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캐롤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No. 7 '''
'''앤드루 토머스 캐럴[1]
(Andrew Thomas Carroll)
'''
<colbgcolor=#000000> '''생년월일'''
1989년 1월 6일 (35세)
'''국적'''
[image] 잉글랜드
'''출신지'''
게이츠헤드[2]
'''신체 조건'''
193cm / 90kg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발'''
왼발
'''소속 클럽'''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06~2011)'''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2007~2008 / 임대)
리버풀 FC (2011~2013)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2~2013 / 임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3~2019)'''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19~ )
'''국가 대표'''
9경기 / 2골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5.1. 사생활
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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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축구계에서 흔치않은 이름이 단위가 된 선수 중 한명이다. 2019년 8월 9일부터 친정인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에 돌아와 뛰고있다.

2. 클럽 경력



2.1.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1.1. 각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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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 유스 출신의 공격수로, 행정구역상으로는 다르지만 사실상 뉴캐슬의 일부나 다름없는 위성도시 게이츠헤드 출생. 어린 시절부터 뉴캐슬의 열렬한 팬이었다.
우월한 신체조건으로 인해 어린 나이부터 주목을 받으며 2군팀에 투입되지만 2군 리그에서조차 좋은 득점율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당시 뉴캐슬 팬들의 인식은 "저 멀대같이 키만 큰 자식" 정도로 귀결되었다. 2007년부터 간간히 1군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래봐야 경기종료 5분전에 투입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중 2007년 7월 29일 유벤투스와의 친선경기에서 1군 첫 득점을 기록하고 세계 최고의 골키퍼 지안루이지 부폰으로부터 '''"천부적인 마무리 능력과 동료를 활용하는 능력을 겸비한, 앞으로 크게 될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그를 높게 평하지 않던 팬들은 립서비스로 치부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07-08 시즌 2부 리그의 프레스턴 노스 엔드에 6개월간 임대를 갔으나 2부리그에서조차 주전을 확보하지 못하고 11경기에 출전하여 단 1골만을 기록했다. 이쯤되니 팬들도 거의 포기상태였다.
뉴캐슬이 강등 위기에 처한 2008-09 시즌 후반, 마이클 오언, 오바페미 마르틴스, 마크 비두카, 숄라 아메오비 등 뉴캐슬의 전무후무한 유리몸 공격진이 일제히 부상을 당하자 갑작스럽게 1군으로 승격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으나 헤딩 하나는 발군의 센스를 보여주며 스토크와의 강등배틀에서 동점골을 넣는 등 소소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뉴캐슬이 2부 리그로 강등당하면서 주력 선수들이 대규모 이탈하자 2009-10 시즌 초반 페테르 뢰벤크란츠와 함께 부동의 주전으로 자리잡았으나 두 시즌 전과 마찬가지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고, 2009년 12월 28일까지 18경기에서 4골만을 넣으며 팬들의 원성을 사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해가 밝음과 동시에 몬스터로 각성했다.'''

