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박
1. 개요
선수로서는 MBC 청룡-LG 트윈스의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강대중-김진영-박정일-하일-김재박-이종범-박진만-강정호-김하성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간판 유격수이자 KBO 간판 유격수 계보의 원조. 감독으로서는 현대 왕조를 이끌고 네 번의 우승을 이룬 명감독 이다.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및 前 감독이자 前 KBO의 경기감독관. 2015년부터 새로운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의 코치도 겸임하고 있다.
KBO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선수와 감독으로서 우승을 모두 경험한 사람'''이기도 하다.[3]
선수시절 LG 트윈스 (구MBC 청룡)의 레전드로 평가받지만 감독시절에는 아쉬움을 남겼다.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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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청룡-LG 트윈스를 거치면서 선수로서는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할 수 있다. '''선수로서는'''[4]
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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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감독 시절
영광의 현대 유니콘스 시절과 아쉬웠던 LG 트윈스 감독 시절로 요약할 수 있다.
4. 대표팀과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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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에 걸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03년 제22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겸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 대표팀 감독.
2006년 제15회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야구대표팀 감독.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하였다. 2003년에는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이어 대만에게도 패함으로써 '삿포로 참사'를 겪었고[5] , 2006년에도 대만에 이어서 주로 사회인리그 출신[6] 으로 구성된 일본팀에게도 패함으로서 '도하 참사'이란 말을 들었다.
부임할 때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임팩트가 상당한 흑역사를 만들어 냈으니 앞으로 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는 건 힘들 것으로 보인다.
5. KBO 경기 감독관
감독 임기를 끝내고, 바로 다음 시즌인 2010 시즌부터 KBO의 경기감독관 자리에 앉았는데 팬들에게 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우천취소 결정에 있어서 욕을 많이 먹고 있는데 비가 안 와도 때려버리는 말도 안되는 짓을 해대고 있기 때문에 반발이 심하다. 오죽하면 고척 스카이돔에서 경기 열어도 관중 오기 불편하단 핑계를 대고 우천취소 때려버릴 양반이라는 말이 나올까.
쌓이고 쌓여서 2015년 6월 5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릴 경기를 비가 그쳤음에도 우천 취소를 때려버려 팬들의 원성을 샀고 급기야 SBS 스포츠에서 우천취소 메뉴얼까지 제안해가며 김재박을 깠다. 2015시즌 후반부 월요일 경기 및 더블헤더 임시 도입에 이 사람의 우천취소 남발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다.
5.1. 2016 시즌
이런 팬들의 원성에도 불구하고 경기운영위원장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팬들의 분노가 더 커지고 있다. 거기에 개막 3일째인 4월 3일, 한화-LG와의 경기를 비가 그쳐가고 있는데 경기장 불량으로 취소를 해버려서 일요일 낮경기를 날려버린데다가 정작 경기시작시간인 2시에는 비가 그쳐버리면서 욕을 더 먹고있다. 결국 KBO에서 징계를 검토하겠다는 기사가 떴다.
막무가내 우천취소로 인해 이런 농담이 나올 정도.
2016년 4월 4일, KBO사무국이 김재박 감독관에게 6경기 출장 정지를 내렸지만, 야구팬들은 솜방망이 처벌 이라는 평이 대다수이다. 이전에 최동원 감독관이 비슷한 사유로 똑같은 징계를 받은 만큼, 이번에는 최소 20~30경기 출장 정지는 받았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이후 동년 4월 16일 전국에 비가 내리자 광주구장에서 열리기로 한 넥센-기아 경기를 제외하고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30분-1시간정도 후 우천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김재박 경기감독관도 이날 삼성-두산전에 배정되었다가 45분 기다려 보고 우천취소를 선언했다. 솜방망이 처벌 문제는 둘째치고, 어느정도 경각심을 가지게 된 효과는 분명히 존재하는 듯 하다.
5월 10일에는 사직 넥센-롯데전에 배정되었으나, 부산 지역의 우천으로 인해 경기 시작 1시간 12분 전에 우천 취소를 결정하였다.
하도 여론이 안좋아서 김재박이 술을 즐겨 술자리에 참석하기 위헤 우천취소를 시켰다거나, 강제우취시키고 관계자들과 회식했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야알못이 간다에서 자신은 술을 못하고 술자리 회식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런 논란 때문인지 2016시즌을 끝으로 경기감독관 직에서 물러났다.
