포했다고 한다. 당시 이 체포를 주도한 사람은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의 경찰국장인 마츠시다였다고 하는데, 이후 김봉환은 강경애와 풀려나오긴 했지만 최소 6-7년은 징역을 살 걸로 보였던 김봉환이 쉽게 풀려나오자 만주 한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은 그가 변절한 대가로 쉽게 풀려나온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다만 연구가들에 따르면 와전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2].
얼마 후 만주의 한인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는 '''김좌진이 마츠시다와 밀담을 나눈 후에 공산당원들이 대거 체포되었다'''라는 소문이 떠돌았고. 당시 만주의 조선공산당 당원의 증언에 의하면 "김좌진이 공산당원들을 팔아넘겨서 박상실 쪽에서 제거하지 않았으면 우리 쪽에서 제거했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런 괴소문을 퍼뜨린 인물을 김봉환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봉환이 자신에 대한 인상이 안 좋아지고 자신이 일본의 밀정짓을 하고 있는것을 들킬까봐 이를 공산주의자들에게 김좌진의 소행으로 떠넘겼고 김봉환의 마타도어에 넘어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 박상실을 보내 김좌진을 암살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결론이다.
다만 위 내용들이 모두 확립된 것은 아닌데, 증언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1. 김봉환이 변절한 것이 맞느냐 아니냐
  2. 김봉환의 사주로 박상실이 암살한 것이 맞느냐 아니냐
  3. 김봉한의 연인이 강경애인가 김경애인가. 강경애라면 여류 소설가 강경애인가, 혹은 동명이인 유치원 교사 강경애인가
이 3가지 부분에 있어서 논박이 있기 때문에 뭐라고 하기는 좀 어려운 편이다.
변절설 반박글 링크 1, 2.
이유야 어찌됐든 김좌진을 암살한 직후 김봉환은 공개적으로 '''김좌진이 일제에 투항해서 우리가 처단한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 말대로 김좌진이 정말 일제에 투항했는지는 의문. 혐한들이나 일부 조선족 기록에 의하면 이 기록을 사실처럼 기재하는 경우가 있고 업그레이드해서 '''일본에 투항하고 주색잡기에 빠진 김좌진''' 떡밥을 돌리기도 했다. 물론 한국에서는 공산주의자와의 노선차이로 암살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90년대 초반 중앙일보 현대사 연구 기사에 의하면 이런 투항설이 사실은 일제의 공작, 즉 투항하지 않는 김좌진을 투항한 것처럼 믿게 한 이이제이라는 가설도 나왔다.
이후 김봉환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김좌진이 죽은 이후 만주 한인단체들을 장악하려다 그 알력으로 살해되었다거나 일본의 밀정 짓을 하던 것이 알려져 공산주의자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추측이 있다.
장군의 아들의 원작자 홍성유은 자신의 소설 홍성유 인생극장에서 김일성 가짜설과 이 사람을 엮어서 김봉환이 "진짜 김일성"이고 우리가 봤던 북한의 독재자는 가짜 김일성이라고 하는데 신빙성은 없다. 어차피 그 당시 김일성은 매후 흔한 이름이였다. 혹은 반대로 혹부리 김일성이 '''김좌진 장군을 암살한 사람'''이라는 엉뚱한 취급도 받고 있다. 김좌진이 암살된 것은 1930년에 북한 김일성은 18세 미성년자라서 이런 거대 암살을 지시할 위치도 힘도 없던 시절[3]이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하는 건 김일성을 미화하는 북한과도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1] 사실 이름값 좀 한다는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합네 하면서 괜히 '김일성 장군 설화'를 차용해서 자신들이 김일성이라고 사칭하는 일이 많았다.[2] #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여러 자료를 종합할 때 김봉환의 동지였던 여성은 강경애가 아니라 황해도 출신으로 고려공산당 여자선전부원으로 활동했던 김경애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3] 김좌진 장군은 1930년 1월에 암살당했고, 혹부리 김일성은 1930년 3월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