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하라 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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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복귀식에서의 모습(2018년 3월)
우에하라 고지 (上原浩治)
생년월일
1975년 4월 3일 (49세)
국적
일본
출신지
오사카부 네야카와 시
출신학교
도카이대학 부속 교세이 고교 (오사카) - 오사카 체육대학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체격
187cm 87kg[1]
프로입단
1998년 드래프트 1라운드(요미우리)
2009년 자유계약 입단(BAL)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1999~2008)'''
볼티모어 오리올스(2009~2011)
텍사스 레인저스(2011~2012)
''' 보스턴 레드삭스(2013~2016)'''
시카고 컵스(2017)
요미우리 자이언츠(2018~2019)
수상
(MLB)
'''All-Star (2014)
ALCS MVP (2013)'''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013'''
'''WBC 우승 반지'''
'''2006'''
'''1999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신인왕'''
카와카미 겐신
(주니치 드래곤즈)

'''우에하라 고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킨죠 타츠히코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99년 일본프로야구 사와무라상'''
가와사키 겐지로
(야쿠르트 스왈로즈)

'''우에하라 고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없음
'''2002년 일본프로야구 사와무라상'''
마쓰자카 다이스케
(세이부 라이온즈)

'''우에하라 고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가와 게이
(한신 타이거스)
사이토 가즈미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2013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델몬 영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우에하라 고지
(보스턴 레드삭스)'''

로렌조 케인
(캔자스시티 로열스)
1. 개요
2. 경력
2.1. 프로 데뷔 전
2.2. 요미우리 자이언츠
2.3. 메이저리그 진출
2.3.1. 보스턴 레드삭스
2.3.2. 시카고 컵스
2.4. 다시 요미우리로
2.5. 은퇴
3. 플레이 스타일
4. 연도별 성적
5. 기타


1. 개요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이자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다가 2009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구원투수로 정상급 활약을 선보였다. 그리고 2018년에 친정팀인 요미우리로 돌아와 2시즌을 뛴 후 은퇴했다.
국제대회에서도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으며[2], 한국 타선에 악몽을 선사한 스플리터 낚시꾼으로도 알려져 있다.

2. 경력



2.1. 프로 데뷔 전


오사카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까지 육상을 하다가 뒤늦게 야구를 시작했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외야수에서 투수로 전업했다. 이 때문에 특기자 전형에 실패해 1년 재수를 한 뒤 오사카 체육대학에 들어가 대학에서 숨겨진 기량을 뽐냈다. 국제대회에서도 에이스 역할을 하며 1997년 스페인에서 열린 인터컨티넨탈컵 결승에서 아마야구 최강이었던 쿠바를 상대로 5⅓이닝 1실점 투구로 승리했었고 이 덕에 대학 최대어로 주목을 받았다. 물론 당시 스포트라이트는 1998년 갑자원을 장악한 괴물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와 3년 동안 실업야구를 방황하다 역지명 연차를 채운 후쿠도메 고스케에게 쏠려 있었지만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꾸준히 우에하라를 원하였다. 하지만 당시 우에하라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목표로 삼았고, 실제로 300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제시한 애너하임 에인절스와의 계약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에하라를 어떻게든 잡고자 했던 요미우리는 요미우리의 팬이었던 우에하라의 부친을 설득했고[3], 여기에 '일단 일본에서 검증받은 후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해도 늦지 않다' 는 지인들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돌린 우에하라는 결국 요미우리행을 선택했다.[4] 다만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입단한 팀이기도 하고, 입단 당시부터 최종 목표를 메이저리그로 설정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후에도 요미우리 구단과는 복잡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2.2. 요미우리 자이언츠