6. 이야깃거리
-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구광역시 토박이이지만 딱 한 번 대구를 떠난 적이 있었다. 경북중학교(현 경운중학교)를 졸업할 당시 경북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대구 지역의 고등학교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신체가 작았던 김재박은 경북고등학교 입학에 실패하자 서울에 있는 대광고등학교로 진학하여 서울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게 된다. 현재 대광고등학교 자체는 건재하지만 야구부는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능력이나 역량을 배제하고 인물평으로는 야구계 안팎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이다. 자부심 강하면서도 표현이 직설적이라 오해를 살만한 언행이 종종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감독이 되고나서 사람이 바뀌었다는 평도 있었는데 일례로 현대 유니콘스 창단 감독 겸 감독생활 첫 해였던 1996년에 오랫동안 팀이 정규리그 2위를 달리며 잘 나갈 당시, 스포츠서울에서 한 주간 프로야구의 뒷이야기나 에피소드를 전해주는 주간방담 코너에서 김재박을 디스한 적도 있었다. 내용인 즉 타 구단 감독들이 입을 모아 '초짜 감독 주제에 팀 성적 좀 나온다고 눈에 뵈는게 없다. 뭐 저딴게 다 있냐' 는 식으로 뒷담화를 까는 감독이 있다는 내용인데, 김재박이라고 대놓고 지칭한 건 아니었지만 이 당시 초짜 감독이면서 팀 성적 잘나오는 감독은 김재박밖에 없었다.(...) 당시 선배 감독들에게 이런식으로 뒷담화를 까인것도 문제인데 그걸 굳이 기자들이 지면으로 까발렸다는건 기자들에게조차도 평이 안 좋았다는 뜻.
- LG감독 첫 해인 2007년 4월 22일 삼성전 2-3으로 뒤진 연장 12회말 2사 1루에서 이대형의 2루땅볼이 1루심의 오심으로 아웃 판정을 받자 엄청나게 분노해서 어필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 며칠 내내 그 상황을 가지고 불만을 표출하다가 심지어는 "설사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때로는 관중의 재미를 위해 세이프를 선언할 필요도 있지 않냐"[7] 는 발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심판 판정은 모든 팀에게 공정해야 적용되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팀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오심도 불사하라는, 야구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망언이다.
- 삼성이 한창 FA영입에 열을 올리던 시절 삼성처럼 돈으로 우승을 사면 누가 우승 못하나는 발언으로 삼성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든 전과가 있다. 그리고 2016년 FA와 용병의 영입으로 과감히 돈을 투자하고도 성적이 안나오는 한화 이글스를 동시에 비판하는 명언으로 남았다.
- 추신수에 대한 검증 드립 또한 야구팬들에게 조롱의 대상. 도하아시안게임 최종엔트리에서 결국 추신수를 빼버리면서 "추신수는 검증이 되지 않았다" 는 드립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추신수가 아무리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의 선수가 아니었다고 해도 타국에서 성공을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에게 덕담이나 위로는 커녕(당시 추신수는 군면제를 위해 국제대회 출전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저런 말로 후배 기나 꺾는다며 대차게 까였다. 그 이후 추신수가 슬럼프에 빠지자 "거 봐, 아직 검증이 안 됐다고 했잖아." 라며 "추신수를 왜 안뽑았냐 하는 말은 야구를 잘 몰라서 하는 얘기." 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그야말로 욕을 사서 먹는게 뭔지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거기에 마지막에 '추신수 출신 고교 사람들이나 그 지역 사람들이 유독 유난을 떠는 것 같다' 라고 하며 지역감정 탓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반박도 존재한다. 김인식감독도 “기술적으로 국내 프로야구 정상급 타자보다 나을 게 없다”고 평가하며 대표팀 발탁에 반대한 만큼 추신수의 대표팀 탈락은 김재박의 독단적 판단이 아니었으며, 당시 대표팀에 최종선발된 외야수는 이병규, 이용규, 이진영, 이택근, 박재홍 총 5명으로 김인식감독의 말대로 모두 국내 프로야구 정상급 외야수들로서, 추신수 대신 이들이 대표팀에 선발된것이 대표팀의 전력을 약화시켜 승패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는것이다. 하지만 이는 타당하지 못한 반박으로서, 당시 추신수는 AAA에서 OPS .893 메이저리그에서 OPS .812를 기록했는데 이는 한국으로 온 어떤 용병타자보다 좋은 기록이었으며, 리그의 수준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OPS만 비교한다 해도 이택근을 제외한 다른 국가대표 외야수들보다 OPS가 더 높았다. 명백히 급이 다른 선수를 검증이 되지 않았다며 뽑지 않은것이 맞다.
