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은고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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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기대주였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비운의 축구 선수
프랑스의 축구선수.
그는 청소년 시절 프랑스 연령별 축구대표팀에서 탁월한 활약을 선보여 '''제2의 트레제게'''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리버풀에서 포텐을 터트리지 못하고 실패한 유망주로 전락하고 말았고 이후 여러 팀을 전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가는 비운의 선수다.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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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 알더베이럴트와 다비드 은고그
다비드 은고그는 1989년 4월 1일 화가 베르트 모리조의 명작 '젠느빌리에의 밀밭에서'로 유명한 젠느빌리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카메룬 사람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프랑스 사람이었다. 또한 그의 삼촌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장 알랭 붐송이다. 은고그는 일찍부터 축구에 뜻을 두어 2001년 12살의 나이에 PSG 유스팀에 입단하여 기량을 갈고 닦았다.
그러던 2004년 프랑스 16세 이하 대표팀에 합류한 그는 13경기 11골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고 그때부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는 꾸준히 연령별 대표팀에 출장하여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고 2007년엔 프랑스 19세 이하 대표팀에서 6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하는 탁월한 활약을 선보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과거 프랑스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다비드 트레제게의 뒤를 이을 인재로 평가받았다.
은고그는 2006년 PSG와 정식으로 프로계약을 체결했고 2006-07 시즌에 리그 4경기, 컵대회 2경기를 출장해 총 6경기를 뛰었으며 2007-08 시즌엔 리그 14경기 1골, 컵대회 5경기 2골을 기록하며 총 19경기 3골을 기록했다. 명성에 비해선 좀 미진한 활약이긴 했지만 그래도 연령별 대표팀에서 훌륭한 활약을 선보이고 있었고 저 출장 기록들 중 교체로 뛴 경기가 대부분이어어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거의 없었다.
2.1. 리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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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2008년 7월 24일, 은고그는 200만 유로로 리버풀로 이적해 4년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리버풀 감독이었던 라파 베니테즈는 리버풀의 스카우팅 시스템을 자랑하며 "그들(스카우터들)은 은고그와 같은 비싼 값을 치르지 않고 데려올 수 있으면서 훌륭한 퀼리티를 갖춘 선수들을 찾아낸다"고 말했다. 은고그는 2008년 7월 30일 비야레알과의 친선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뤘고 그 다음 친선경기인 레인저스 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또한 그는 리버풀의 마지막 친선 경기 상대인 Vålerenga IF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며 팀의 4:1 승리에 한몫을 했다.
이렇듯 프리시즌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은고그는 아스톤 빌라 전에서 페르난도 토레스와 교체투입되면서 첫번째 EPL 경기를 치뤘고 챔피언스리그에서 PSV 아인트호벤을 상대로 골을 기록해 팀의 3:1 승리를 견인했다. 은고그는 2009년 2월 7일 포츠머스 전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했으며 2009년 3월 3일 선덜랜드 전에서 리그 첫 골을 기록해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4월 11일, 그는 블랙번 로버스를 상대로 2번째 리그골을 기록해 팀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은곡의 2008-09 시즌 스탯은 리그 14경기 2골, 리그컵 2경기 0골, 챔피언스 리그 3경기 1골로 총합 19경기 3골이었다.