어쨌든 요미우리에 입단한 우에하라는 데뷔 첫해 1999년부터 25경기 197⅔이닝 179탈삼진, WHIP 0.895, 12완투 1완봉을 포함해 '''20승 4패 평균자책점 2.09'''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며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경이적인 활약을 선보였다. 타이틀은 다승, 승률, 탈삼진, 평균자책점 1위로 4관왕. 신인이 데뷔 첫해 20승을 올린 사례는 현 시점까지도 한미일 프로야구를 다 털어 우에하라 이후 단 한 명도 없다. 당연히 1999년 신인왕, 센트럴리그 최우수투수상, 베스트 나인, 골든 글러브, 사와무라상 등 투수로서 받을 수 있는 상은 거의 다 싹쓸이했다. 아무리 잘했어도 허우대 투수들이 당시 많아서 당해년도 리그 우승은 주니치가 했다.[5][6]
첫 해 루키 시즌이 워낙 압도적이라 이를 능가하는 시즌을 만들 수 있을까 우려가 높았고, 역시나 우려대로 이후 루키 시즌만큼의 압도적인 포스를 뽐낸 적은 한 해도 없다. 2000년에는 전해 너무 달린 나머지 오른쪽 허벅지 근육 파열로 후반기를 날리며 9승밖에 거두지 못했고 2001년에는 10승에 4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더 하락세였지만 2002~04 3년동안 17,16,13승 승률 7할에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안정되게 쌓아주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7]

또한 2002년 11월 9일 미일 올스타전에서 풀도핑 상태였던 배리 본즈를 상대로 3연타석 삼진을 먹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8]
팀이 혼란기였던 05~06 두 시즌에는 8승, 9승에 머물렀지만 꾸준히 3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어주며 팀 선발진의 기둥역할을 했다. 2006년 WBC에서 나와 한국 선수들을 울렸으며, 해외에서도 다시 한번 우에하라의 입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2007년에는 시즌 개막 전에 부상을 당하면서 선발 투수 역할에 차질이 생기자 끝내 임시 마무리 투수로 전업했지만, 4승 3패 32세이브 1.74의 평균자책점으로 특급 마무리 급의 성적을 거뒀다. 2008년 4월 4일에 FA 자격을 충족하게 되었고, 시즌이 끝나면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즌 초 슬럼프를 겪으며 2군에 내려가는 고난을 겪기도 했지만 후반기에 어느 정도 부활하며 6승 5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3.81의 비교적 평범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일본시리즈 우승을 한 뒤에 미국으로 떠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으나, 요미우리는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시리즈에서 7차전까지[9] 가는 접전 끝에 시리즈 4:3 역전패하면서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우에하라는 정식으로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했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계약을 맺었다. 등번호는 요미우리 시절과 마찬가지로 19번을 택했다. 끝끝내 요미우리는 우에하라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10]

2.3. 메이저리그 진출


우에하라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다른 투수와는 달랐다. 알려진대로 원래 메이저리그를 꿈꾸던 선수였지만 10년이 지난 30대 중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진출한데다 그 전시즌 당한 부상경력 때문에 당시 전망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았다.
이적 첫해인 2009년 시즌 초만 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5선발로 나와서 첫 두경기 승리뒤 두달동안 단 1승도 추가하지 못하며 6월달에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을 당하면서 사실상 선발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우에하라는 불펜투수로 강등된 뒤에야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데, 2010년부터 완전히 불펜투수로 전향해서 5월달부터 셋업맨으로 나온 우에하라는 8월부터 마무리로 정착해 13세이브 2블론에 평균자책점 2.86이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시즌 후반 마무리 투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2011년에는 케빈 그렉 앞의 셋업맨으로 돌아가 13홀드에 1.7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8회 셋업역할을 수행하던 도중, 월드시리즈 진출을 노리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불펜 강화 목적으로 텍사스의 유망주 토미 헌터, 크리스 데이비스와 2:1 트레이드 되어 텍사스로 이적한다. 그러나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하고 나서는 17이닝동안 홈런을 5방이나 맞는 구위가 문제가 되어 4.00의 만족스럽지 못한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입지가 축소되어 6~7회에 나오거나 패전처리를 맡는 등 텍사스에서는 볼티모어 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12시즌 역시 텍사스에서 뛰며 6~7회 셋업맨 역할을 하였고 다소 실망스러웠던 지난해와는 달리 부상으로 많은 기간을 결장했음을 감안하더라도 1점대 ERA와 10개가 넘는 9이닝당 탈삼진 비율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2.3.1. 보스턴 레드삭스


