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물왕릉
1. 전(傳) 내물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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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17대 내물 마립간의 왕릉으로 비정된 곳이다. 대한민국의 사적 제 188호.
첨성대 남서쪽에 위치한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내물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이다. 돌무지덧널무덤 양식으로 추정되며, 하단부의 돌무지가 일부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 고분의 정체가 한동안 잊혀져 있다가 내물왕릉으로 비정된 것은 조선시대에 김씨 문중에 의해서 된 것으로, 현대의 기준에서 이는 현대 학자들은 이 내물왕릉으로 알려진 고분이 진짜 내물마립간의 무덤이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 고고학적 비정
2.1. 인교동 119호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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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교동 119호분.[1]
내물왕의 생존 기간을 고려하면 당시의 유행하였던 묘제는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으로써 대릉원 황남대총처럼 여느 고분들과 마찬가지로 연접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바 첨성대의 남쪽에 자리하였다는 기록에 말미암아 적석목곽묘 중에서도 당시 왕릉급을 갖춘 무덤이 인교동 119호분이기 때문에 보다 가능성이 있는 무덤은 바로 인교동 119호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발굴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인교동 119호분의 상부를 보면 함몰된 양상이 드러나는데 내부 목재들이 썩은 경우에 내려앉아서 무덤 정상부분이 평평해지는 현상이 있다. 반면에 전 내물왕릉은 무덤이 작고 무덤 호석부분에 돌 일부가 노출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서악동 고분군에서 보이는 현상이다. 서악동 고분군 정도의 노출에서 점차 내부 호석렬이 신라 후대로 갈수록 무덤 밖으로 노출되어 아예 괘릉처럼 외부 장식용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고려한다면 전 내물왕릉은 실제로 내물 마립간의 무덤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2.2. 황남대총설
황남대총 남분은 고고학과 삼국사기상의 기록을 종합해보아 눌지 마립간의 능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지만, 내물 마립간설도 폐기된 것은 아니며 양자의 설은 하나의 역사고고학 자료의 분석적 기준으로써 존재하고 있다. 5세기 중엽의 간극 빼고는 양자의 설 모두 전반적인 부분은 같다. 신라왕릉#s-5 문서 참조.
[1] 사진을 찍은 지점이 바로 전 내물왕릉이다. 인교동 119호분은 전 내물왕릉의 지근거리에 소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