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읍
- 이 문서에서는 행정구역 '보성군'과 관습적 지명 '보성'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관습적 지명으로서의 '보성'은 넓게는 보성군에서 벌교읍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좁게는 보성읍 일대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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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읍사무소. 채동선 음악당과 일체로 되어있다. 주소는 벌교읍 채동선로 297(벌교리 6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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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의 벌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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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벌교고등학교에서 찍은 벌교 전경. 오른쪽 원경에 보이는 가장 높아 보이는 산봉우리가 제석산이다.
1. 개요
전라남도 보성군의 최동단에 위치한 읍. 읍 동쪽이 순천시 낙안면과 별량면에, 서쪽이 율어면과 조성면에, 남쪽이 고흥군 동강면에, 북쪽이 순천시 외서면에 접해 있다. 지역 특산물인 꼬막과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으로 유명하며, 보성군에 속해는 있지만 인구 규모와 상권이 보성읍보다 크며, 지역에 대한 인식, 지역의 역사 등을 통해 보성군의 나머지 부분과는 사실상 다른 지역이라는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보성과 순천의 중간에 있고 광주와 고흥을 잇는 도로가 지나는 곳으로서 타지역에서 고흥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교통 요충지다.
보성군 소속이지만 보성군의 중심인 보성읍보다 인구가 많으며, 인지도로는 보성은 물론 전남의 여타 자치군을 압도한다. 읍의 면적은 102.36km2로 호남 지방의 읍 중 2번째로 넓으며[5] , 전남의 읍 중에선 1위이다.
2. 행정구역 변천사
2.1. 낙안군의 역사
낙안군 문서 참조.
2.2. 폐군, 그리고 그 이후의 행정구역 변동
1907년에는 일제가 을사조약을 체결한 후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고 통감부가 모든 것을 장악했으며 한일신협약(정미 7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이후로, 을사조약 이후 의병과 강제해산을 당한 대한제국 군인들의 합류로 정미의병의 성격이 바뀌어 항일 교전으로 확대된 시점이였다. 이 정미의병전쟁이 시작되어 지속된 1년 뒤인 1908년은 의병의 기세가 전국을 통틀어 7만 명을 넘겼을 정도로 매우 활성화된 시기였다. 이는 벌교와 낙안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상황이다.
당시 낙안군 상황을 보면, 옆 고을 보성군에서 일어난 안규홍의 항일 의병 세력이 전남동부 쪽으로 뻗어나갔고 이곳 벌교에서도 항일 세력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안규홍의 의병은 실제로 일본군에게 위협이 될 정도로 강성했는데,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안규홍이 벌교 장터에서 맨주먹으로 일본 헌병 1명을 때려죽였다고 하고 이 때부터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6] 또한 좀 더 과거로 가보면 동학 농민 운동이 있었던 때도 동학군이 낙안으로 집결하여 읍성과 그 인근을 초토화시킨 전력이 있었으며, 더 과거로 가면 임진왜란 중에 당시 낙안군수가 전라좌수영 소속으로 관군들을 지휘하기도 했다. 하여튼 그 해 양력으로 10월 15일, 전남지역 행정구역 조정을 골자로 하는 대한제국 칙령 제72호가 발령되어 낙안군이 폐군되었다. 이 해에 낙안군 뿐만 아니라 다른 고을들 중에도 통폐합된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 목록은 행정구역 개편/대한민국/역사 문서에 있다. 당시 전후상황을 보자면 낙안군을 해체시킨 일은 일제가 정미의병 활동에 대해 벌인 복수극이자, 부군면 통폐합의 프로토타입이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승정원일기 순종2년 9월 21일(계묘, 양력 10월 15일 목요일) 기록에서 "군의 폐합에 관한 건을 반포하였다"에 남아있다.
이를 통해 낙안군이 1908년 음력 9월 21일(양력 10월 15일)에 폐지되고 이때 낙안군 남부의 고상면, 고하면, 남상면, 남하면이 보성군으로, 나머지는 순천군(현 순천시)로 분할편입되었다는 것은 확실한 기록임을 알 수 있다. 시행의 주체는 대한제국이지만 이 당시 일제의 강제로 인해 고종의 강제 퇴위가 벌어지고 정미의병전쟁까지 일어났던 1907년 이후라는 점, 그리고 이 정미의병전쟁에서 낙안군 지역이 매우 거센 의병활동이 있었다는 점을 통해서 일제의 개입을 추정할 수 있다.○ 짐이 군(郡)의 폐합(廢合)에 관한 건을 재가하여 이에 반포하게 하노라.
전라남도 옥과군(全羅南道玉果郡)을 폐하고 또 담양군(潭陽郡)의 일부인 덕면(德面)·대면(大面)·가면(加面)을 분리하여 모두 이를 창평군(昌平郡)에 합한다. 동도(同道) 화순군(和順郡)을 폐하여 능주군(綾州郡)에 합한다.
'''동도 낙안군(樂安郡)을 폐하여 그 일부인 내서면(內西面)·외서면(外西面)·동상면(東上面)·동하면(東下面)·초상면(草上面)·초하면(草下面)·읍내면(邑內面)은 순천군(順天郡)으로, 그 밖의 일부인 남상면(南上面)·남하면(南下面)·고상면(古上面)·고하면(古下面)은 보성군(寶城郡)으로 합한다.'''
본령은 반포일로부터 시행한다.
4개면의 보성 편입이 이루어지면서 고상면과 고하면은 '고읍면'으로, 남상면과 남하면은 '남면'으로 통합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때는 남면의 일부가 고흥군 동강면에 편입된 것 이외에 큰 변동 없이 넘어갔으며, 1915년에는 고상면과 남면을 통합하여 비로소 '벌교면'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1929년에 벌교천 동쪽의 순천군 동초면의 일부(옛 낙안군 동하면과 초하면 호동리)를 가져왔고[7] , 1937년에 벌교읍으로 승격하였다. 이로써 섬을 제외한 벌교읍 육지부의 경계가 확정되었다.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서 낙안면과 통합을 하면 시 승격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돌았으나, 결국 시 승격을 하지 못한 채 급속도로 쇠락하게 되었다. 이후 1972년에 읍사무소 직제가 준시 체제(準市體制)로 개편되었다고 한다.[8] 준시 체제(準市體制)란 준읍 체제(準邑體制)와 함께 시나 읍으로의 완전 승격이 당장 필요하나 막대한 재원이 들기 때문에 출장소 및 2∼3개 과와 계 신설 등 최소한의 기구와 인원을 보강, 민원체증을 해결하기 한 승격 예비 단계로 보면 된다. 즉 1972년도에는 벌교'읍'을 '시'로 승격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실제로 아래의 인구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 1970년대 벌교 인구는 4만을 넘나들었다.
한편 낙안군에서 돌산군으로 이관된 섬 지역인 장도리는 1914년에 돌산군이 폐군되고 여수군(현 여수시)에 편입되면서 다시 고흥군 동강면으로 이관되었고 오랫동안 고흥에 있다가 1983년에 보성군 벌교읍으로 이관되었다. 어찌 보면 제자리를 찾아온 셈. 이렇게 현 벌교읍 경계가 확정된 후 별다른 변동 없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여자도도 원래 낙안 소속이었지만 이쪽은 여수에 잔류했다.
2.3. 편입으로 인한 문제
하지만 벌교는 나머지 보성군 지역과 독자적인 생활권을 구축하고 있었고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많았다.
지역 범위의 인식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한마디로 벌교가 보성군에 속해있지만, 그렇다고 벌교를 '보성'으로 칭하는 일은 없다는 것.[9] 전남 동부권 사람이면 으레 벌교가 보성군에 속한 곳임을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벌교를 보고 '보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타지에서 벌교에 갈 때 다른 사람들에게 '벌교 간다'라고 말하지, '보성 간다'라고 말하진 않는다. 또한 보성군의 다른 읍면에 사는 사람들이 타지에서 자기 출신지를 말할 때 '보성 사람', '보성에서 왔다' 식으로 말하지만, 벌교 사람이 다른 곳에 가서 자기 출신지를 말할 때 백이면 백 '벌교 사람', '벌교에서 왔다'라고 하지, '보성'이라고 하진 않는다. 그리고 외지인들한테 자신을 '벌교 사람'이라고 소개해도 보성군의 면 단위 지명을 말할 때와는 달리 다 알아듣는데, 그만큼 벌교가 전국적으로도 '보성'이라는 지명 못지 않게 인지도가 있고 고향 삼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벌교읍이란 행정구역이 아닌 단순히 지역 명칭으로서 벌교를 언급할 때 대개 '전라도 벌교', '전남 벌교'라고 하지 '보성 벌교'라곤 잘 안 한다. '보성 벌교'란 말을 안 쓰는 건 아니지만 '전라도 벌교'라고 해도 통한다. 일례로, KBS의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은 매 회 촬영 지역명을 화면 오른쪽 위에 띄워주는데, 2009년 1월에 방영된 벌교 편에서 지역명을 '전남 벌교'로 띄웠다.[10] 그리고 벌교에서 출하되는 꼬막을 보고 '벌교 꼬막'이라고 하지, 절대 '보성 꼬막'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보성과 별개로 벌교읍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형성된 생활권에 문제가 생겼다. 기본적으로 보성읍과 벌교읍은 먹는 파이가 아예 다르다. 그 말은, 행정 부분을 제외하고 보성권과 벌교권은 서로 간섭하지 않고 대등한 입장으로서 서로 교류하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완전히 의존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거다. 벌교 사람이 생필품 등을 구매할 때 벌교에 있는 상점에서 사지 보성까지 가서 사진 않는다. 보성 사람도 생필품을 구매할 때 보성에서 사지 벌교까지 가진 않는다.[11] 벌교 사람은 관공서 아니면 보성 갈 일이 거의 없다. 보성 사람도 세무서, 예비군 아니면 벌교 갈 일이 잘 없다. 이렇게 독자적인 생활권을 이루고 지역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벌교 생활권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행정구역이 이상하게 분절되고 짜깁기되어 불편이 생겼다. '''같은 생활권이 3개 지자체로 분열된''' 매우 안습한 상황이 도래했고, 이로 인해 벌교읍은 벌교 생활권의 완전한 중심이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같은 낙안군 지역인 순천시 낙안면과의 분열을 예로 들 수 있다. 벌교와 낙안은 실제로 매우 가깝고 버스도 많이 다니지만, 벌교는 보성군으로, 낙안은 순천시로 시군명이 달라서 외지인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낙안면에서 벌교가 순천시내보다 가깝고 버스도 벌교 가는 버스가 더 많이 오지만, 규모 면에서는 순천시내가 당연히 넘사벽으로 커서 거리 차이가 무시되고, 인근 전남 동부권 일대의 광역 상권을 형성할 정도인 순천시내 상권의 영향력이 들이닥치고, 또 순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서 순천시가 신경을 써 주는 편이기 때문에 벌교랑 약간 사이가 소원해졌다. 그나마 간단히 일용품 정도를 살 때는 가까운 벌교로 오는 편. 벌교와 낙안 사이에 행정 교류가 안 되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보성군에서 벌교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했는데, 정작 벌교천의 상류 중 하나인, 낙안면을 흐르는 낙안천에 각종 폐기물이 투하되어 오염이 심하기 때문에 생태하천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보성군이 낙안천에 손댈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에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상황.
벌교권 지역으로는 순천시 소속의 낙안면·외서면·송광면과, 고흥군 소속의 동강면·대서면, 그리고 보성군 조성면이 거론된다.[12] 이곳들 모두 자기 시군 중심지 가는 버스보다 벌교 가는 버스가 더욱 자주 온다.[13] 게다가 조성면에 있는 농협 이름은 '벌교농협' 조성지점이다. 특히 동강면은 벌교고 위에 바로 붙어있는 고개 하나만 넘으면 바로 나올 정도로 가까운데다가, 동강면 북부의 한천리, 오월리, 청송리는 1914년 이전까지는 벌교의 전신 중 하나인 낙안군 남하면 → 보성군 남면 소속이었다.
군내 행정에도 문제가 생겼다. 보성군의 최대 인구밀집지역이 벌교읍인데, 정작 거의 모든 행정기관이 군청 소재지인 보성읍에 몰려있다. 아니, 사실 옛날엔 벌교에도 많이 있었다. 모두 보성읍 쪽으로 통폐합돼서 그렇지.[14][15] 군청을 비롯해 경찰서, 교육청, 등기소, 보건소, 선관위... 벌교에서 저런 데 볼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닥치고 대장정 하는 거다. 군청에서도 벌교 편입 이후 100년이 지나도록, 심지어 벌교의 인구가 많았을 시절에도 출장 민원실 하나도 제대로 설치해 주지 않았다. 비슷한 신세였던 증평이 1960년대부터 분리 이야기가 나온데 비해 이곳은 아무도 관심있게 지켜보지 않았다. 그나마 보성소방서 본서와 순천세무서 벌교지서가 벌교에 있다곤 하지만, 이건 벌교가 큰 것 뿐만 아니라 밑동네 고흥군도 같이 관할하기 위함이다. 다만 소방서는 고흥소방서가 독립해 나가면서 입지가 좀 애매해졌다. 그렇다고 행정기관을 벌교에 설치하면 어떻게 되냐고? 그 즉시 보성군내에 위치한 수많은 면들에 불편이 펼쳐진다. 벌교에 행정기관을 설치한다고 하면 그것은 열에 열이면 벌교가 속한 보성군을 관할하는 기관일텐데, 보성군내에서 벌교를 대중교통으로 한 번에 못 가는 곳은 많다.[16] 하지만 보성읍에서는 대중교통으로 모든 읍면을 갈 수 있기 때문에 보성읍에 행정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오히려 더 타당해진다. 보성과 벌교는 생활권이 거의 별개의 군처럼 형성되어 있는데, 벌교 생활권인 지역은 순천, 고흥 등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어서 결국 보성군 속의 벌교 생활권에는 벌교읍 하나, 더 나가봐야 조성면 정도만 남게 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행정기관 관할구역은 실제 생활권과 상관없이 군 단위로 딱 잘라버리기 때문에 벌교는 막다른 길이 되었다. 광역적으로 보면 벌교는 분명히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가 맞지만, 보성군 관내 지도에서는 오히려 벌교가 동쪽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것이 되어 비교적 교통이 불편하게 보인다. 벌교읍민들에게는 이런 불편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벌교가 행정업무 면에서 불편을 겪는 것과 반대로, 보성읍은 상권 형성이 부진하게 되었다. 거의 모든 군에서는 군청 소재지에 상권도 몰리지만, 보성군의 경우는 군청 소재지인 보성읍에 번성해야 할 상권이 벌교의 존재로 인해 전부 벌교로 가 버렸다. 보성읍과 벌교읍이 멀리 떨어져 있고 둘의 생활권이 서로 다르므로 정상적으로라면 보성, 벌교 모두 비슷한 상권이 형성되어야겠지만, 사람들이 '보성군'이라는 표면만 보고서 보성과 벌교의 생활권이 같다고 인식해버리는 효과가 발생하는 바람에 결국 둘 중에서 상업 도시의 성격이 비교적 큰 벌교에 모든 상권이 쏠렸다. 덤으로 벌교의 역사적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이 벌교에 있는 점포에다가 "○○○'''보성'''대리점" 등으로 적어놓기도 한다. 정작 보성읍에는 해당 업체의 점포가 없다.
