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공
1. 개요
신라의 상대등이자 추존 국왕. 혜충태자의 4남이며 민애왕, 문목부인, 정교부인, 조명부인 4남매의 아버지이다. 아내는 '''친남매'''인 귀보부인이다.
봉암사지증대사탑비에 의하면 시호는 '''선강태자(宣康太子)'''이며, 흥덕왕이 즉위하자 태자로서 감무를 보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형인 흥덕왕보다도 일찍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흥덕왕 사후 왕위는 그의 아들인 김명이 아닌 김제륭에게 돌아가게 된다.
삼국사기 본기에는 헌덕왕 13년인 821년 사망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이듬해인 822년 김헌창의 난을 진압하는데 참여하는 것은 물론 녹진 열전에서 822년 상대등에 임명된 것으로 나온다. 삼국사절요에서는 난이 끝난 822년 4월 사망했다고 하였는데 이는 상대등에 임명된 직후 병을 앓았다는 설명과 일치하므로 이게 옳은 것으로 보인다. 녹진의 말을 듣고 시름시름 앓던 병을 떨쳐내긴 했으나 결국 회광반조였던 모양.
2. 신라 하대 왕위 쟁탈전의 중심
특이점이라면 이 사람의 자손들이 신라 하대 왕위 쟁탈전의 중심을 이룬다는 점에 있다. 세 딸 공히 김예영의 자손이 되는 희강왕과 김균정의 부인들로 들어가게 된다. 이는 인겸계가 예영계와 손을 잡으면서 혼인 관계를 통해 돈독한 관계를 맺고자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래서 예영의 장남 헌정의 아들인 희강왕이 혜충태자의 양자가 되어서 들어오게 되고, 희강왕에게 그의 딸 한 명이, 그리고 차남인 균정에게는 그의 딸 두 명이 동시에 시집을 가면서 두 집안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물론 왕위라는 것 하나에 그게 다 어그러저버린 것이지만...
또한 그의 아들 김명도 역시 이 왕위 쟁탈전에 끼어 들어가서 기여코 왕위에 오르지만 얼마 못가 죽임을 당하게 되면서 그의 직계는 사실상 끊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