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군
1. 개요
낙안군은 조선 시대까지 있었던 행정구역으로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과 외서면, 보성군 벌교읍 일대이다. 그리고 이곳이 해체 됨으로써 보성과 벌교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자세한 것은 벌교읍 문서 참조.
2. 낙안군의 역사
2.1. 고대 ~ 고려시대
백제 분차군(分嵯郡)이 있었고 신라 경덕왕 때 분령군(分嶺郡)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낙안군으로 개칭되었다.
2.2.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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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래 보성군과 낙안군의 영역을 현재의 읍면 경계를 참고하여 그린 지도. 큰 변동은 없었으며 이 영역이 1908년 낙안 폐군 이전까지 유지되었다.[1]
원래 현재의 벌교읍 일대는 낙안읍성으로 잘 알려진 '''낙안군'''(樂安郡)이라는 독립된 고을에 속해 있었으며, 조선시대 이래로 낙안군의 최대 중심지는 낙안읍성 일대였고 벌교는 고을의 남쪽 변두리의 작은 포구 겸 장터 마을이었다.
낙안군은 백제 때는 분차군(分嵯郡)이라고 불렸다. 757년에 분령군(分嶺郡)으로 개칭하고 충렬현(忠烈縣)[2] , 조양현(兆陽縣)[3] , 강원현(薑原縣)[4] , 백주현(栢舟縣)[5] 4개의 속현을 관할했다. 940년에 낙안으로 개칭되었고 나주의 속현이 되었으며, 이전에 관할하던 4개의 속현은 보성군으로 이관되었다. 동시에 충렬현, 강원현, 백주현은 남양현(南陽縣), 두원현(荳原縣), 태강현(泰江縣)으로 개칭되었다. 후에 다시 낙안군으로 승격하였다. 원래는 현 벌교읍 고읍리에 관아가 있었으나, 조선 초에 왜구가 들끓자 더 내륙인 낙안읍성 자리로 이전했다. 고을 사람이 자기 어머니를 죽이는 등 범죄를 저질러 현으로 강등된 적도 몇 번 있지만 그때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으로 복구되었다.
1895년 23부제 시행으로 나주부 낙안군이 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 13도제 실시로 전라남도 낙안군이 되었다. 장도(獐島), 여자도(汝自島) 등 낙안군이 관할하던 섬들은 신설된 돌산군으로 전부 이관되었다.
낙안군은 읍내면, 내서면, 외서면, 동상면, 동하면, 초상면, 초하면, 고상면, 고하면, 남상면, 남하면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지금의 벌교읍 지역은 옛 낙안군 고상면, 고하면, 남상면, 남하면(일부), 동하면, 초하면(일부) 지역에 해당한다. 이 낙안군 시절의 5개 면 이름 중 일부는 지금도 '남상조경', '남상향우회', '남하로', '남하향우회', '고상 백이동우회', '고상 이장협의회' 등 관습적 지명으로 남아 상호명, 도로명, 주민 단체명 등에 쓰이고 있다. 고상, 남상, 남하가 특히 잘 쓰이는 편. 현재 법정리와 옛 낙안군 면을 대응시켜보면 다음과 같다.
- 고상면 - 고읍리, 낙성리, 지동리, 추동리, 징광리
- 고하면 - 전동리
- 남상면 - 척령리, 칠동리, 옥전리, 마동리
- 남하면 - 장좌리, 영등리, 장암리, 대포리
- 동하면 - 연산리, 봉림리, 회정리, 장양리
- 초하면 - 호동리
- 불명 : 벌교리, 장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