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1. 개요
2. 역사
3. 관광
3.1. 관련 문서
4. 대중교통


1. 개요


월미도상가번영회 홈페이지

월미도(月尾島)는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에 속해 있는 섬이'''었'''다. 현재는 섬과 육지 사이가 메워졌다. 섬의 생김새가 반달 꼬리 모양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 높은 곳은 월미산으로, 해발 고도는 108m에 불과하다. 월미도 밑에는 그보다 작은 소월미도가 있다. 인천시민들과 그 주변 도시 주민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2. 역사


역사에 처음 등장한 때는 1695년 숙종 비변사등록에 처음 나왔다. 당시에는 어을미도라고 불렸다. 지금의 월미도의 뜻과는 상관 없지만 더 좋은 뜻으로 바뀌기 위해 월미도라고 바꾸었다. 이왕이면 더 좋은 뜻으로 바꾸자는 것. 비변사 등록에 나와있는 내용을 간추리자면, 1656년에 어을미도에 행궁을 지었는데 공사를 해야 해서 돈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공식적으로 처음 나온 것은 1708년에 상소문 중 적이 와서 강화도의 길이 막혔을 때를 대비해 월미도까지 행궁을 만들고 피란로를 만들자고 하였다. 그리고 월미도와 인천은 해상군사요충지라는 이유를 들었다. 여기서 조선 중기부터 이미 월미도가 군사 요충지로 알려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때쯤부터 어을미도에서 월미도라고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개화기 때에는 러시아 해군석탄 창고와 일본 해군기지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열강들이 이곳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별였다. 대표적인 예로 병인양요 때 이 섬을 점령한 프랑스 해군은 지휘관 로즈 제독의 이름을 따 로즈 섬(Roze Island)이라고 했다. 마치 독도를 리암쿠르 암초라고 이름 붙인 것처럼.
심지어 1900년 월미도의 개간권을 허가받은 '''친일파 송정섭'''#이 일본인 요시가와에게 '''개간권을 팔아 넘겼으며''', 요시가와는 '''월미도 주민을 강제로 내쫓았다.''' 조선 정부는 송정섭을 체포하고 매각 대금을 일본 공사관에 전달하고 개간권의 반환을 요구하였으나, 요시가와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1904년 8월에 일본군이 작전상 필요하다며 포대를 쌓았으며, 1905년 5월에는 민가 80여 호를 철거시키고 섬 전체를 점거하였다. 1923년 1km의 제방을 쌓아 육지와 연결한 후 유원지로 개발되었는데, 주로 일본인들을 위한 조탕[1], 별장, 요정, 해수풀장[2] 등이 들어섰다.
북한에서는 월미도를 '영웅의 섬'이라고 부르며 '월미도 정신'이라는 구호까지 만들어 월미도를 각별하게 생각하는데, 북한정권의 선동자료에 의하면, 6.25 당시 전황이 불리하여 후퇴를 할 상황에 놓이자[3] 최고사령부는 시간을 벌기 위해 요충지인 월미도에 사수를 명령한다. 월미도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은 최고사령부의 지시를 목숨처럼 여기며 3일동안 결사항전을 하였고[4] 전원 사망으로 당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벌어준 3일 덕에 북한군은 전력을 재정비하여 전승에 기여했다 이런 이야기인데...그러나 실상은 연합군은 단 수십분만에 월미도를 접수했고 북한군 120명 사망 190명 투항, 연합군은 1명사망 22명 부상에 그쳤을 정도로 연합군이 일방적으로 줘팬 전투였다. 영웅적설화는 당연히 거짓으로 당시 자료 화면을 보면 알몸차림으로 손을들고 제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하는 북한군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휴전 이후에는 놀이동산과 인천항만, 공장, 그리고 대한민국 해군 부대가 들어서게 되었고, 이 중 해군 주둔지는 제2함대평택시로 이전하며 부지를 반환, 월미공원이 조성되어 현재에 이른다. 공원 내 2함대 주둔지였음을 뜻하는 기념구조물이 있다.