2.1.2. 각성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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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골을 마구 넣기 시작한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다. 2009-10 시즌 전반기에 18경기 4골을 기록했으나 후반기 24경기에서 15골을 몰아치면서 팀 최다득점자가 된다. 전 시즌부터 꾸준한 웨이트를 통해서 몸을 불리며 우월한 피지컬을 만들고는 있었으나 주전 자리를 꿰차버린 어린 선수로서 극복하지 못하던 심리적 벽을 뚫어버리면서 만개한 것으로 추정된다.
팀이 프리미어 리그에 승격하면서 재키 밀번, 말콤 맥도날드, 앨런 시어러 등의 레전드들이 달았던 클럽의 상징 등번호 "9번"을 부여받으면서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는다. 처음에는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우려가 많았지만 2010년 8월 22일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말끔히 불식시킨다. 이후 2010년 12월 6일까지 9골을 기록하여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카를로스 테베즈에 이어 득점 3위를 기록중이다.
2010년 11월 17일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에서 잉글랜드의 9번을 달고 선발출전하면서 "뉴캐슬의 괴물"에서 "잉글랜드의 괴물"로 발돋움한다. 사실 이미 시즌 초반부터 잉글랜드 팬들 사이에서는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상대로 캐롤을 발탁하라는 압박이 상당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웨인 루니를 제외하고는 "스트라이커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잉글랜드 축구계에서[3] 캐롤은 2010년 최강의 떡밥으로 급부상하면서 엄청난 기대를 받았다. 우리나라로 비유를 들자면 프로 데뷔시즌 득점 순위 2위로 MVP와 만장일치 신인상을 수상했을 당시의 박주영 정도의 관심도다. 특히나 가뜩이나 타겟형 스트라이커 부재에 시달리고 있는 잉글랜드다보니... 그래도 스트라이커 자원이 나오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국대에 기용되었겠지만 토트넘에서 '''괴물 스트라이커'''가 등장하며 현재 캐롤을 찾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2010년 11월 새로운 5년 계약을 체결했으며, 뉴캐슬은 사실상 클럽의 명운을 캐롤의 발끝에 건다는 각오다. 이적하지 않을 경우 향후 10년간 뉴캐슬의 전술은 캐롤 위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2. 리버풀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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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2011년 1월 31일, 이적 시장 종료를 바로 앞에 두고 터져나온 토레스 이적건 때문에 리버풀이 앤디 캐롤에게 오퍼를 넣었다. 뉴캐슬도 35m에 5m 옵션에 이적에 동의했다고 한다. 얼마나 급했으면 헬리콥터 불러서 실어왔을 정도. 일단 선수 비교를 하자면 '''다비드 비야가 40m이다'''. 같은 해 AC 밀란은 같은 돈(40m)에 '''즐라탄, 호비뉴, 카사노'''를 샀다.(...)[4]
앤디 캐롤이 리버풀 선수가 되는 것이 이적시장 마감 직후 확인되었다. 3500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얻긴 했지만 이미 이적시장은 닫힌 데다 시어러의 은퇴 이후 오랜만에 나타난 괴물급 스트라이커, 즉 '''포스트 시어러'''였기에 배신감은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유소년 출신에 매우 상징적 등번호 9번까지 주었으니... 리버풀 FC에서도 9번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현지 소식통들에 의하면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마이크 애쉴리 구단주와 운영진은 캐롤은 절대 팔 수 없다고 버티고 있었으며 이 자세는 리버풀의 처음의 25m 파운드 비드가 40m 파운드 비드로 폭등했을 때도 요지부동이었다고 한다. 즉 운영진은 리버풀의 비드를 이용해 89년생짜리의 스트라이커 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은 다음 팔지는 않으려는 생각이었던 듯하다. 실제로 현지시각 17시 경까지는 이런 리버풀 FC의 비드를 비웃는 현지 칼럼리스트들이 많았다. 실제로 모 칼럼리스트는 'there is no transfer'라며 이적은 끝나가는 듯 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캐롤 자신의 심경변화가 꺼져가던 불씨를 살렸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하튼 지금 현지 팬들은 엄청난 분노를 폭발 직전이라고... 심지어 동료 2명을 폭행해도 항상 캐롤을 옹호해줬던 뉴캐슬 팬들이었기에 사실 이적료를 떠나 허탈감이 클 것이다.
