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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孔正植
1. 개요
2. 생애
3. 선거이력


1. 개요


대한민국군인. 대한민국 해군 장교로 군생활을 하다가 6.25 전쟁 도중에 대한민국 해병대로 소속을 바꿨다.
김두찬에 이어 6대 해병대사령관을 지냈으며 최종계급은 해병중장이었다. 후임자는 강기천 대장이었다.[1]

2. 생애


1925년 9월 3일 경상남도 밀양군 초동면에서 태어났다. 마산상업고등학교(18회) 졸업 후 1946년해군사관학교(1기)에 입학했고 그해 12월에 임관했다. 동기로는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이맹기, 함명수, 김영관, 장지수 제독이 있다. 해군 소위 임관 후 해군 항해장교로 근무했고 301정장, 302정장, 경주함장을 지내기도 했다. 1949년 8월 16일에 해군 몽금포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인천상륙작전에 해군 704함 부장으로 참가한 것을 계기로 해병대와 인연을 맺게 된다. 공정식의 자질을 눈여겨 본 해병대 장교들의 설득으로 '대위'때 해병대로 전과하여 해병대 제 1대대장이 된다. 이후 6.25 전쟁에서 눈부신 성과를 올리며 승승장구하였고, 제3전투단장, 1여단장, 제1해병사단, 부사령관을 거쳐 1964년에 해병대사령관에 올랐다.
5.16 때 해병대도 일부 병력이 서울에 투입되는 등 가담했는데, 당시 사단장이었던 본인은 몰랐다고 회고록을 통해 밝혔다. 당시 평시에도 유엔군 사령부 권한으로 국군 작전권을 행사한 주한미군측에서 쿠데타에 가담한 부대를 진압하라고 했는데, 해병대가 같은 해병대를 공격할 수 없다고 하며 거부하였다.[2]
초기에 해병대가 여러 부대에서 인원을 끌어오다보니 출신이 다양해서[3] 그가 전역한 1966년부터 1977년까지 해군사관학교 출신 사령관이 없다가 12대 정태석(해사3기) 중장이 취임했다. 그 후에는 해병간부후보생 출신인 정광호 중장, 이병문 중장, 이동용 중장, 김정호 중장, 전도봉 중장을 제외하면 전원이 해사 출신이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남도 밀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처음에는 3선 개헌에 반대하다가 찬성으로 돌아섰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신민당 박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5년 기준으로 해병대전략연구소장을 맡고 있었다. 작은 아들도 해병대 장교 출신이다.
'바다의 사나이 영원한 해병'이란 제목의 회고록을 집필하였다. 초창기 대한민국 해군과 해병대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자료이다.[4]
2019년 10월 25일 향년 94세로 사망했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67
제7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밀양군)
민주공화당
-
'''당선'''

1971
제8대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밀양군)
민주공화당
-
낙선

[1] 5.16 군사정변제1해병사단이 참가한 공로에다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해병대는 1966년부터 1973년까지 사령관이 대장이었다. 대한민국 해군1966년 김영관 제독부터 대장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해군 대장(참모총장)이 해병 대장(해병대 사령관)을 지휘하는 구조가 비정상적이라는 지적을 받으면서 해병대사령부1973년에 해체되고 직책도 사령관에서 해군제2참모차장으로 격하되었다. 이후 1987년 해병대 사령부가 부활했지만, 사령관은 지금까지 중장 계급이다.[2] 당시 육참총장이었던 장도영 역시 국군이 같은 국군을 공격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3] 해군에서 만주군이나 일본군 출신을 해병으로 몰아넣은 것도 있고 해군특교, 해병학교, 해병간부 등 임관루트가 변주가 심했다.[4] 2009년 출판. 전 2권으로 한권은 개인 사진집, 다른 한권은 딱 41세에 해병대에서 전역할 때 까지 다룬 회고록이다. 비매품인지 서점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책이니, 주변의 해병대 전우회 관계자에게 보유여부를 문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