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江戸川乱歩
1894년 10월 21일 ~ 1965년 7월 28일
[image]
간사이에 속하지만 나고야권역이기도 한 일본 미에현 나바리시에서 태어나, 3살 때 아버지의 전직(轉職)으로 나고야에서 자랐다.
이 시절, 일본은 발 빠른 근대화가 진행중이었다. 도시에는 높은 빌딩이 세워지고, 노면 전차가 달리고, 인구가 도시에 집중해 도시화가 이뤄지는 시기로 나고야도 그런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모더니즘이 유행하고 대중 문화가 발달, 활자 인쇄물이 넘쳐나고 신문 소설이 각광을 받던 시대였다. 9살 때 어머니가 신문소설을 읽어주면서 문학에 흥미를 가졌다.
대학생 시절 에드가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과 황금충을 읽고 추리소설 장르에 빠졌다. 셜록 홈즈 인기로 대표되는 영미권과는 달리 일본에는 추리소설을 실어 줄 잡지조차 없었고, 1916년(21살)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추리소설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미국에 갈 돈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해야 했다.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오사카의 무역회사에 취직했지만 1년 만에 퇴직하고, 이후 신문사의 기자, 헌책방 경영, 라멘 포장마차 운영 등 20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TMI지만 소년탐정 시리즈의 괴인 이십면상이 20인 이유도 스무가지 직업을 가졌던 작가의 경험을 반영했다고 한다. 탐정사무소에 취직을 하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면접에서 떨어진 일화도 있다.
1920년에 창간하여 도시에 사는 인텔리 청년층에게 인기가 있었던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잡지 [신청년(新青年)](1920~1950)은 특집으로 해외 추리소설을 번역 소개한 증간호를 발간했다. 27살에 실업 상태였던 히라이 타로는 이것을 읽고 창작 의욕이 되살아났다.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충'을 오마쥬한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본격적인 논리를 중시한 암호풀이 단편 《2전짜리 동전(二銭銅貨)》(1923)을 며칠 만에 써서 잡지에 투고,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때부터 에도가와 란포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후 2년간 단편 28편, 장편 4편을 쓴다. 1925년(치안유지법이 발동) 1월에는 아케치 코고로가 첫 등장하는 단편 <D 언덕의 살인사건>을 선보였다. 이윽고 본격, 엽기, 그로테스크, 괴기, 환상, 서스펜스,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쓰면서, 순문학에 비해 평가받지 못했던 대중 통속 소설 장르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
에로, 그로테스크, 넌센스, 인간의 은밀한 욕망, 살인충동, 변태성욕 등을 다룬 그의 많은 작품이 검열 대상(주로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이 되어 부분 삭제당하고, 토막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범인으로 의심받기도 했고, 집에 잘린 목을 감춰두고 있다느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루머에 시달렸다. 란포는 자괴감에 시달렸고 한때는 절필을 선언하고 일본 전역을 방랑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소년 잡지 편집자가 권해서 쓰게 된 것이 아동 대상으로 쓴 '소년 탐정' 시리즈다. 월간 잡지 [소년 구락부]에 1936년[3] 신년호(1월호)부터 '괴인 이십면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소년 탐정단은 이 연재작 시리즈에서 등장한 어린이 탐정단이다.
그러나 다음해인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탐정소설은 범죄를 조장하는 반체제적인 것으로 문학이 아니라고 규정, 경찰과 내무성에서 몇 번이고 고쳐 쓰라고 명령을 받다가 나중에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일본정부가 간섭하자 잡지편집자는 위축되어 탐정소설의 집필의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소년 탐정 시리즈 역시 맥이 끊기지만 전후 1949년부터 연재를 재개했다. 전후에는 주로 탐정소설의 보급과 작가 발굴 등의 프로듀서 역할의 활동에 힘쓴 에도가와 란포였지만, 소년탐정 시리즈만은 이후 14년간 계속 썼다.
