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하야토
1. 소개
일본 국적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주전 유격수로, 현재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선수이다.
2. 커리어
초등학교 때 투수와 유격수를 병행하며 야구를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다나카 마사히로가 사카모토의 동급생이었다[1] . 같은 팀에서 뛰며 사카모토가 투수, 다나카가 포수로서 배터리를 이루면서 활약하기도 했다. 고교 시절부터 공수 겸비 유격수로 평가받으며 2006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1위 지명받으며 입단했다. 원래 요미우리는 1순위로 도노우에 나오미치[2] 등 다른 선수를 점찍었으나, 추첨에서 실패해 사카모토를 뽑게 되었다. 이때 사카모토를 강력하게 추천한 사람이 바로 당시 도호쿠, 홋카이도 지역 스카우터 오오모리 타케시[3] . 데뷔 초에는 주로 2군에서 플레이하며 기량을 쌓다가 7월에 전격적으로 콜업되었다. 9월 6일 주니치 드래곤즈전에서는 연장전까지 가는 경기에서 대타로 출장, 첫 안타를 결승 타점으로 연결시키며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2008년, 스프링 캠프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개막전에서 8번 2루수로 출장, 마쓰이 히데키 이후 처음으로 10대 선수로서 개막전 라인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사카모토로써는 이 경기가 천운이었던지, 주전 유격수였던 니오카 토모히로가 개막전부터 부상을 당하게 되며 그 다음 경기부터 주전 유격수 자리에 무혈입성하게 되었다. 거기다 니오카가 아나운서 야마모토 모나와 불륜 사건까지 저지르게 되며[4] 사카모토는 시범경기부터 올스타전, 클라이맥스 시리즈, 일본시리즈까지 전 경기에 출장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팀은 일본시리즈에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3승 4패로 패배. 그러나 이 패배한 7차전에서 홈런을 때리며 10대 선수로는 기요하라 가즈히로 이후 22년만에 홈런을 친 선수로 기록되었다.
2009년, 시즌 초반에 안타를 마구 때려내며 4경기 연속 수훈 선수로 선정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펼치다가, 7월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잠시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2009시즌 팀의 리그 우승과 7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고, 센트럴리그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데뷔 첫 끝내기 홈런과 선두타자 홈런을 친 것도 2009시즌.
2010년, 1번 타자로 풀타임 출장하였고, 31홈런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기록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격수 역사상 처음으로 30홈런, 그리고 고교 4년차 이내 타자 중 30홈런을 기록한 8번째 선수가 된다. 후반기에 부진한 것은 아쉬운 대목. 이 성적을 바탕으로 연봉 1억엔을 돌파하게 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도쿄돔에서의 시합이 크게 줄고, 새로이 도입된 통일구의 영향으로 타율, 장타력 모두 10년 시즌에 비해 크게 저하되었고 여기에 그동안 지적된 불안한 수비가 나아지긴 커녕 더 심해져서 이례적으로 선발멤버에서 제외되기도 하였다.
2012년, 11년 시즌의 부진한 모습에서 탈피, 20번의 맹타상 (한시합에서 3안타 이상을 쳤을 때 주는 개인상) 과 리그 최다안타 (173개), 개인 최다도루 (16도루, 도루성공률 .941) 등 자신의 각종 기록들을 갱신하며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리그우승, 일본시리즈 우승에 크게 공헌하였다. 시즌 후 2013 WBC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13년 시즌에는 다소 부진하였다.
2013년, 타격 성적은 다소 정체되었으나 도리어 리그 굴지의 강타선을 자랑하던 요미우리 타자들이 단체로 부진하면서 팀 내 입지는 더욱 올라갔다(...). 처음으로 4번에 배치된 것도 2015년.[5]
2015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제 19대 주장을 맡는다.