또한 '''군내 예산 편성이나 각종 시설의 입지 선정에 있어서 보성군의 이같은 현실은 큰 문제로 작용하게 된다.''' 군세(郡勢)가 별로 크지 않은 보성군이 보성읍과 벌교읍을 동시에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개발할 수는 없다. 보성군이 문화회관같은 편의시설을 군내에 2개를 지을 형편도 안 되어 1개밖에 짓지 못한다. 보성군과 군세가 비슷한 다른 군들은 중심지가 군청소재지 한 곳밖에 없어 편의시설을 군내에 1개씩 짓는다면 고민할 필요 없이 군청소재지에 지으면 그만이나, 보성군은 중심지가 보성읍, 벌교읍 2개라서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의 원성과 반대가 자자해서 위치 선정이 어렵다. 물론 벌교읍이 모든 면에서 보성읍을 압도했다면 벌교에 몰아주는 것이 합당하겠지만, 사실은 벌교읍이 절대로 앞지를 수 없는 보성읍의 이점이 하나 있어서 곤란하다. 바로 보성군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면 지역의 교통 집결지가 바로 보성읍이라는 것.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보성군내 면 지역 중 버스 타고 벌교를 바로 갈 수 없는 곳은 많으며, 보성군 안에서만 생각하면 벌교는 맨 끄트머리에 있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보성군의 면 단위 지역에서 '읍내'는 보성읍으로 통한다. 요컨대 보성읍 vs. 벌교읍 구도는 곧 '''면 지역을 위한 배려 vs. 최다인구 밀집지역에 대한 배려'''가 되기 때문에 쉽게 답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예산이 한 쪽으로 쏠린다? 진짜 싸움 난다. 그리고 진짜로 그런 일이 병크 수준으로 터진 적이 있고 그 때문에 벌교의 민심이 폭발해서, 여태까지 단순 주장으로만 회자되던 순천시로의 편입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벌교는 전국의 군청 소재지가 아닌 읍 중에서는 최상급의 인지도를 가진 곳이지만, 시군 이름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 발목을 잡아 벌교라는 지역의 존재감이 의외로 비교적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름은 아는데, 어딘지 찍으라고 하면 못 찍는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의 이름에 당연히 벌교는 없다. 웹지도에서도 일정 축척 이상으로 올리지 않으면 벌교의 이름이 표시되지 않는다. 또한 지명의 포괄성도 상당히 떨어지는데, 그러니까 '보성'이라는 지명은 보성읍 말고도 보성읍 주변에 있는 다른 면들까지 다 싸잡아서 부르는 명칭으로도 쓰이지만, '벌교'라는 지명은 오로지 벌교읍 한정으로만 쓰인다는 거다. 동강이나 낙안 등 벌교와 인접한 면들을 말할 때는 그냥 '동강', '낙안'이라고 하지, 벌교라고 하지 않는다. 옆동네 순천 사람들도 벌교행 버스로 벌교 간다고 하면 멀어봤자 벌교읍내 중심지 쪽을 이야기 하지, 벌교읍 소속 다른 리들[17] 이나 근처 면들을 생각하지는 못한다. 이름은 알려져 있으나 사람들이 떠올리는 범위가 매우 좁은 편이다.
2.4. 행정구역 개편 논의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신세였던 증평이 박정희 때부터 공론화되었던 반면 벌교는 그대로 남겨져 있다. 증평은 비록 경제 개발에서 소외된 시골이였지만, 지속적으로 증평은 괴산군에 대해 지자체 독립을 주장했고, 여기에 괴산은 물론, 진천, 음성, 청주를 비롯한 지자체들의 관심을 받았고, 이것이 지역 현안이 되면서 정치권에 제대로 반영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증평은 증평군이라는 지자체로 된다. 이와 달리 벌교는 보성군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자체 독립을 주장했지만, 정작 보성, 고흥, 순천의 반응은 미온적이였고, 이것을 지역 현안으로 내걸지 않았다. 지방자치제가 실시한 이후에도 그랬다. 사실 지역 현안으로 되지 못하고, 정치권으로부터 별 관심을 못 받았다고 보는 것이 증평과 벌교의 결정적인 차이이고, '''이게 낙안군이 벌교의 이름으로라도 되살아날 수 없는 이유이다.'''
지금도 잊을만 하면 행정구역 개편 이야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보성군 전체에서 핵심적인 지역이여서 이제 와서 조정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보성군에 벌교는 이래저래 골때리는 문제가 되었으며, 낙안군의 폐군이 악의적인 것이었다는 점을 잠시 제쳐두고, 벌교는 반드시 보성군 혹은 순천시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대체 왜 순천시 벌교읍이 아닌 보성군 벌교읍이 되어야 했는가가 문제가 된다. 보성읍과 벌교가 28km라고 했는데, 벌교에서 순천시내까지는 23km 내외로 순천시내가 더 가깝다. 거기에 순천 버스 88이 하루 40회 가까이 벌교읍내에서 순천시내의 주요 지역들을 이어주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고로 벌교가 순천시에 편입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를 보여주는 듯 2005년, 벌교읍에서 '''순천시 편입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안 그래도 보성군내에서 박탈감과 소외감이 심한 벌교 주민들이건만, 보성군의회에서 군내 축제 예산을 편성하다가 벌교에 다른 축제 예산이 투입된 것을 이미 꼬막축제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착각해 '''꼬막축제 예산 1억을 전액 삭감'''해버리는 대실수가 기폭제가 되었다. 이때의 분노가 폭발해서 보성 다향제에도 벌교읍민들이 불참 선언을 하고, 주민 단체인 벌교번영회는 다향제가 한창이던 시기에 벌교초 운동장에서 한마당잔치를 열고 거기서 순천시로의 편입을 담은 행정구역 변경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 일은 조중동도 보도했다. 조선일보 기사 1 조선일보 기사 2 중앙일보 기사 동아일보 기사 한겨레신문 기사 이 때 서명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을 포함해, 벌교읍민의 총 70%가 순천 편입에 동의했다는 말도 있다. 편입을 촉구하는 청원서가 각 지자체는 물론이요, 행정자치부, 청와대, 대한민국 국회에도 들어갔다고 한다. 이때부터 벌교 주민들의 불만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벌교읍사무소 홈페이지 게시판에 본문검색으로 '순천'만 쳐봐도 벌교의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된 글이 2005년 이후 민선 3~4기 때 많이 작성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정작 벌교를 떠 안게 될 순천시 입장에서는 그다지 환영하지 않은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에서 행정구역 변경을 검토하여 허가해줬다 해도 2005년의 순천시는 벌교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 때의 순천시는 순천만이란 랜드마크는커녕 시의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될 만한 자체적인 성장동력이 하나도 없는 전형적인 소비도시였기 때문에, 1개 동 정도 인구도 안 되는 벌교를 굳이 가져오겠다고 나서기가 어려웠다. 실제로 이 때문에, 순천 편입 운동이 한창이던 당시에도 "순천이 인구도 적은 벌교를 받아줄지 의문이고, 순천에 편입되어도 보성 시절처럼 소외될 것이다"라는 회의론이 있었다. 계산만 해 봐도 벌교읍이 인구 4만 5천의 보성군에서는 인구의 31%를 차지하지만, 벌교읍이 인구 27만의 순천시에 편입될 경우 벌교읍의 인구비중은 5%도 채 되지 않으므로 더 소외될 수도 있다. 거기에 순천시가 적극적으로 벌교를 가져가겠다고 하면 이는 순천시가 보성군을 말려죽이려는 꼴이 되어 도농 간의 갈등으로 심화될 수도 있었다.
벌교읍민들의 순천 편입 주장의 근거 중에 '벌교의 뿌리가 순천에 있다'가 있는데, 이에 대해 하승완은 '벌교읍은 탄생과 뿌리가 모두 보성군이다'라고 정면부정했는데...# 사실 현재와 같은 벌교 시가지가 형성된 것은 이미 보성군에 편입된 후이므로 어찌 보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여순광 통합 논의 때 벌교 편입 주장이 또 돌았다. 관련 글 하지만 2005년의 그때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없었고, 오히려 위의 회의론을 들고 나오며 편입을 반대했다. 일설에 의하면 '''2005년의 순천 편입 운동 이후로 보성군에서 다시 긴급하게 예산을 지원해 주니 조용해졌다고.''' 그리고 한동안 벌교에서 순천 편입이나 낙안군 복군 등을 주장하면 오히려 벌교 경제를 망치려는 사람이라면서 찍혔다고 한다. 이걸로 보면 그때의 순천 편입 청원이 진심으로 순천시에 속하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보성군 지방정부에 대한 시위의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물론 벌교읍민들이 다른 것도 아니고 굳이 순천 편입 이야기를 꺼낸 것이 예전부터 순천 편입에 대해 나름대로 고려해왔고 그렇게 되는 것도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말도 된다.
벌교 입장에선 꽤나 억울한 게, 벌교읍의 시 승격이 거의 코 앞으로 다가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시 승격을 하면 소속 군에서 분리독립을 했기 때문에 벌교의 시 승격이 성사된다면 행정구역 문제 따위 한큐에 해결될 판이었다는 것. 하지만 4만 5천에서 인구 성장세가 끊기고 말았고, 시 승격을 위해 낙안면을 통합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정작 낙안면 주민들은 벌교 중심의 흡수통합을 우려하여 반대했으며, 결국 시 승격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걸 재고하는 차원에서 나오는 설이 (가칭)벌교군 분리독립이다. 순천 편입 운동이 한창일 때 한편에서 '순천 편입해봤자 보성 시절처럼 다시 소외받을 것이다'라고 우려하였는데 이게 발전해서 '시승격 운동을 벌였던 벌교의 기상을 알려야 한다'라는 근거로 나온 것이다. 낙안군 영역 복원은 덤. 하지만 벌교 땅에 뭔가 인구를 급증 시킬만한게 들어올 리도 전무하고, 보성읍만큼 적은 건 아니지만 벌교읍도 인구가 많은 편이 아닌지라 분리독립은 아예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읍 1면에 면적이 100㎢도 안 되는 증평군도 인구 3만은 거뜬히 채워서 독립했는데, 벌교같은 경우는 벌교 생활권 전체를 합해서 벌교+조성+낙안+외서+송광+동강+대서 1읍 6면 구성으로도 딱 3만명 정도밖에 안 된다. 이렇게 인구를 채운다고 해고 통합군이 될 지역이 3개 지자체에 산재해 있어 여론 수렴부터가 어렵다. 여기에 이렇게 분리독립되면 남은 보성군 인구가 2만 7천명대의 구례군 수준으로 떨어진다. 어쨌든 현재 상황에서는 그저 보성군에 남아있으면서 보성군이라는 지자체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게 최선일 듯.
하지만 이런 개편 논의가 완전히 사그라들기는 어려운 것이, "차라리 순천시로 갈래!" 하고 실제로 편입 운동이 벌어진 것도 그렇고, 이전부터 크게 쌓여있던 벌교 차별대우 논란을 달래며 보성군에서 '크게 소리치며' '실속 있이' 벌교 발전에 나서지 않는 이상 불씨는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보성군에서 매년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짤 때 보성군 인구와 지방세에서 벌교가 차지하는 비중인 31% 정도를 벌교에 투자한다고 한다. 순천 편입 운동이 일어난 2005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벌교읍민들이 이걸 몰라주니 답답할 판이라는 게 보성군 측의 주장. 그런데, 이건 역으로 벌교읍민들이 원하는 건 따로 있다는 걸 뜻한다. 그저 우리 동네에 돈 좀 써줍쇼가 아닌, '''그동안 느꼈던 박탈감들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려는 자세를 가져달라는 것.'''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바로 일제다.''' 벌교 일대의 행정구역이 이렇게 된 것은 이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운동에 보복을 가하기 위한 일제의 대 만행이었으며, 벌교 행정구역 문제의 해결은 곧 일제 잔재의 청산과도 연관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물론 이것이 꼭 보성군에서 탈출한 형태로 실현되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현행 보성군 체제를 유지하더라도 지금까지 더부살이 신세였던 벌교에서 나타나는 소외감과 박탈감을 해소하고, 보성군과 순천시 간의 협력으로 낙안군의 전통을 잇고 이 일대 주민들이 다시 재결속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한다면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가장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라 하겠다.