1939년 문고판 도서를 출간하던 중, 1929년에 발표한 단편 「애벌레(芋蟲 이모무시)」[스포일러] 가 문제가 되었다.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주인공이 전쟁 참전 군인이라는 이유로 군부와 우익들에게 반전 혐의로 검열에 걸렸고, 이에 「애벌레」가 삭제되었지만 해당 문고판은 정상적으로 발행되었다. 이 당시에 여관을 운영했는데, 극우선동 깡패들이 와서 여관을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는 1930년대말~태평양 전쟁시기에 걸쳐 일본 내에서 추리문학이 탄압을 받았다고 설명되어 왔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 영국을 악으로 규정하고 영미 문화와 영어 사용을 규제, 영미권에서 탄생한 미스터리 문학도 적대시해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은 모두 절판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30년대에 접어들면서 에도가와 란포는 추리소설 창작보다는 평론과 아동문학 창작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일명 '에로-그로-넌센스'라는 다이쇼 ~ 쇼와 초기(1920년대)의 분위기 속에서 그의 소설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30년대에 접어들면서 연재도중 휴재를 하거나 연재중단을 하는 등 개인적으로 슬럼프에 빠졌으며, 당대 추리소설 문단의 흐름도 변화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주로 평론 활동을 하면서, 소년 탐정단 시리즈와 같은 아동문학 작품 이외에는 더이상 새로운 추리소설을 창작하지 않았으며 과거 발표했던 작품들이 전집이나 선집, 문고판 등으로 출간되었다.(에도가와 란포의 경우는 일본정부에 밉보여 요주의 인물로 찍혀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탄압받았고, 그래서 평론이나 아동용 소설을 쓴 거라 전후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에도가와 란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제작된 실사영화 RAMPO(1994)를 참조. 한편 이 무렵 란포가 환상의 여인을 소개하였으며, 이는 일본에서 꼽는 세계 3대 추리소설이 되기도 했다.)
또한 태평양 전쟁 시기 란포의 저서가 모두 절판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모든 작품이 발매금지가 된 것이 아니라 1931~2년에 출간된 『에도가와 란포 전집(江戸川乱歩全集)』이 1941년 무렵에 절판되었으며 1938~1939년 『에도가와 란포 선집(江戸川乱歩選集)』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고판들이 발간되었기에 구태여 재간을 하지 않았던 것에 가깝다.
당장 1940년만 해도 에도가와 란포의 소년 탐정단 시리즈인 『대금괴(大金塊)』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던 1941~2년에는 모험소설인 『신보물섬(新寶島)』이 연재,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또한 1943~4년에는 '방첩 장편소설'인 『위대한 꿈(偉大なる夢)』[4] 이 무사히 연재되었다. 정상적으로 집필활동을 하고 출간도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추리물만 특별하게 탄압받은 것이 아니며, 문학예술계 전반이 국가의 통제와 탄압을 받았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추리 작가들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방첩물(스파이물)을 창작하였다. 즉, 추리물 자체의 맥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변화해 간 것이다.
전후에는 창작 활동보다는 추리소설의 부흥을 위해 프로듀서의 역할에 힘썼다.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일본탐정작가클럽을[5] 창설하고 잡지를 발간하며 강연과 좌담회를 개최하는 등 추리소설의 발전과 보급에 큰 공헌을 했다.
추리소설 수집가로도 유명해서 그가 살았던 저택에는 따로 큰 창고가 있었고 그 곳에는 약 2만 권의 장서가 있다. 2만 권이 전부 소설책이 아니라 범죄에 관련한 범죄심리학이나 형법에 관한 법률 등의 서적이 있다. 그곳을 직접 찾아가서 취재한 일본 방송을 보면 지금의 현대 도서관 운영 시스템으로 영어 원서는 ABC순으로 정리했고, 누군가에게 빌려준 책은 누구 누구씨에게 대출해줬다는 명패를 그 책이 있던 자리에 꽃아두었다. 에도가와 란포는 거의 병적으로 정리벽(사소한 일까지 기록하고 정리정돈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국 추리소설에도 관심을 가져서 한국추리소설에 관한 평론(内外近事一束 韓国の探偵作家, 1952)을 쓴 적도 있고, 김내성과도 친교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일본 미스터리 계에서 명성으로는 최고 수준에 꼽히는 작가임에도 한국에는 출간되는 작품이 거의 없다. 요코미조 세이시, 마쓰모토 세이초 등은 속속 나오는 와중에 란포는 두드림 출판사에서 나온 단편 전집 3권만 있었고 장편은 거의 출간되지 않았다.[6] 란포 하면 괴기소설쪽이 유명한 만큼 한국에서 미스터리보다 더 안팔리는 호러라고 판단해서 상업성이 없다고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201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중편 <파노라마섬 기담>에 단편 <인간 의자>가 수록되어 정식 출간되었다.