2016년, 리그 최악의 득점력을 자랑하는 수준으로까지 몰락한 타선을 거의 혼자 멱살잡고 하드캐리하는 중이다. 6월 5일 종료시점에서 .347/.429/.637 OPS 1.065, 12홈런 35타점의 빼어난 성적을 자랑하며 센트럴리그 타율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6월 히로시마 도요 카프 핵타선이 살아나고 사카모토 본인이 부진에 빠지며 7월 15일 현재 .322/.417/.561의 기록으로 타격 랭킹 4위를 달리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다른 라이벌들의 페이스가 떨어진 사이에 사카모토가 타격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344/.433/.555 23홈런 75타점 13도루의 성적으로 올 라운드 플레이어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WAR 역시 야마다 테츠토를 제치고 센트럴리그 최고로 올라섰고 전체 리그로 따져도 1위에 해당한다.[6] 커리어 첫 수위타자 타이틀을 차지했고, 데뷔 이후 최초로 삼진보다 볼넷을 더 많이 얻어내었다. 유격수로서 기록한 .433의 출루율은 일본프로야구 유격수 역대 최고 기록이고, OPS 역시 30-30을 달성했을 때의 마쓰이 가즈오에 이은 유격수 역대 2위이다. 그리고 드디어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2017년, 여전히 토종 선발 원투펀치인 스가노 도모유키와 타구치 카즈토, 외국인 에이스 마일스 마이콜라스가 잘 던져도 팀이 승리를 챙기지 못할 정도로 답이 없는 요미우리 타선을 이끌고 있는 중으로 2015년 프리미어 12에서 이나바 아츠노리 코치의 가르침을 받고 타격자세를 바꾼 것이 도움이 된 듯. 7월 9일엔 1500안타를 기록했는데, 만 30세 이전에 1500안타를 기록한 선수는 에노모토 키하치, 장훈을 포함해 사카모토까지 단 5명뿐이다. 사카모토는 그중에서 2번째라 어린 나이에 달성. 해외로 눈을 돌리지않고 앞으로 10시즌동안 지금과 같은 활약을 보인다면 장훈과 이치로를 제외하곤 그 누구도 닿지 못한 3000안타에 접근할 수 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91 .372 .430 15홈런 61타점 14도루. 골든글러브를 2년 연속 수상했지만 베스트나인은 리그 우승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주전 유격수이자 최고출루율-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한 다나카 코스케에게 넘겨줬다.
2018년, 주로 1번타자로 출장. 3할 5푼대의 타율, 9할대의 OPS로 여전히 리그 최강의 유격수이며 간만에 등장한 후배 강타자인 오카모토 카즈마와 함께 타선을 이끌었다. 하지만 양다이강, 알렉스 게레로등 타선을 받쳐줘야 할 대형 영입들이 죄다 먹튀화하며 여전히 이 둘만 타격하고 있다.(...) 옆구리 부상으로 도중에 이탈하면서 109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지만 커리어 하이가 되는 타율이자 규정타석을 넘긴 타자 중 2위인 .345의 타율, 출/장 .423/.537 OPS .962 18홈런 67타점으로 베스트나인에 여유롭게 선정되었다. 유격수로서 .340 이상을 두 번 기록하는 것은 NPB 사상 최초이다. 다만 골든글러브는 전경기 풀이닝 출장+수비율이 더 높은 리그 우승팀 주전 유격수 다나카 코스케에게 6표라는 간발의 차로 빼앗겼다.
본인의 활약은 뛰어나지만 본의 아니게 팀 노쇠화의 상징처럼 취급되고 있다. 위에 농담처럼 적어놨지만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1군 주전급 내에서는 아직도 막내취급으로 요미우리 팬들이 팀의 노쇠화를 개탄할 때 "아직도 사카모토가 라인업에서 가장 젊은 선수다.", "사카모토 이후로 주전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 등등으로 이 선수를 기준으로 언급하고 있다. 현재 요미우리의 상태를 보면 지금이야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이 선수가 고참이 될 때 즈음이면 진짜 팀이 몰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2018년에는 염원의 우타거포 1루수 오카모토 카즈마나 수비 하나만큼은 키쿠치 료스케에 비벼볼 수 있는 2루수 요시카와 나오키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내외야 다른 포지션들은 먹튀삘 충만한 대형 영입 + 쵸노, 카메이, 아베 등 프랜차이즈 늙다리과 그들과의 주전 경쟁을 못 이기는 쩌리들 로 구성되어 있어 세대교체는 여전히 가능성으로만 남아있다.