2013시즌을 앞두고 425만불을 받는 조건으로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다. 팀의 같은 일본인 투수인 타자와 준이치와 함께 불펜의 기둥을 이루며, 기존 마무리 투수였던 앤드류 베일리의 부진과 시즌아웃이 겹쳐 '''38세의 나이에 특급 클로저로 각성했다.''' 특유의 칼제구[11]를 앞세워 시즌 후반 37타자 연속 범타 기록등 그야말로 특급 클로저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고 9월 20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홈경기에서 8회 1사 이후 등판, 1 2/3이닝을 2K 퍼펙트로 틀어막고 메이저리그 데뷔 처음으로 한시즌 20세이브 달성과 동시에 팀의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확정지었다.
정규 시즌 최종 73경기 74.1이닝 4승 1패 13홀드 21세이브(총 24번 세이브 기회) '''ERA 1.09 101삼진'''을 기록했다. bWar은 3.6. war에 손해를 보는 불펜 투수 치고는 특급이다. 다만 시즌 중반부터 마무리로 투입되었기 때문에 세이브 숫자 누적이 적다는게 아쉬운 점이다. 만약 이시즌을 풀타임 마무리로 뛰었다 40세이브이상도 가능했을것이라는게 중론이다.[12]
10월 7일 보스턴과 템파베이의 디비전 시리즈 3차전 5:5 동점상황 9회말에 올라오지만 끝내기 홈런을 내주며 3차전 패전투수가 되고 만다. 하지만 10월 8일 디비전 시리즈 4차전 8회 2사부터 등판해 9회까지 깔끔하게 막고 보스턴을 챔피언십 시리즈로 올려놓았다. 10월 17일 보스턴과 디트로이트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5게임에 등판하여 6이닝 9삼진 무실점 3세이브로 '''아시아 선수 최초로 ALCS MVP'''를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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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월드 시리즈 4차전에서 세이브를 올리며 '''아시아 선수 최초 월드 시리즈 세이브'''를 기록했다. 5차전에서도 등판하여 이틀 연속 세이브를 기록했고 레드삭스가 시리즈 전적 3:2, 스코어 6:1로 앞서있던 6차전 9회초에 등판,[13]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레드삭스의 95년만의 홈 우승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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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리즈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고나서'''
참고로 이 시리즈는 3차전에서 끝내기 주루방해, 4차전에서 끝내기 픽오프가 나오는 등 참 다이나믹한 시리즈였는데 그때 투수가 모두 우에하라였다. 거기다 마쓰이 히데키를 이은 2번째 일본인 월드시리즈 MVP가 될뻔했지만 데이비드 오티즈가 무시무시한 활약 을 보여주어 아쉽게 월드시리즈 MVP는 수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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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리즈 우승트로피를 드는 우에하라와 타자와 준이치. 어디서 본거 같은 느낌이 든다.[14]
무엇보다 경악할점은 ALDS, ALCS, 월드시리즈까지 포스트 시즌동안 볼넷을 하나도 허용하지 않은것은 물론이고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로 단 1볼넷만을 허용할 정도로 미친 제구력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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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의 반과 포스트시즌 동안 무려 1볼넷만을 허용한 우에하라'''
시즌후 백안관 투어때는 오바마에게 믿을수 없는 투구였다고 극찬을 받기도 하였고 실제 정규시즌부터 포스트시즌까지의 활약을 전부 고려했을때 선발 불펜 분업화 이후 불펜투수로 '''메이저리그 역대급에 들어갈만한 활약'''을 한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시즌까지 합친 전체 시즌 성적으로는 87.3이닝, 평균자책 1.03, 117삼진을 기록했다.
또한 불펜 투수라는 한계에도 불과하고 사이영 상, MVP 투표에서도 무려 '''사이영 상 7위, MVP 19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당장 불펜 투수 거기다 시즌 중반부터 겨우 마무리로 투입되어 클래식 누적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런 성적을 기록했다는 것을 보면 정말 놀라운 시즌이 아닐 수 없다.
2014년에도 초반에는 작년의 모습을 이어가는가 싶었지만 시즌이 지나면서 나이가 속일 수 없는지 점점 페이스가 떨어졌다. 다만 올스타로 뽑혀 올스타전에도 출전하여 쉽게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마쳤다. 2014시즌 성적은 6승 5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52. 시즌이 끝나고 보스턴과 2년 1,800만달러에 재계약을 맺었다.
'''40살이 된 2015년'''에도 안정적인 마무리로 활약하고 있었으나, 8월 8일 열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이안 킨슬러가 친 강습타구에 손목을 맞았고, 골절 진단을 받으면서 시즌 아웃되었다. 시즌 성적은 2승 4패 25세이브 평균자책점 2.23.
시즌 후 보스턴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1:4 트레이드로 크레이그 킴브럴을 영입하면서 2016시즌은 마무리가 아닌 셋업맨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트레이드 발표를 앞두고 존 패럴 감독이 우에하라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고 하는데, 우에하라 본인은 이에 대해 흔쾌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2016시즌 초반에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중반 들어 다소 부침을 보이며 평균자책점이 4점대까지 올라가기도 했고, 부상 때문에 한 달 넘게 결장하는 등 레드삭스에 온 뒤 가장 어려운 시즌을 보냈다. 그래도 부상에서 돌아온 후에 등판한 11경기를 전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팀의 지구 우승에 기여했다. 시즌 성적은 2승 3패 7세이브 18홀드 평균자책점 3.40.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두 번 등판해 전부 무실점으로 막았으나 팀은 3연패로 허무하게 광탈했다.
시즌 후 레드삭스와의 계약이 만료되는데, 우에하라 자신은 불러주는 팀만 있다면 메이저리그에서 계속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뒤 시카고 컵스와 1년 60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카고 컵스로 이적하게되었다.