한편, 캐롤이 자기는 팀에 남고 싶었으나, 구단이 돈이 필요해 자신을 팔았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는데, 설령 이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앤디 캐롤은 최근에 뉴캐슬 구단과 무려 '''5년'''간의 장기 재계약을 맺었었기 때문에 정 가기 싫다면, 본인이 리버풀과의 계약을 거부하면 되는 것이었다.
또한 최근 밝힌 알란 파듀 감독의 입장표명을 보면 # (영문)
2010년 10월에 재계약을 맺은 캐롤이 돌연 2011년 1월에 다시 재계약을 맺을 것을 요구하였고, 구단이 이를 거부하자 '''이적 요청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문제는 캐롤이 재계약을 요구한 시기가 마침 '''리버풀이 캐롤의 이적을 제의한 시기'''와 겹친다는 점이다.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앤디 캐롤(혹은 그의 에이전트)은 리버풀이 자신의 비드를 요구하는 와중에 '''구단의 허락 없이''' 리버풀 측의 인물과 접촉을 하였고, 그쪽에서 약속한 조건에 혹하여 뉴캐슬 구단에 리버풀 측에서 약속한 조건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조건을 요구하였다는 추측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뉴캐슬을 떠나고 싶진 않은데, 리버풀에서 약속한 조건이 너무 매력적이라 뉴캐슬 측에다 급료 인상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구단이 들어주지 않자 강경하게 이적 요청서를 들이 밀었고, 결국 리버풀의 저지를 입게 된 것.
현재 국내 뉴캐슬 팬덤에서는 위의 파듀 감독의 입장을 거진 정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며, 앤디 캐롤에 대해서는 '''아데바요르와 다를 바 없는 놈'''이란 평까지 나오고 있다.(...)[5]
정말 구단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면 구단이 이적을 용인 하더라도 선수 본인이 계약을 거부하면 그만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적을 "용인"한 것과 이적하라고 등을 떠민 것은 천지차이다. 구단이 선수보다 돈을 택했을 경우 선수가 받는 자존심 타격은 물론 팔려고 했던 선수가 거부하고 남았을 때 좋은 꼴을 본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6][7] 캐롤이 리버풀 계약을 거부하면 되는거 아니냐는 말은 성급한 발언.
한편으로는 앤디 캐롤이 뉴캐슬에서 받았던 급료는 2만 파운드인데 리버풀에서 받을 주급은 '''7만 파운드. 3달만에 3.5배 뻥튀기다.''' 정황상 리버풀의 관심을 이용해 주급 인상 시도 → 거부당하자 이적 요청서 제출 → 리버풀 이적이라고 봐야할듯
# (영문) 긴박했던 하루를 보여주는 1월 31일 실시간 기사 체크 리스트...carroll로 검색해보자. 캐롤의 몸값이 정말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두배로 솟는 기적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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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와 지단 사이의 '''역대급 선수 앤디 캐롤'''
존 헨리 리버풀 구단주에 의하면이적시장 3일 후의 리버풀 구단주 존 헨리의 가디언 인터뷰.
애초에 리버풀은 토레스와 캐롤의 차익만을 생각했다는 것. 즉 캐롤이 20m이면 토레스를 35m에 팔 생각이었고 캐롤이 25m이면 40m 이상에 팔고 35m이라서 50m에 판 것이다. 처음부터 리버풀은 15m의 이익만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 딜을 두고 호구짓이라고 하는 축구팬들이 많으나 위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듯 리버풀 측에서는 팀에서 마음이 떠난 토레스를 팔고 대체자를 구하면서 15m이라는 돈을 벌 수 있는 딜이었으니 나쁘지 않은 딜이라고 본 듯. 결국 리버풀에게 있어서는 캐롤의 몸값이 얼마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는 것.
첼시쪽에서는 이러한 협상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건 생각해보면 당연한거다. 일반적인 거래조차 구체적인 사안까진 공개되지 않는데, 어떤 팀도 손해본 (또는 그렇게 비춰질) 딜의 구체적인 내용을 자진해서 공개하진 않는다. 만약 첼시에서 우리가 '캐롤 + 15m에 토레스를 사기로 했다' 라고 했으면 첼시 팬들 들고 일어났을거다. 이적 후의 토레스의 모습까지 생각해보면... 구단주 본인이 직접 가디언에 인터뷰를 한 거고, 이 인터뷰에 대해 반박 기사가 올라온 적도 없으니 사실로 보는 게 옳을 듯하다.