북미에서도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은 거의 소개가 안되었으나 "인간 의자"만은 앤솔로지 등으로 알려졌으며 단편 영화도 만들어졌다. 이토 준지 또한 인간 의자를 바탕으로 단편을 만들기도 했다.
덧붙여 명탐정 코난의 주인공 에도가와 코난의 이름은 코난 도일에서 따왔고, 성은 란포의 필명에서 따온 것으로 유명하다.
사후 50주기를 맞아 후지테레비 노이타미나에서 2015년 7월 란포기담 Game of Laplace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다.
2016년 1월부로 사후 저작권이 끝나면서 아오조라문고나 아마존 등의 인터넷 도서관/서점을 통해 그의 작품을 무료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1955년 그의 환갑을 맞아 탄생한 일본의 추리소설 신인상.[7] 일본 추리작가 협회에서 주최하고 있다. 1000만원의 상금과 셜록홈즈 조각상(~48회)이나 에도가와 란포 조각상(49회~)이 부상으로 주어진다.[8] 수상작은 코단샤에서 출간된다.
28회 수상자인 오카지마 후타리(岡嶋二人)가 "란포상을 수상하고 사라진 작가는 없다"고 발언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이 상을 받은 작가는 이후의 집필 활동에서 코단샤의 적극적인 푸쉬를 받는 관행이 있다. 그런만큼 일본의 대중문학계 신인상 중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상으로 손꼽히며, 응모작 수도 300여명이 넘어갈 정도로 규모가 크다. 심지어 프로도 응모가 가능하다. 이런 경쟁을 뚫고 선정된 작품인만큼 작품의 질도 대체로 높다고 평가받는다.
본격파의 대표격인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이 붙은 것 치고는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이 상은 본격 미스터리를 중시하는 상은 아니다. 모집요강에서도 애초에 '넓은 의미의 미스터리'를 모집한다고 공시하고 있으며, 실제 수상경향을 보면 본격 미스터리는 별로 높은 평가를 못 받는 편이다.[9] 또한 기본기가 탄탄하고 질적으로 좋은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는 반면 지나치게 개성적인 작품은 불리한 편이라고 알려져있다.
3회. 고양이는 알고 있다.[10] 니키 에츠코.[11]
15회. 고층의 사각. 모리무라 세이이치.
26회. 사루마루 환시행.[12] 이자와 모토히코.
29회. 샤라쿠 살인사건. 다카하시 카츠히코.
31회. 방과후. 히가시노 게이고.[13]
38회. 빛바랜 긴 복도. 카와다 야이치로.
39회. 얼굴에 흩날리는 비. 기리노 나쓰오
41회.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43회. 파선의 엘리스. 노자와 히사시.
46회. 뇌남. 슈도 우리오.
47회. 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49회. 저물어 가는 여름.아카이 미히로.[14]
51회. 천사의 나이프. 야쿠마루 가쿠.
53회. 침저어. 소네 케이스케.
55회. 프리즌 트릭. 엔도 타케후미.
56회. 재회. 요코제키 다이.
