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즈키 린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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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月綸太郎'''
1. 개요
일본의 추리 소설가이자 평론가. 1964년 10월 15일 시마네 현 마츠에 시 출신. 본명은 '''야마다 준야(山田純也)'''로, 1988년 '밀실교실'로 에도가와 란포상 후보에 오르며 데뷔했다. 필명인 노리즈키 린타로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나루토 비첩에 등장하는 첩자 노리즈키 겐노조에서 따왔다. 아비코 타케마루나 아야츠지 유키토와 같은 교토대학 추리소설연구회 출신이다.
추리소설의 존재 의의와 살인트릭의 필연성, 밀실살인의 인과적 당위성 등에 대해 굉장히 연구를 많이 하는 작가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거기에 집착하다보니 집필 속도가 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내내 깔려있는 복선과 결말에 이르러서 독자를 당황시키는 반전과 트릭은 타의 추종을 불가할 수준. 탐정 노리즈키 린타로가 늘어놓는 논리를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수능하게 된다는 독자들의 평이 대다수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고뇌하는 작가'''.
또한 엘러리 퀸의 광팬으로, 그의 작품 곳곳에 보면 그에 대한 오마주가 느껴진다. 작가 이름과 탐정 이름이 같은 것, 경찰인 아버지와 탐정 겸 작가인 아들 등등... ...
본격 미스터리이면서도 하드보일드 문체가 묻어나는 작가다. 그리고 미타라이 기요시와 같은 천재라고 일컽는 탐정들과 다르게 자주 추리가 틀리고는 한다. 결말부에서는 범인의 과거와 진실이 드러나면서 통쾌함을 선사하기보다는 끔찍하고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진실들이 밝혀지는 등 독자들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든다.
위에서 언급한 아비코 타케마루, 아야츠지 유키토, 우타노 쇼고 등과 함께 '''신본격 1세대'''로 불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2. 작품 목록
2.1.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2.2. 기타
3. 후기 퀸적인 문제
노리즈키 린타로가 논문 '초기 퀸론'[1] 에서 제기한 본격 추리 소설에 대한 문제점으로, 명명 자체는 노리즈키 본인이 아닌 카사이 키요시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간결하게 말하자면 '''작중에서 탐정이 최종적으로 제시한 결론이, 유일무이한 진상인지 아닌지 작중의 탐정은 증명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진상에 다다르기 위한 모든 단서를 모은 것인지, 그것이 가짜 단서인지 아닌지, 탐정이 지목한 범인을 뒤에서 조종한 흑막이 있는지 아닌지, 무고한 이가 진범을 감싸기 위해 죄를 뒤짚어 쓴 것이 아닌지 등등, 즉 탐정이 모르는 정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소설 속의 탐정 본인'''은 알 수 없기 때문.
이러한 점이 문제가 되는 것은 엘러리 퀸이나 반 다인을 사조로 하는, 추리소설을 작가와 독자가 벌이는 지적 게임으로 여기고, 마치 스포츠처럼 공정한 룰 아래 대결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본질적으로 메타적인 성격을 지닌 '본격 추리 소설'의 특성'''에 기인한다.
문제를 내는 작가는, 문제를 푸는 독자가 도달해야 할 '유일무이한 해답'을 준비하고, 거기에 다다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야한다. 한편 문제를 풀어야 하는 독자가 소설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상, 독자들이 단서를 제공받는 것은 탐정 혹은 왓슨역의 시선을 따라가야만 한다. 추리 소설을 '게임'이라고 여길 경우,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탐정의 눈이나 입을 빌려 '확정되는 사실'은 곧 진상에 이르기 위한 '단서'이자 '유일무이한 진상'이라는 '''메타적인 합의'''가 존재한다. 본격 추리 소설의 작가들은 때로 '독자들에게의 도전장'을 통해서건 주의 사항을 따로 첨부해서건[2] , 독자들이 문제의 해답에 다다를 수 있도록 '공정한 힌트'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작가가 '''준비해놓은 유일무이한 해답'''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중의 '탐정'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작중의 인물인 탐정과 작품 외적의 존재인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메타적인 합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작품속에서 '묘사하지 않은 것들'은 독자에겐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지만, 작품 속 세계의 탐정에게는 작가가 쓰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님에도, 탐정은 작가가 묘사하지 않은 것들을 확인할 길이 없다. 때문에 상술했듯, 탐정은 자신이 손에 넣은 단서가 과연 진상에 이르기 위한 완전무결한 단서인지 확인할 수 없으며, 따라서 최종적으로 이끌어낸 진상 역시 유일무이한 진상인지 탐정 본인은 증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탐정이 작품의 결말에 이르러 늘어놓는 추리가 진범을 밝혀내는 것이라는 말은 소설의 구조적으로 보면 '''탐정의 지목이 범인을 결정 짓는다'''는 의미이며, 이는 작품 외적으로는 정답이지만, 작품 내적으로는 '''탐정이 잘못된 범인을 만들었다'''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제는 실제로 엘러리 퀸 본인에 의해, 초기작인 그리스 관 미스터리에서 이미 '범인에 의해 잘못된 추리를 하게되는 탐정'이라는 주제를 다루기도 했으며, 후기작인 '열흘간의 불가사의'나 '꼬리 많은 고양이'에선 탐정역이 대놓고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후기 퀸 적인 문제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 노리즈키 본인 역시 이같은 문제에 고민한 것 때문인지 90년대에 출간된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에서는 탐정역인 린타로가 자신의 탐정 활동에 회의를 품는 모습이 매우 농도 깊게 그려진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이 같은 문제제기는 이후로 '추리 소설 속 탐정의 존재 의의' 전반으로 확대되어[3] 일본의 많은 본격 추리 소설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소위 본격 추리 소설에 대한 안티테제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는 작품들은 크건 작건 '후기 퀸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제6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과 제11회 본격 미스테리 대상을 동시 수상한 마야 유타카의 '애꾸눈 소녀'라는 소설은 이런 후기 퀸적인 문제가 노골적으로 다뤄지는 작품이다.
다만 니카이도 레이토[4] 같은 경우는 현실에서도 엔자이같이 진상이 뭔지 알 수 없는 사례가 있다며 시답잖은 문제제기라고 비판했다는 듯 하다. 사실 어지간히 본격 추리 소설 매니아가 아닌 이상 재밌으면 장땡인 독자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여길 문제는 아니기도 하고. 또한 본격 추리 소설이 아닌 이른바 사회파나 하드보일드 등의 미스테리물이라면, 스토리가 반드시 유일무이한 해답에 이를 필요도 없고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 게임이란 규칙에 얽매일 필요도 없으니 이 같은 논의는 본격 추리 소설이란 장르에 한정되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