3. 관광


  • 월미도 내에 위치한 놀이동산들이 유명하다. 마이랜드, 월미테마파크, 비취랜드, 월미랜드, 바이킹 놀이동산, 슬링샷[5]이 있는데 각 놀이동산이 보유하고 있는 놀이시설도 비슷하고 서로 거리도 가까워서 사람들이 다른 운영사인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시설 중에는 바이킹, 타가다 디스코(디스코 팡팡)와 월미테마파크에 위치해있는 문 아이가 유명하다. 하지만 마이랜드, 월미테마파크, 비취랜드의 경우 안전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어 안전문제에 대해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으므로 타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히 생각해 볼 것. 사고가 났었던 놀이기구는 마이랜드의 바이킹, 비취랜드의 썬드롭, 월미테마파크의 회전그네와 크레이지 크라운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사망자가 발생한 사례는 없지만 안전문제에 대한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 버스로 몇 분 거리에 차이나타운이 있어 월미도랑 함께 두 곳을 관광코스로 이용하는 편이다. 두 곳을 모두 가보고 싶다면 월미도로 가는 입구인 대한제분 입구의 인천항 내항 8부두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차이나타운과 월미도를 관광하면 된다. 다만 8부두 주차장에서 놀이동산 등이 있는 월미도 번화가까지는 도보로 이동하기 다소 버거울 수도 있다. 이 경우 주차장 건너편 동일아파트 앞에서 아무 버스나 타면 된다. 이 정류장을 거치는 버스는 모두 종점이 월미도다.(추가 - 북성동 1가 98-39도 무료 공영 주차장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을 권한다. 주차장이 꽉 찰 때가 많기 때문.
  • 월미도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영종도영종 씨사이드파크가 위치한다, 바다 양쪽 사이드로 공원이 마주보는 특이한 사례. 월미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영종씨사이드파크로 이동할 수 있다.
  • 월미도 놀이동산 주변 길 가로수가 벚나무이다. 봄철에 벚꽃이 매우 예쁘다. 놀이공원도 갈 겸,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 추천.
  • 주변에 해변 따라 자전거 도로가 있다. 길이는 짧은 편이지만, 바다를 끼고 있어 그런대로 풍광이 좋다.
  • 서울특별시 등 수도권 지역에서 가까이 접근할수 있는 바닷가인 터라 인터방송 하는 사람들이 자주 야외방송, 촬영을 하러 온다.
  • 월미도 안에는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해외로 이민을 다룬, 인천시에서 만든 역사박물관으로서 지명도에 비해 전시내용이 매우 충실한편이다. 예를 들면 한국 이민사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파라과이 교민역사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전시되어있다. 그밖에 쿠바, 멕시코 이민사등 전시내용이 꽤나 자세한편. 중고등학교에서 현장학습 목적으로 이곳을 찾는 경우도 많다.

3.1. 관련 문서



4. 대중교통


  • 수도권 전철 1호선 인천 방면 종착역인 인천역에서 가장 가까운데 걸어서 가기에는 다소 멀고 버스를 타면 10분 내외로 접근할 수 있다. 인천역과 월미도를 이어주는 시내버스는 2, 10, 45번 등이다. 특히 이 3대 버스는 우연히도 전부 다 월미도가 종점이며 부평역으로 가고 운영사가 동화운수로 같다.[6] 그 외에 월미바다열차가 월미도로 직접 들어간다.[7]

[1] 潮湯, 바닷물을 끓여 데운 목욕탕.[2] 바닷물로 만든 풀장.[3] 인천상륙작전 때문이란 말은 안나온다.[4] 두 눈이 멀은 와중에도 포를 장전하던 병사, 몸을 피신하라는 말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죽어가는 와중에도 전화선을 연결했던 여군통신병 따위의 영웅적 묘사가 나온다.[5] 마이랜드 옆에 붙어있는 놀이기구.[6] 2번 효성동, 10번 삼산동, 45번 효성동[7] 원래는 2009년부터 인천역과 월미도를 연결하는 월미은하레일이 운행될 예정이었으나 부실시공 문제로 인해 개통하지 못했고 시설 전체를 철거하느냐를 두고 상당 기간 논쟁을 벌인 바 있다. 결국 2016년에 기존의 철로와 차량을 모두 철거·폐기 처분 했고 궤도 부설 공사를 다시 한 끝에 2019년 가을부터 2량으로 재개통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잠시 운행이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