2.2.1. 2010-11 시즌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다가 이적 후 약 1달만인 맨유전에서 데뷔전을 치루었다.
부상 복귀 이후 그리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다가 4월 11일 프리미어리그 32라운드 맨시티와의 홈경기에서 환상적인 중거리 왼발포로 데뷔골을 넣었으며, 이후 추가 헤딩골까지 포함, 총 2골을 박아넣으며 승리를 이끌었다. 리버풀 팬덤은 폭발 분위기.
그런데 꼴랑 2골 넣은 이후로 이렇다할 활약 없이 골을 기록하지 못한채 시즌이 끝나버렸다.(...)
부상에서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경기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고는 하지만, 35m이나 지불하고 영입한 스트라이커로서는 기대에 못미칠 수 밖에 없는 성적이다. 다만, 나이도 어리고 잠재력은 잉글랜드의 축구팬들 전체가 주목하는 선수이기도 하니 혹여나 기대를 하고 있는 리버풀의 팬들은 2011-12 시즌을 기대해 보도록 하자.

2.2.2. 2011-12 시즌


11-12시즌 리그 7라운드 머지사이드 에버튼 원정에서 리그 첫골을 넣었다.
리그 10라운드 WBA 원정경기에서 수아레즈에게 패스를 받아 리그 2호골을 득점하였다
2011-12 시즌이 중반으로 치닫는 와중에 이래저래 골대맞춘수 리그 1위를 기록한다거나, 잘 안나오는게 정상인 논란거리가 될 판정이 주마다 터져나왔다거나 하는 와중에 그 불운에 더한 부진의 정점을 찍고 있다. 여름에 영입한 선수중 꾸준히 기용받는 선수가 아담, 다우닝, 헨더슨, 엔리케인데 이는 베스트11중 4명이 새로 영입된 선수가 되었고, 조직력이 생각보다 맞지 않으니 리버풀자체의 경기력이 그렇게 좋질 않았다. 헨더슨의 경우도 사실 윙보다는 중앙이 주 포지션이어서, 크로스가 좋다고는 하나 그 외에 윙어로써의 능력은 그저 그렇다보니 기회창출은 잘 안되고, 왼쪽의 다우닝은 엔리케와 동선이 겹쳐서 왼쪽에서도 좋은 크로스가 나오질 않는다. 그러다보니 전방에 고립된다거나, 전방에 있어도 크로스 자체가 잘 안올라오는 경우도 있고, 공받아서 연결시켜주려고 내려와서 공을 받아서 가지고 들어가면 수아레즈랑 서로 호흡이 안맞고, 사이드로 주면 또 사이드는 사이드대로 갑갑한 상황이 되어서 문제. 투톱을 쓸 경우 그 호흡이 좋아야 하는데, 하필이면 여름에 그 코파아메리카가 있었고 우루과이는 결승까지 가버리는 바람에 수아레즈와 함께 프리시즌에 호흡을 맞춰볼 시간이 없어서 그런지 이래저래 발이 잘 안맞는다. 덕분에 조직력이 아직 완성안된 리버풀에서 최대의 피해자. 본인이 내려와서 연결해주려고 하는 움직임과, 아직 불안정한 양쪽 윙라인을 볼 때 그 괴물이 되려면 리버풀의 사이드가 살아나고, 아담이 블랙풀의 에이스모습을 다시 찾아야 할듯하다.
리그 23라운드 울버햄튼 원정에서 리그 3호골을 넣었으며 리그 33라운드 블랙번 원정에서 1골 1도움을하였지만 이것이 11-12시즌 리그 마지막 득점
이 선수가 정말 뉴캐슬에서 괴물같은 포스를 보여주던 그 선수가 맞는가 의심 스러울 지경.
뉴캐슬 사장이 기자랑 술마시면서 리버풀이 천하의 병신이라고 까기도 했다. 블러핑 한방에 35m+5m파운드라는 미친 이적료를 낼줄은 몰랐다면서 앤디 캐롤은 절대 그 가치가 있는 선수가 아니었다고 깠다.
그나마 11-12 FA컵 6경기 4골 3도움을 기록 스토크 시티와의 8강전을 제외하면 출전한 모든경기에서 득점이나 도움을 기록
특히 4강전에서 라이벌 에버튼을 상대로 결승골을 넣은 것...이 있긴 하지만 빠들과 까들은 여전히 "생명연장하네 ㅉㅉ"의 반응만 보이고 있다. FA컵 결승전 첼시전에서도 후반 교체 뒤 보싱와의 패스미스를 놓치지 않고 추격골을 넣으면서 리버풀에서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이면서 첼시를 난타했지만 80분쯤의 결정적인 헤딩이 골 라인을 넘지 않으면서 추가 득점에 실패, 결국 아쉬움을 곱씹은채 고개를 떨궜다. 팀도 2대1로 패배했다.
11-12 리그 컵은 우승하긴했지만 6경기 1골 그것도 하부리그에게 득점한거 말고는 무득점에 그쳤다