2015년에 책임읍면동제가 발표되어 또 한 가지의 가능성이 생겼다. '''벌교읍이 책임읍면동제를 실시하면 적어도 행정의 문제는 해결된다.''' 책임읍면동제는 특정한 읍면동을 '대읍, 행정면, 대동' 등의 거점으로 지정한 뒤 주변 읍면동을 묶고, 거점 지역 주민센터를 담당 구역에서 더욱 높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책임읍면동제를 실시하면 시·군청의 업무까지도 분담할 수 있다. 즉 읍사무소를 '''군청 출장소'''처럼 쓰자는 개념. 벌교읍이 책임읍면동제를 실시하여 대읍이 될 경우 굳이 보성에 가지 않고도 보성군청 업무를 일부 처리할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책임읍면동제 실시를 통해 행정 중심지의 지위를 회복하게 되면 이에 따라서 읍내 개선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18] ]
다만 통합을 좋아하는 행정자치부에서 만든 제도답게 책임읍면동제도 읍면동 통합을 염두에 두고 나온 것이라서 벌교읍이 대읍으로 지정되려면 벌교읍 단독으로 책임읍면동제 시행은 불가능하고 주변 면 1개 이상을 담당 구역으로 지정해야 하는데, 그렇게되면 그 면은 면사무소 기능이 축소된다는 점이 문제다. 인접한 면들 중 순천시나 고흥군에 있는 면을 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율어면과는 그다지 생활권이 맞는 편이 아니니 벌교 생활권에 가까운 조성면을 지정해야 하는데, 조성면은 보성군 10개 면 중에서 인구 2위이다(1위는 득량면). 보성에선 큰 면이다 보니 면사무소 규모 축소한다고 하면 반발이 일어날 게 뻔하다. 다만 남양주시의 경우 진접, 오남 등을 단일 대읍으로 운영한다고 계획을 낸 판이어서 정말 단일 읍으로는 대읍이 구성 불능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상황. 하지만 행정자치부가 책임읍면동제 추가 시행을 전면 중지하겠다고 발표해서 이 방안은 실현할 수 없어졌다.
어쩌면 제1, 2공화국 시절의 시·읍·면 자치가 부활하거나, 군의 기초자치단체격을 유지하면서 읍면 단위에도 자치 기능을 부여하는 방안이 실현된다면 지방자치의 관점에서 좀 더 효율적일 수는 있겠다. 이 곳 말고도 웅상 등 단일 시군 내에서 독립적인 지역색을 띠는 모든 곳에 적용될 것이다.
낙안 폐군과 관련된 문제점을 포함해 벌교, 낙안 일대를 심층 취재한 연재기사가 있으니 참고하자. 스쿠터 타고 낙안군 101가지 이야기
3. 도시 발전사
이 문단에서는 행정구역 변천을 제외하고, 도시로서의 벌교의 흥망의 역사를 다룬다.
참고자료 : 국가통계포털 인구총조사
'벌교'는 원래 보통명사로, '뗏목 벌(筏)' 자에 '다리 교(橋)' 자로 말 그대로 '뗏목으로 만든 다리'이다. 벌교읍민들은 일반 어휘가 곧바로 읍면명의 유래가 된 것은 여기가 유일하다고들 말한다.[19] 물론 21세기 현재 저 단어를 쓸 일은 사실상 없으므로 '벌교'라고 말하면 천에 천은 이 동네를 떠올리지 원래 뜻인 '뗏목으로 만든 다리'를 떠올릴 사람은 없겠지만. '벌교'라는 지명은 마을 앞의 하천에 나무를 엮은 뗏목으로 다리를 만들어 다녔다고 해서 유래되었고, 1915년 고읍면과 남면을 합칠 때 이 '벌교'라는 마을이 면의 중심지가 되면서 면 이름이 '벌교면'으로, 읍으로 승격하고부터는 '벌교읍'이 되었다. 그리고 이 뗏목 다리가 홍수에 계속 떠내려가자 그 자리에 돌다리를 하나 짓게 되는데 이것이 벌교홍교.벌교(筏橋)
「명사」 뗏목을 엮어 만든 다리.
- 표준국어대사전
이곳 벌교는 물길이 육지 깊숙이 파고드는 자리로 포구가 형성되고, 장시가 서는 등 비교적 큰 마을이었다. 조선 초기에 전매 제도로 인해 희귀했던 갓(채소)이 밀거래되던 거점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당시에는 낙안군의 제1 중심지는 그렇게까지 잘 나가는 마을은 아니어서, 1913년까지만 해도 200여 가구가 살았으며, 주산업은 꼬막 채취 등의 어업이었다. 하지만 일제는 귀신같이 벌교의 지리적 중요성을 깨닫고 나서, 전남의 물자를 수탈하는 데 쓸 용도로 벌교에 항구를 개발하였다. 전남동부의 제1항인 여수항과 전남 내륙지방을 중계하는 보조항의 역할을 하였으며, 물자를 여수까지 갖고 가기 곤란할 때 벌교에서 배에 태워 여수항으로 가지고 가는 식의 운송을 하였다고 한다. 육로 교통에 있어서도 순천과 보성의 중간에 있고, 고흥군으로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라 교통의 요충지였다.
보성군의 읍치가 있었던 보성읍보다 작았던 시골마을 벌교에 일본인이 진출하여 항구 만들고 집 짓고 가게 짓고 간척사업까지 벌이니 완전히 무에서 유가 창출된 상황이었고, 그대로 전남의 5대 도시가 되었다. 이 문서 위에도 적혀있는 "벌교에서 주먹 자랑 하지 마라"는 글귀의 기원에 대한 대표적인 설이 바로 벌교의 개항과 관련있다.[20] 벌교가 개항되면서 상점과 유흥가가 생겨나는 등 인근에서 매우 번화한 지역이 되었고, 이에 원래 벌교에 살던 깡패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 깡패들이 총집합하여 조직폭력배를 결성했다. 그당시 조폭이 하는 일이 상점에서 삥뜯고 유흥가에서 실컷 노는 일이니 참 적절한 입지이지 않은가. 이런 깡패 이야기는 《태백산맥》에 다뤄지고 나서 아예 '벌교 = 전투종족' 기믹을 성립시켰고 벌교의 대외적 이미지를 깎는 데에 한몫했다. 광복 전후로는 빨치산이 활개를 치고 다니던 흑역사가 있어서 이것도 벌교의 이미지를 많이 깎아먹었다. 태백산맥에도 빨치산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빨치산을 미화했다는 의혹이 있다. 물론 지금은 깡패가 행인을 습격한다거나 그럴 일이 전혀 없는 평범한 읍내가 되었으므로 안심하고 벌교를 들르면 된다.
1923년에야 전화가 들어왔다고 한다.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3.1. 인구
▲ 1925~2015년 인구총조사 자료에서의 벌교읍의 역대 인구수. 빠른 비교를 위해 보성읍 인구, 보성군 전체 인구, 벌교읍 인구의 군내 비중[21] 도 같이 수록한다. 참고로 1940년 조사자료는 읍면별 인구 탐색이 불가해 올리지 않는다.
[image]
▲위의 표 중에서 벌교읍 인구만을 따서 그래프로 정리한 이미지.
▲여수군 여수면, 순천군 순천면, 보성군 벌교면의 1925~1955년도 인구총조사.
저게 벌교읍의 면적이 넓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나, 여수면과 순천면보다도 인구가 많을 적이 있었다. 보성군 중에서 벌교가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도 상당히 놀랐을 것이다. 안 그래도 깡촌인 곳이 뻘밭 깡촌을 또 가져오더니 그 뻘밭이 도내 유수의 도시가 되고 정작 기존 보성 지역의 발전도는 상당히 뒤처졌으니. 1925년도 인구조사 결과에서 벌교면의 인구는 보성면의 무려 2배. 광복 이후 일본인들이 퇴각하면서 벌교의 중요성은 크게 떨어졌지만, 그때까지 쌓아온 경제기반도 있고 출산율도 증가하여 인구가 급증하였다. 벌교읍의 역대 최고 인구수는 1966년 인구총조사에서 기록한 45,633명. 당해년도에 전남 내에서 인구가 4만을 넘어가는 읍면이 벌교밖에 없었고, 흔히 '송정리'로 알려진 광산군 송정읍은 그제서야 3만 선을 넘은 상태. 이 상황에서 벌교읍 인구가 계속 증가해 5만에 도달해 보성군과 별개의 '(가칭)벌교시'로 독립하고 50년 넘게 이어져온 보성과의 불편한 동거를 청산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60년대 전남 6대 읍면(광산군 송정읍, 나주군 나주읍·영산포읍, 장흥군 장흥읍, 보성군 벌교읍, 고흥군 도양읍)의 1960~1985년도 인구총조사.
1966년에 기록한 45,633명을 정점으로 인구가 추락했으며, 또한 벌교에 공장 같은 산업기반시설이 거의 없는 것이 인구 추락을 막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요약하면 벌교는 사실 사람과 꼬막만 많은 동네였다는 것이며, 벌교는 읍에 머물며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었으며, 그리고 1975년도 인구총조사에서 결국 송정읍과 인구순위가 맞바뀌었다.[23]
▲1990~2015년도 벌교읍 인구총조사. 위장 전입으로 인해 주민등록인구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결국 1990년도 인구총조사에서, 그동안 순위를 내준 적 없던 광양읍과의 인구순위가 맞바뀌고 만다. 그래도 도내 2위였다. 그리고 벌교는 계속해서 인구수가 급속도로 떨어져갔다. 1995년에는 전남 내 읍면 5위, 20년 후에는 15위로 밀리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 벌교에서 순천까지 교통이 편하다지만, 23km라는 거리가 광양읍 같은 데에 비하면 멀고, 순천시내 서쪽은 산업기반이 없는 농촌지역인 탓에 순천과 가까움에도 그다지 인구를 끌어모으지 못했다. 보성 관내에서 관공서는 세무서 빼고 전부 보성읍에 있으니 행정 업무를 보기에도 불편하다. 다만 2015년에 인구총조사 집계 인구가 2010년 대비 530명 늘어난(!) 것으로 보아 어쩌면 희망이 있을 지도 모른다. 아직은 관련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예측에 불과하지만, 인구 추이가 감소세에서 보합세로 변한 요인은 빠져나갈 사람들은 이미 다 빠져나갔으며 지역 중핵 도시의 상권을 이용하기 편리하면서도 동네 자체는 한적하다는 점으로 보아 인근 도시에서 일하다 퇴직한 귀농민 및 귀촌민들이 들어오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4. 지형
최북단의 추동리에서 서쪽 북쪽으로 호남정맥이 접하며 서쪽 율어면으로 895번 지방도 주릿재가, 북쪽 외서면으로 15번 국도 석거리재가 통한다.
호남정맥 남쪽으로 넓고 평평한 낙안분지가 펼쳐져있어 농경지와 취락으로 이용된다. 낙안분지의 북쪽 산기슭에서 발원한 벌교천이 남쪽의 부용산과 제석산 사이를 흘러가 여자만으로 흘러든다. 시가지도 부용산과 제석산을 끼고 형성되어있으며, 서쪽으로는 칠동천을 따라 긴 골짜기가 있다. 여자만에서 벌교천 하구 쪽으로 길고 뾰족한 만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에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벌교 시가지는 부용산, 벌교천, 칠동천으로 둘러싸인 삼각형 모양의 평지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그래서 보성읍처럼 대놓고 산복도로가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부용산 자락의 월곡마을 쪽으로 올라가보면 골짜기를 파고든데다가 골목이 좁고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달동네 느낌이 난다. 여기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꽤나 멋있게 보인다.
의외로 벌교읍의 관할구역이 상당히 넓게 퍼져 있어서, 추동리 백동마을[24] ~ 장암리 상진마을[25] 간의 거리는 분명히 같은 벌교읍 간 이동인데 22km가 넘는다. 이는 벌교읍내에서 순천시내까지의 거리와 맞먹는다.
5. 인지도
▲전남 동부권의 3개 도시의 특징을 나타낸 유명한 말. 포스코 광양제철소 건설 이전까지 광양의 중심지였던 광양읍은 벌교읍의 인구를 넘은 적이 없었으니 벌교를 여수, 순천 다음으로 꼽았다. 사실 이 말은 여수, 순천보다는 벌교를 메인으로 두고 나온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네임드는 꼬막의 성지. 정확히는 순천만 일대 중에서 고흥군과 순천시에서 많이 채취하고,멀게는 여수에서도 가지고온다 카더라. 벌교의 해안가가 좁아서 벌교 자체의 생산량은 적었다. 나중에 고흥군 장도가 벌교읍 장도리로 넘어오면서 자체 생산량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하지만 이 지역의 지리 특성상 고흥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벌교읍을 거쳐야 했기에 벌교가 꼬막의 성지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참고로 순천에서 채취되는 꼬막은 순천 주민들의 내수용으로 많이 이용되었고, 순천만을 랜드마크화 하면서 순천만 브랜드로 타 지역에 판매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벌교의 인지도를 넘을 수가 없다. 지금도 '''꼬막=벌교''' 인 상황이다.
벌교의 네임드를 올려준 또 다른 것이라면 단연 조정래의 대표작품인 《태백산맥》이다. 아예 벌교가 배경이고, 이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벌교의 인지도가 폭풍상승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이 작품을 집필하던 당시 꼬막의 표준어는 '''고막'''이였는데 꿋꿋이 최대 산지인 현지에서 부르는 말인 꼬막이라고 출판을 했고, 벌교와 함께 꼬막도 인지도를 얻으면서 기어이 표준어 표기까지 개정되면서 '''고막→꼬막'''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기존의 표준어를 그대로 놔뒀을 때 귓속에 있는 고막과 헷갈릴 가능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바뀐 표준어가 의미 전달이 보다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짜장면 표준어 인정의 선례.
다만 행정구역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지리덕후들도 잘 모른다. 오히려 여행객들이 블로그에서 언급하고 지나가는 수준.