그 해 12월 연봉 5억엔에 다년 계약을 맺으며 평생 요미우리 선수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연봉 5억엔은 유격수로서 야구계 역대 최고 연봉이며 팀내에서도 야수 1위, 전체 2위의 고액 연봉이다. 리그 전체 기준으로는 3위.
2019년에는 FA 영입된 마루 요시히로가 3번을 치며 2번 타순에 고정되어 강한 2번타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5월 1일 주니치 드래곤즈전에서 야마이 다이스케로부터 시즌 8호 홈런이자, 새 연호 레이와 1호 홈런을 기록해 사카모토의 홈런 배트와 홈런 볼이 야구 전당박물관에 전시 되었다. 5월 5일엔 시즌 10호 홈런을 쏘아올리며 31경기만에 10홈런을 기록하는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개인 커리어하이였던 2010시즌의 31홈런을 넘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5월 10일, 개막전부터 34경기 연속 출루로 구단 신기록을 달성했다.[7] 5월 12일, 첫 타석에서 가볍게 안타를 때려내며 센트럴리그의 개막전 이후 36경기 연속 출루 신기록을 갱신했다. 5월 29일, 한신 타이거즈전에서 통산 200호 홈런을 기록하며, 현재 센트럴리그 홈런 1위타자이다.[8] 시즌을 50경기 정도 소화한 시점에서 본인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 성적은 센트럴리그 3위로 크게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작년엔 오카모토 카즈마와 함께 둘이서만 타격다운 타격을 했다면 이번시즌엔 마루 요시히로 외엔 사카모토를 뒷받침해주는 타자가 없다.(...) 6월 5일, 라쿠텐전에서 시즌 20호 홈런을 쏘아올려 센트럴리그 홈런1위를 기록중이다. 80경기를 소화한 전반기 최종성적은 .303/.383/.566 OPS .949 25홈런 63타점. 6월에 부진하며 성적이 많이 내려갔지만 여전히 중심타자로는 흠잡을 곳 없는 성적이다. 특히 전반기에만 25홈런을 기록하면서 시즌 40홈런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만 센트럴리그 최고를 자랑하던 수비지표는 DeltaGraphs 기준 -를 찍으며 상당히 내려가있다. 특히 수비범위 지표가 꽤 하락한 상태. 8월 9일, 102경기만에 시즌 30호 홈런을 기록했다. 해당시점의 타격성적은 .311/.391/.569 OPS .960 30홈런 75타점. 그리고 바로 다음 날에 31호 홈런을 쏘아올리며 자신의 커리어하이와 타이를 이뤘다. 결국 2014년 이후 5년만의 전 경기 출장을 하며 '''.312/.396/.575 OPS .971 40홈런 94타점'''이라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남기고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정규시즌 40홈런 타자답지 않게 4경기동안 홈런 없이 16타수 4안타 2타점에 그치면서 부진한 성적을 보이더니, 급기야 일본시리즈에선 '''4경기 13타수에서 단 1안타'''에 그치면서 준우승의 원흉이 되고 말았다. 물론 요미우리 타선이 전반적으로 일본시리즈에서 부진했지만 그나마 하위타선의 분전으로 나름 자기 앞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기회가 왔음에도 그걸 모두 말아먹으면서(...) 최악의 시즌 마무리를 하고 말았다. 그나마 4차전에서는 볼넷을 세 타석 연속 얻어내며 분전했으나, 승부처였던 7회말 결정적인 1사 1, 2루 찬스에서는 무력하게 삼구삼진당했고, 9회말 2사에서 앞선 주자가 출루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리 유이토 상대로 풀카운트 승부 끝에 헛스윙 삼진아웃 당하며 경기의 마지막 타자가 되었다. 이 무시무시한 활약 덕분에 요미우리는 무려 29년만에 일본시리즈 스윕패를 당했다.