- 여러가지 대기록을 망쳐먹기로 유명하다. 과거 현대 시절부터 시작된 행태로, 자세한 것은 맨 아래에 있는 항목 참조. 요근래 최대의 경력이라고 하면 2009 시즌 롯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박용택의 타율 1위 수성을 위해 경쟁자였던 홍성흔을 4연속 볼넷으로 내보내는 업적을 남기셨다. 박용택이 출전하지 않은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뻔히 보이는 연속 고의사구는... 이 때문에 타팀팬뿐 아니라 언론사들에게도 까이는 중. 오죽했으면 1980년대로 돌아갔다고 할까. 그 예시로 김영덕을 들었을 정도.
- 2009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 펜스거리 단축을 제안하고 구단 프런트가 이 요청을 들어주어 LG가 홈경기를 할 시에는 구장의 크기를 줄이는 X-존이 만들어졌다. 팬들 사이에서의 이름은 재박존 혹은 재박산성... 재빡존이라고도 언급한다. 쿠션 기능같은건 전혀 없고 그냥 설치 제거가 쉬운 판때기 펜스일 뿐이었다.
말이 많긴 했지만 홈런도 그럭저럭 나오고 일부 팬들은 만족한 모양이긴 한데, 여튼 2009년 시즌 결과를 놓고 보자면 재박산성이 설치된 경기에서의 LG 트윈스의 각종 공격 수치가 약간 상승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상대팀들의 공격력은 더 많이 상승했다는 게 문제... 그냥 2009년이 타고시즌이라서 리그 전체 타격이 올라온것일 뿐. 원정팀에 유리한 홈 어드밴티지였다는 비참한 결과를 낳은 희대의 쓰레기 전략으로 남고 말았다. 뭐, 거기엔 상대적으로 빈약한 LG투수진이 한 몫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 자신이 공들여 키운 박진만이 FA때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자 그때부터 삼성을 대놓고 싫어했다. LG에 와서도 '라이벌은 삼성'이라고 말을 했으나 현실은 시궁창.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주 틀린말도 아니다. 김재박의 재임기간 중 삼성도 선동렬감독이 이른바 멍게강점기라 불리는 삼성 역사상 두 번째 암흑기를 열어 4,4,5[8] 라는 처참한 성적을 찍는 바람에 양 팀이 나란히 시궁창에 처박혔기 때문(...) 따라서 따지고보면 라이벌은 라이벌인데 삽질 라이벌(...)
- 2008년 시즌 종료후 LG구단 자체 행사로 펼쳐진 역대 올스타 경기에서 현역 선수가 무색해질 만큼의 유격수 수비와 송구를 보여주어, 차기 시즌 LG 주전 유격수는 김재박이라는 LG팬들의 자조섞인 농담이 오가기도 했다(…).
- 역대 LG 트윈스의 감독 중에서도 매우 나쁜 성적 을 거뒀지만 나름대로 프랜차이즈 스타라서 그런지 경질론과 재계약론이 비등비등했던 뭔가 희한한 감독이다. 결국 2009년 9월 26일을 끝으로 3년 계약이 만료되어 감독직을 떠났다. 그런데 그 전에 했던 인터뷰 내용이 알려지면서 엘지 팬...아니, 대한민국 야구 팬들한테 아주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까이고 또 까이고 있다.
그 내용이 걸작인데, 정리하자면 난 잘했는데 프런트가 못했고, 선수들이 잘 안따라줬고, 구단이 안밀어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쉽다. 하지만 어쩌겠나. 모든 책임은 내가 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이런 인터뷰. LG팬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팬들은 김재박이 앞으로 프로구단 감독을 맡기는 힘들다고 단언할 정도로 치를 떨었다. 이 와중에 묻힌 사실 중 하나는 이광은 전 감독 때부터 이어지던 LG 감독 임기 중 하차를 끝낸 인물이라는 것.