61회. 도덕의 시간. 오승호
1894년 10월 21일 ~ 1965년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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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미스터리 추리소설계의 거장. 추리소설가이자 평론가로 본명은 히라이 타로(平井太郎). 에도가와 란포라는 필명은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꼽히는 에드거 앨런 포에서 따왔다.[2] 일본 추리소설 장르를 확립하고, 전후 일본 추리소설의 부흥을 이끈 견인차 역할을 했다.'''현세는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1]
2. 생애
간사이에 속하지만 나고야권역이기도 한 일본 미에현 나바리시에서 태어나, 3살 때 아버지의 전직(轉職)으로 나고야에서 자랐다.
이 시절, 일본은 발 빠른 근대화가 진행중이었다. 도시에는 높은 빌딩이 세워지고, 노면 전차가 달리고, 인구가 도시에 집중해 도시화가 이뤄지는 시기로 나고야도 그런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모더니즘이 유행하고 대중 문화가 발달, 활자 인쇄물이 넘쳐나고 신문 소설이 각광을 받던 시대였다. 9살 때 어머니가 신문소설을 읽어주면서 문학에 흥미를 가졌다.
대학생 시절 에드가 앨런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과 황금충을 읽고 추리소설 장르에 빠졌다. 셜록 홈즈 인기로 대표되는 영미권과는 달리 일본에는 추리소설을 실어 줄 잡지조차 없었고, 1916년(21살)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추리소설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미국에 갈 돈이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로 포기해야 했다.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오사카의 무역회사에 취직했지만 1년 만에 퇴직하고, 이후 신문사의 기자, 헌책방 경영, 라멘 포장마차 운영 등 20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TMI지만 소년탐정 시리즈의 괴인 이십면상이 20인 이유도 스무가지 직업을 가졌던 작가의 경험을 반영했다고 한다. 탐정사무소에 취직을 하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면접에서 떨어진 일화도 있다.
1920년에 창간하여 도시에 사는 인텔리 청년층에게 인기가 있었던 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잡지 [신청년(新青年)](1920~1950)은 특집으로 해외 추리소설을 번역 소개한 증간호를 발간했다. 27살에 실업 상태였던 히라이 타로는 이것을 읽고 창작 의욕이 되살아났다.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충'을 오마쥬한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본격적인 논리를 중시한 암호풀이 단편 《2전짜리 동전(二銭銅貨)》(1923)을 며칠 만에 써서 잡지에 투고,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때부터 에도가와 란포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이후 2년간 단편 28편, 장편 4편을 쓴다. 1925년(치안유지법이 발동) 1월에는 아케치 코고로가 첫 등장하는 단편 <D 언덕의 살인사건>을 선보였다. 이윽고 본격, 엽기, 그로테스크, 괴기, 환상, 서스펜스,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쓰면서, 순문학에 비해 평가받지 못했던 대중 통속 소설 장르의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
에로, 그로테스크, 넌센스, 인간의 은밀한 욕망, 살인충동, 변태성욕 등을 다룬 그의 많은 작품이 검열 대상(주로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이 되어 부분 삭제당하고, 토막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범인으로 의심받기도 했고, 집에 잘린 목을 감춰두고 있다느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루머에 시달렸다. 란포는 자괴감에 시달렸고 한때는 절필을 선언하고 일본 전역을 방랑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소년 잡지 편집자가 권해서 쓰게 된 것이 아동 대상으로 쓴 '소년 탐정' 시리즈다. 월간 잡지 [소년 구락부]에 1936년[3] 신년호(1월호)부터 '괴인 이십면상'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했다. 소년 탐정단은 이 연재작 시리즈에서 등장한 어린이 탐정단이다.
그러나 다음해인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탐정소설은 범죄를 조장하는 반체제적인 것으로 문학이 아니라고 규정, 경찰과 내무성에서 몇 번이고 고쳐 쓰라고 명령을 받다가 나중에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일본정부가 간섭하자 잡지편집자는 위축되어 탐정소설의 집필의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소년 탐정 시리즈 역시 맥이 끊기지만 전후 1949년부터 연재를 재개했다. 전후에는 주로 탐정소설의 보급과 작가 발굴 등의 프로듀서 역할의 활동에 힘쓴 에도가와 란포였지만, 소년탐정 시리즈만은 이후 14년간 계속 썼다.