2.3.2. 시카고 컵스


2017년 4월 22일까지 8경기 1패 2.70 ERA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후반기에는 무릎 부상의 여파로 인해 성적이 떨어졌고, 최종적으론 49경기 3승4패 2세이브 14홀드 ERA 3.98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후 컵스와 단년 계약이 끝나면서 FA로 풀렸다. 본인은 일본 복귀는 물론 마이너 계약도 수락할 생각이 없으며 메이저 계약 오퍼가 없을경우 은퇴하겠단 결의를 다지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역대급 얼어버린 FA 시장에 2018년 3월이 되어서도 팀을 구하지 못했고, 자신도 현역으로 뛰기 위해 일본 복귀도 다시 생각해보고 있댜는 기사가 나왔다.

2.4. 다시 요미우리로


그리고 2018년 3월 9일 일본 복귀를 결정, # 10년 만에 친정팀 요미우리로 돌아왔다. 과거 팀메이트이자 생년월일까지 같은 동갑내기 친구 타카하시 요시노부와는 선수-감독 관계로 재회하게 되었다. 기존의 등번호 19번은 후배 에이스 스가노 도모유키가 달고 있어 우에하라는 11번을 달게 되었다.
첫 등판인 3월 31일 한신전에서 1이닝 11구 1탈삼진 무실점으로 홀드를 챙기면서 4월 초까지는 무실점으로 계속 홀드를 챙기면서 4연속 홀드를 기록했다.
그러나 4월 10일 DeNA전 접전 상황에서 아웃 카운트를 1개밖에 못 잡고 3피안타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5일 휴식 뒤 15일 히로시마 전에서도 접전 상황에서 2/3이닝동안 피홈런 1개 사구 1개 피안타 3개 3실점으로 다시 패전투수, 2시합 연속으로 접전 상황에서 불을 지르면서 전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5월부턴 조금씩 안정을 되찾은듯 방어율을 조금씩 내렸으나 피안타 및 피홈런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다.
복귀 후 과거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팬들이 많겠지만 흐르는 세월 앞에선 천하의 우에하라도 어쩔수 없는 모양...
9월 25일 왼무릎 수술을 받아 팀동료들보다 먼저 시즌아웃되었고 시즌 후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되어 FA 자격을 취득했으나 나이가 40이 넘은 베테랑을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영입하려는 구단이 없어 사실상 은퇴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선수 본인은 현역 연장 의지가 강했고 결국 요미우리와 75% 삭감된 금액인 1년 5000만엔에 재계약을 맺었다. 등번호도 스가노 토모유키가 공식 '에이스 번호'인 18번을 달면서 2008시즌 이후 11년만에 19번을 되찾았다.
하지만 수술로 인한 재활로 인해 2019시즌 히로시마와의 원정개막전[15] 출장은 불발되었고 4월중 복귀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2.5. 은퇴