6. 정치
보성군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인만큼 꼭 잡아야 하는 주요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말 선거 판도를 휘어잡는 캐스팅보터였던 적도 있으나, 역으로 나머지 지역의 표로 벌교를 눌러버릴 때도 있다. 보성군 유권자 중 벌교의 유권자 비율은 약 29%. 또한 왠지 보성의 다른 지역과 반대로 가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캐스팅보트라는 말에 정말 걸맞은 사례가 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보성군 단독 선거구에서 민주공화당 양달승 후보가 신민당 이중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 때 벌교를 제외한 득표는 이중재 23,562 : 양달승 20,428이었으나, 벌교에서 이중재 5,089 : 양달승 11,437로 양달승 후보가 크게 앞선 것이 당락을 갈랐다. 그런데 양달승 후보측의 벌교읍내에서의 광범위한 부정선거가 발견되어 2년 뒤인 1969년에 벌교에서만 재투표, 결과는 이중재 4,017 : 양달승 5,681로 벌교 제외 득표까지 합하여 이중재 후보가 당선자로 정정된 전례가 있다.
지역의 유명세에 비하면 의외로 이름난 정치인은 아직 없다. 보성군 출신 국회의원으로는 현역 4선 의원(16, 18, 19, 20대)인 바른미래당 박주선[26] 이 있고, 옛날에도 황성수(2, 3, 4, 5대), 이중재(6, 7, 8, 9, 12, 15대)[27] , 이경재(13, 14대), 류준상(11, 12, 13, 14대) 등이 있었는데 이 중에 벌교 출신은 찾을 수 없다.
6.1. 대선·총선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읍면별 통계에서 18대, 19대 모두 주변 읍면과 크게 다르지 않게 통합민주당 박상천, 민주통합당 김승남이 최다 득표를 했는데, 둘 다 고흥 출신이다. 지역구는 두 선거 모두 고흥군-보성군이었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17대 때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18대 때는 민주통합당 문재인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여느 호남 지방과 다름없이 민주당계 정당을 선호해왔다. 따라서 전국단위 내지 정당 투표의 경우 호남 지역에서 딱히 특색 있는 동네가 아니며, 지역단위 선거에서 어느 지역 유지가 어느 읍면에서 영향력과 지지를 받는지가 더 주목받는 편이다.
20대 총선 때는 보성군 전체로 보았을 때 국민의당 황주홍 후보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는데, 벌교 또한 크게 다르지 않게 황주홍이 1위, 더불어민주당 신문식이 2위, 새누리당 장귀석이 3위, 민중연합당 위두환이 4위를 기록했다. 신문식 후보의 고향인 고흥과 가까움에도 서로 아무런 영향을 주고받지 않았다는 것이 특이한 사항. 고흥군 동강면에서 신문식이 55.81%로 과반이었는데, 벌교에서는 반대로 황주홍이 49.23%로 거의 반수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동강면이 벌교읍 시가지에 바로 면한 고개 하나만 넘으면 나올 정도로 가까운 지역이고 동강면의 생활권이 사실상 벌교 권역인데도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데, 이에 대해서는 사실 동강면을 비롯한 고흥 북부가 정작 고흥읍에서 멂에도 불구하고 고흥이라는 지역 인식이 매우 강한 곳이라 생기는 일이라는 의견이 있다. 새누리당 이정현이 지역구 재선을 한 순천시의 영향에 대해서는 모호한데, 벌교읍에서 장귀석이 10.99%를 득표했는데 보성군 전체에서 10.40%로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흥군·보성군·장흥군·강진군 선거구에서 다른 군은 장귀석이 3~4%대이고 보성만 특히 높다. 정당투표 지지율로 봐도, 새누리당이 벌교읍에서 7.39%, 보성군 전체에서 6.96%로 별반 다르지 않지만, 새누리당 주영순 전 비례대표 의원의 고향인 신안군(11.31%), 이정현이 당선된 순천시(9.02%), 포스코의 영향으로 전국 각지 사람들이 모이는 광양시(7.18%)에 이어, 보성군 자체가 새누리당 지지율이 전남 4위였다. 종합하면 벌교가 딱히 보성군 내에서 지지율이 돋보이지는 않는데, 보성군 자체가 타 군에 비해서 높다는 것. 이것이 단순히 보성이 장귀석의 출신지라는 점[28] 에서 기인한 것인가, 아니면 순천시에서의 이정현 당선과 이정현이 지역구에서 보여준 행보가 영향을 준 것인가, 그리고 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는 알 수 없다. 또한 이전에 순천시로 넘어가겠다는 말까지 돌 정도로 보성 지역과 갈등을 겪은 벌교에서 과연 '보성 사람'이라는 점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 것인가도 또 하나의 수수께끼가 될 것이다.[29] 참고로 20대 총선 때 호남 지방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들은 이정현의 선거유세 방식과 꽤 유사했는데, 정당을 강조하지 않거나 숨기고 고향 사람이라는 것과 개인의 역량을 강조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했다.[30]
▲20대 총선 읍면별 득표수(관내사전투표는 각 읍면 득표수에 합산)
6.2. 지방선거
▲선수 표시는 직책에 상관없이 그 사람의 지방선거 당선 횟수. 1991년 지방의원 선거 당선자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33] ,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선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 참조.
▲도의원 선거구 '보성2구'는 1991년 광역의원 선거 당시 벌교읍·조성면[34] , 4대 지선 이후로는 벌교읍·겸백면·율어면·복내면·문덕면·조성면. 군의원 선거구 4~5대 지선 '보성'다'구'와 6대 지선 '보성'나'구'는 벌교읍 단독.
이번에는 지방선거로 가보자. 상술했던 순천 편입 사건이 터지고 난 후 치러진 4대 지선에서는 군수 선거에서 벌교 유효표 8,605표 중 정종해 5,439 : 김종표 584 : 하승완 2,582로 정종해가 하승완의 2배 이상을 득표했다. 정작 보성읍에서는 유효표 6,018표 중 정종해 3,055 : 김종표 174 : 하승완 2,789로 그래도 둘이 비슷하게 나왔는데...
▲4대 지선 보성군수 선거 읍면별 득표수
4대 지선 도의원 선거에서는 겸백, 율어, 복내, 문덕, 조성과 함께 보성군 제2선거구에 속해있었으며, 민주당 이탁우가 당선되었다. 참고로 이탁우는 초대 지선 때부터 의정활동을 한 사람으로, 1대 지선 때 벌교읍 지역구로[35] 보성군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되었으며, 2대 지선 때도 군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임명규와 붙어서 승리했다. 3대 지선부터 도의원에 출마했으며 3대 지선 때는 무투표 당선됐다. 군의원 선거는 '다'선거구에 벌교읍 단독으로 속해있었으며 무소속 김종혁, 민주당 강규종이 각 1, 2등으로 당선되었다. 참고로 이때 조정래의 동명이인이 출마했는데, 한자는 살짝 달랐다. 소설가 조정래는 趙'廷'來, 4대 지선에 나온 조정래는 趙'貞'來.
5대 지선에서는 위의 이탁우가 군수 선거에 나왔는데, 공천 불복으로 탈당 후 무소속 출마했다. 정종해 3,047 : 박철현 634 : 이탁우 3,943으로 벌교에서는 정종해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4대 지선에서 하승완을 정종해와 3천 표 차이로 찍어누른 것을 생각하면 별로 표차가 안 난 것이다. 결국 나머지 지역의 표에 눌려 정종해의 2선으로 끝났다.[36] 밑의 득표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벌교 말고는 이탁우가 정종해보다 표를 많이 받은 곳이 없다. 특히 신인인 박철현한테도 진 곳이 많다. 이탁우와 별 접점이 없는 보성군 제1선거구 지역에서는 모든 읍면에서 최하위였고, 이탁우가 도의원으로 있었던 보성군 제2선거구 지역에서는 복내면에서만 이탁우가 3위를 했고 다른 면에서는 그래도 2위를 했다. 벌교에서는 상술했듯이 1위. 호남지방 지방선거 국면이 대부분 공천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의 싸움이고 박철현이 신인인 것, 정치 경력이 이탁우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박철현이 나오지 않았다면 박철현이 대안 후보로서 받았을 표를 이탁우가 가져가서 더 유리해졌을 수도 있었을 것. 다만 반대로 정종해로의 표 결집이 나타나서 이탁우 입장에선 더 안 좋아졌을 수도 있다. 도의원 선거(선거구는 4대와 같음)에서는 민주당 임명규가 무투표 당선되었다. 군의원 선거(선거구는 4대와 같음)에서는 민주당 박홍관, 민주당 김판선이 각 1, 2위로 당선되었다.
▲5대 지선 보성군수 선거 읍면별 득표수
6대 지선에서는 예전에 서울특별시의회 의장도 지냈다는 이용부가 내려와서 정종해와 1:1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득량면을 제외하고 이용부가 우세하긴 했는데, 보성군 정가의 중심인 보성읍에서도 정종해 2,007 : 이용부 3,159로 1천 표 이상 차이를 벌렸는데, 정작 벌교에서 정종해 3,598 : 이용부 3,889로 차이를 별로 못 벌렸다. 도의원 선거(선거구는 5대와 같음)에서는 줄곧 민주당 밭이었던 벌교에 처음으로 진보 정당인 녹색당 후보가 출마했다는 점이 특기사항이다.[37] 녹색당 전남도당 공동위원장을 맡은 최혁봉이 그 주인공으로, 10여 년 전 인천에서 벌교로 내려온 귀농민 출신이다. 즉 토박이가 아니다. 당연히 지역 유지도 아니고, 지역에서 끗발이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다. 게다가 지역을 주름잡는 거대 정당이 아닌 군소 정당의 후보인 것도 당선을 어렵게 할 수 있었다. 지역 내에서 정당의 인지도가 낮고, 거기에 군소 정당은 사표론의 주된 대상이니. 한편 상대 후보는 새민련 임명규, 무소속 강규종. 둘 다 의정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결국 3명 중 3등으로 낙선했고 그가 사는 벌교읍 한정으로도 마찬가지였으나,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득표율은 22.02%로 꽤나 선전했고 특히 벌교읍으로 범위를 한정하면 26.84%의 지지를 받았다. 또한 2위인 강규종 후보와 표차가 400여 표로, 표차가 비교적 적었다. 어느 주민의 말에 따르면 꽤나 인기가 좋았다고. 하지만 다른 면 지역에서는 20%를 넘은 곳이 없었다. 고령층이 많은 지역 특성상 일종의 여촌야도가 작용한 것도 있고, 최혁봉 후보가 주로 활동한 곳이 벌교인데, 원래부터 보성이었던 면 지역(특히 벌교읍과 경계를 맞대지 않은 곳들)의 사람들이 반쯤 남의 동네인 벌교에 관심을 가질 여지가 적다는 이유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조성면에서 강규종 후보와 오직 4표차밖에 나지 않았고 율어면에서는 3표 차이긴 하지만 3등이 아닌 2등을 한 것으로 보아 이 역시 선전했다고도 할 수 있다. 적어도 시골에서 군소 정당 치고는. 이 선거에서 임명규가 선거구 내 모든 읍면에서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되어 2선을 하게 되었으며, 이후 민선6기 후반기 전남도의회 의장에 당선되었다. 군의원 선거에서는 선거구에 약간 변화가 있었는데, 종전의 '가'구(보성읍, 웅치)와 '나'구(노동, 미력, 득량, 회천)가 '가'구로 통합되고 3명을 뽑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나머지 선거구 기호가 한 칸씩 앞당겨져서 벌교읍이 '나'구로 바뀌었다. 박홍관과 김판선이 새민련으로, 강복수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며, 강복수와 김판선이 각 1, 2등으로 당선되었다. 또한 김판선이 민선6기 상반기 보성군의회 의장이 되었으며, 민선6기 하반기 의장도 벌교에서 당선된 강복수가 되었다.
▲6대 지선 보성군수 선거 읍면별 득표수(관내사전투표는 각 읍면 득표수에 합산)
그리고 7대 지선, 드디어 벌교에서 캐스팅보트가 발동되는 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민주당 공천을 받은 3선 군의원 출신 김철우가 4년 만에 돌아와, 12년 만에 돌아온 하승완을 벌교에서만 거의 2200표차로 찍어눌러버린 것. 참고로 벌교읍을 제외한 득표수로 김철우가 고작 100표밖에 차이를 내지 못했으며 보성읍에선 오히려 하승완이 이겼다. 도의원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동현이 당선됐는데, 이 사람이 벌교이마트 사장이었다. 직업란에 떡하니 '벌교이마트 경영'이라고 써놓은 것이 포인트. 군의원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인 한기섭이 1위, 무소속 강복수가 2위.
7. 경제
요약하자면 '''꼬막 버프.'''
7.1. 특산물
대한민국 수산물 지리적표시제 1호 벌교꼬막
꼬막은 원래부터 벌교를 비롯한 순천만 연안의 대표 특산물이었는데, 벌교의 해안선이 의외로 좁아서 막상 대부분의 물량은 고흥군에서 책임졌다. 그러다 장도가 고흥군에서 보성군으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진짜 '벌교'산 꼬막의 채취가 많이 늘어났다. 그동안 쌓아온 명성과 교통의 편리성 등으로 인해 지금도 고흥 쪽에서 잡은 꼬막까지 벌교읍내에서 많이 유통되고 있다. 꼬막을 잡을 때는 갯벌 위에서 뻘배라는 것을 타고 채취를 하는데, 요령에 따라서는 한번에 여러 마리를 채취할 수 있지만 그 일련의 과정이 아주 고되기로 유명해서 1박 2일 멤버들도 치를 떨었다.
언제부턴가 꼬막으로 아주 다양한 음식을 해서 한 상에 내놓는 '꼬막정식'이란 게 생겨났는데, 사실 벌교 요식업도 이 4글자로 설명 끝난다. 벌교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것으로 꼽히지만 식당에 따라 가격이나 품질의 편차가 심한 편이므로 잘 확인하고 가보도록 하자. 인기가 있었던 모양인지, 이제는 벌교 이외의 지역에서도 꼬막정식 전문점을 찾을 수 있다.