1939년 문고판 도서를 출간하던 중, 1929년에 발표한 단편 「애벌레(芋蟲 이모무시)」[스포일러] 가 문제가 되었다.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주인공이 전쟁 참전 군인이라는 이유로 군부와 우익들에게 반전 혐의로 검열에 걸렸고, 이에 「애벌레」가 삭제되었지만 해당 문고판은 정상적으로 발행되었다. 이 당시에 여관을 운영했는데, 극우선동 깡패들이 와서 여관을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는 1930년대말~태평양 전쟁시기에 걸쳐 일본 내에서 추리문학이 탄압을 받았다고 설명되어 왔다. 당시 일본은 미국과 영국을 악으로 규정하고 영미 문화와 영어 사용을 규제, 영미권에서 탄생한 미스터리 문학도 적대시해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은 모두 절판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30년대에 접어들면서 에도가와 란포는 추리소설 창작보다는 평론과 아동문학 창작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일명 '에로-그로-넌센스'라는 다이쇼 ~ 쇼와 초기(1920년대)의 분위기 속에서 그의 소설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30년대에 접어들면서 연재도중 휴재를 하거나 연재중단을 하는 등 개인적으로 슬럼프에 빠졌으며, 당대 추리소설 문단의 흐름도 변화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주로 평론 활동을 하면서, 소년 탐정단 시리즈와 같은 아동문학 작품 이외에는 더이상 새로운 추리소설을 창작하지 않았으며 과거 발표했던 작품들이 전집이나 선집, 문고판 등으로 출간되었다.(에도가와 란포의 경우는 일본정부에 밉보여 요주의 인물로 찍혀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탄압받았고, 그래서 평론이나 아동용 소설을 쓴 거라 전후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에도가와 란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제작된 실사영화 RAMPO(1994)를 참조. 한편 이 무렵 란포가 환상의 여인을 소개하였으며, 이는 일본에서 꼽는 세계 3대 추리소설이 되기도 했다.)
또한 태평양 전쟁 시기 란포의 저서가 모두 절판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모든 작품이 발매금지가 된 것이 아니라 1931~2년에 출간된 『에도가와 란포 전집(江戸川乱歩全集)』이 1941년 무렵에 절판되었으며 1938~1939년 『에도가와 란포 선집(江戸川乱歩選集)』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고판들이 발간되었기에 구태여 재간을 하지 않았던 것에 가깝다.
당장 1940년만 해도 에도가와 란포의 소년 탐정단 시리즈인 『대금괴(大金塊)』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던 1941~2년에는 모험소설인 『신보물섬(新寶島)』이 연재,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또한 1943~4년에는 '방첩 장편소설'인 『위대한 꿈(偉大なる夢)』[4] 이 무사히 연재되었다. 정상적으로 집필활동을 하고 출간도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시기에는 추리물만 특별하게 탄압받은 것이 아니며, 문학예술계 전반이 국가의 통제와 탄압을 받았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추리 작가들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방첩물(스파이물)을 창작하였다. 즉, 추리물 자체의 맥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변화해 간 것이다.
전후에는 창작 활동보다는 추리소설의 부흥을 위해 프로듀서의 역할에 힘썼다.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일본탐정작가클럽을[5] 창설하고 잡지를 발간하며 강연과 좌담회를 개최하는 등 추리소설의 발전과 보급에 큰 공헌을 했다.
추리소설 수집가로도 유명해서 그가 살았던 저택에는 따로 큰 창고가 있었고 그 곳에는 약 2만 권의 장서가 있다. 2만 권이 전부 소설책이 아니라 범죄에 관련한 범죄심리학이나 형법에 관한 법률 등의 서적이 있다. 그곳을 직접 찾아가서 취재한 일본 방송을 보면 지금의 현대 도서관 운영 시스템으로 영어 원서는 ABC순으로 정리했고, 누군가에게 빌려준 책은 누구 누구씨에게 대출해줬다는 명패를 그 책이 있던 자리에 꽃아두었다. 에도가와 란포는 거의 병적으로 정리벽(사소한 일까지 기록하고 정리정돈하는 버릇)이 있었다.