그래도 정규시즌의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11월 26일 2019년 센트럴 리그 MVP를 수상했다. 유효표 299표 중 1위표로 261표를 독점해 2위 야마구치 슌과 압도적인 격차를 벌렸다.# 요미우리 선수로서는 2014년 스가노 도모유키 이후 5년만, 야수로서는 2012년 아베 신노스케 이후 7년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판정이 났다. 같은 팀원 중에 감염되었다 회복되었다는 환자가 있다는 것을 볼 때 같은 팀 동료에게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회복 중에 양성 판정이 났다. 그 다음날에 음성 판정을 받은 뒤, 몇 차례 추가 검사를 통해 최종 음성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2020년엔 7월에 26타석 무안타를 기록하는 등 여름에 크게 부진했으나, 하반기에 그럭저럭 반등하며 타율 0.289, 19홈런 65타점 0.879의 OPS를 기록했다. 2020년 11월 8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는 2000안타를 달성하였다. 그러나 재팬시리즈에서는 14타수 3안타 7삼진으로 크게 부진하며 팀은 2년 연속 스윕패를 당했다..
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
위에도 나와있지만 아무도 불만가지기 힘든 수준. 데뷔초부터 줄곧 고타율 고홈런으로 테이블세터와 클린업 가장 앞자리를 항상 고수해왔다. 팀 상황이 좋을때는 1번, 타선약화시에는 3번을 맡는 경우가 많다. 2011년에는 타격부진으로 잠시 6번까지 타순이 밀리기도 하였고, 2012년 시즌부터는 3번을 맡는 경우가 많아졌다. 2019년에는 강한 2번타자 역할도 수행한다.
문제인지 어쩐지는 애매한데 '''극단적인 당겨치기 덕후'''이다. 시즌 통틀어도 밀어치는 타구가 별로 없고 컨디션 좋을때는 '''바깥쪽 변화구'''조차 당겨치는 기행을 보여준다.
물론 본인은 칠 수 있는 공. 없는 공을 확실히 나눠놓고 승부하는 편이라 딱히 바깥쪽에 약하다던가 하는 뚜렷한 약점은 없는 편. 오히려 몸쪽 잘못 붙였다가는 그대로 당겨서 좌측으로 넘겨버리기 때문에 투수 입장에서는 극단적인 스타일인데도 불구하고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하는 듯.
프로 3년차인 2009년 시즌부터 2012년 시즌까지 연속해서 두자리수 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을 겸비하였다. 2010년에는 31홈런을 때리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격수 역사 상 최다 홈런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반발력이 감소한 2011년 이후의 통일구 시대에도 꾸준히 두 자릿수 홈런을 쳐주고 있다.
풀타임을 소화하기 시작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8시즌 동안 3할 타율을 넘긴 시즌은 두 번 뿐이었으나, 2015년 말 참가한 프리미어12 대회 때 타격폼을 수정한 이후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시즌 동안 3할4푼대를 두번 기록하며 뛰어난 컨택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추세는 2019년에도 이어지고 있는 중.
여담이지만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에 상당히 강하다. 2010년에 기록한 31홈런의 '''거의 절반'''이 요코하마전에서 나왔다던가, 부진했던 2011년 시즌은 물론 펄펄 날았던 2012년 시즌에도 대 요코하마전 타율이 3할 후반대를 기록했다던가...
아래 영상은 2019년 40홈런 모음집이다.