2009-10 시즌, 은고그는 스토크 시티와의 홈경기에서 팀이 4:0 대승을 거두는 와중에 마지막 4번째 골을 기록했다. 이것이 그의 2009-10시즌 첫번째 리그 골이었다. 그후 그는 리그 컵 3라운드에서 리즈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10월 26일, 리버풀은 최대의 숙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맞붙었다. 이때 은고그는 한 골을 기록한 토레스와 교체 투입되었고 후반 96분 경에 쐐기골을 작렬하며 팀의 2;0 승리에 한 몫을 톡톡히 했다. 은고그는 맨유전에서 넣은 쐐기골에 대해 "나와 팀에게 매우 환상적인 순간이었고 나는 이 순간이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은고그는 11월 9일 버밍엄 시티를 상대로 4번째 골을 기록했고 머지사이드 더비에서 토레스를 제치고 선발 출전했지만 리버풀이 에버튼을 2:0으로 격파하는 동안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은고그는 위건 애슬레틱을 상대로 리그 5번째 골을 기록해 팀의 2:1 승리에 한몫을 톡톡히 했다. 그의 2009-10 시즌 최종 기록은 리그 24경기 5골, 챔피언스리그 9경기 2골 등을 합해 총합 37경기 8골이었다. 지난 시즌에 비하면 훨씬 많은 출전기회가 주어지긴 했지만 그의 활약상이 썩 만족스러운 건 아니어서 이 때부터 리버풀 팬들은 그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2010년 7월 27일, 은고그는 유로파 리그 3라운드 1차전에서 마케도니아 소속 축구 팀 FK Rabotnički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해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또한 2차전에선 헤딩으로 1골, 페널티킥을 만들어내 제라드의 페널티킥 골을 이끌어냄으로서 1어시스트를 달성해 리버풀의 4:0 완승에 톡톡히 기여했다. 그후 그는 여세를 몰아 리버풀의 개막전 상대인 아스날 FC를 상대로 출전해 아스날의 센터백 토마스 베르마엘렌을 제치고 강력한 발리킥을 작렬해 동점골을 만들어내면서 1:1 무승부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그는 유로파 리그에서 11경기 5골을 기록하며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리그였다. 개막전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동점골을 기록할 때만 해도 좋았는데, 그후엔 최악의 골결정력과 별로 인상적이지 못한 움직임과 테크닉, 그리고 190cm의 장신이면서 상대 수비수들과의 볼경합에서 자꾸만 밀리는 등 여러 삽질을 벌여 리버풀 팬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갔다. 그는 잔부상이 많았던 토레스를 대신해 선발로 자주 출전했지만 영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이며 리버풀이 최악의 부진을 거두는 원흉 중 하나로 지목되고 말았다. 결국 그가 기록한 리그에서의 활약상은 25경기 2골이었다.(...)
이러한 그의 끔찍한 경기력을 보다못한 리버풀 보드진은 마침 토레스가 첼시로 떠나버리자 루이스 수아레스와 앤디 캐롤을 영입하여 공격진을 리빌딩했다. 이후 그는 후반기에 가끔씩 교체 출전할 뿐 별다른 출장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시즌이 끝나자 리버풀을 쓸쓸히 떠났다. 그는 리버풀에서 94경기에 출전해 19골을 기록했다.
2.2. 볼튼 원더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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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31일, 은고그는 4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볼튼 원더러스로 이적했다. 그는 9월 10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케빈 데이비스의 교체선수로 출장하며 볼튼에서의 데뷔전을 가졌다. 그러나 볼튼은 이 경기에서 맨유에게 5:0으로 완패했다. 그는 10월 15일 위건 애슬래틱과의 경기에서 첫번째 골을 기록해 팀의 3:1 승리를 기여했다. 이후 은고그는 2011-12 시즌을 리그 31경기 3골, 컵대회 6경기 1골을 거두며 총 39경기 4골을 기록했다. 그는 볼튼이 2011-12 시즌 영입한 선수들 중 최악의 영입에 선정되는 굴욕을 겪었고 볼튼은 그의 영 좋지 않은 골감각으로 빈곤한 득점에 고생하다가 결국 챔피언쉽으로 강등되었다.
은고그는 2012-13 시즌 챔피언십에서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그는 리그 31경기 8골을 기록해 지난 시즌보다는 향상된 성적을 거두었다. 물론 리그 상위권 성적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엔 또다시 영 좋지 못한 경기력으로 일관해 리그 17경기 3골에 그쳐 챔피언쉽에서도 통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2.3. 스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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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4년 1월 27일, EPL 소속 클럽인 스완지 시티가 무슨 생각인지 챔피언쉽에서 부진하던 은고그를 비공개 이적료로 영입했다. 은고그는 2014년 2월 1일 웨스트햄과의 경기에서 네이션 다이어의 교체 선수로서 데뷔전을 치뤘다. 그후 그는 겨우 3경기만 출전하고 벤치나 달구는 굴욕을 겪었고 시즌이 끝나자 계약이 만료되어 스완지를 떠났다.