근데 2010년대 들어서는 꼬막이 거의 안 잡히는 모양이다. 태풍이라도 한 번 거하게 와서 해역을 뒤집어줘야 꼬막이 많이 서식하는데 그런 게 별로 없었다고. 꼬막이 없어서 다른 지역 꼬막까지 동원한다고. 그 다른 지역이라는 게 비단 순천만 일대뿐만이 아니라, 서해안 꼬막이나 일본 꼬막(...)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환경오염으로 인해 꼬막이 갯벌에서 집단폐사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어서 한번 정도 태풍이 해역을 뒤집고 환경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예전처럼 오리지널 벌교 꼬막을 푸짐하게 구경하기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걱정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민선6기 이용부 군수는 벌교꼬막 육성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하였으며 종묘배양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씨 마른 벌교꼬막 종묘배양장으로 재도약한다.
농산물 중에는 딸기, 참다래(키위), 방울토마토 등의 원예 작물들이 이름나 있다. 딸기철만 되면 벌교에서 보성으로 넘어가는 2번 국도 가에 트럭을 세워놓고 딸기를 파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일부 악덕 상인둘이 훼이크와 바가지를 남발해서 주의를 요했다. 지금은 남해고속도로가 개통해서 국도로 지나다니는 차도 줄어들고, 기후도 딸기 농사에 부적합하게 변하고 있어 많이 쇠퇴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전보다 쇠퇴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딸기 트럭도 한두 대 보이고, 순천시 등 인근 지역에 가면 과일가게들마다 포장지에 '벌교딸기'라고 되어있는 딸기가 많이 진열되어 있고 소비도 꽤 하고 있다.
그리고 녹차의 고장 보성군답게 벌교에서도 차나무가 재배되고 있다.
7.2. 2차 산업
낙안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연산리에 벌교농공단지가 있다. 벌교 뿐만 아니라 보성군 전체가 전형적인 농어촌이다 보니 공업의 비중이 매우 낮다.
오디오 덕후들 사이에서는 핀란드 자작나무로 만드는 수제 스피커가 유명한 모양이다. 아도르 사운드 참조.
7.3. 3차 산업
벌교는 상업도시로 개발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여느 시골의 읍내처럼 쇠락하였지만 상권이 의외로 규모있고 있을 건 꽤 있는 게 특징이다. '''세무서(지서)'''가 있을 정도니.
재래시장으로는 벌교역에서 터미널 쪽으로 가면 벌교시장이 있다. 기본적으로 매일시장 형태를 하고 있으며, 매달 두 날은 정기휴업일이다. '안쪽'과 '도로변'의 쉬는 날이 다르니 유의. 꼬막 등 수산물을 파는 가게가 많으며, 시장 입구 바로 옆에는 하나로마트가 있어서 '''하나로마트 앞에서 난전이 벌어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거리뷰와 로드뷰에 아주 적나라하게 나왔다. 할머니 장터라고 한다. 4, 9로 끝나는 날에는 5일장이 열려 장이 더욱 커진다.
이마트 계열 SSM인 이마트 에브리데이도 진출했'''었'''다. 정식으로 진출한 것은 아니고 상품공급점이긴 하지만 지금은 상품공급을 끊은 상태. 이외에는 중소형 마트가 많다. 개중에는 이마트 이름을 사칭한 곳도 있다. 거리뷰 그리고 이 짝퉁 이마트가 벌교에서 제일 큰 마트다.
요식업계 상황은 그야말로 '''꼬막정식 격전지.''' 벌교에 꼬막정식 말고 다른 거 파는 식당이 있긴 한지 의심될 정도로 죄다 꼬막정식 천지다. 그리고 이들의 특징이라면 전부 자기 식당이 원조라고 우긴다. 그 와중에 의외로 중국집은 5곳이나 있다. 김밥의 경우는 '김밥천국'과 '김밥나라'가 양대 김밥집인데, 둘 다 역 근처이니 내일러들은 참고하자. 치킨집 체인으로는 맘스터치, 또래오래, 네네치킨 등이 있다. 아쉽게도 교촌치킨, BHC는 보성읍엔 있는데 벌교에는 없다.[38] 굽네치킨도 있었지만 2020년 폐점했다. 피자집 체인으로는 피자스쿨 등이 있다. 빵집 체인으로는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가 있는데 그 중 뚜레쥬르는 위에서 말한 짝퉁 이마트 안에 있다. 2016년 9월말 쯤 배스킨라빈스 31이 생겼다. 2017년 8월 11일 벌교역 주변 GS25 자리에 그동안 보성군에 없었던[39] 롯데리아가 생겼다. 참고로 비교를 위해 말하자면 맘스터치가 전남동부 다른 군에는 군청 소재지인 고흥읍, 구례읍, 곡성읍에 입점했는데 보성군에만 보성읍이 아닌 벌교에 입점했다. 롯데리아 역시 보성군청 소재지가 아닌 벌교읍에 생겼다! 여기서 벌교 상권이 보성읍을 바를 정도로 짱짱함을 알 수 있다. 나중에 보성읍에도 맘스터치가 생기긴 했지만.
금융기관으로는 벌교역에서 소화다리 방향으로 가면 먼저 벌교농협(단위농협)이 있고, 더 가면 NH농협은행이 있다. 수협은 시장 옆에 있으며 고흥군 수협의 지점 형태로 있다. 원래 수협이 보성군에 여기밖에 없어서 그냥 '보성지점'이었으나, 율포에 회천수산물위판장이 생긴 이후로 '벌교지점'으로 바꿨다. 새마을금고, 신협도 있다.
교복 체인으로는 아이비클럽이 있다. 벌교에 교복집이 하나밖에 없으므로, 개그맨 한현민의 부모님이 한다는 교복집임을 알 수 있다.
8. 관광
읍내 건물들이 대체로 지은 지 오래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때 건물도 몇몇 보존되어 있어 소박하고 예스러운 분위기가 난다. 그래서 국민 관광지 기믹인 순천, 보성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으며, 느긋하게 거닐면서 다니기 좋다. 다만 그만큼 을씨년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만약 당신이 내일로 이용자이고 자가용 없이 와서 읍내를 한 바퀴 돌고자 하면 순천역 앞에서 '''순천 버스 88을 타고 벌교터미널에서 내리는 게 좋다.''' 그리고 터미널 뒤의 태백산맥 문학관부터 보고 시작하면 된다. (배차 간격 20분, 터미널까지 보행 15분)
또한 아래의 교통 항목에 나오듯이 벌교 자체가 순천 서부와 고흥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여서, 벌교를 관광의 중간 거점으로 삼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특히 송광사나 낙안읍성 등의 경우, 행정구역이 같은 순천시 시내보다 오히려 벌교에서 가는 것이 더 빠르고 간편할 수 있다.
외지인들이 벌교에 여행을 오면 반드시 둘러보고 가는 곳. 민선4기 정종해 시절이던 2008년 11월에 개관했으며, 조정래와 태백산맥에 관한 설명과, 원고나 조정래의 가족들이 쓴 필사본 등 관련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내부에는 작은 도서관과 읍내를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며 20인 이상 단체는 500원씩 감산, 보성군민은 무료. 벌교터미널에서 동쪽으로 향한 뒤 주유소 옆길로 올라가면 되겠다.
- 현부자집
태백산맥 문학관 바로 옆에 있어서 문학관이랑 세트로 취급된다. 벌교의 대지주였다고 하는 현부자의 집을 복원한 것으로, 일본풍 디자인이 약간 섞인 한옥이다. 대문 위로 일본식 창문을 단 망루가 서 있는데, 들에서 일하는 노비들을 감시하기 위해 세웠던 것이라고.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중도방죽'이라는 간척지가 보이는데, 옛날에 나카시마(中島)라는 일본인이 간척 사업을 벌인 곳이라 해서 '중도(中島)'방죽이란다.
- 소화의 집
- 제석산
벌교읍내 동북쪽에 바로 붙어있는 산. 순천시와 접해있다. 벌교에는 이 이름을 따서 '제석'이 들어간 자영업장이 많다. 패러글라이딩 체험도 이루어지고 있다.
- 벌교홍교
보물 제 304호.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홍교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난간이 없으므로 조심하자. 옛날에 자전거 타고 건너다가 실수로 다리 밑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다들 다치지는 않았다고 하니 다행. 옛날부터 있었던 구간은 서쪽 끝에서 1/3 정도이고, 나머지는 새로 이어붙인 것인데 모양이 매치가 안 된다. 옛날 부분쪽에 아치 아래에 용두가 있다. 현지에서는 '횡갯다리'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은 '홍굣다리'의 발음이 변한 것이다.
- 김범우의 집
홍교에서 2번 국도 쪽으로 건너 있는 안내판을 따라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나온다. 그런데 이게 보존을 해놓은게 맞는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집 안이 마치 철거중인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벌교 사람들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곳 같지 않게 생겼다.
1931년 6월에 세워진 왕복 2차로짜리 철근 콘크리트 교량. 정식명칭은 '부용교'이나 지역 주민들은 모두 '소화다리'라고 부른다. 여기서 '소화'는 태백산맥의 등장인물 '소화'가 아니라, 교량이 건설된 당시 일본의 연호인 쇼와(昭和)의 한국식 독음을 의미한다. 쇼와 6년(1931년)[40] 에 지어져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철다리
1930년 서부경전선이 개통될 때부터 있었던 철도교. 철교 문서의 짤방 중 하나가 이곳이다. 태백산맥에서는 염상구와 땅벌이 치킨 게임 하던 곳으로 나온다. 열차가 올 때까지 누가 먼저 피하나 하면서. 물론 실제로 이것을 체험했다간 철도안전법 위반으로 코로 꼬막정식을 먹게 되니 조심하자.
- 보성여관
등록문화재 제132호. 벌교초등학교 옆에 있는 일본풍 여관. 1935년에 준공되어, 숙박업소가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5성급 호텔과도 같은 규모로 벌교의 역사, 문화적 환경의 형성에 영향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상당 기간 흉가로 방치되어 있다가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관리를 맡아 해체 후 복원하여 2012년 6월 7일에 다시 숙박시설 겸 문화체험공간으로 개관하였다. 1층에는 찻집, 전시실, 숙박동 등이 있으며, 2층에는 다다미가 깔린 다목적실이 있다. 태백산맥에도 '남도여관'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홈페이지는 http://www.boseonginn.org. 2015년 들어서는 주변 문방구나 서점 등도 보성여관 모습으로 깔맞춤을 한 모양이다.
- 금융조합
등록문화재 제226호. 1919년에 준공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을 착취하고 일본인 지주의 이익을 챙겨주던 은행이다. 이후 농민상담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 부용산
동네 뒷산. 태백산맥과 엮여서 나름대로 스토리텔링이 되고 있다. 가곡 부용산의 배경이 이곳.
- 존제산
원래 정상에 미사일기지가 있었지만 해체되면서 산에 오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근데 시설물 철거를 제대로 안 해놔서 힘들게 철조망을 넘어다녀야 하고 심지어 지뢰주의 표지판도 보인다. 벌교읍과 율어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 북쪽의 주릿재에는 태백산맥 문학비가 있다.
그 외 터만 남아있고 간판만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누구도 모르게 사라진 청년회 터라던지, 벌교어린이집 터에 있던 자애병원, 그리고 다른 가게들이 들어선 술도가, 솥공장 등등. 실제로 등산코스를 제외한 전 코스를 돌아본 결과 3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9. 매체 속의 벌교
벌교를 널린 알린 일등 공신이라면 단연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다. 벌교는 《태백산맥》의 배경지로, 이야기 대부분이 벌교에서 진행되고 작중에 벌교의 풍경이 많이 묘사되어 있다. 《태백산맥》이 유명해지면서 소설 속 모습을 찾아보기 위해 수많은 독자들이 벌교를 방문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1박 2일 시즌 1에는 두 번씩이나 언급되었는데, 강원도 삼척 편에서 잠자리 복불복으로 문학 퀴즈를 진행하면서 '곧 이곳으로 촬영하러 갈 것이다'라면서 답이 '벌교읍'인 퀴즈문제를 냈고, 이듬해 진짜로 벌교에 왔다. 자세한 내용은 1박 2일/2009년 참조. 그 이후로 1박 2일에서 '꼬막' 하면 노가다의 상징이 되었으며, 강호동이 장난 삼아 언급한 예능의 정석의 가격도 '꼬막 2000개'라고 되어있다.
2003년에 개봉된 영화 황산벌에서는 신라 병사들이 백제군 진영 앞에서 온갖 모욕적인 행동들과 쌍욕으로 도발하자 백제 측에서 보성, 벌교 병사 3명을 불러 역으로 욕 공격을 시전, 역관광 시키는 명장면이 나온다.
2006년에 개봉된 영화 열혈남아의 배경도 벌교로, 벌교읍내에서 대부분의 촬영을 했다고 한다.
2011년에 개봉된 영화 써니에서는 주인공 임나미가 벌교에서 서울로 전학왔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패싸움에서 욕을 찰지게 한다.
2011년에 개봉된 영화 위험한 상견례에서는 서울 출신인 줄만 알았던 다홍의 어머니 춘자가 사실 전라도 출신이었다는 반전이 펼쳐지는데, 그 때 출신지가 벌교로 나온다. 그 전에도 시장에서 춘자를 본 아줌마들이 '초대 벌교 꼬막아가씨 진'을 들먹거리며 아는체를 하는 데 춘자가 애써 지나친 걸 보면 복선은 충분히 깔려있었다. 덧붙여 주인공 현준에게 서울말을 가르쳐 준 음악카페 사장도 고향이 벌교라고 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도 타블로와 딸 하루가 벌교에서 갯벌체험을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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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짤방도 있다. 어느 주민의 말에 따르면, 저 짤방이 나온 곳은 어느 문방구가 아니라 벌교고등학교 구내매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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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출신지가 벌교라는 짤방도 유명하다. '모차르트 벌교'라고 치면 자동완성도 뜬다. 자매품으로 '빈센트 반 고흐는 목포 사람'이 있다.