2020년 8월 12일에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상대로 멀티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2020년 9월 9일 나고야 돔에서 진행된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경기에서는 1경기 3홈런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2020년 11월 8일 도쿄돔에서 진행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 첫 타석부터 2루타를 쳐내 통산 2000안타의 대기록을 달성하였다. 안타를 친 후 상대팀 선수인 야마다 테츠토에게도 꽃다발을 받았다.'요미우리 간판' 사카모토, 日역대 우타자 최연소 2000안타 달성 또 그 다음 타석에서는 시즌 19호 홈런을 백스크린 홈런으로 쳐내었고 단타도 하나 쳐내며 3루타를 뺀 사이클링히트도 달성하였다.
3.2. 수비
3.2.1. 현장의 부정적 시선
문제가 있다면 수비. 준족과 어깨로만 승부를 보는 경향이 있어 타구반응이 늦고 송구도 부정확한 편이며 결정적으로 글러브질이 매우 서툴어 포구가 불안정하다고 평가받았다. 때문에 2008년부터 유격수 레귤러로 활약하였으나, 4년 연속 최다 실책과 유격수로는 불안정한 .970대의 수비율로 가뜩이나 부실한 요미우리 자이언츠 내야의 폭탄중 하나.
2010년 시즌도 별로 나아진 바 없이 줄곧 에러를 양산하고 1루수 에러로 기록될만한 폭투성 송구를 하는 등 '''3년 연속 실책왕'''으로 군림하였다. 뿐만아니라 규정시합수를 채운 유격수 10명중 수비율 9위. 10위는 그나마도 줄곧 2루를 보다가 갑자기[9] 이 시즌부터 유격수로 컨버트 당한 주니치의 아라키 마사히로라 논외로 쳐도, 11시즌엔 수비율, 실책 모두 12구단 탑으로 그란도시즌 달성!
해를 거듭할수록 그래도 경험치와 우월한 신체스펙이 더해져 유격수로서 가장 중요한 횡수비는 어느정도 눈뜨고 봐줄만큼 성장하였으나 종수비는 여전히 OME. 그리고 입단시부터 지적받던 런닝스로도 여전히 답이 안나오는 상황. 뭐 사카모토의 전임이였던 니오카 토모히로(현 닛폰햄)도 수비는 내놓던 공격형 유격수셨으니 쿄진 유격수 수비문제야 별로 잃을게 없는 부분이긴 했다(...). 11년 시즌에 결국 수비 그동안 지적된 수비불안이 한방에 터졌고 이에 하라 감독이 사카모토를 스타팅 라인업에서 제외하는 등의 강수를 두며 강하게 질책한 탓인지 12년 시즌에는 그동안 보여주었던 미숙한 모습에서 탈피,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3.2.2. 세이버메트릭스를 통한 평가
하지만 이런 현장의 시선과는 전혀 딴판으로 UZR 같은 발전된 수비 지표 상에선 전성기에는 좋은 유격수로 평가되었다. 수비적으로 기량이 완성되었다고 평가받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기록한 UZR이 +16.0 / +26.2 / +16.6 / +32.3인데, 리그 위상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값만 비교할 경우 메이저리그 최고의 수비를 가진 유격수로 평가되는 안드렐튼 시몬스가 연상되는 수치다. 내야 키스톤의 수비 지표는 타 포지션에 비해 훨씬 신뢰도가 높을 뿐더러 수년 동안 저런 경향이 이어졌다면 이를 부정하긴 힘들다. 사카모토는 주변으로부터 범위보다도 안정성을 중시하는 수비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소극적인 수비가 무슨 가치가 있냐며 반박한 적이 있다. 어찌보면 일본 야구계의 보수적인 시각의 피해자.[10]
때문에 이처럼 뛰어난 수비력에도 2016년까지는 골든글러브 상을 수상한 적이 없다. 그 기간동안 유격수 골글을 수상한 토리타니 타카시는 2013년까지는 UZR 등도 사카모토만큼이나 우수하게 나왔지만, 부상으로 수비력이 확연히 감퇴한 2014년 이후에도 줄곧 골글을 수상해왔다. 이는 좋게 말하면 안정적인 수비 노하우와 '기술'을 중시하는, 나쁘게 말하면 적극적인 수비와 발전된 세이버메트릭스 지표들을 과소평가하는 일본 야구계 주류의 시각을 보여주는 예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UZR만 집중해서 본 것이고, 수비범위 지표인 RngR은 전성기때도 리그 평균이상이긴 했지만 최고 수준은 아니었다.
