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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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오호십육국시대 중, 16국중 하나인 후연의 비정통 황제. 폐주이기에 묘호와 시호는 없다. 제호(帝號)는 창려왕(昌黎王).
2. 상세
자신의 딸 둘을 모용해(慕容楷)와 혜민제에게 시집보냈으며, 형 난제(蘭堤), 동생 난가난(蘭加難)과 함께 황실의 외척으로 성무제에게 신임받던 평범한 외척이었다. 용성에 주둔하던 모용회(慕容會)의 반란[2] 을 물리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 398년 혜민제는 중신들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북위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남은 세력을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을련(乙連)에 이르렀을 때 단속골(段速骨)이란 자가 반란을 일으켜 다시 용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난한은 사실 단속골과 한패였고, 5월에 용성으로 돌아온 난한은 혜민제와 그의 태자인 모용책(慕容策)을 시해하고 마침내 자신을 창려왕이라 칭한 후 제위에 오른다. 그의 아들인 난목(蘭穆)은 아버지가 황제가 되자 잠시동안 태자로 책봉되었다.
어째서인지 난한은 자신의 사위인 모용성(소무제)만큼은 죽이지 않고 남겨놓았는데, 모용성은 황실 복고를 위해 난한과 그 형제들 사이를 이간질하여 갈라놓는다. 그 후 동년 7월 모용성이 정변을 일으키면서 난한은 일족과 함께 처참히 목숨을 잃었고, 이후 모용성이 제위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