그러나 1군에 한번도 올라오지 못했고 2019년 5월 20일 은퇴를 발표했다. 시즌 중 이례적인 발표.
'더이상 직구가 통하지 않는다' 가 이유라고 한다. 이날까지 2군경기 9경기 등판 11피안타 4실점 3.60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나쁜 성적은 아니지만 2군을 압도했다고 할 만한 수준도 아닌 성적.
스포츠호치와의 인터뷰에서 "1군에서 통할 만한 선수는 2군을 확실히 압도하는데, 2군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내가 통할 리가 없다", "2군에서 내가 1이닝 이상 던지면 그만큼 젊은 투수는 던질 기회가 줄어든다. 때가 됐다 싶으면 미련없이 떠나는 게 후배들과 팀을 위하는 길이다" 등등의 말을 남겼다. 구단에서는 일단 시즌을 완주할 것을 권했지만 본인이 거절하였다고 하며 결국 구단도 본인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이렇게 레전드가 또 한명 마운드를 떠나게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요미우리 입단 후 초창기에는 평균 140km 초반, 최고 152km/h의 패스트볼과 스플리터를 주무기로 구사하는 선수로 구위는 99년 데뷔 시즌을 정점으로 떨어졌었는데, 13시즌 종료 후에는 '2013시즌이 직구에 있어서 만큼은 15년 중 가장 좋았다'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2013년 정점을 찍은 이래 구속은 계속 감소하여 메이저 마지막 시즌이던 2017년에는 평속 87마일(약 139km/h), 최고구속 90마일(144km/h)이 나왔다. 메이저 기준에서 좌완이어도 느린 구속 소리를 듣는데 하물며 우에하라는 우완이어서 더욱 느린편이다. 그럼에도 메이저리그에서 통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본인은 '메이저리그에서는 무빙 패스트볼이 유행하는데 타자들이 그런 무빙이 없는 자신의 공에 적응을 못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견을 나타낸 적이 있다.
하지만 이건 우에하라 본인은 공을 던지는 입장이기 때문에 몰라서 하는 말이고,[16] 실제로 우에하라의 패스트볼은 '''압도적인 무브먼트'''를 바탕으로 상대 타자를 제압하는 쩔어주는 무빙 패스트볼이다. 우에하라가 '구속이 느린 내 공이 통하는 이유는 무브먼트가 없어서 타자들이 적응을 못 하는 게 아닐까?' 라고 말하는 것은 이병헌이 '키 작은 내가 인기 많은 이유는 얼굴이 평범해서 다른 배우들과 차별화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특히 우에하라의 포심은 '''수직 무브먼트'''에서 압도적이다. 야구의 구질 항목에 나와 있지만 수직 무브먼트가 평균치보다 좋은 포심은 같은 속도의 포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떨어짐으로써 타자들이 '공이 떠오른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포물선 운동을 하는 물체가 직선에 가깝게 움직일 수록 인간의 두뇌는 그 물체가 빠르다고 해석하는 것. 그리고 우에하라의 88마일 똥볼은 팬그래프 측정에 의하면 클로저 중에서 2위에 해당하는 수직 무브먼트를 갖추고 있으며, 수직 무브먼트 만으로는 클레이튼 커쇼에 필적할 정도다. 이를 증명하듯 MLB 커리어 동안 우에하라의 포심 수직 무브먼트는 10인치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거기에 그렇다고 수평 무브먼트가 안좋은것도 아니라서 투심성 횡무브먼트도 있다. 우타자 몸쪽으로, 좌타자 바깥쪽으로 공이 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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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인 무브먼트에서 유추할 수 있듯 회전수도 엄청난데, 2500에 육박하는 RPM으로 포심 패스트볼 부문 메이저리그 탑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즉 그의 패스트볼은 구속에 비해 원래 공이 들어와야 할 위치보다 덜 떨어져서 상대적으로 높게 들어오고 마지막에 공이 휘기에 정타를 맞추기도 힘들다. 88마일 공이 실제로는 90마일 초반대로 느껴지게 되고 배트가 빨리 나와서 파울이나 플라이 볼을 양산할 뿐이다. 본인 말마따나 공이 무브먼트가 없고 깔끔한 작대기가 절대 아닌 메이저리그 최상급 무빙 패스트볼이다.
결정구인 스플리터 역시 엄청난 강점이다. 낙폭이 클 뿐만 아니라 피치 터널도 길며[17] 구속이 다른 투수들의 스플리터와 달리 패스트볼 구속과 꽤 차이가 나는 편인데[18] 오히려 그 점이 체인지업처럼 작용해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다.
이렇게 우에하라는 뛰어난 위력의 패스트볼과 스플리터를 앞세워 구속은 느리지만 투피치 파워 투수로 활약한다. 간혹 우에하라를 제구파 투수로 분류하는 경향이 있는데, 물론 우에하라의 제구력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공의 제구에 크게 신경을 쓰는 타입은 아니다. 당장 그의 투구 분포도를 나타내는 핫 존을 보면 스트라이크 존 한복판을 중심으로 고르게 퍼져있는데, 클레이튼 커쇼, 맷 하비, 켄리 잰슨의 핫 존 등 공을 존 한복판에 꽂아넣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강속구 투수들의 핫 존과 유사한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제구에 신경을 쓰는 투수들의 핫 존은 분포가 명백히 이질적이다. 마리아노 리베라의 핫 존이나 로이 할러데이의 핫 존, 류현진의 핫 존을 보면 그 차이점이 명확히 보인다.[19]