UZR도 수비로써의 전성기가 지난 이후로는 +10 전후로 측정되고, 30대에 들어선 2019년 시즌에는 다시 -3으로 곤두박질 쳐서 리그 평균 이하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점에서는 위에 언급된 토리타니 타카시와 같은 전철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토리타니보다 몇년 늦게 데뷰하여서 그렇지 수비적으로 발전한 시기와 쇠퇴하기 시작한 시기가 토리타니와 무서울정도로 일치하는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 19년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여 이번에는 본인이 데이터 경시의 일본야구의 주류시각을 답습하여 상을 받게 된 아이러니함을 연출했다. 참고로 2019시즌 UZR은 주니치의 쿄다가 17.5로 사카모토(-3)보다 월등히 좋은 수비를 보여줬으나 수상하지 못했다. 결국 일본의 골든글러브도 아직 인기투표에 지나지 않는게 현실.
물론 그렇다고 사카모토의 수비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본격적으로 수비 능력이 만개한 20대 중반에서 후반까지는 적어도 3년정도는 리그 최고의 유격수였고 나머지 해에도 평균이상의 두세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좋은 유격수였다. 30대 들어서 좀 빠르게 쇠퇴하는 경향도 있지만 프로선수인 이상 나이에는 장사 없다.
3.3. 주루
주루 면에서도 2019년까지 통산 8번의 두자릿수 도루 시즌(2008, 2010, 2012~17)을 만들어냈으며 통산 152도루, 도루성공률 77.5%를 기록한 준족의 선수이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나이와 부상 우려 때문인지 도루는 다소 줄고 있다.
4. 기타
- 드래프트에서 자신이 지명되던 시간에 수업을 듣고 있었다. 지명소식은 교무실에서 드래프트 회의 중계를 보던 학교 관계자가 교실로 들어와서 알려줬다고 한다.[11]
- 그를 발굴해낸 요미우리의 스카우터가 AKB48 멤버 오오모리 미유의 아버지 오오모리 타케시다.
- 2008년 리그 우승 자축회에서 "맥주를 끼얹지 말아주세요"(원어 ビールをかけないでください)라는 문구를 걸고 나와 탄산 음료를 맥주 대신 끼얹었다.[12]
- 원래 왼손잡이였지만, 오른손잡이인 형의 글러브를 사용하여 야구를 시작한 유격수, 준족 강견이지만 다소 안정감이 떨어지는 수비, 화끈한 공격력 등 한국프로야구의 대표적인 호타준족 이종범과 무언가 닮은 점이 있다. 이와 관련된 일화로 초등학교 4학년때 일시적으로 스위치 히터로 전향했었지만 다나카 마사히로와 타격 경쟁에서 지면서 6학년때부터 다시 우타석에만 전념하게 됐다고 한다.
- 강정호가 사카모토가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황재균 이적과 관련하여 팀내 경쟁할 상대가 줄은 것에 대해 인터뷰어가 일본의 사카모토 하야토가 강정호와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하자, 그럼 라이벌이네요 식으로 얘기한 것.
- 프로 데뷔 첫 홈런을 만루홈런으로 기록했다.
- 2015년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로 출전. 개막전에서 한국을 상대로 쐐기 홈런을 치기도한 장본인이다. 그러나 도미니카 전 이후 마에다 겐타, 아키야마 쇼고, 오노 유다이 등과 함께 대만 걸그룹 멤버들을 끼고 음주가무를 즐기다가 대만 현지 매스컴을 타는 사고를 쳤다. 하필이면 요미우리가 도박으로 난리가 난 상황이라[13] 그냥 넘기지 않을 거라고 판단된다. 그것도 4강전이자 단두대매치인 한일전을 시원하게 말아쳐먹고 요미우리 직속선배였던 고쿠보 히로키와 함께 욕을 가장 많이 뒤지게 쳐먹었다.이미 2014년 시즌 종료후 아베 신노스케 후임으로 주장 자리를 물려받았는데 이 사건으로 박탈당할 것으로 보인다.