2.4. 스타드 드 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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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일, 은고그는 프랑스 리그앙 소속인 스타드 드 랭스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2014-15 시즌 리그에서 28경기 7골 2어시스트를 기록해 그동안의 삽질에 비하면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허나 2015-16 시즌엔 16경기 3골로 미진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후반기에 경쟁에서 밀려나 벤치워머로 전락했다.
2.5. 파니오니오스
2016년 8월 12일, 은고그는 그리스 소속 축구 클럽인 파니오니오스로 이적했다. 그리스리그에서도 시즌 1골에 그쳤고 2017시즌에는 스코틀랜드 리그의 로스 카운티 FC로 이적했지만 이팀에서도 리그 1골에 그쳤다.
3. 은퇴
거듭된 부진을 거치며 유럽 변방리그로 밀려나더니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혼베드 FC로 이적을해 두 시즌을 뛰었다. 그리스와 스코틀랜드 리그보단 레벨이 낮은 리그여서 그런지 2018시즌 6골 4도움, 2019시즌 초반 3경기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폼이 살아나는가 싶었지만 더 이상 축구 선수 생활에 미련이 없는지 부상이 없는데도 잔여 경기를 거의 모두 결장하게된다. 2020시즌 겨울 이적 시장때 리투아니아 리그의 강팀인 FK 잘기리스로 이적하지만 거기서도 축구에 대한 의욕이 사라졌는지 시즌 초반 3경기만 뛰고 2020년 6월달에 구단과 상호 합의하에 계약 해지를하고 이른 나이에 은퇴를 발표하게된다.
4. 국가대표 경력
은고그는 위에서 서술했듯이 16세 이하 대표팀 시절부터 연령별 대표팀에서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장차 트레제게의 뒤를 이어 프랑스 축구 대표팀의 핵심 공격수가 되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은고그는 정작 20대에 접어들자 기량이 정체되는 모습을 보였고 리버풀에서 결국 실패한 유망주로 전락하면서 성인 대표팀에서 단 한경기도 뛰지 못했다.
이에 은고그는 2009년 11월 국적을 카메룬으로 변경해 카메룬 축구대표팀에서 국가대표로 뛰기를 희망했다. 카메룬은 은고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2010년 2월 FIFA에 은고그가 카메룬 대표팀에서 뛰게 해달라고 요청해 허락을 얻어냈다. 그런데 정작 은고그는 2010 월드컵에서 카메룬 대표팀 스쿼드에 포함되지 못했다. 아무래도 기량 문제 때문인듯. 이후 은고그는 자신의 포텐을 터트리지 못하고 있으니 이대로 성인 국가대표로 뽑힐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5. 여담
리버풀 시절, 은고그는 리버풀 팬들로부터 다양한 별명으로 불렸다. 이름을 적절하게 변형한 '''은고기'''로 불리는 가 하면 잘할 때는 '''금고그''', 또는 '''금고기''', 못할 때는 '''통곡기''', '''통고기''', '''똥고기'''(...)로 불렸다. 또한 매시즌 프리시즌에서는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기 때문에 '''프리시즌 앙리'''로 불리기도 했고 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 등 유럽 대회에서는 이상하게 잘했기 때문에 '''대외용 스트라이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리버풀 팬들에게는 참으로 애증의 존재가 아닐 수 없는 것이, 이 선수가 프랑스 연령별 대표팀에서 보여준 환상적인 활약을 계속 이어가 포텐을 터트렸다면 당시 토레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토레스가 부상으로 이탈할 시 공격력이 대폭 감퇴되는 경향이 있던 리버풀에게 큰 도움이 되어줬을 것이다. 그러나 은고그는 결국 실패한 유망주로 전락했고 말았다. 리버풀 팬들은 은고그가 토레스와 교체 투입될 때마다 TV 채널을 돌려버리곤 했다고...
풋볼 매니저에서 일종의 교환 카드로 유명했다. 그래도 아직 유망주로서 가능성이 보이던 리버풀 시기 까지는 게임 시작하자마자 다른구단에 몸값 그대로 이적 제의를 하면 무수한 구단들이 관심을 보이는데 어이없게도 은고그 + 소정의 현금으로 파스토레, 함식, 몬톨리보, 그외 작품내 미친 성능을 보여주는 주전, 핵심 선수들을 살수 있는 꼼수가 있었다.[1]
[1] 맨유로 게임을 시작한다면 마케다로 같은 짓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