2.2.2.1. 2012년 4월 1일, 굴욕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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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일 뉴캐슬 원정경기에서 이적 이후로는 처음으로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돌아오게 되었다. 뉴캐슬 팬들은 한 때는 로컬 히어로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로 추앙받다가 몰락한 그를 가엾어하는 의견과 고향팀을 버리고 돈을 택한 그를 천하의 개쌍놈으로 보는 의견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캐롤은 경기 시작 10분만에 양분된 의견을 하나로 모아버렸다.''' 골키퍼 팀 크룰과의 1:1 상황에서 슛을 시도하지 않고 박스 안에서 할리웃 액션을 하며 넘어지면서 페널티 유도를 노린 것.[9] 동작이 너무 어설퍼서 옆에 서있던 주심이 바로 간파하여 옐로우 카드를 꺼냈고, 홈 관중은 이후 한마음 한뜻이 되어 그가 공의 5m 내로만 접근하면 미친듯이 야유하기 시작했다.
초반에 어느정도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캐롤은 이후 조금씩 현격한 멘붕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뉴캐슬의 수비에 꽁꽁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가 70분 경 교체되어 경기장을 나갔다.
이 교체 자체가 캐니 달글리시 감독으로서는 상당히 악수였던 것이, 캐롤이 교체되어 나간 것은 한순간 홈 관중이 그에게 집중할 만한 순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52,000 관중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야유, 손가락 욕설 등을 날리며 그를 조롱했고 캐롤은 결국 멘탈이 완전히 소멸하여 벤치에 앉지 않고 곧바로 경기장을 뛰쳐나갔다. 나가면서 유니폼을 벗어 땅에 내던지는 모습까지 카메라에 잡혔고, 심지어는 달글리시 감독에게 욕설을 했다는 이야기도 현지 언론을 통해서 나오고 있다.[10]
결국 안그래도 이적 이후 부진에 시달리던 캐롤이 이 경기로 인하여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러모로 이미 패색이 짙던 경기에서 굳이 그를 교체하여 선수에게 엄청나게 굴욕적인 순간을 만든 달글리시 감독의 판단이 아쉽다.
이래저래 그의 리버풀에서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아 보인다.