한국 추리소설에도 관심을 가져서 한국추리소설에 관한 평론(内外近事一束 韓国の探偵作家, 1952)을 쓴 적도 있고, 김내성과도 친교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일본 미스터리 계에서 명성으로는 최고 수준에 꼽히는 작가임에도 한국에는 출간되는 작품이 거의 없다. 요코미조 세이시, 마쓰모토 세이초 등은 속속 나오는 와중에 란포는 두드림 출판사에서 나온 단편 전집 3권만 있었고 장편은 거의 출간되지 않았다.[6] 란포 하면 괴기소설쪽이 유명한 만큼 한국에서 미스터리보다 더 안팔리는 호러라고 판단해서 상업성이 없다고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201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중편 <파노라마섬 기담>에 단편 <인간 의자>가 수록되어 정식 출간되었다.
북미에서도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은 거의 소개가 안되었으나 "인간 의자"만은 앤솔로지 등으로 알려졌으며 단편 영화도 만들어졌다. 이토 준지 또한 인간 의자를 바탕으로 단편을 만들기도 했다.
덧붙여 명탐정 코난의 주인공 에도가와 코난의 이름은 코난 도일에서 따왔고, 성은 란포의 필명에서 따온 것으로 유명하다.
사후 50주기를 맞아 후지테레비 노이타미나에서 2015년 7월 란포기담 Game of Laplace이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었다.
2016년 1월부로 사후 저작권이 끝나면서 아오조라문고나 아마존 등의 인터넷 도서관/서점을 통해 그의 작품을 무료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3. 에도가와 란포상
1955년 그의 환갑을 맞아 탄생한 일본의 추리소설 신인상.[7] 일본 추리작가 협회에서 주최하고 있다. 1000만원의 상금과 셜록홈즈 조각상(~48회)이나 에도가와 란포 조각상(49회~)이 부상으로 주어진다.[8] 수상작은 코단샤에서 출간된다.
28회 수상자인 오카지마 후타리(岡嶋二人)가 "란포상을 수상하고 사라진 작가는 없다"고 발언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이 상을 받은 작가는 이후의 집필 활동에서 코단샤의 적극적인 푸쉬를 받는 관행이 있다. 그런만큼 일본의 대중문학계 신인상 중에서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상으로 손꼽히며, 응모작 수도 300여명이 넘어갈 정도로 규모가 크다. 심지어 프로도 응모가 가능하다. 이런 경쟁을 뚫고 선정된 작품인만큼 작품의 질도 대체로 높다고 평가받는다.
본격파의 대표격인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이 붙은 것 치고는 의외일 수도 있겠지만, 이 상은 본격 미스터리를 중시하는 상은 아니다. 모집요강에서도 애초에 '넓은 의미의 미스터리'를 모집한다고 공시하고 있으며, 실제 수상경향을 보면 본격 미스터리는 별로 높은 평가를 못 받는 편이다.[9] 또한 기본기가 탄탄하고 질적으로 좋은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는 반면 지나치게 개성적인 작품은 불리한 편이라고 알려져있다.
3.1. 국내에 소개된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3회. 고양이는 알고 있다.[10] 니키 에츠코.[11]
15회. 고층의 사각. 모리무라 세이이치.
26회. 사루마루 환시행.[12] 이자와 모토히코.
29회. 샤라쿠 살인사건. 다카하시 카츠히코.
31회. 방과후. 히가시노 게이고.[13]
38회. 빛바랜 긴 복도. 카와다 야이치로.
39회. 얼굴에 흩날리는 비. 기리노 나쓰오
41회.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43회. 파선의 엘리스. 노자와 히사시.
46회. 뇌남. 슈도 우리오.
47회. 13계단. 다카노 가즈아키.
49회. 저물어 가는 여름.아카이 미히로.[14]
51회. 천사의 나이프. 야쿠마루 가쿠.
53회. 침저어. 소네 케이스케.
55회. 프리즌 트릭. 엔도 타케후미.