우에하라처럼 구속이 느리지만 스타일은 제구파인 다른 불펜 투수들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명확하다. J.P. 하웰의 핫 존이나 파코 로드리게즈의 핫 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여타 제구파 불펜투수들은 존의 아래쪽, 타자의 바깥쪽으로 공을 뿌리며 정면승부를 피하는 반면 우에하라는 그런 거 없다. 한 마디로 우에하라는 '구위'를 '구속'으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무브먼트'로 끌어올리는 강속구 투수에 가깝다. 공은 존 한가운데로 던지면서 '칠 수 있으면 쳐 봐' 라며 승부를 걸고 설령 맞는다 해도 '뭐 그런 날도 있는 거지' 하고 잊어버리고 다음날 또 다시 '칠 수 있으면 쳐 봐' 라고 승부하는 스타일.
거기에 본인의 배짱 역시 대단하고 이에 기반한 빠른 투구 리듬으로 단순한 투피치임에도 타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않고 몰아붙인다.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 Pace, 투구와 투구 사이에 걸리는 시간은 22.6 초이며 불펜 투수들로만 한정할 경우 23.7 초까지 올라가는데,[20] 우에하라는 20.7 초 라는 시간을 보여준다. 여기에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스트라이크 존 한복판을 두려움없이 공략하며 볼카운트 싸움에서 타자를 공격적으로 밀어붙이고 빠른 승부를 하기 때문에 한국 타자들처럼 타석에서 볼을 기다리고 변화구 공략에 취약한 타자들은 어 하는 사이 3~4구 이내에 멀삼 내지는 땅볼로 돌려보낸다. 이때문에 국제대회에서 대표적인 한국 킬러 투수로 유명하다. 특히 1회 WBC 4강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한국 타자들을 관광태우며 한국 킬러로 자리잡아서 베이징 올림픽 예선 한일전에서 4:3으로 앞선 9회말 마무리로 등판해 세이브를 따냈다.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는 마무리로 확정되었지만 준결승인 한일전때는 앞 투수 이와세 히토키의 불쇼로 등판이 무산되었다.
이렇듯 뛰어난 무브먼트의 패스트볼, 승부를 망설이지 않는 배짱, 그리고 빠른 승부에 포심을 뒷받침해주는 스플리터가 더해져 우에하라가 무시무시한 클로저로 자리잡은 것이다. 때문에 구속도 느리고 투피치로 승부하는 투수지만 빠른 투구 템포와 쩔어주는 패스트볼의 무브먼트, 뛰어난 스플리터 등의 장점이 합쳐져 타자는 '스플리터? 포심?' 이렇게 고민하다가 우에하라는 벌써 투구를 시작하고 있고, 어어어 하다가 생각을 못 정하고 그냥 지켜보거나 되는대로 휘두르다가 삼진을 먹게 된다.
대신 무브먼트가 다소 안 좋은 날에는 그대로 한복판에 실투를 꽂는 셈이 되다보니 빠른 템포의 승부와 느린 구속이 겹치며 뜬금없는 장타, 홈런 맞는 일이 많다. 일본에서도 메이저에서도 여전하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NPB)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WAR
1999
요미우리
25
'''20'''
4
0
-
197⅔
'''2.09'''
153
12
24
4
'''179'''
'''0.895'''
'''196'''
6.8
2000
20
9
7
0
-
131
3.57
112
20
22
1
126
1.023
105
2.2
2001
24
10
7
0
-
138⅔
4.02
133
18
28
5
108
1.161
90
2.3
2002
26
'''17'''
5
0
-
204
2.60
173
18
23
6
182
'''0.961'''
132
5.1
2003
27
16
5
0
-
'''207⅓'''
3.17
190
'''28'''
23
5
'''194'''
'''1.027'''
132
4.7
2004
22
13
5
0
-
163
'''2.60'''
135
24
23
5
153
'''0.969'''
'''167'''
3.6
2005
27
9
12
0
0
187⅓
3.31
164
24
22
0
145
'''0.993'''
124
3.2
2006
24
8
9
0
0
168⅓
3.21
157
24
21
1
151
1.057
114
3.0
2007
55
4
3
32
4
62
1.74
47
4
4
1
66
0.823
204
2.5
2008
26
6
5
1
5
89⅔
3.81
90
11
16
0
72
1.182
99
1.2
2018
36
0
5
0
14
34⅔
3.63
32
5
5
2
24
1.067
110
0.1
2019
1군 기록 없음
<color=#373a3c> '''NPB 통산'''
(11시즌)
312
112
67
33
23
1583⅔
3.02
1386
188
211
30
1400
1.008
128
34.1
역대 기록 (MLB)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09
BAL
12
2
4
0
0
66⅔
4.05
71
7
12
0
48
1.245
113
1.8
1.3
2010
43
1
2
13
6
44
2.86
37
5
5
0
55
0.955
146
1.3
1.4
2011
43
1
1
0
13
47
1.72
25
6
8
0
62
0.702
246
1.1
1.9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11
TEX
22
1
2
0
9
18
4.00
13
5
1
0
23
0.778
112
0.1
0.2
2011 시즌 합계
65
2
3
0
22
65
2.35
38
11
9
0
85
0.723
183
1.2
2.1
2012
TEX
37
0
0
1
7
36
1.75
20
4
3
0
43
0.639
252
0.8
1.4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13
BOS
73
4
1
21
13
74⅓
1.09
33
5
9
1
101
0.565
379
3.1
3.6
2014
64
6
5
26
1
64⅓
2.52
51
10
8
1
80
0.917
159
1.1
1.8
2015
43
2
4
25
0
40⅓
2.23
28
3
9
0
47
0.917
194
1.4
1.3
2016
50
2
3
7
18
47
3.45
34
8
11
2
63
0.957
130
0.6
0.7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fWAR
bWAR
2017
CHC
49
3
4
2
14
43
3.98
38
7
12
0
50
1.163
111
0.6
0.2
<color=#373a3c> '''MLB 통산'''
(9시즌)
436
22
26
95
81
480⅔
2.66
350
60
78
4
572
0.890
162
11.9
13.7