그러나 후임 박종훈 감독 역시 빵빵한 지원을 받고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는데 실패하고, 선수들의 기강이 많이 해이해졌다는 것을 말하는 기사가 늘어나면서 과연 LG가 부진한 것이 감독의 문제인가에 대해서 재고의 목소리가 늘어났다.
그러나 후임 박종훈 감독 역시 빵빵한 지원을 받고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는데 실패하고, 선수들의 기강이 많이 해이해졌다는 것을 말하는 기사가 늘어나면서 과연 LG가 부진한 것이 감독의 문제인가에 대해서 재고의 목소리가 늘어났다.
- 한때 자기가 내려갈 팀이라고 말했던 팀의 감독으로 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 선수 시절인 1986년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에서 시상자인 여배우 이보희가 유격수 수상자인 김재박의 이름을 김재전이리고 부른 해프닝이 있다. 해당 동영상 博을 傳으로 잘못 읽어버린 건데, 이 사건 때문에 당대 최고 인기 여배우이던 이보희는 곤욕을 치렀다. 요즘은 한자를 많이 안 쓰지만, 그때만 해도 한자를 많이 사용하였기에 한자를 읽을 줄 알아야 유식하다고 평가받았다. 김재박 선수는 매우 유명한 선수였기에 그 실수는 굉장한 화제가 되었다. 나중에 선수 이름을 한글로 표기하도록 바뀐 뒤에는 이런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하카타역의 한자도 博을 쓰는데, 가끔 가다 傳多역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보일 지경. 사실상 국한혼용체가 사장된 이유다. 유명한 해프닝이었기에 20년도 더 지나 김재박 본인도 이 김재전 드립을 써먹기도 했다.
두 글자를 확대해서 봐도 많이 비슷해 보인다. 여기서는 글씨체가 정자체로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구별이 가능하지만 아마도 흘려서 쓴 것을 보고 착각했던 듯 하다. 여담으로, - 불암콩콩코믹스의 숨겨진 주연(?). DTD드립 때문인듯. 심지어 '시범만화' 에피소드에서는 저사람 이만화 제일 많이 나와!!라는 핀잔도 들었다.
- 2011년에는 뜬금없이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이라는 저축은행의 대부 광고 CF를 찍었다. 이게 또 주로 야구 중계방송 때 나왔다.(...) 나름대로 훌륭한 예능감을 뽐내고 있다. 이 기묘한 광고 캐스팅은 현대그룹과 전혀 무관한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이 자신들이 현대그룹 계열사인 것처럼 보이려는 꼼수를 부리려고, 현대 유니콘스의 전감독인 김재박을 데려다 찍은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 2012년 한화 이글스와 넥센 히어로즈가 감독을 잇달아 경질하면서 현장 복귀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러 언론들의 보도로 한화 이글스 감독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전구장과 한화 2군경기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것이 목격되면서 사실상 김재박으로 결정된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9] 하지만 한화 이글스는 김응룡을, 넥센 히어로즈는 염경엽을 차기 감독으로 낙점지었다.
- 2013년 kt wiz 창설로 또다시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조범현이 그 자리를 가져갔다. 이후 사상 최악의 추락을 경험한 기아의 선동열, SK의 이만수 감독이 흔들리면서 기회를 찾는 듯 했지만 두 팀 모두 일단 감독의 임기를 지켜주기로 결정. 당분간 야인으로 남게 되었다. 다만, 2014 시즌이 끝난 후에는 감독 임기가 만료되는 팀이 3팀에다 도중하차 가능성이 있는 팀도 2팀이나 있어서 다시 얘기가 나오는 중. 그러나 기아는 일단 선동열의 임기를 2년 연장했다는 발표를 하고, SK는 김용희를, 한화는 김성근을 감독으로 선임하였다는 발표가 나면서 야인 생활은 연장될 전망이다. 그리고 기아는 선동열이 팬들의 여론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자진사퇴를 하면서 또 얘기가 나왔으나 김기태가 선임되었다는 발표가 나면서 무산.