- 결국 2015년 11월 25일, 주장 자리를 반납하는 것에 대해 구단 내에서 검토 중이라고 한다.(일본어 주의) 요미우리 프론트에서는 '마이동풍'을 거론하며 구단 지시에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여론도 ''성적도, 인성도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선수였나"며 한탄하는 중.
- 다행히도 2015년 11월 26일, 국내 FA 자격을 얻어 3년 계약으로 요미우리에 잔류했다. # 주장 직을 2016년까지 유지하는 것으로 보아 프리미어 12때의 사건은 문제삼지 않은 듯하다. 2017년에도 제 17대 주장으로 활약하는 중.
- 은근히 뉴욕 양키스의 레전드 데릭 지터와 닮은 점이 많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에 있는 최고 인기팀의 유격수이자 캡틴이라는 점,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도시적인 외모와 기럭지로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설을 뿌리고 다니는 것까지. 물론 커리어 차이는 넘사벽이지만...[14]
- 경기 전 몸을 풀 때 팬과 캐치볼을 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찍혔다. 팬서비스가 상당히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
- 2020년 6월 3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진 판정을 받았음이 보도되었다. # 이후 재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10일간의 입원치료를 했는데 입원중에도 복귀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후 6월 16일경부터 2군 연습경기에서 몸을 풀고6월 16일 경기 보도(일어)6월 17일 경기 보도(일어) 6월 19일 리그 개막에는 늦지 않게 선발로 출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 2020년 육성선수 드래프트 6라운드에서 한자까지 똑같은 사카모토 하야토라는 선수가 요미우리에 지명되면서 사카모토 하야토라는 선수가 요미우리에 2명이 되었다. 다만 이 선수는 포수고, 요미우리의 육성선수는 주로 3군에 있기 때문에 헷갈릴 일은 거의 없을듯.
- 등번호 6에 맞춘 2020년 12월 6일, 도쿄타워가 그의 2000안타를 기념하기 위해 '祝HAYATO'라는 문구로 라이트 업 행사를 가졌다. 요미우리 신문 보도 (일어)
5. 연도별 기록
[1] 일본 야구계에서 88년생 스타에는 이외에도 마에다 켄타, 야나기타 유키, 아키야마 쇼고 등이 있다. 이들은 '마쓰자카 다이스케 세대'를 잇는 일본야구 사상 최고의 황금세대로 평가받는다. [2] 1971~85년 주니치에서 뛴 투수 도노우에 테라시의 아들. 추첨 끝에 결국 주니치에 지명되어 3년 전 주니치에 먼저 지명된 형 타케히로와 함께 아버지의 팀에서 뛰게 되었다. 하지만 타케히로는 왼손 거포의 포텐을 10년간 터트리지 못한 끝에 2014년 주니치에서 방출되고 2016년 요미우리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고, 나오미치도 고교 시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아라키 마사히로, 이바타 히로카즈, 모리노 마사히코 등 주니치 왕조 시절의 기라성같은 노장들을 밀어내지 못했으며 나중엔 다카하시 슈헤이, 쿄다 요타, 아베 토시키 같은 뒷세대들이 치고 올라오며 결국 내야 유틸리티 요원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도노우에가 내야의 코어로 성장하지 못하며 주니치의 세대교체가 제대로 꼬인 것을 보면, 요미우리의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갔지만 결과적으로 사카모토를 데려간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 된 셈. [3] 1988년 드래프트 1위의 거물 대졸 타자 유망주였고 같은 해 은퇴한 프랜차이즈 스타 나카하타 키요시의 등번호를 물려줄 정도의 기대주였으나 2군 본즈 노릇만 하다가 킨테츠로 트레이드된 뒤 은퇴했다. 