5. 기타


  • 우에하라의 등번호 19번은 대학입시 실패후 1년 재수를 하는 동안 자신의 실수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에 선택해 지금까지 달고 있다고 한다.
  • 1999년 10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선발로 등판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벤치의 지시로 야쿠르트의 강타자인 로베르토 페타지니고의사구로 거르게 되자 정면 승부를 못했다는 생각에 분했는지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페타지니를 거른 이유는 페타지니(홈런 42개)가 팀 동료 마쓰이 히데키(홈런 41개)와 홈런 레이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 참고로 이날 경기에서 둘다 홈런을 치지 못하며 홈런왕은 페타지니가 차지했다.
  • 한 토크쇼에 출연해서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이유로 영어를 전혀 공부하지 않는 것이라고 꼽았다. 자신이 마운드에서 야유를 들으면 벌벌 떨 정도로 소심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한 미국팬은 일본어를 공부해서 우에하라상, 죽어라는 말을 일본어로 하기도 했다고 한다(...)
  • 한국 킬러로 유명한 일본 투수중 하나다. 상대 전적이 굉장히 좋다.
  • 김동주가 한때 우에하라의 천적이었다. 1997년 제19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비거리 162M의 홈런을 포함, 우에하라를 상대로 총 4방의 홈런을 쳐냈다.[21]
  • 이승엽의 한일통산 400호 홈런당시 같은팀 선발투수였다.
  • 은퇴 후에는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2020년 10월 4일엔 채널을 통해 코로나 19 양성 판정을 받은 것을 밝혔다.