2015년에는 옆동네 보성에서 발생한 백일해 때문에 난리가 났다. 주민의 말에 따르면, 백일해 전염이 밝혀지기 며칠 전 벌교에 볼거리가 창궐했는데, 백일해 바이러스가 그 볼거리 바이러스와 세트로 건너가서 백일해를 전파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보성고등학교 교장이 직접 벌교를 언급해 주신다. 문제의 뉴스[41]
가곡 부용산에 나오는 '부용산'이 바로 벌교읍내 서쪽에 있는 부용산이다.
정희라가 부른 무등산관광에서도 '주먹 자랑 하지 마라'가 언급된다. 다만 지역명이 벌교가 아닌 고흥군으로 나오는 오류가 있다.
수능특강에도 나온다. 2016년판 수능특강 47쪽 위쪽 귀퉁이와 53쪽의 수능실전문제 9번에 '순천만·보성 갯벌'이 있는데, 그 '보성'의 정체가 바로 벌교다. 람사르 협약에 등록된 벌교 갯벌로 나왔는데 하필 지역명이 잘리는 바람에... 그래서 벌교인지 눈치를 잘 못 챌 수 있는데, 마침 강봉균의 강의에서 벌교 갯벌을 언급을 했다. 이외에 사설 기출문제집 중에도 해설지에 보성군의 벌교가 순천과 함께 람사르 협약에 등록돼있음을 명시한 것이 있다. 참고로 이 '순천만·보성 갯벌'은 2015년판 수능특강에서도 49쪽 본문 밑부분에, 2015년판 수능완성에서도 34쪽 본문에 나온다.
10. 교통
전남의 교통 요충지 지역중 하나로 타지역에서 '''고흥군'''으로 들어가는 관문역할을 하고 있다.
10.1. 시가지 도로 상황
'''좁다.''' 이 2글자로도 설명 완료.
시가지 도로를 확장할 여지가 없어서 시가지 도로는 전부 2차로짜리 도로다. 사실 이건 보성읍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보성읍은 주차공간이라도 많지... 하여튼, 그래서 벌교읍내에 관광버스 몇 대가 들어오는 순간 '''헬게이트가 열려버린다.''' 다행히도 2016년 들어서 한 차로에 주차 금지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 매일 주차 금지 차로가 바뀌고 벌교 파출소와 고용한 일반 주민이 주차 금지 순찰을 돌고 방범 CCTV도 설치했다. 차를 바로 빼지 않을 시 과태료가 부과 된다. 그 결과로 길거리가 상당히 쾌적해졌다. 특히나 이 관광버스의 승객 대부분은 꼬막정식을 먹기 위해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럼 이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일 때가 언제인 것 같은가? 당연히 꼬막축제 기간이다. 만약에 꼬막축제 시즌에 방문하게 된다면 이왕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열차라면 더욱 좋다.
10.2. 읍외 도로
고속도로로는 남해고속도로(영암 - 순천)가 있다. 벌교 나들목이 소재해 있으며, 고흥 나들목은 행정구역상 고흥이지만 군계를 넘어가자마자 바로 있어서 사실상 벌교에 있다. 게다가 벌교읍내에서 벌교 나들목보다 고흥 나들목이 더 가깝다. 다만 고흥 나들목의 구조가 영암방면 못 가는 고자 같은 구조라 나들목 선택이 중요하다. 영암 쪽에서 오는 경우엔 고흥 나들목에서 못 내리니까 벌교, 고흥 갈 사람은 무조건 벌교 나들목에서 내려야 한다. 반면 순천 쪽에서 오는 경우엔 고흥 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아주 좋다.
남해고속도로 벌교대교는 남해고속도로에서 남해가 보이는 유일한 구간이다.
2번 국도가 동서로 관통한다. 벌교읍 전 구간이 왕복 4차로이며, 읍내 우회도로를 제외하면 보성 쪽으로도, 순천 쪽으로도 모두 평면교차로의 연속이기 때문에 신호가 많이 걸려서 약간 빡치는 도로. 특히나 보성에서 순천을 급하게 가야 하는 사람의 심정이라면...
15번 국도, 27번 국도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왕복 4차로로 고속화가 진행 중이지만 고흥에서 고읍교차로에 이르는 구간까지만 공사가 완료되었고, 광주로 가는 북쪽 방향으로는 진행이 요원하다. 그리하여 벌교에서 석거리재를 거쳐 송광까지 이르는 길이 영 좋지가 않아서 운전자들의 원성이 자자한데, 고읍교차로에서 주암 나들목까지를 잇는 3구간 공사예산이 2015년 집행예산에도 반영되었다고 한다.#해당기사 지도에서 보면 이전 현재 공사중인 구간과 비교해서 27번 국도의 끝내주는 도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3구간까지 완전개통이 될 경우 벌교에서 호남고속도로 주암 나들목까지 거리가 상당히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42]
낙안 방향으로 857번 지방도가 있으며, 율어 방향으로는 895번 지방도가 있다. 또한 대포리 방향으로 843번 지방도가 있다.
고흥군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임을 비롯해 나름 교통의 요지이고 시 승격에 도전장을 내민 적까지 있던 벌교지만, 의외로 2015년 현재까지 전남권에서 가장 큰 도시인 광주광역시에서 벌교를 잇는 길은 2015년 현재까지도 거의 개량이 안 되었다. 전통적으로 광주에서 벌교로 가는 경로는 22번 국도와 15번 국도를 이용하는 너릿재터널 - 구암교차로 - 용암3 - 곡천3 - 석거리재 경유 루트. 그나마 22번 국도 광주 - 화순동면 구간, 15번 국도 화순동면 - 사평 구간은 왕복 4차로로 고속화되긴 했지만, 이건 절반도 채 안되는 구간인데다가 나머지 구간인 15번 국도 사평 - 벌교 구간의 질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매우 좋지 않다. 일단 2차로인데다가 주암호 호반과 송광 - 외서 쪽의 골짜기의 엄청난 굴곡을 터널도 없이 드리프트로 소화해주고 있기 때문에 옛날부터 멀미나는 구간으로 악명이 높았다.
한편, 29번 국도가 광주에서 보성까지 고속화가 완료되고 남해고속도로 보성 나들목이 접속하게 되면서 드디어 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무한 드리프트 구간의 대체경로인 너릿재터널 - 보성 나들목 - 벌교 나들목 경유 루트가 개척되었다. 옛 루트보다 거리는 3km 더 길지만 전 구간 고속 주행에 적합한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소요시간은 오히려 더 짧다.
장좌리에서 고흥 방향으로 '''뱀골재'''라는 고개가 있다. 고흥에서 올라오는 4차로 국도가 벌교읍내 서쪽으로 지나가는 고로, 고흥에서 벌교읍내나 순천으로 가려면 한천교차로에서 빠져서 이 뱀골재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게다가 고흥 나들목 진입로까지 뱀골재에 연결됐다. 안그래도 통행량이 많은데, 뱀골재라는 이름답게 경사도 가파르고 드리프트가 많아 위험했기에 보다못한 보성군에서[43] 뱀골재 드리프트를 직선으로 펴버렸다. 그리고 고흥군민들은 환호.
순천에서 벌교로 가는 고속도로는 과속카메라의 갯수가 거의 없다시피 하여 마세라티 차량으로 3분 46초대에 주파가 가능하다...
10.3. 철도
경전선 벌교역이 있다. 다만 서부경전선이니 수준은 기대하기 힘들다. 정말 급하면서 우연히 시간대 딱 맞을 때만 타는 수준.
벌교역에서 열차를 이용하면 순천, 광주 방향으로 이동할 수가 있는데 일단 배차부터가 안습이고, 순천 방향으로는 88번이라는 강력한 대체재가 존재하고, 광주 방향으로 탈 경우 시외버스에 비하면 보성읍으로 돌아가는 데다가 광주로 가는 시외버스의 배차가 많아서 수요가 밀린다.
심지어 벌교에 가는 내일로 이용자들도 실제로 벌교역에서 내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굳이 서부경전선의 일 4왕복 배차를 기다릴 필요 없이 내일로의 성지인 순천역 앞에서 조금만 기다렸다가 88번 타고 그냥 쭉 가면 벌교읍내까지 편하게 모셔다 주니까. 게다가 저 버스 노선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88번 버스는 하루에 60회나 순천에서 벌교로 드나든다. 몇차례 개편으로 버스편을 줄인 게 이 정도다. 벌교역에서 순천관내는 시계외요금이 더 붙어서 1600원이지만 그래도 무궁화호 기본 운임인 2600원보다 저렴하다.
벌교역이 순천과의 왕래에서 대체수단으로 부각되기 위해서는 갈아엎다시피 개량화를 한 다음 배차상태가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비개량 상태로의 벌교역과 순천역 사이의 소요시간은 그나마 23분 정도, 역간 거리는 23.4km이다.[44] 2번 국도 자동차로 이동할 때의 거리도 23km 정도로 거의 엇비슷하나, 순천~벌교 사이의 철도환경이 엉망이라 현재까지는 일반철도로는 경쟁력이 나오지 않는다.
여담격으로 한때 2005년에 고흥군에서 일제시대에 만들었어야 했을걸로 보인 벌교~녹동 철도건설을 추진했던 적이 있었지만 정작, 지역발전의 재도약 기회에 있어 벌교 현지에선 관심을 가지지 못했을뿐더러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진종근 고흥군수의 재선 연임 실패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서 재추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10.4. 버스
벌교는 보성, 고흥, 순천 3개 시군의 버스를 한 자리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교통의 요지로, 시외버스도 상당히 자주 온다.
보성교통에서 농어촌버스를 운행 중이다. 보성 방향으로는 2번 국도를 따라가는 보성~예당~조성~벌교 고정노선은 25회 있으며 율어를 경유하여 보성읍으로 가는 노선은 하루 4회 있다. 이외에 순천시 낙안, 외서, 송광 방면 노선도 운행하며, 순천 시내와 이들 지역을 잇는 '''순천 버스보다도 운행횟수가 많다'''. 고흥군 동강 방면으로도 아침 1왕복 운행. 이외에 고읍리-낙성리-지동리-연산리(일 3회)[45] , 마동(일 4회), 장암(일 8회)[46] , 대포(일 7회)[47] , 호산[48] (일 4회), 징광(일 5회)[49][50] , 낙성리-연동[51] -하송리-낙안(일 2회) 등등 수많은 서브노선이 존재한다.
이외에 벌교에서 고흥군(주로 동강, 대서)으로 넘어가는 버스들을 고흥여객이 운행하고 있다.
순천시 시내버스의 88번이 해룡면 검단산성에서 신대지구, 금당지구, 국민은행 사거리, 순천역 정문, 아랫장, 순천터미널 등 순천의 알짜배기 지역들을 모두 통과하면서 벌교읍내를 거쳐 벌교 삼성병원 앞까지 운행한다. 배차는 하루에 무려 38회.[52] 이외에 68번은 벌교로 들어오려다가 만 것 같은 선형을 갖고 있다. 88번은 예전 보성교통 시절에는 그 당시 돈으로 편도 2000원, 현재 물가였으면 2500원 이상이 되었을 흉악한 구간삥을 뜯었는데, 동신교통이 인수하여 순천 소속이 되고 나서 벌교터미널까지는 순천시내 기본요금인 1350원, 종점인 벌교역과 벌교삼성병원까지의 요금이 1700원으로 운임이 내려갔다. 한때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벌교읍내까지 안 들어가는 것으로 나왔었데, 이는 순천 버스 88 항목에 그렇게 된 사정이 적혀있다. 직접 타보면 알겠지만 벌교읍내로 운행한다. 현재는 정상적으로 나온다.
시외버스는 벌교버스공용터미널에서 이용할 수 있다. 해당 항목 참조. 금호고속, 광우고속, 동방고속 3사가 공동운행하는 광주 - 고흥 - 녹동 노선이 일 35회 다니면서 벌교에 정차를 하는데, 유스퀘어발 막차가 20:25로 매우 일찍 끊기기 때문에 혹시 저녁에 타지에서 버스를 타고 벌교를 가야 할 상황이면 순천종합버스터미널로 간 다음 터미널 앞에서 88번을 타는 게 좋다.
서울 센트럴시티(서울호남)로 가는 고속버스가 1일 1회 운행 중이다. 주말에는 1일 2회 운행. 운행사는 금호고속. 상행은 코버스에서, 하행은 이지티켓에서 예매 가능하다. 당초에는 그냥 서울 - 벌교 노선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보성읍으로 연장해 서울 - 벌교 - 보성 노선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벌교가 메인처럼 느껴지는 것이, 센트럴시티 탑승장 문 위에 '''보성(벌교)'''가 아닌 '''벌교(보성)'''이라고 적혀있다. 좌석은 보성터미널과 할당량을 나눠서 배정하며, 상행의 경우 보성 승객은 뒤쪽 절반, 벌교 승객은 앞쪽 절반으로 배정한다. 정안 환승휴게소에 정차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 이외 시간대에 고속버스로 서울 가려면 88번 타고 순천으로 가야 한다.
10.5. 해운
이전부터 육지와 장도를 잇는 민영 도선이 운행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벌교천을 거슬러올라 철다리 옆에 배를 대는 듯하다. 물론 통통배라서 차는 실을 수 없다.
차를 가지고 가야 한다면 철부선을 타야 한다. 보성군에서 운영하는 '장도사랑호'가 그것으로, 장암리 상진포구와 장도를 매일 2회 오간다. 날에 따라 운항시각이 조금씩 다르고 출항하지 않는 때도 있는데, 이 쪽 바다가 온통 뻘밭이라 수심이 얕아서 물때에 따라 배가 못 뜰 수도 있기 때문. 차를 실을 수가 있다는 장점 덕에 장도 주민의 오랜 숙원이 해소되었다.