- 풋케위키라는 축구전문 위키 사이트에 등재된 유일한 야구인이다. 또 홍진호가 등록되어 있다.[10] 풋케위키 - 김재박
- 허영만 화백이 그린 김재박 단편만화도 존재했었다. 소년중앙 별책부록으로 끼워준 단편만화책으로 그야말로 김재박이 그 당시 국딩들한테 어떤 위상이었는지 말해주는 증거 중 하나. 제목이 <천재 야구왕 김재박>이었다.
- 2014년 김시진 감독이 사퇴하자 박정태와 함께 롯데 감독 후보로 떠오르는 중이다. 다만, 일각에선 현대와 LG 시절부터 '초기 투자'를 많이 요구하던 김재박의 스타일을 들어 박정태 단독후보로 내세우면 욕먹을까봐 낸 구색맞추기 용 후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단은 이종운이 감독으로 선임되어 1년을 더 기다리게 됐다. 그래도 양상문 역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지 9년 만에 다시 LG 트윈스를 이끌었고, 김재박이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프런트가 시의 적절한 지원을 하는 구단의 감독이 될 경우 호성적을 기록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 2012 시즌이 끝나고 은퇴한 박재홍은 김재박을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았고[11] , 2013 시즌후 은퇴한 박경완도 김재박과 함께한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의외로 김재박 감독을 존경하는 지도자로 꼽았다.[12]
- 경기 감독관으로 활동하면서 우천취소를 많이 시키는걸로 야구 커뮤니티들에서 회자되다보니 클로저 이상용 690화에서 김재박을 패러디한 감독관이 우천취소를 하려다가 사무총장에게 슬리퍼 홀드를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 웹툰 삼국전투기에서도 패러디 캐릭터로 특별출연한다. 우천취소를 쉽게 결정하는 모습을 반영하여, 요동전투 편에서 폭우가 내리자 철군을 주장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관구검이 대장이었을 때는 철군을 받아들이나, 사마의가 왔을 때는 철군 주장을 하자마자 바로 처형당한다.(...)
- 창단 팀과의 인연이 많은 사람이다. 대광고등학교 야구부, 영남대학교 야구부, 한국화장품 야구단 모두 창단된 팀이었고, MBC 청룡도 후반기 13경기 뿐이지만, 프로야구 원년에 경기에 활약했다. 그리고 감독도 현대 유니콘스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 2017년 9월 대구광역시 엑스코에서 열린 ICT 융복합 컨피런스에 강연자로 출연했다. 특기할만한 내용은 본인이 감독을 할 시 추구하는 야구는 이기는 야구로 팬을 불러모으는 야구이며, 미국 야구가 그런 야구라고 생각하며, 명예 회복을 위해 감독직을 한번 더 수행해보고 싶다라는 것이다.
- 후배가 운영하는 군월드라는 기업의 고문으로 있다고 한다. 기온이나 습도의 차이에 따라 투구나 타격에 미치는 영향이 존재하며 이를 분석해 야구에 과학을 접목시키고 있다고 한다.
- 감독 시절에 팀 말아먹은 인간이 선수 시절까지 폄하되는거야 흔히 있는 일이지만 김재박은 DTD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버리는 바람에 과거선수시절을 돌아보는 기사가 나와도 그냥 'DTD만든 아저씨' 취급을 당하고 있다. 감독으로서 화려한 성과를 거둔 현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고 LG는 80년대 팀의 얼굴마담이기는 했으나 꼴찌를 기록한 감독이기도해서인지 백인천, 이광환, 김용수 등을 챙겨도 김재박은 챙기지 않는다.
- 1983년 4월 당시 롯데전에서 9회말 마지막 홈런으로 인해 당시 부산에 어떤 시청자가 홈런소리에 흥분해 집안을 몽땅 태운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타임머신에 다루었다.
6.1. 논란
2006년 경 네이버 뉴스의 댓글이 개편된 이후 ''''위대한 김재박 감독님의 화려한 업적들''''이라는 비아냥성 제목으로 뉴스 댓글란에 꾸준히 게시되면서 퍼지기 시작한 글이 옛 리그베다 위키 시절 본 항목에 게시되었고, 이후 위키러들의 편집을 거쳐 아래와 같이 정리된 상태이다.
