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론
1. 개요
노론에서 갈라진 학파이다. 후에 시파로 확대/이어진다.
2. 상세
낙론의 생성 배경은 호락논쟁인데, 호락논쟁(湖洛論爭)이란 노론 내부서 발생한 논쟁이다. 심성론의 성선의 강조로 인해 생기는 모순을 둘러싼 논쟁으로, 인물성동이론쟁(人物性同異論爭)[1] 이라고도 한다. 이는 유교적 주체인 "성인"과 보통 사람의 성이 같은지 다른지에 관한 논쟁으로 확장되었으며, 인간의 본성 중에서도 도덕심에 관한 논쟁으로 정치와 관련된 주요 의제였다.
노론 내부에서 인물성동론[2] 을 주장한 이들을 낙론이라 했다. 호락논쟁은 성리학에 내재된 모순을 둘러싼 논쟁으로서, 양란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악화된 강상윤리 관련 문제가 기득권에게 포착되고 해결을 위한 정쟁/논쟁이였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의 정의의 따라 청나라 문물의 도입 문제로 연결되기도 하였다. 주로 경기 서울 지방 등 기호서인이 주였다.
탕평책에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탕평파와는 입장을 같이 하지 않아서 호론보단 낙론이 우세를 보였으며 낙론은 시파로 발전해 세도정치때 시파 출신 김조순과 풍양 조씨 조만영로 이어졌다. 다만 붕당은 상황에 따라 변화했기에 시파=낙론이라는 식을 성립하지 않는다.
한편 호론 내에 갈등 때문에 권상하의 후손인 권진응이 낙론에 합류하였다. 또한 문묘종사 이후 송준길의 후손인 송명흠이나 송문흠이 낙론인 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3. 주요 인물
- 이재
- 송명흠
- 송문흠
- 권진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