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묘 덴노

 


'''한풍 시호'''
닌묘 덴노(仁明 天皇, 인명 천황)
'''화풍 시호'''
야마토네코아마츠미시루시토요사토노스메라미코토
(日本根子天璽豊聡慧天皇)
'''별호'''
후카쿠사노미카도(深草帝)[1]
''''''
마사라(正良)
'''능호'''
후카쿠사능(深草陵)
'''생몰'''
810년 ~ 850년 5월 6일
'''재위'''
833년 3월 30일 ~ 850년 5월 4일
'''연호'''
승화(承和) → 가상(嘉祥)
'''황거'''
헤이안큐(平安宮)
1. 개요
2. 관련 설화
3. 가족관계


1. 개요


일본의 제54대 천황. 52대 사가 덴노타치바나노 카치코의 장남이다.
823년, 사가 덴노의 바람대로 숙부인 준나 덴노의 황태자로 책봉되었다가 833년 2월, 준나 덴노가 양위하여 천황이 되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선태상천황이자 아버지인 사가 덴노의 바람대로 후태상천황이 된 준나 덴노의 제2황자이자 닌묘 덴노에게는 사촌인 츠네사다 친왕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하지만 842년, 사가 상황이 사망하자 '''조와의 변'''을 일으켜 황태자 츠네사다를 폐하고, 노부코 소생인 장남 미치야스 친왕을 황태자로 책봉했다.[2][3]
843년, 3월 19일 황태자(몬토쿠 덴노)에게 양위한 다음 출가했고, 청량전에서 향년 41세로 사망했다.
그의 재위기간에 대한 역사기록은 이후 육국사 중 하나인 속일본후기라는 역사서로 편찬되었다. 속일본후기는 처음으로 1명의 덴노만 다룬 책이다.
닌묘 덴노를 끝으로 이후의 덴노들은 화풍시호가 없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화풍시호가 있는 천황이다.

2. 관련 설화


외조부인 타치바나노 키요토모(橘 淸友)는 777년에 발해에서 사신으로 온 사도몽(史都蒙)으로부터 관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사도몽은 "자손 중에서 귀한 사람(닌묘 덴노)이 나올 것이나, 당신 자신에게 그 복이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딸 카치코가 황후가 된 것과는 달리 키요토모는 32세에 병사했고, 카치코가 닌묘 덴노를 낳음으로써 사도몽의 예언은 맞아 떨어졌다.

3. 가족관계


황후 : 후지와라노 노부코(藤原順子, 808~871) - 후지와라 후유츠구(藤原冬嗣, 775~826)의 딸
장남 : 일본 제55대 몬토쿠 천황 미치야스친왕(文徳天皇 道康親王, 827~858)
황후 : 증 황태후 뇨고 후지와라노 사와코(曾皇太后 女御 藤原沢子, ?~839) - 후지와라 후사츠구(藤原総継)의 딸
차남 : 무네야스친왕(宗康親王, 828~868)
3남 : 일본 제58대 고코 천황 도키야스친왕(光孝天皇 時康親王, 830~887)
4남 : 사네야스친왕(人康親王, 831~872)
딸 : 니코내친왕(新子內親王, ?~897)
뇨고(女御) : 후지와라노 사다코(藤原貞子, ?~864) - 후지와라 타다모리(藤原三守, 785~840)의 딸
8남 : 나리야스친왕(成康親王, 836~853)
딸 : 치카코내친왕(親子內親王, ?~851)
딸 : 히라코내친왕(平子內親王, ?~877)
뇨고(女御) : 시게노 츠나코(滋野縄子) - 시게노 사다누시(滋野貞主, 785~852)의 딸
5남 : 모토야스친왕(本康親王, ?~901)
9녀 : 토키코내친왕(時子內親王, ?~847)
딸 : 야스코내친왕(柔子內親王, ?~869)
뇨고(女御) : 타치바나 카게코(橘影子, ?~864) - 타치바나 우지키미(橘氏公, 783~848)의 딸
코이(更衣) : 키노 타네코(紀種子) - 키노 나토라(紀名虎, ?~847)의 딸
7남 : 츠네야스친왕(常康親王, ?~869)
딸 : 사네코내친왕(眞子內親王, ?~870)
뇨고(女御) : 후지와라노 이키코(藤原息子)
코이(更衣) : 미쿠니 마치(三國町) - 미쿠니 마사모토(三国)의 딸
아들 : 사다노 노보루(貞登)
궁인 : 후지와라노 카토코(藤原賀登子) - 후지와라 후타키마로(藤原福当麻呂)의 딸
6남 : 쿠니야스친왕(國康親王, ?~898)
궁인 : 후지와라노 와라와코(藤原小童子) - 후지와라 미치나가(藤原道長)의 딸
딸 : 시게코내친왕(童子內親王, ?~865)
궁인 : 타카무네내친왕(高宗內親王) - 오카야왕(岡屋王)의 딸
딸 : 히사코내친왕(久子內親王, ?~876)
궁인 : 야마구치씨(山口氏)
12남? : 미나모토노 사토루(源覚, 849~879)
궁인 : 쿠다라노니키시씨(百濟王氏) - 쿠다라노니키시 호슌(百済王豊俊)의 딸
5남? : 미나모토노 마사루(源多, 831~888)
11남? : 미나모토노 히카루(源光, 845~913)
뇨쥬(女嬬) : 쿠다라노니키시 에이쿄(百濟王永慶) - 쿠다라노니키시 쿄슌(百済王教俊)의 딸
12녀 : 타카코내친왕(高子內親王, ?~866)
생모미상
9남? : 미나모토노 스즈시(源冷, 835~890)
아들 : 미나모토노 이타루(源効)

[1] 능호에서 유래했다.[2] 이전부터 닌묘 덴노는 자신의 아들로 하여금 천황을 잇게 하려고 했겠지만, 아버지 사가 상황이 정한 황태자 츠네사다를 함부로 내칠 수 없었다.[3] 사실 이전에도 츠네사다 친왕은 권력 다툼에 휘말리는 것을 꺼려서 황태자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했지만, 백부인 사가 상황이 설득해서 남아 있었다. 사촌이었던 닌묘 덴노도 사가 상황과 함께 츠네사다 친왕을 설득했지만, 사가 상황 사후에 바로 돌변한 것을 보면, 그냥 아버지 의견에 동조해주는 척했던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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