10.6. 타 지역에서 벌교로 가는 방법
이 문단에서는 타 지역에서 각종 교통수단을 이용해 벌교로 가는 방법에 대해 다룬다. 대중교통의 경우 중간 환승지에서 날을 새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 도로
- 철도
- 버스
순천시내에서는 순천 버스 88로 싼 값에 갈 수 있으며, 보성읍에서도 벌교로 가는 보성교통의 농어촌버스가 운행한다. 고흥에서도 고흥여객의 농어촌버스가 운행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벌교행 시내·농어촌버스가 존재하는 곳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시외버스로도 접근 가능하다.
광주, 화순에서는 종착지가 고흥군 지역인 버스를 타면 무조건 벌교로 갈 수 있다. 목포, 해남, 완도, 강진, 장흥에서는 종착지가 순천, 여수, 부산사상 등인 버스가 벌교에 정차하므로 그것을 타면 된다. 다만 목포의 경우 순천까지 무정차로 가는 차도 있으므로 주의. 부산에서는 사상터미널에서 종착지가 목포, 해남, 완도, 고흥 등이고 순천 서쪽에서 연선 지역의 모든 터미널에 정차하는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 여기까지가 벌교행 직행버스가 존재하는 곳이다.
서울은 일 1회, 주말에는 일 2회 벌교로 바로 가는 고속버스가 있다. 버스 시간을 못 맞추겠다면 일단 광주나 순천으로 가자. 이외 타지역 도시는 무조건 환승을 필수로 한다.
환승을 통해 가는 경우는 크게 광주를 거쳐 들어가는 방법과 순천을 거쳐 들어가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광주에서 벌교로 가는 막차가 20:25에 있고, 순천에서 벌교로 가는 순천 버스 88이 22:20분 막차이므로, 환승에 필요한 시간을 10분으로 잡으면 늦어도 광주에는 20시 15분까지, 순천에는 22시 10분까지 도착해야 벌교로 갈 수 있다.
광주, 화순에서는 종착지가 고흥군 지역인 버스를 타면 무조건 벌교로 갈 수 있다. 목포, 해남, 완도, 강진, 장흥에서는 종착지가 순천, 여수, 부산사상 등인 버스가 벌교에 정차하므로 그것을 타면 된다. 다만 목포의 경우 순천까지 무정차로 가는 차도 있으므로 주의. 부산에서는 사상터미널에서 종착지가 목포, 해남, 완도, 고흥 등이고 순천 서쪽에서 연선 지역의 모든 터미널에 정차하는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 여기까지가 벌교행 직행버스가 존재하는 곳이다.
서울은 일 1회, 주말에는 일 2회 벌교로 바로 가는 고속버스가 있다. 버스 시간을 못 맞추겠다면 일단 광주나 순천으로 가자. 이외 타지역 도시는 무조건 환승을 필수로 한다.
환승을 통해 가는 경우는 크게 광주를 거쳐 들어가는 방법과 순천을 거쳐 들어가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광주에서 벌교로 가는 막차가 20:25에 있고, 순천에서 벌교로 가는 순천 버스 88이 22:20분 막차이므로, 환승에 필요한 시간을 10분으로 잡으면 늦어도 광주에는 20시 15분까지, 순천에는 22시 10분까지 도착해야 벌교로 갈 수 있다.
11. 교육
11.1. 관내 학교
초등학교는 벌교초·중앙초·낙성초 3개가 있다.[53] 벌교초등학교는 읍내 정중앙인 벌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군은 벌교읍 시가지.[54] 이외에 장도에 장도분교장을 두고 있으며, 장양리로 가는 길에 제석분교장이라는 분교가 하나 더 있었지만 폐교됐다. 벌교초는 2017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벌교중앙초등학교는 이름과 달리 벌교 중앙이 아닌 남쪽인 장좌리에 있으며(그나마 읍내다), 학구는 칠동천 유역과 벌교읍 남동부 지역. 낙성초등학교는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낙성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구는 벌교읍 북부. 시골에 있어서 그런지 면단위 학교와 상황이 비슷하다.
중학교는 벌교중(남중)·삼광중(남중)·벌교여중 3개가 있다. 특이하게도 남중이 2개인데, 매년 벌교초 체육관에 학생들 모아서 뺑뺑이로 결정한다. 벌교중학교는 회정리에 있는데, 뜬금없이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눈만 왔다 하면 헬게이트 당첨. 삼광중학교는 장좌리에 있으며, 벌교고와 같은 재단인 '삼광학원'에서 세운 사립학교이다. 재단에 대한 설명은 아래 참조. 벌교고와 동일부지 상에 존재한다. 벌교여자중학교는 벌교초 바로 북쪽에 있다. 여기가 옛날 벌교북국민학교의 부지였다. 벌교초는 당시 벌교남국민학교. 그리고, 남중이 2개인 것 때문인지, 벌교중과 삼광중은 현재 학년당 1학급으로 근근이 운영 중이다. 가끔씩 이 두 학교를 합치자는 주장이 나오곤 하는데... 삼광중이 사립이라 요원하다. 또한 벌교여중도 학년당 2학급으로 상황이 별로 안 좋아서 벌교중과 벌교여중을 합치자는 주장도 있다. 심지어 벌교여중을 분할통합해서 벌교중·삼광중 둘 다 남녀공학으로 만들자는 상상을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정작 보성읍 소재 중학교들은 이제 3학급에서 2학급으로 쪼그라드는 시기인데... 하지만 정말로 합쳐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고등학교는 벌교고(공학)·벌교여고·벌교상고(공학) 3개가 있다. 참고로 보성읍에는 원래 보성여고가 있었지만 1985년에 남녀공학으로 전환했고, 그게 지금의 보성고다. 벌교고등학교는 장좌리에 있으며, 이름만 들으면 공립 같지만, 실은 개신교 계열 재단인 '삼광학원'에서 1986년에 세운 '''사립학교'''다. 고흥과 순천에 인접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보성고보다 학생 수가 많게 되었다. 미션스쿨이며 매주 예배도 본다. 처음에는 남고로 시작했으며 2000년도에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벌교여자고등학교는 벌교고에서 2번 국도 건너편에 있으며 이쪽은 원래 삼광학원 소속이었는데 90년대에 계열분리당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2005년 신입생은 받지 않았고, 그 다음해부터 신입생을 받았다. 소문으로는 2004년 당시 폐교가 될 위기였는데, 2005년에 다른 재단이 벌교여고를 인수했다고 한다.'''전교생 60명.''' 벌교상업고등학교는 회정리에 있으며, 한때 인문계인 보통과 2개반(2005년)을 신설하며 벌교제일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꾼 적이 있으나, 거점고 지원을 받는 김에 다시 상고로 갈아치웠다. 학과로는 금융회계과와 ERP정보관리과 가 있다. 참고로 벌교상고가 벌교에서 가장 먼저 생긴 고등학교다. 벌교상고 남자 배구부는 윤봉우, 하경민, 부용찬 등 국가대표 선수들을 여럿 배출했다. 또한 복내면에 위치한 보성정보통신고가 폐교되면서 벌교상고가 거점고로 지정되어 학교 건물과 시설이 아주 좋아졌다.
*벌교여자고등학교는 2019년도 1학년 입학생이 정원 미달하여 2학년과 3학년 밖에 없는 상태였다. 다음해인 2020년에는 신입생들이 들어왔고 2학년은 전년도에 신입생들이 없는 바람에 빈 학년인 채로 유지되며 따라서 2학년을 제외한 1학년과 3학년이 벌교여자고등학교에 있다.
11.2. 벌교읍의 교육기관[55]
11.2.1. 초등학교
벌교중앙초등학교
(1999년 폐교)
(1999년 폐교)
(2015년 폐교)
(2006년 폐교)
벌교초등학교
(1998년 폐교)
(2004년 폐교)
(1998년 폐교)
벌교초등학교 장도분교
11.2.2. 중학교
벌교중학교
벌교여자중학교
삼광중학교
11.2.3. 고등학교
벌교고등학교
벌교상업고등학교
벌교여자고등학교
12. 군사
제31보병사단의 예하 독립중대로 보성군 전체의 방위를 책임 중이다. 보성군 예비군훈련장도 이곳에 있다. 옛날에는 존제산에 공군 소속 미사일 기지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해안이라는 위치에 어울리지 않게 THAAD 설치 후보지 중 하나였다. 북한이 THAAD 파괴를 시도하는 걸 막기 위해 후방 지역에 설치한다지만 후방이라도 너무 후방이다(...). 과거 존제산에 있었던 미사일 기지 부지를 재활용하고 싶은 국방부의 의중이었는데, 결국 성주군으로 결정되면서 벌교읍과 보성군 지방정부는 한 시름 덜었다.
13. 전화
지역번호는 전라남도 지역번호인 061을 공용하고, 국번은 보성군 지역 국번인 85X의 후반부 857, 858, 859를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 061-857, 061-858을 쓰며, 061-859는 보성소방서와 몇몇 병원 등에서만 사용하고 있다. 읍사무소 등 관공서에서는 061-850을 사용한다. 조성면에서도 조성면소재지 등 동반부는 벌교 국번을 사용하고 있으며 봉능리 쪽에 보성 국번과 벌교 국번의 경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화다리 서단 근처에 KT 벌교지점이 있다.
지역번호가 시군 단위로 있고 국번이 두 자리였을 적에는 보성군의 0694가 전국 지역번호의 끝번호를 차지했는데, 그 때 0694-59는 지역번호 끝번+그 지역 국번 끝번이라는 타이틀이 있었다.
14. 출신 인물
- 나철 : 대종교의 창시자. 호는 홍암(弘巖). 벌교IC와 인접한 칠동리 금곡마을에 그의 생가[56] 가 있으며 인근에 기념관이 세워졌다. 그의 호를 딴 홍암로[57] 가 있다.
- 채동선 : 민족 음악가. 벌교읍사무소 근처에 그의 생가[58] 가 있으며 인근 뒷산에 그의 묘소가 있다. 벌교읍사무소 뒤편에 크고 아름다운 공연장이 붙어있는데 이 공연장의 이름이 '채동선 음악당'이다. 역시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채동선로가 있다.
- 한창기 : 잡지 뿌리깊은 나무 창간자. 고읍리 지곡마을 출생. 그런데 정작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은 순천시가 추진하여 순천시 땅(낙안면)에 세웠다.
- 한현민 : 개그맨. 현재 그의 부모님이 벌교초등학교 앞에서 교복집을 운영하고 있다.
- 김덕현 : 멀리뛰기 선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은메달을 수상했다.
- 백지헌 : fromis_9의 멤버. 벌교에서 태어나서 순천에서 성장했다.
- 이강산 : 전남 광주광역시 인디씬의 네임드 드러머[현재는] . 과거 주먹으로 유명한 벌교에 걸맞게 ‘벌교 핵주먹’ ‘벌교 피꼬막’ 등등 무시무시한 별명도 보유 하고있다.
- 수지 : 아버지 배완영 씨가 벌교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수지가 아버지의 고향인 보성군의 학생들을 위해 교복 지원금 1000만원을 지원했었다. 관련 기사
- 조정래 : 소설가. 이 문서를 잘 읽었다면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 하슬 : 이 기사에서 본인이 순천에서 태어났지만 벌교에서 자랐다고 언급한다.
15. 여담
대동여지도에는 筏橋가 아닌 '伐'橋라고 오기가 되어있다.
'삼랑진'이나 '소흘읍'만큼은 아니지만 이쪽도 가끔 오기·오독되는 일이 생긴다. 별교가 아니라 벌교다. 주의하자. 옆에 순천시 '별량'면이 있어서 이곳까지 헷갈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쪽은 벌량이 아닌 별량이니 참고하도록 하자.
옛날에는 창가학회도 있었던 모양이다. 맘스터치 옆에 쌍팔년도 글씨체로 '재단법인 한국SGI 벌교문화회관'이라고 써있는 3층짜리 건물이 있는데, 분식집과 노래방에 점령당했다.
일본 기후현 타카야마시에는 '벌교'라는 이름의 다리가 있는데, 벌교읍과 한자가 같다. 筏橋라고 쓰고 훈독으로 いかだばし(이카다바시) 혹은 いかだはし(이카다하시)라고 읽는다. 벌교읍처럼 이 다리 이름도 옛날에 뗏목으로 만든 다리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16. 관할 리
총 21개 법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 ※행정자치부 표준코드 정렬로, 벌교리가 4678025321이며 1씩 늘어난다.
- 벌교리(筏橋里)
- 전동리(典洞里)
- 낙안분지의 남쪽 기슭에 위치한 곳. 벌교리와 접한다.
- 지동리(池洞里)
- 낙안분지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 곳. 순천시 낙안면과 접한다. 이곳의 원등마을은 북쪽에 2차로짜리 길이 나있는데 그 길 북쪽에 있는 몇몇 집은 보성군이 아니라 순천시로 들어간다.
- 고읍리(古邑里)
- 낙안분지의 남서쪽 기슭에 위치한 곳. 전동리의 북서쪽에 있다. 현재의 낙안읍성 자리로 관아가 이전하기 전까지는 이곳에 낙안군의 관아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고을'이라는 뜻의 '고읍'리.
- 낙성리(洛城里)
- 낙안분지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 곳. 지동리의 서쪽에 있다. 낙성초등학교와 벌교농협 고상지소가 있으며, 한때 벌교읍 북부인 구 고상면 지역[59] 의 중심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추동리(秋洞里)
- 벌교읍의 최북단. 낙성리에서 석거리재 방향으로 계속 들어가면 나온다. 주릿재를 통해 율어면과, 석거리재를 통해 순천시 외서면과 접한다. 이곳에 벌교천의 뿌리가 있다.
- 징광리(澄光里)
- 낙성리와 옥전리 사이의 산골. 녹차밭이 있다고 한다.
- 칠동리(七洞里)
- 척령리(尺嶺里)
- 칠동천 골짜기의 초입부에 위치한 곳. 영역이 의외로 드넓은데, 선근삼거리에서 보성 방향으로 가면 바로 나오는 원동마을부터 척령리로 들어간다. 보성소방서 본서가 있다. 이쪽 사람들에게 일종의 랜드마크 취급을 받는 찐빵만두집도 이곳에 있다.