[1] NPB 공식 프로필[2] 국제대회에서 통산 25전 12승 0패 2세이브를 기록했다.[3] 하지만 정작 우에하라 본인은 마쓰이 히데키처럼 '''골수 한신빠돌이'''였다.[4] 혹자는 입단 과정에서 요미우리의 하청 업체에 근무하던 친척에게 압력이 가해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딱히 신빙성은 없는 루머다.[5] 사실 우에하라가 신인 때부터 주전을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실력도 있지만 운이 큰 몫을 했다. 바로 전 시즌인 1998년 당시 요미우리는 조성민을 선발로 쓰려고 시도하고 있었는데, 올스타전에서 부상을 입어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기회를 잡은 것.[6] 어지간하면 리그 우승팀에게 주는 MVP 역시 우승팀 주니치의 에이스 노구치 시게키가 받았다. 이쪽도 좋은 성적(19승 7패, 평균자책점 2.65)를 내긴 했지만...[7] 일본이나 한국은 1999년도~2003년도까지 똑같이 타고투저 경향이 심했었다. 하지만, 이후 2011년부터 일본은 투신타병 시대가 돌아왔다.[8] 02시즌 본즈는 149안타 46홈런 .370/.582/.799 '''BB/K 4.21개 fWAR 12.7 bWAR 11.7'''이라는 정신나간 성적을 찍었다.[9] 당시 요미우리 소속이었던 이승엽이 이해 일본시리즈를 뛰면서 18타석을 소화하면서 '''12삼진'''을 당한 걸로 유명하다.[10] 장훈의 일본 모 방송 프로에서는 의외로 일본이 아닌 해외 어디든 통할 것 같다고 확실하게 말한 적이 있었다.[11] 2013시즌 101개의 삼진을 잡는동안 내준 볼넷이 단 9개, 무려 K/BB가 '''11.22'''다![12] 아시아 시즌 최다기록인 사사키 가즈히로의 '''45세이브'''를 넘었을 수도 있다.(당장 세부 기록을 볼 경우 우에하라가 상당히 우위 때문)[13] 세이브 상황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 팀의 마무리를 내보내는 것이 일반적. 일종의 세레머니다.[14] 실제로 일본인 선수, 그것도 같은 투수 듀오가 바로전의 보스턴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그 주인공의 오카지마와 마쓰자카 [image][15] 센트럴리그 개막전 매치 기준은 2년전 리그 순위(리그3위팀까지 홈개막전)를 토대로 짜여진다. 2017시즌 리그 4위에 그쳐 2019 시즌 공식 개막전은 원정 경기가 된다.[16] 투수들이 자신의 공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로저 클레멘스도 자신의 패스트볼 구위를 올스타전에서 드와이트 구든의 공을 타석에서 겪어보고 포수에게 '내 공이 이것보다 느리냐 빠르냐' 물어봐서 알았으니. 참고로 그 때 포수의 대답은 '비슷하다' 였고 클레멘스는 '인간은 이런 공을 칠 수 없다' 라며 자신의 포심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굳혔다고 한다. 특히 무빙 패스트볼의 무브먼트같은 경우는 투수들이 가장 자각하지 못하는 요소 중 하나로 뱀직구로 유명한 임창용조차 '내가 볼 때는 그냥 똑바로 날아간다. 포수가 오늘 공 움직임이 좋았다고 말해주거나 나중에 영상으로 올라온 거 보고 아는 거지' 라 대답했고, 마리아노 리베라켄리 잰슨처럼 쩔어주는 무브먼트의 커터를 던지는 투수들도 자기 공이 휘어지는 줄은 받는 선수들이 말해줘서 알았다.[17] 2017년 4월 3일 컵스와 카디널스 경기에서 해설을 맡은 최희섭이 우에하라의 스플리터는 '''배트를 휘두르기 전까지 빠른 공과 구분이 안될 정도'''라고 평했다.[18] 우에하라의 2013년 패스트볼 구속은 89마일이며 스플리터 구속은 81마일이다. 보통 스플리터의 구속은 패스트볼과 4~5마일 정도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19] 물론 로이 할러데이는 항목에도 있지만 구속도 필요하면 90마일 중반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제구력과 구속을 모두 갖춘 투수였다. 핫 존의 크기가 유독 다른 투수들보다 좁은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제구력까지 괴물 수준이어서 그 장점이 더 드러나 보이는 것.[20] 선발투수들은 21.9초[21] 다만 이 때는 타자들이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사용했었다. 올림픽 야구의 경우, 2000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알루미늄 방망이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국제 야구 연맹(IBAF)이 1999년에 투수 보호를 위해서 나무 방망이 사용을 적극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까지도 일부 참가팀들은 알루미늄 방망이를 사용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