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영 순경 총기난동 사건
1. 개요
1991년 6월 26일 서울 북부경찰서 도봉파출소 소속 김준영 순경(범행 당시 27세)이 자신의 38구경 리볼버 권총에 실탄을 장전해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에서 평소 원한관계에 있던 일가족 4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우범곤 사건 이후 다수의 피해자를 낳은 경찰관에 의한 민간인 대상 총격 사건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사회적인 충격을 주었다.
2. 전개
범인 김준영은 의정부시 금오동에서 자신의 부모, 형제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는데 1989년부터 이웃집에 사는 청송식당 김경배 씨(당시 31세) 가족들과 주차문제[1] 로 오랜 시간 시비가 붙어왔다. 다툼 끝에 김준영은 1991년 초 김경배 씨의 친형 김성배 씨(당시 33세·교사)를 폭행해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혔고, 폭행죄로 고소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김준영은 김성배 씨에게 고소 취소와 합의를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간 쌓여왔던 갈등에 더해 엄청난 앙심을 품게 되었고, 1991년 6월 26일 오후 7시 30분 경 근무지인 도봉파출소를 이탈해 자신의 권총을 챙겨 청송식당으로 가서 김경배 씨와 김완배 씨 형제를 살해하고, 이어 피해자 형제의 여동생인 김현숙 씨(당시 28세)가 운영하던 태양슈퍼로 들어가 카운터를 보고 있던 박진호 씨(당시 31세)와 이미영 씨(당시 27세) 부부에게도 총을 쏴 살해했다. 사건의 또다른 피해자인 박진호 씨와 이미영 씨는 김현숙 씨 남편 박문호 씨(당시 32세) 동생 내외로 형수의 가게 카운터를 대신 봐주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1시간도 되지 않아 4명을 무참하게 살해한 김준영은 자살할 생각으로 오후 10시 15분 쯤 과거에 근무했던 서울시경 제1기동대에 나타나 동료 순경 고아무개 씨에게 "나는 일을 저질렀으니 죽어야겠다"며 2만원을 빌려 월미도로 향했다가 월미도 부두에서 다음날 새벽 1시경 출동한 경찰에 의해 긴급체포되었다. 체포된 김준영은 반성은 커녕 자신도 피해자이고 자신은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피해자들에 대한 적의를 거두지 않았고, 현장검증에서도 시종일관 태연한 태도를 유지해 많은 사람들에게 경악을 불러 일으켰다.
3. 범인 김준영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시경에서 전경으로 군복무를 마친 김준영은 1988년 경찰에 특채되어 1990년 8월부터 서울 북부경찰서 도봉파출소 소속 순찰차 운전요원으로 근무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사건 이전까지 별다른 물의를 야기한 적 없이 성실히 근무한 평범한 경찰관이었다.
4. 재판과 결말
1991년 9월 11일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형사합의부는 김준영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보복방법이 엉뚱하고 만행적이며 범행사실에 대해 뉘우치는 기색이 없는 점 등을 감안, 법정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결이유였다. 김준영 측은 이에 불복해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으나 1992년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도 사형판결이 내려졌고, 1992년 5월 대법원에서도 사형이 확정됐다. 김준영은 수감 중 가톨릭에 귀의했다. 그리고 1997년 12월 30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당했다. 참고로 저 사형은 대한민국에서 마지막으로 집행된 사형집행이었다.
5. 둘러보기
[1] 김경배 씨 가족이 김준영네 집 앞에 계속 자신들의 차를 주차한다는 사소한 문제로 시비가 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