2.2.3. 끊이지 않는 이적설


11-12 시즌 말미에 그럭저럭 폼이 회복된 모습을 보여주어 리버풀 팬들의 희망고문으로 자리잡은 캐롤이었으나 그토록 그를 밀어주던 레전드 케니 달글리시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게 되고 새로 리버풀의 사령탑으로 자리잡은 브렌던 로저스 감독은 전술 스타일상 앤디 캐롤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액 주급자인 그를 팀에서 정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파리로 떠내보낸 AC 밀란, 전 소속팀인 뉴캐슬 유나이티드, 그 외의 아스톤 빌라웨스트햄 유나이티드같은 잉글랜드 클럽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적 당시 워낙 커다란 이슈를 몰고 왔던 캐롤인지라 다시금 이적설이 불거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각국의 기자들이 이 떡밥(?)을 가지고 이런저런 '''소설'''(!)들을 양산해 내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전 소속팀이었던 뉴캐슬과의 드라마틱한 재결합이 가장 큰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는 형국으로 보인다. [11]
하지만 리버풀 측에서는 임대는 있을 수 없으며, 적어도 20m 이상의 금액은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뉴캐슬 측에서는 13m 이상은 지불 할 마음이 없는 것으로 보여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다가 뜬금맞게 웨스트햄 임대 이적이 발표되었다. 임대료는 2백만 파운드. 임대 후 완전이적 조항이 걸려 있는데 이 경우 총 이적료는 1700만 파운드. 단 웨스트햄이 다음 시즌 프리미어 리그에 잔류한다는 전제 하에서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앤디 캐롤이 웨스트햄행을 거부하고 있어 팀 간의 합의만 이루어졌을 뿐 아직 협상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딜이 성사되고 최종적으로 1700만 파운드로 이적하게 된다면......
2012년 8월 30일 임대료 25억 완전이적 옵션 320억원 가량의 계약으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임대가 결정되었다.#

2.3.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2년 9월 1일, 시즌 개막전이자 웨스트햄 데뷔전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래도 첫 시즌에는 양호한 편이었다.
2013년 6월 6년 계약을 맺으며 웨스트햄으로 완전 이적. 이적료는 1500만 파운드 정도라고 한다. 14-15시즌에는 프리시즌에 발목을 다쳐서 전반기 3개월을 결장했는데, 2015년 2월 11일 사우스햄튼전에서 무릎 인대 부상을 당하면서 그예 시즌아웃. 임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웨스트햄 경기 중 선발 출전한 비율이 43.4%라고. 기사
기록은 12-13 시즌(임대) 26경기 7골, 13-14 시즌 16경기 2골, 14-15 시즌 16경기 5골, 15-16 시즌 36경기 9골.
팀내 주급 1위인데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결장하는 경기가 너무 많고, 골 수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2.3.1. 2015-16 시즌


프리미어리그 10라운드 첼시전에서 결승 헤딩골을 기록하면서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어냈다.
2016년 4월 9일 프리미어 리그 32라운드 아스날전에서 웨스트햄 이적 이후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승점 1점을 따내었다.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레스터 시티전에서 역전골을 기록했으나, 반칙으로 패널티킥을 내주고 말았으며 결국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2.3.2. 2016-17 시즌


2017년 1월 15일, 프리미어리그 크리스탈 팰리스 전에서 환상적인 발리골을 집어넣었다. 링크
이 경기 이후 인터뷰에서 팀 전체보다 중요한 선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디미트리 파예트를 저격하였다.
이후 결장은 부상으로 잦은 편이지만 나올 때마다 한 건씩 해주여 높은 득점 빈도를 나타내고 있다. 강팀잡기 웨스트햄의 공격수로 활약 중이다.
결국 16-17 시즌에 부상복귀한 이후로 리그에서 12경기(교체 3경기)에서 6골을 넣었다. 득점력이나 경기력은 준수한 편인데, 문제는 내구성이 영 아니다. 부상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 될 듯하다.

2.3.3. 2017-18 시즌


치차리토와 아예우에 밀려 백업 스트라이커로 밀려났고, 후반전 뒤지고 있거나 분위기 전환또는 뚝배기 전술 시에 교체로 자주 나오고 있다.
그러다 2018년 1월 3일 프리미어리그 21라운드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와의 경기에서 팀이 1-0으로 지고있는 후반 59분 애런 크레스웰의 택배크로스를 받아 헤딩으로 동점골, 90+4분에는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의 크로스를 각도가 좁았지만 자신의 약발인 오른발로 잘 밀어넣어 결승골을 넣었다.
또한 첼시가 알바로 모라타의 백업으로 영입명단에 올렸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있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부상중이어서 무산되었다.
이후 2018년 4월 16일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스토크시티전에서 후반전에 교체로 출전하여 부상에서 복귀하였고, 1대0으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후반전 추가시간에 동점골을 기록하면서 팀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내었다. 결국 1대1 무승부를 거두었다.

