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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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明洙
1928년 2월 15일 ~2016년 11월 23일
1. 개요
대한민국 해군의 제독. 이맹기 제독에 이어 7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
2. 생애
1928년 평안남도 평양부(현 북한 평양직할시)에서 태어났다.
1946년 해군사관학교 1기로 입학했다. 동기로는 전임 참모총장이었던 이맹기 제독과 후임 참모총장을 지낸 김영관, 장지수 제독, 한국전쟁중 전사한 이태영 해군 중령이 있다.[1]관련글 소위로 임관한 뒤 충무공함 부장을 지냈고, 충무공함 3대 함장, PF-66 임진강함장, 제1전단사령관, 작전참모부장 등을 거쳐 1961년에 한국함대사령관(지금의 해군작전사령관)에 올랐다. 해군본부 정보참모로서 1949년 몽금포 작전을 기획하고 직접 지휘하던 중 총상을 입기도 했고, 한국전쟁 당시 정보국장으로 인천상륙작전 사전 첩보작전인 X-ray 작전을 위해 직접 공작대를 지휘하여 인천지역의 정보를 전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2] 1963년부터 64년까지는 동기인 이맹기 제독의 러닝메이트로 해군참모차장을 지냈고 이맹기 제독이 퇴역하자 이어서 해군참모총장에 올랐다.
1966년 전역했고 후임자는 김영관 제독이었다. 해군참모총장 가운데 마지막 중장 전역자였다. 김홍열 제독이 여러 사정으로 인해 1년 정도 중장으로 참모총장 근무를 한 적[3] 이 있긴 하지만 최종 계급은 대장이었다.
이후 제9대, 제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인천상륙작전(영화)의 주인공 장학수 대위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이기도하다.[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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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는 영국을 찾아 참전용사 행사에 참여했다.
그가 군생활을 회고한 기사가 나왔다.
[1] 안타깝게 먼저 세상을 떠난 이태영 동기생에 대해 각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2] 작전중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3] 해군 중장급들이 하나회 문제 등으로 날아가버리는 바람에 소장이었던 김홍열 제독이 중장으로 진급해서 해군참모총장을 맡았다. 최저 복무기간 때문에 1년간은 중장으로 근무하고 임기 나머지는 대장으로 근무했다.[4] http://www.theceluv.com/article.php?aid=1470921624118512012[5]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7&oid=298&aid=0000196032[6]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214&aid=0000657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