- 마동리(馬洞里)
- 척령리 즈음에서 왼쪽으로 톡 삐져나온 골짜기에 위치한 곳.
- 장좌리(長佐里)
- 벌교리에서 칠동천을 가로지르는 선근교를 건너면 나오는 곳. 종합병원인 벌교삼호병원[60] 이 있으며 그 옆에는 보성군립노인전문병원이 있다. 벌교고등학교, 삼광중학교, 벌교여고, 벌교중앙초등학교가 여기에 있다. 이곳과 고흥군 동강면을 잇는 뱀골재는 고흥으로 가는 일종의 관문. 중앙초 주변으로는 주거지역이 형성되어 있어 빌라와 단독주택도 많다. 매년 정월대보름 이 동네에서 900여년 동안 장좌리 기받이 별신제를 하고 있다. 2008년 별신제 진행 장면. 해당 영상에 준비 과정부터 끝부분까지 다 나와있으니 설명은 이 영상으로 대체. 1989년 남도문화제에서 대상, 1990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관광부장관상 등을 수상했으며, 2015년에는 2014 작은공동체 전통예술잔치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 영등리(永登里)
- 장좌리에서 남하로를 타고 대포리로 가다 보면 나오는 곳. 고흥군 동강면 청송리와 인접해 있으며, 그 중 상송마을은 남하로와 매우 가까이 붙어 있지만 어째 마을과 접속하는 도로가 마땅치 않다.
- 장암리(長巖里)
- 영등리에서 대포리로 가다가 왼쪽으로 빠지면 나오는 곳. 벌교읍 육지부 중에는 최동단이며, 장도사랑호가 여기서 뜬다.
- 대포리(大浦里)
- 남하로의 끝에 위치한 곳. 고흥군 동강면 죽암리와 인접해 있다.
- 연산리(蓮山里)
- 벌교농공단지가 있다. 북쪽으로 쭉 가면 낙안면이 나온다.
- 봉림리(鳳林里)
- 회정리 위쪽에 있다. 벌교중학교가 있다.
- 회정리(回亭里)
- 벌교천 동안에 위치한 동네. 실질월경지마냥 벌교천 서안으로도 법정리 영역이 파고들어가 있는데, 이는 벌교천의 유로가 지금보다 서쪽이었을 때의 흔적으로 추정된다.(관련 기사(2번째 지도 참조)) 장좌리처럼 주거지역으로 이루어진 곳으로, 벌교읍 최초의 아파트인 우리타운을 비롯해 고층 아파트도 많고 빌라도 많다.[61] 벌교버스공용터미널, 벌교상업고등학교, 태백산맥문학관, 홍교119안전센터가 위치해 있다.
- 장양리(壯陽里)
- 회정리 동쪽, 진토재 서쪽에 위치한 곳. 보성교통 본사 겸 차고지가 있다.
- 호동리(虎東里)
- 장양리 동쪽에 위치한 곳. 동막마을과 그 앞의 2번 국도가 이곳에 속하는지라, 벌교에서 진토재를 넘어 순천에 진입했는데 어느새 다시 벌교가 되어있는 기현상을 체험 가능. 다만 시군계 표지가 진토재에만 세워져 있고 동막마을 앞뒤로는 시군계 표지가 없어서 이걸 눈치채기가 어렵다. 다만 보성경찰서의 명의로 된 사고다발지역 표지판이 있긴 한데, 그건 또 순천 땅에 있다.
- 장도리(獐島里)
- 1983년 2월 15일에 고흥군 동강면 소속이였다가 벌교읍으로 들어온 섬 장도를 포함한 행정구역이다. 근처의 지주도, 해도 등의 섬도 관할하고 있다.
- 옥전리(沃田里)
- 벌교읍 최서단. 이름이 한 번 바뀐 적이 있어서 그런지 행정표준코드가 맨 뒤로 밀려있다.[62] 옛날 이름은 이곳에 있는 고개인 하느재에서 유래한 천치리(天峙里)였다.
17. 둘러보기
[1] 2021년 1월 주민등록인구 [2] 2021년 1월 기준 [3] 벌교읍 공식 홍보 슬로건.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비롯되었다. [4] 현재 폐교된 교육기관 역시 표기, 폐교된 학교는 취소선 처리[5] 1위는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115.92㎢).[6] 1박 2일 초창기 독서퀴즈 때도 나왔을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표현인데, 21세기에는 조직폭력배와 연계되어 '지역 비하 표현'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원래는 항일운동과 관련된 표현이라 '지역 우대 표현' 중 하나이다.[7] 동초면은 낙안군 동상·동하·초상·초하면이 부군면 통폐합 때 통합된 것이다. 벌교천 동안의 연산리·봉림리·회정리·장양리·호동리는 벌교로(실제로 이들은 벌교리와 벌교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였기에 매우 가까운 지역이었다), 내운리·용능리·이곡리·신기리는 낙안으로, 대룡리·금치리·송기리·죽산리·구룡리·두고리는 별량면으로 편입된다. 폐군 이전 낙안군의 면 이름을 붙이던 방식으로 미루어보아, 낙안으로 편입된 지역은 동상면, 별량으로 편입된 지역은 초상•초하면임을 알 수 있다.[8] 벌교역 앞 역유래비 비석에 명기되어있다.[9] 단적인 예로, 부모님이 벌교 출신인 경우 자식이 친할아버지 혹은 외할아버지를 '벌교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보성 할아버지'라고는 절대 안 부른다.[10] 물론 방영분 중에서 '보성군 벌교읍'이라고 소개해주긴 했다. 벌교편 전에 한 삼척편에서도 태백산맥의 배경을 묻는 퀴즈로 나온 적이 있다.[11] 생필품을 어디서 구매하느냐는 것은 생활권을 판정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다.[12] 참고로 1927년 설치된 벌교등기소의 관할구역이 당시 고흥군 남양면·대서면·동강면, 보성군 조성면·벌교면, 순천군 동초면·외서면·송광면·낙안면이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13] 조성면의 경우는 조성을 지나가는 유일한 노선이 보성~벌교 노선인데, 보성→벌교행이 26회, 벌교→보성행이 24회로 결국 벌교행이 많긴 하다.[14] 1999년까지만 해도 '''벌교등기소'''가 따로 존재했으나 '1군 1등기소 원칙'이라면서 보성등기소로 통폐합되었다.관련 기사 참고로 보성이 유일한 1자치단체 2등기소 사례는 아니었다. 고양시의 경우도 시승격후 덕양등기소와 일산등기소로 나뉘었으나 다시 고양등기소로 합쳤다. 참고로 옛 벌교등기소 자리는 벌교우체국 근처 삼거리에 면해있는데, 그 자리를 꼬막정식집이 낼름 먹어버렸다. 물론 꼬막정식집 건물은 옛 등기소 건물이 아니다.[15] 1955년에 벌교경찰서가 폐지되었다는 기사가 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16] 보성군내에서 농어촌버스 노선이 벌교로 연결된 지역은 보성읍, 득량면(예당 한정), 조성면, 율어면밖에 없다. 이외의 면을 벌교에서 가려면 무조건 보성읍에서 갈아타야 한다. 벌교에서 문덕 같은 데 가야 한다면 이때는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17] 장암, 대포, 장도 등[18] 그렇게 되면 벌교읍사무소는 정말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벌교군청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19] 참고로 홍성군 은하(銀河)면 같은 경우는 지명유래가 '은하'→'은하봉'→'은하면'이라 중간에 한 단계 더 거쳤다.[20] 또 다른 설은 조선 초기에 갓 밀거래의 거점으로 이용된 것, 보성 출신 의병장 안규홍의 항일활동에 대한 것이다.[21] 백분율, 반올림해 소숫점 둘째 자리까지 나타냄[22] 1981년도에 나주읍과 영산포읍을 합쳐 '금성시'로 승격.[23] 비록 전라남도가 인구 유출이 심한 지역이고, 1960년대~1990년 경제 개발 정책에서 소외되었지만, 그래도 인구가 증가세인 지역이 있어서, 나주읍에는 비료 공장(현 LG화학 나주공장)이 있어서, 공장이 인구 감소를 막아주었으며, 이후 나주-영산포가 연합해서 금성시로, 송정읍이 송정시로,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있는 여천군 삼일읍-쌍봉면이 여천시로, 포스코 광양제철소와 그 배후 단지가 있는 광양군 골약면-태금면이 동광양시로 차례차례 승격되었다. 다만 엄청난 인구 유출로 인해 송정시일대(현 광산구)를 제외하면 인구가 정체되거나 크게 증가되지 못했다.[24] 인근에 태백산맥문학비가 있다.[25] 고흥군과의 접경지역. 장도 등 도서지역으로 갈 수 있는 선착장이 있다.[26] 16대에는 고향인 보성군-화순군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나왔고, 17대에는 고흥군-보성군 선거구에도 출마했으나 고흥 사람인 박상천, 신중식에게 밀려서 패배하였다. 18대부터 광주 동구로 지역구를 옮겼고, 20대에도 종전 지역구인 동구가 속한 동구-남구 을에서 출마했다.[27] 아들인 새누리당 이종구도 17, 18, 20대로 3선 국회의원이다. 지역구는 서울 강남구 갑. 보성 출생은 아니지만 보성을 고향으로 여기는 듯 하다.[28] 다시 말해 '우리 동네 아는 사람 찍어준다'는 소지역주의 심리[29] 벌교읍이 유독 보성군의 타 지역과 지역 정서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만큼 '보성 사람'이란 점은 벌교 주민들에게 잘 와닿지 못했다는 가설도, 아니면 벌교에서 밀어줄 수 있는 '벌교 사람'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래도 같은 보성군이니 보성 사람을 밀어준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진실은 저 너머.[30] 험지 지역에서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이다.[31] 이후 도의원으로 방향을 선회했다.[32] 1996년 11월 23일 '''사망.''' 한겨레신문 1996년 11월 26일 제23면[33] 도의원 당선자 : 경향신문 1991년 6월 22일 제12면, 군의원 당선자 : 동아일보 1991년 3월 27일 제13면[34] 한겨레신문 1990년 12월 15일 제12면[35] 3대 지선까지 기초의원은 읍면동별로 소선거구제를 실시했다.[36] 참고로 벌교 사람이 군수 선거에 나왔다가 낙선한 일이 한 번이 아니다! 3대 지선 때도 이쪽 선거구에서 도의원을 한 김수송이 군수 선거에 출마했다가 하승완에게 졌다.[37] 참고로 보성읍 쪽인 1선거구는 진보 정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5대 지선에서 전농 쪽 인물인 민주노동당 이정민이 아슬아슬하게 당선되었다. 6대 지선 때도 통합진보당 후보로 나왔으나 낙선했다.[38] 참고로 그 BHC는 현재 보성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39] 참고로 롯데리아가 없는 기초자치단체는 전국에서 16곳밖에 안 된다. 롯데리아/비판 참조.[40] 쇼와가 1926년에 즉위했으므로[41] 중간에 나오는 학교 체육관이 바로 벌교상고 체육관이다. 커튼 교체를 안 해서 그런지 '벌교제일고등학교'라고 써 있지만 2015년 9월 이후로 커튼이 교체됐다고 한다.[42] 그런데 벌교에서 광주 가는데 주암 나들목에서 들어가서 호남고속도로 타고 곡성, 담양으로 돌아서 가는 니 차라리 남해고속도로 타고 보성가서 29번 국도 타고 가는 게 낫다.[43] 뱀골재는 국도에서 해제됐으므로 군청에서 관리한다.[44] 46.1km라는 설이 있었으나 이는 철도영업거리표를 보고 계산하면서 순천역의 전라선측 거리를 대입해서 착오가 난 것이다.[45] 첫차는 연산→지동→낙성→고읍 방향으로 돌며 나머지는 고읍→낙성→지동→연산 방면으로 돈다.[46] 일 3회 영등리 봉황마을 경유.[47] 일 2회는 제두마을 종점이며 일 3회는 대포마을로 직행. 일 4회 영등리 두평마을 경유.[48] 벌교읍 호동리.[49] 첫차는 지동리 중흥마을, 연산리 경유, 일 1회 징광리 직행.[50] 이상하게도 버스시간표에는 '증광'으로 나온다.[51] 벌교읍 지동리.[52] 원래는 이보다 더 많은 60회 운행이었는데 노선 개편의 영향으로 이렇게 줄어버렸다.[53] 과거에는 벌교읍에 초등학교가 14개 있었으나 학령 인구 감소로 하나둘씩 폐교되었다.[54] 그래서인지 비교적 학생 수가 많다. 386명(2014년 4월 1일 기준).[55] 현재 폐교된 교육기관 역시 표기, 폐교된 학교는 취소선 처리[56] 자세한 주소는 벌교읍 녹색로 5147-25 (칠동리 115)[57] 벌교읍내 벌교역 앞의 역전삼거리에서 벌교버스공용터미널 앞의 회정교차로를 거쳐 금치재교차로에서 2번 국도와 만나는 도로.[58] 자세한 주소는 벌교읍 홍교길 28 (벌교리 401)[현재는] 멜로딕 펑크밴드 몽키 피 콰르텟의 드러머이다.[59] 위에서도 말했지만 벌교 지역은 보성 편입 이후부터 벌교면 설치 이전까지 고상면과 남면으로 나뉘어 있었다.[60] 원래 삼성병원이었는데 2014년에 바뀌었다. 그러나 서류상으로만 바뀌고 한동안 간판은 그대로였으나, 2016년 현재는 삼호병원으로 간판이 새로 달렸다. 순천 버스 88의 종점명도 아직까지 벌교삼성병원으로 되어있다.[61] 다만 대부분의 아파트는 1동(棟) 규모이며, 2동 이상의 단지로 이루어진 아파트는 2010년대 들어 지은 주공아파트 1개 단지 뿐이다.[62] 이 지역은 옛 낙안군 남면 지역으로, 원래대로라면 코드가 징광리와 칠동리 사이에 있어야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