- 1998년 8월 26일, 이승엽과 타이론 우즈가 치열하게 홈런경쟁을 펼칠 때[13] 현대가 삼성에 크게 이기고 있음에도 이승엽 타석에서 고의사구 지시. 수많은 삼성 관중들이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승엽의 홈런을 기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보란 듯이 이승엽을 고의4구로 걸렀고 경기장에는 빈병이 날아들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19대 4로 점수차가 크게 난 상황에서 안병원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질 때 1루주자였던 양준혁이 도루를 성공하자 보복성으로 고의사구를 던진 것이다. <스포츠 기자석> 팬들을 죽이는 프로야구 [14] [한국프로야구 난투사](29) 대구 관중들, 현대의 ‘이승엽 고의 볼넷’에 분노 폭발 당시 허구연은 신문 기고를 통해 '우리 프로야구는 이승엽이란 슈퍼스타가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 경신이란 좋은 재료를 지니고 있음에도 상대 팀들의 지나친 견제로 축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 1998년 5월 14일 해태전, 이대진이 10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하고 있을 때 11번째인 4번타자 김경기에게 번트를 지시했다고 알려졌는데 이 사건은 사실이 아니다. 당시 기록지에는 유격수 땅볼로 아웃된 것으로 나오고[15] , 야구의 추억이라는 칼럼으로 유명한 김은식은 이대진을 주제로 한 칼럼에 번트를 댔다는 내용을 썼지만 후에 이대진과의 인터뷰에서 "갖다 맞추려는 스윙을 했지 번트는 아니었다" 라는 말을 들었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또 이대진 본인도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번트를 대려는 느낌은 못 받았다고 직접 말했다. 경기 영상의 부재와 김재박에 대한 편견 때문에 만들어진 거짓 사건. 현대가 "지금 우리팀은 10타자 연속 삼진을 당해서 신기록을 세워줬는데 더 이상은 안되겠다. 번트라도 대어서 삼진 기록만은 한번 끊고 가자" 라고 생각하고 번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김경기에게 번트를 지시한다? 그런 것은 상대방을 도와주는 꼴이다. 매경기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데 신기록을 체크하며 경기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감독이나 코치 선수들이 설마 연속 삼진기록을 외우고 다닐까?
- 2000년 5월 19일 한화전, 박경완이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찬스였는데, 5번째 타석에서 교체(…). 당시 팀메이트 조웅천에 의하면 사실은 빈볼 우려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상대였던 한화 이글스가 이 한 경기에서만 10홈런을 쳐맞는 추태를 보이며 처참하게 격침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확실히 빈볼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16]
- 2003년 8월 15일 삼성전, 현대의 박종호가 홈런, 3루타, 2루타를 기록하고 6-7로 뒤지던 9회 무사 2루에서 마지막일지 모르는 타석에 들어섰다. 이때 현대 벤치의 사인대로 희생번트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결국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박종호-박용택 ‘아! 사이클링 히트’ 사이클링 히트가 진기록이지만 대기록까지는 아니고 이걸 밀어줘야할 이유도 딱히 없다. 다만 승리를 위한 플레이라면 희생번트보다 강공을 선택하는게 더 낫다는 의견이 있다. 무사 2루에서 3번의 기회동안 안타가 나오는걸 기대하는것이 아웃카운트를 하나 주고 주자를 3루 보내는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결국 현대는 점수를 못내고 한점차로 졌다.
- 2000년 시즌 후반 박종호의 타격 1위를 굳히기 위해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5경기에서 박종호를 출전 제외했으며, 10월 12일 SK전에서 타율 2리 차이로 근소하게 추격하고 있던 틸슨 브리또에게 고의적인 몸에 맞는 공을 던져 부상시켰다. 결국 열받은 브리또는 "더러워서 타격왕 안 해먹는다" 라며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한 경기만을 남겨두고 다음날 출국해버린다.