56회. 재회. 요코제키 다이.
61회. 도덕의 시간. 오승호
4. 관련 문서
- 소년 탐정단
- 아케치 코고로
- 괴인 이십면상
- 공포 기형인간
- RAMPO (새턴판 게임)
- 란포 기담
- 란포R
- 문호 스트레이 독스 - 에도가와 란포(문호 스트레이 독스)
- 문호와 알케미스트 - 에도가와 란포(문호와 알케미스트)
- TRICKSTER -에도가와 란포 「소년 탐정단」에서-
- 유령탑 # - [15]
- 그때 역사가 움직였다 - 일본 미스터리의 탄생 에도가와 란포 대중문화와의 격투(その時歴史が動いた 「日本ミステリー誕生 江戸川乱歩 大衆文化との格闘」) (2007年)#유튜브 영상
- [16]
[1] うつし世はゆめ よるの夢こそまこと. 팬에게 사인을 부탁받으면 반드시 이 문구를 써 주었다고 한다. 가끔 바리에이션도 있으나 같은 내용이라 한다. 풀이하자면, 우리는 현세에서는 남의 눈을 의식해서 가장된 언동을 하지만, 자면서 꾸는 꿈처럼 무의식의 세계의 온갖 욕망, 설령 그것이 그의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파괴적 본능, 변태성욕일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진짜 본모습이라는 뜻이다.[2] 일례로, <일본탐정소설전집2>의 <지붕 속 산책자>를 보면 주인공 고다 사부로가 사들인 서적 중에는 에드거 앨런 포의 서적이 있었다. 그 외에 호프만, 가보리오나 부아고베 등의 서적도 같이 섞여있었다.[3] 2.26 사건 발생, 본격적인 군부 통제 체제로 돌입[스포일러] 잡지 발표시 원제는 '악몽'. 전쟁에서 부상을 입어 사지가 잘린 채로 귀향한 정신이 피폐해진 전 육군 중위 주인공과 그로 인해 갈등하는 아내(주인공의 두 눈알을 손가락으로 눌러 터트려 실명시킨다)와 주변 인물의 심리를 그린 이야기.[4] 초장거리 폭격기를 개발하던 박사가 스파이에 의해 암살되고, 이에 이를 수사하는 헌병대장이 그 스파이를 추리하는 내용임.[5] 오늘날 일본추리작가협회.[6] 동서출판사에서 나온 외딴섬 악마는 해적판. 2016년 2월, 검은숲의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에 단편 세 개와 함께 장편소설 <거미남>이 수록, 출간되었다. 한국에 최초로 정식 출간된 란포의 장편소설이다.[7] 장편 신인상을 모집하기 시작한 것은 3회부터고, 앞서 1, 2회는 공로상같은 느낌이었다.[8] 에도가와 란포가 의자에 앉아있는 형상의 조각상이다[9] 주최측이 동일한 일본추리작가협회상도 마찬가지.[10] 이 소설은 수상 당시 상당한 주목을 받았는데, 작가 니키 에츠코가 에도가와 란포상 제정 이후 최초의 여성 수상자라는 점과 어릴 때 앓은 척추 카리에스 후유증으로 거동이 어려워져 정규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각종 지식을 습득했다는 점이 큰 화제가 되었다.[11] 본명은 오오이 미에코로 추리소설 외에 동화작가로도 활동했으며, 동화를 발표할 때는 본명으로, 추리소설 발표시에는 필명인 니키 에츠코 명의를 사용했다. 또한 이 소설의 주인공 남매 중 동생의 이름이 작가의 필명과 같다. 오빠의 이름은 니키 유타로.[12] 정식 발행은 안했지만 후보로 경합했던 다른 작품 때문에 알려졌다. 바로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흠좀무[13] 모리 야마히로의 《모차르트는 자장가를 부르지 않는다》와 공동수상[14] 시라누이 교스케의 《매치 메이크》와 공동수상[15]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에 영향을 주었다.[16] 이름의 모티브가 에도가와 란포+아서 코난 도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