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1960)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보통 투수로 활약했으나 타자로서도 두각을 보이곤 했다.
2. 프로 선수 시절
고려대학교를 나와서 MBC 청룡에서 활약하던 선수였다. 대학 시절인 1981년 대학야구 사상 최초로 4게임 연속 홈런을 치는 활약으로 국가대표팀 선수로 발탁되었고, 1982년 가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선발, 주전은 아니지만 간간히 대타로 나오며 짭짤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이 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는 2-0으로 뒤지던 8회말 대타로 나와 역전의 발판이 된 1타점 중월 2루타를 날렸고 김재박의 스퀴즈번트[2] 때 홈인하는 등 여러 면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3]
하지만 프로 무대에선 다소 부진했다가 투수로 변신하여 재기를 노리던 1986년 11월 3일, 팀메이트 안언학, 김경표와 예비군 훈련을 가던 도중 승용차가 버스와 정면 충돌하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4] 향년 26세.[5]
김정수의 사망 소식은 1986년 11월 4일 동아일보 9면 하단에 기사가 났다. 당시 기사
1988년 6월, 법원에서 프로야구선수는 정년이 40살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미망인에게 40살까지 현역으로 뛸 시 받는 연봉으로 계산한 뒤, 그 후 55세까지는 일용직 임금을 적용하여 합산한 금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게 된다.
3. 연도별 성적
4. 관련 문서
[1] 197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 준우승#[2] ''''개구리 번트''''로 알려진 그 번트[3] 이 때 홈을 밟은 1루 주자가 이후 롯데 자이언츠, MBC 청룡에서 활동한 심재원. 그도 1994년 폐암으로 고인이 되었다.[4] 가해차량이 대성운수 소속 버스였던 것 같다. 아래 기사를 참고.[5] 동승했던 안언학은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로 이적하여 재기를 꿈꿨지만 실패하고 은퇴. 김경표도 이렇다 할 활약 없이 1989년 유니폼을 벗고 낚시로 소일하였다가 이후 다시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