- 2005년 KBO 올스타전은 장종훈 선수생활 마지막 KBO 올스타전이었는데, 당시 장종훈을 계속 기용하지 않다가 9회 마지막 투아웃 이후에, 그것도 원스트라이크 이후에 선수들과 팬들이 웅성거리니까 그제서야 마지못해 내보냄. 단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다. 2005년 올스타전은 장종훈 은퇴식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장종훈이 대타로 나간 타석은 본래 조인성의 타석이었다.[17] 당시 중계화면을 보면 김재박 감독도 옆에서 말하기 전까지 전혀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머쓱 웃으며 출장을 지시하는데, 그 표정이나 상황이 아무리 봐도 '마지못해서'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 경기를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KBO 역사의 한편을 장식한 거포를 은퇴식임에도 불구하고 '잊어버리고' 출전시키지 않은 것도 '마지못해' 내보낸 것 이상으로 비판받을 일이다. 그런데 당시 기사에는 조금 다르게 적혀 있다. 원문은 여기
- 이외에도 2000년 시즌은 특히 기록 밀어주기로 인해 시끄러웠다. 임선동, 김수경, 정민태의 등판을 조정해가며 결국은 3명 공동 다승왕을 만들어냈으며, 다승왕 나눠먹기라고 크게 비판받았다. 박종호 타격왕 밀어주려고 한 거야 위에 써져 있고, 박재홍의 타점왕 수성을 위해 10월에 들어서면서 득점 찬스 때마다 대타로 내보내 경쟁자였던 타이론 우즈와 훌리오 프랑코를 각각 4, 5점 차로 따돌리며 타점왕 수성에 성공시키는 등의 추태를 보여주었다. 이론상 강타자를 선발로 안쓰고 주자 있을 때만 투입하는건 팀의 손해기는 하나 반대로 그 이유가 아니면 굳이 대타로 쓸 이유도 없었다.
- 2004 아테네 올림픽 야구 아시아 예선전 - 삿포로 참사
- 2005년, 모 팀을 겨냥하여 '5월이 되면 내려가는 팀이 나온다'는 명언을 시전.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데, 김재박의 명언은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가 아니고 "5월이 되면 내려가는 팀이 나온다"이다. 기사 하여간 당시 2위던 모 팀은 5위로 시즌 마무리. 최근 나온 증언에 따르면 이 말은 그 모 팀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니라, 현 시점에서 소속팀 현대가 최하위에 쳐져 있긴 하지만 일정 간격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어떤 팀이 미끄러지는 순간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의미의 발언이었다고 한다.
- 2008년 5월 29일, 이재우가 야맹증 때문에 항상 쓰고 나오는 고글을 지적하였다.[19] 이 일로 흔들렸는지 그 해 방어율 1점대를 기록하고 있던 필승계투 이재우는 안타를 맞고 강판되었고, LG는 이와 같은 "감독님의 활약" 덕에 잠실 라이벌인 두산전 5연패를 그날 끊었다.(...)
- 2009년 박용택 타격왕 시켜주려고 출전 안 시키고 타격왕 경쟁상대인 홍성흔을 4볼넷으로 보내버리는 진상짓을 벌이고 말았다. 1984년 당시 타격왕이었던 삼성 이만수의 타율을 지키기 위한 홍문종의 고의사구 사건이 25년만에 다시 벌어진 셈. 지상파 스포츠 프로그램들은 이를 두고 졸렬한 플레이라고 하나같이 비난했으며 덕분에 인터넷에서는 '졸렬쥐' '졸렬택'이라는 별명이 만들어졌다.졸렬택 플레이어
7. 만능 스포츠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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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한국야구사에 7관왕은 2명이다. 실업리그의 김재박과 KBO리그에서 이대호가 각 1번씩 기록했다.
그래서 그런지 야구계 인물치고는 특이하게 축빠라 카더라....[20][21]
김재박 감독 ‘축구도 전문가’
김재박 감독 비시즌엔 축구선수로 둔갑?
