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관(1925)

 




1. 개요


1925년에 강원도 김화군(현 철원군 김화읍)에서 태어나 1947년에 해군사관학교 1기로 졸업[1]했다. 해군본부 비서실장, 제주도지사, 합동참모본부 군수기획국장, 진해통제부사령관, 한국함대사령관[2]을 거쳐 1966년에 해군참모총장에 올랐다.
대한민국 해군의 첫 대장이다.
예편 뒤에는 외교관으로서 전쟁이 한창이던 베트남 공화국 주재 대사로 부임했다. 특히 1975년 4월 사이공 함락 직전의 교민철수를 진두지휘했고, 남베트남 패망 직전에 무사 탈출했다. 그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기뻐하며 그를 다른 임지로 보내려고 했으나... 이대용(李大鎔) 공사를 비롯한 몇몇 공관원이 탈출하지 못한 사실을 알고선 그의 귀국인사도 받지 않았다고.[3]
2015년 12월 완공한 제주 민군복합항[4]에 '김영관 센터'로 문화센터가 설립되었다. 해군참모총장과 제주도 지사를 모두 역임하였고 제주도에 공헌한 바가 큰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한 듯. 김영관 센터에는 실내수영장, 숙소, 식당 등이 설치되어 있다. 제주지역 해군 동원 예비군은 동원 첫날 이곳에서 소집한다.


[1] 동기생은 함명수, 장지수, 이맹기, 이태영, 공정식[2] 현대의 해군작전사령관[3] 이는 그의 잘못이기보다 철수를 약속해놓고 조급함+욕심을 부리던 일부 교민들의 탓이 크다. 오히려 당시 대사가 해군의 전직 수장이었던 덕분에 많은 교민들을 안전하게 철수시킬 수 있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 그리고 이대용 공사를 비롯한 사이공에 남은 외교관들은 베트남 공산정부에 의해 투옥되어 고초를 겪은 끝에 사이공 함락으로부터 5년이 지난 1980년에 겨우 석방, 귀국했다.[4] 군 기지 내부가 아니라, 기지 입구에 설립되어 군인, 시민 모두 이용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