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세스 1세
사산 왕조 제7대 황제. 재위기간 294-302
1. 개요
호르미즈드 1세와 바흐람 1세의 동생이다. 생전에 퇴위하고 이후에도 생존했지만 호르미즈드 2세의 퇴위 이전에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2. 정권 탈취
바흐람 1세의 치세에는 왕들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르메니아의 왕[1] 이었다. 또한 바흐람 2세 때에는 사산 왕조의 황제에게만 인정된 화폐를 발행하고 자신의 이름과 초상을 새겨 넣어 자신이 정당한 계승자라는 것을 주장하였다. 바흐람 2세는 단순히 로마를 이용한 이이제이책만 폈을 뿐 이후의 조치가 미흡하였고, 결국 이걸 빌미로 정국 혼란을 초래하는 불씨를 초래하였다.
바흐람 3세가 즉위하자, 나르세스를 지지하는 귀족들은 쿠데타를 도울 것을 맹세하였고, 여기에 이전 나르세스의 즉위를 막았던 조로아스터교의 지도자 카르티르도 협력하였다. 그렇게 쿠데타가 일어나 바흐람 3세는 재위 4개월만에 폐위된다.
3. 막장스런 치세
이후 즉위한 나르세스 1세의 치세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나르세스는 즉위 후, 로마에 빼앗긴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의 탈환에 착수했다. 당시의 로마 제국 동방은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그의 양자 겸 사위 갈레리우스의 시대였는데, 그들과 8년에 걸친 전쟁을 치르게 된다.
페르시아군은 287년에 로마가 왕위에 앉혔던 티리다테스를 296년에 아르메니아 왕위로부터 추방했다. 297년에는 로마에서 티리다테스를 돕기위해 갈레리우스가 출진했다. 하지만 갈레리우스는 3번의 교전 뒤 패배하여 로마로 퇴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2만 5천의 군사를 다시 일으켜 아르메니아로 향했다.
결국 갈레리우스는 아르메니아인의 도움으로 나르세스의 군대에 피해를 입히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수복했다. 나르세스는 초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결국 로마군에게 대참패를 당한다. 로마군은 기세를 몰아 수도 크테시폰까지 쳐들어왔고 이때 수도를 빼앗기고 도주했다. 하지만 미처 도망가지 못한 후궁과 아내 및 자손들이 인질로 잡혔고 크테시폰은 로마군에게 파괴되고 약탈당한다. 동시에 티리다테스는 다시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복위했다. 이윽고 로마는 니시비스를 가르지르는 선을 중심으로 아르메니아와 크테시폰을 교환하는 것을 제안했다. 수도를 안 받을 수는 없으니, 아르메니아를 달라는 뜻이었고, 나르세스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 이후 40여년동안 평화가 지속되었다.(299년)
본거지 아르메니아를 완전히 잃은 나르세스 1세는 생전에 왕위를 호르미즈드 2세에게 넘기고 은퇴하였다.
4. 평가
일단 바흐람 3세를 폐위하고 즉위했는데, 그런 주제에 무언가 한 일이 없다. 정권 찬탈이야 조선의 세조나 명의 영락제도 마찬가지였지만, 영락제야 명 제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는 인물이고 세조도 후반에 말아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암군이나 폭군은 아니었다. 반면 나르세스는 로마와 전쟁을 벌이던 중에 쿠데타를 일으켜 사산 제국을 불리하게 만들었으며, 협상에만 매달리며 로마의 침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아르메니아를 잃었다. 이후로도 황제로서 아르메니아를 수복하기는커녕 로마와의 외교에 실패하여 침공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했으며, 그 결과 수도가 파괴되고 영토를 상실하고 말았다.
[1] 아르메니아는 원래 왕가가 파르티아 왕가의 방계였는데, 사실상 본국이었던 파르티아가 사산 페르시아로 교체되자, 이 속국의 왕위에도 기존 왕가를 쫓아내고 이 나르세스를 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