김재박 감독, 상암구장 찾아 '축구사랑'
김재박 감독의 '축구 강의'
농구·축구도 김재박 눈에는 야구로 보여
(2006 투혼) 김재박, "태극마크 달았으니 무조건 이겨라"
8. 역대 감독 성적
[1] 양력 생일은 6월 23일[2] 現 경운중[3] 현역 말년이던 1990년 한국시리즈 때 LG 트윈스 선수로 우승을 경험했고 1998년 한국시리즈 때 현대 유니콘스 감독으로 우승을 경험했다. 김재박 이후 선수와 감독으로 우승을 모두 경험한 사람은 조범현, 선동열과 김태형. 이중 조범현은 선수-코치-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해 본 유일한 사례다.[4] 선수 경력과 지도자 경력이 너무 극과극이라서 강조가 되어있다.[5] 덕분에 아테네올림픽은 본선에 나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듬해에 야구계를 뒤흔든 큰 사건이 터졌다.[6] 일본의 사회인 야구는 우리나라의 실업야구 수준에 해당하여 프로에 준하는 선수들이었다고 쉴드를 치기도 하나, 선수단 22명 중 프로에 진출한 선수는 8명이고, 프로에서 제몫을 한건 초노 히사요시 한 명 뿐이다. 1명 빼고 전원 프로였던 한국이 10점 주고 박살날 상대는 절대 아니었다.[7] 사실 한미일 통틀어 볼과 주자가 동시에 들어오면 규정상 세이프다. 김재박 외에도 이 규정을 모르는 관계자 및 팬이 많은 편.[8] 이 5위 때문에 삼성의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기록은 물거품이 되었다. 만일 이 때 기록이 깨지지 않았으면 2016년 삼성은 20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야만없(...)[9] 당시 한화 프런트는 김재박을 감독 단수 후보로 상부에 보고했지만, 수감중이던 김승연 회장을 대신해서 그룹 경영 총괄하던 장남이 무조건 최고를 데려오라면서 김재박 대신 김응용을 찍어서 지시했다는 카더라가 인터넷에 퍼졌다.[10] 풋케위키에 검색하면 심판 홍진호가 먼저 나오지만 동명이인에 들어가면 나온다. 참고로 심판 홍진호가 나중에 등록된 것이며, 프로게이머 홍진호가 1년 먼저 등록되어 있었다. 등록날짜가 2012년 2월 20일이다! 풋케위키 홍진호 링크[11] 이는 그럴만한게 박재홍이 신인 시절부터 김재박 감독이 엄청나게 힘을 실어주며 주전 1번타자로 키웠기 때문이다.[12] 물론 박경완의 경우는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로 조범현을 호명했다.박재홍의 경우는 김재박을 제일 처음 호명.[13] 8월 26일 당시에는 이승엽 36홈런, 우즈 29홈런이었다. 이후 우즈는 9월에만 11홈런을 치며 역전하게 된다.[14] 논외로 기사를 닫고 정면에 사진을 보면 깨알같은 옛 된 재일교포 출신 추성훈의 사진과 인터뷰가 있다.[15] 푸시번트로 살아나가려고 하지 않는 이상 유격수 땅볼 아웃이 나오는건 상상하기 힘들다.[16] 15년 후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데, 2015년 5월 26일 마산 대 두산전에서 에릭 테임즈가 3연타석 홈런, 그것도 투런 홈런만 한번 더 치면 되는 사이클링 홈런에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 나왔는데, 한 타석만 남겨둔 상황에서 7회 대수비 조평호로 교체된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어차피 이긴 게임이었으니 이참에 후보선수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교체했다고 밝혔으며, 에릭 테임즈에게 2번을 물어봤는데 테임즈가 쿨하게 승낙해서 교체했다고.[17] 조인성이 빠지면 감독추천이었던 신경현이 포수 마스크를 썼어야 했는데, 당시 신경현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출장하지 않기로 되어있었다.[18] 기존본엔 이대형사건도 있었는데 편집됨.[19] 고글 착용은 규정상으로 위반이나, 어쩔 수 없거나 별 이상 없으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관례다.[20] 사실 김재박은 2005년 상암 야구장 개조 드립 때문에 다른 축빠들에게 평판이 안좋다.[21] 야구선수들은 물론 운동선수들 중에도 축빠가 많다.[22] 3위 한화, 2위 쌍방울을 꺾고 코시진출.[23] 드림리그[24] 드림리그[25] 페넌트레이스 3위였던 두산에게 패배[26] 페넌트레이스 4위였던 LG가 한국시리즈 진출.[27] 전설의 명언이 탄생한 시즌 [28] 페넌트레이스 3위였던 한화에 패배[29] 6668'''587'''667 구간이다.[30] 김재박의 감독 커리어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꼴찌. 그리고 승률 0.365로 감독 커리어 사상 최저승률 기록도 갱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