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오카 토모히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No.76
니오카 토모히로 (二岡智宏)
'''생년월일'''
1976년 4월 29일
'''신장'''
180cm
'''몸무게'''
81kg
'''국적'''
일본
'''출신지'''
히로시마현 미요시시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8년 드래프트 2위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9~2008)
닛폰햄 파이터즈 (2009~2013)
'''지도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16)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17~2018)
토야마 GRN 썬더버즈 감독 (2019)
요미우리 자이언츠 3군 종합코치 (2020)
요미우리 자이언츠 3군 감독(2020~)

1. 개요


'''한 때 요미우리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나 본인의 과오로 이미지도 커리어도 작살내버린 선수'''
일본의 전 야구선수, 포지션은 유격수로, 은퇴 이후 요미우리 코치와 베이스볼 챌린지 리그 토야마 GRN 썬더버즈 감독을 거쳐 현재는 요미우리 3군 감독직을 맡고 있다.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히로시마의 명문고교인 고료고교에서 활약했으나 1993년 현내 추계대회 도중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는 아픔을 겪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니오카는 프로입단 후에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위해 자선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 후 긴키대학에서의 활약을 토대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2라운더로 지명받으며 프로에 입단했다. 정확히는 역지명제도[1]를 통해 입단했는데, 그 과정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2]

2.2. 요미우리 시절


입단하자마자 카와이 마사히로를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를 차지했으나 신인왕은 입단동기 우에하라 고지가 차지했다. 2000년에는 소속팀의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끝내기 홈런을 날리는 등 팀의 주축으로 확실히 자기매김하는데 성공했고, 이후로도 사카모토 하야토가 등장하기 전까지 팀과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형 유격수로 활약했다.[3][4]
한참 잘 나가던 중 2008년에는 시즌 초부터 부상을 당하면서 한 시즌을 날리다시피 하는데, 재활하던 도중 '''사고를 치고 말았다.''' 동갑내기 아나운서 야마모토 모나와 불륜소동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후배 선수인 야노 켄지[5][6]를 술집으로 불러놓고는 바지를 벗기고 라이터로 음모털을 태우며 야노가 고통스러워하자 킥킥대며 가혹행위한 사실까지 까발려진 것. 결국 니오카는 삭발을 하고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아무튼 니오카는 스캔들로 인해 본인의 모범적인 이미지를 스스로 박살내버렸다. 일본 네티즌들에게도 두고두고 놀림을 당했는데 인터넷 게시판과 심지어는 경기장내에서 니오카가 나오기만 하면 '''"모나오카!!!"''' 라는 멸칭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시즌 후 닛폰햄으로 문책성 트레이드를 당하며 요미우리에서의 생활을 불명예스럽게 마쳤다.

2.3. 닛폰햄 시절


퇴물로 전략한 니오카는 그 이후로 풀타임 출전도, 두자릿수 홈런도 하지 못했다. 수비력도 퇴화하면서 주로 지명타자로 나왔다. 다만 요미우리에서의 말년보다는 나은 행실로 인기를 어느정도 회복했고, 팬 투표로 올스타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전성기와 비교했을때 추해지고 초라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백업, 땜빵 주전, 대타전문으로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으며 특히 득점권에 강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2012년 일본시리즈에도 출장하기도 했다.
2013년 시즌 후 팀에서 방출되었고, 현역 연장을 노렸지만 끝내 새로운 소속팀을 찾지 못하고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코치로 요미우리에 복귀했고 2019년부터는 독립리그팀 감독으로 활동했으나 1년 뒤 요미우리 코치로 돌아왔다. 3군 종합코치로 활동하다가 3군 감독 이노우에가 팜 디렉터로 영전하면서 3군 감독으로 승진했다.

3. 플레이 스타일


밀어치기에 능한 우타자로 우중간을 넘기는 홈런을 자주 기록했다. 다만 홈런 비거리가 짧아 비아냥을 듣기도 했는데, 실제로 도쿄돔이 홈런친화구장임을 감안하면 구장빨을 탄 선수임을 부정하긴 힘들 듯하다.
그래도 적당한 펀치력에 느리지 않은 발, 강한 어깨를 갖춘 준수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수비력은 공격력에 비하면 아쉽지만 그런대로 쓸만한 수준. 어찌보면 후임 유격수인 사카모토 하야토의 하위호환에 가까운 선수.[7]
문제는 유리몸. 2008년 장기결장 이외에도 매년 잔부상을 당하면서 규정타석을 아슬아슬하게 채우는 경우가 잦았다. 몸 자체가 뻣뻣한 느낌.

4. 여담


인기 구단의 스타급 유격수이기도 했고, 외모가 꽤나 곱상했던 덕에 여성팬이 상당히 많았다. 때문에 스캔들이 터졌을 때 팬들의 실망감이 더 컸던 것일지도.
팬서비스는 생각보다 별로였다고 한다. 남성팬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이었던 모양이다.https://sports.v.daum.net/v/20060412160406207
[1] 자신이 원하는 팀을 선택하여 입단할 수 있는 제도[2] 본래 니오카는 고향팀인 히로시마 카프의 지명이 유력했었는데 스스로가 요미우리로 희망구단을 급선회, 고향인 히로시마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음은 물론 오해로 인한 잡음까지 생겼다. [3] 2006년에는 일본최초,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연타석 만루홈런을 기록했다.[4] 다만 동시기에 활약했던 세리그 유격수들이 워낙 쟁쟁했기에, 니오카는 스타성은 뛰어났을지언정 활약상이 압도적인 편은 아니었다. 그와 활동시기가 겹치는 세리그 유격수만 해도 미야모토 신야, 토리타니 타카시, 이시이 타쿠로, 소요기 에이신, 이바타 히로카즈 등이 있었으니... [5] 이승엽 한일통산 400호 홈런당시 1번타자로 출전하여 3루에 출루중이었고 니오카는 3번타자로 나와서 이가와 게이한테 삼진쳐먹었다. 5번타자는 전직 요미우리감독인 다카하시 요시노부이고 선발투수는 다카하시와 동갑내기이자 생일빵동지인 우에하라 고지.[6] 프로 초창기엔 좀 주전으로 나오다가 타격 부족 등으로 커리어 내내 백업 외야수로 나오던 선수. 2018년을 끝으로 은퇴하여 현재는 닛폰햄의 외야수비, 타격보조코치. 공교롭게도 니오카가 트레이드되고 몇년 후 야노도 닛폰햄으로 트레이드되었다. 다만 그때 이미 니오카는 은퇴한 상황.(2015년 6월 트레이드.)[7] 다만 사카모토는 니오카와는 반대로 당겨치기가 특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