하필 드래프트 동기들에 노모 히데오, 후루타 아츠야, 마에다 토모노리, 신조 츠요시 등 스타로 성장한 선수들이 많아 더욱 대비되었다. 야구 외에는 AKB48 멤버 오오모리 미유의 아버지로도 잘 알려져있다.[4] 선수의 사생활에 제약을 많이 가하는 편인 요미우리로써는 이런 사건을 저지른 니오카를 그냥 냅둘수 없었고, 시즌이 끝나자 니오카는 닛폰햄 파이터즈로 쫓겨나듯 트레이드되었다.정확히 말하면 요미우리 자이언츠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후배 선수를 괴롭혔단 사실까지 들키면서 문책성으로 트레이드 된것. 굳이 교진이 아니라 어느 구단이라도 쫓겨날만 했다.[5] 4번타자 계보를 신성시하는 요미우리의 특성상 '제 82대 4번 타자'로 기록되었다[6] 9.5[7] 이 날, 사카모토는 3안타 4타점이라는 엄청난 빠따를 보여준다(요즘 기세로는 나오면 치는수준) 이 경기에서, 요미우리는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상대로 팀 23안타로 19점을 내는 엄청난 화력쇼를 펼쳤다.[8] 사카모토는 통산 1호 홈런(만루홈런)이 한신전이었으며, 통산 100호 홈런도 한신전, 통산 1500안타도 한신전, 통산 200호 홈런도 한신전에서 .. 모두 한신 상대로 기록중이다.[9] 키스톤 콤비를 이루던 유격수 이바타 히로카즈의 어깨부상 염려로 인해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두 선수 모두 원래 포지션에서 더 잘하는 바람에 원래대로 돌아갔다.[10] 사카모토와 반대의 사례는 MLB의 데릭 지터가 있다. 실책 수 등 현장의 전통적인 기준으로는 좋은 수비로 호평받지만, 수비 범위 문제로 UZR 등 세이버매트릭스 진영에서는 혹평을 받는다.[11] 통상적으로 드래프트 상위 지명자는 기자와 학교관계자들을 대동하고 학내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지명되는 순간 인터뷰를 하는 것이 관례다[12] 일본법에 따르면 만 20세부터 음주가 가능하다. 여기서 만 20세는 만 20세가 되는 해가 아니라 만 20세 생일이 지나야 하므로, 사카모토는 생일이 지나지 않아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그 다음 시즌 리그 우승 자축회에선 그런거 없이 맥주를 잔뜩 끼얹으며 자축했다.[13] 거기에 요미우리는 이미 가을 캠프때 기율을 단속한 바가 있었고, 프리미엄 12 기간 내내 "되도록 외출은 삼가길 바란다. 외식은 몰라도 술집은 안 된다. 외부인과 접촉을 최대한 피해서 행동하라"라고 누누히 강조한 바 있었다.[14] 물론 어디까지나 MLB와 NPB의 수준 차이에 기인한 커리어 차이인 것이고, 일본에서 사카모토가 올린 성적은 사실 MLB에서 지터가 올린 족적에 충분히 견줄만 하다. 특히 사카모토의 커리어가 아직 충분히 남았다는걸 고려해 보고, 최근 몇년간 매년 8을 상회하는 WAR을 기록하는 괴물같은 페이스를 유지 중인걸 고려하면 사카모토의 NPB에서의 WAR은 지터의 MLB에서의 그것을 수년 안에 상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지터가 기록한 3000안타 같은 의미있는 마일스톤을 기록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긴 하다.[15] 2013년까지는 http://blog.naver.com/ever_17의 자료, 2014년부턴 http://1point02.jp/op/gnav/leaders/pl/pbs_dashboard.aspx?sn=2015&lg=0&tm=0&ps=0&sl=1&sr=0&pn=-1 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