2.3.4. 2018-19 시즌


겨울 이적시장 때 뜬금없이 토트넘 이적설이 있었지만, 이적이 무산되었다.
시즌 내내 주전 공격수들에게 밀려 벤치만 달구거나 부상때문에 출장도 못하거나 허송세월을 보내다 결국 웨스트햄에서 캐롤을 자유계약으로 내보낼것임을 공식 발표하고 물론 본인은 웨스트햄과 함께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싶다며 재계약의 의지를 불태웠으나.. 시즌 종료후 가차없이 계약 만료로 방출되었다.
웨스트햄 입장에서는 팀의 주전 공격수를 상징하는 등번호 9번까지 안겨주고 뻥룡인다운 나름 고액 주급까지 얹어 계약해줬지만 나올때마다 어느정도는 해줘도 늘 부상으로 인해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기대 했던 만큼은 못 미치는 활약을 선보였던 선수.

2.4. 뉴캐슬 2기: 돌아온 탕아


계약 만료 후 한동안 팀을 찾지 못하다가... 여름 이적 시장 마지막 날 고향팀 뉴캐슬과 1년 계약을 맺으며 8년 반만에 블랙 앤 화이트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유리몸 선수답게 기본급이 높지 않고 출장수당 등 각종 옵션이 많이 붙어 있는 계약 구조라고 한다. 주급 구조가 매우 엄격한 뉴캐슬의 이적 정책상 캐롤 본인도 폼이 많이 죽었기에 주급이 낮춰져 가능했을 어찌 보면 씁쓸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귀향이다. 팬들은 과거의 원한이 있었다 해도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이 된 만큼 일단은 환영하는 반응이 많은 편이다.

2.4.1. 2019-20 시즌


시즌 초 부상 치료차 결장하다가 6라운드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과의 홈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며 복귀전을 치렀다. 홈 팬들은 열광적인 기립박수로 돌아온 탕아를 맞이했다. 이날 캐롤은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며 몸을 사리지 않는 백의종군의 모습을 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8라운드 맨유와의 홈경기에서도 후반 교체로 출장해 팀의 승리에 일조했다.
매번 교체로만 경기에 나오다가 15라운드 셰필드 유나이티드 원정경기에서 복귀 후 최초로 선발 출장했다. 경기 내내 감을 못 잡는 모습이었지만 70분 존조 셸비의 쐐기골을 머리로 어시스트하며 복귀 후 첫 공격포인트를 올렸고 바로 교체되었다. 팀은 0-2로 승리했다.
16라운드 소튼전에서도 날카로운 왼발 크로스로 셸비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18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홈경기에서는 조엘린톤과 투톱으로 출장했는데 전혀 공격에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티브 브루스 감독은 캐롤 대신 비교적 잘 해 줬던 조엘린톤을 교체시키며 욕을 먹었는데, 81분 캐롤이 미겔 알미론의 선제 결승골[12]을 머리로 어시스트하며 브루스 감독은 순식간에 갓동님이 되었다.
20라운드 에버튼전에서는 프리킥 상황에서 머리로 잘 떨궈주며 셰어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31라운드 아스톤 빌라전에서 만키요의 스로인을 안정감 있게 키핑한 후 중앙으로 쇄도해서 들어가는 게일에게 오른발로 크로스를 전달해서 네 번째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뉴캐슬은 캐롤의 활약이 준수했다고 평가했는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종료 예정이었던 캐롤과의 계약을 1년 연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2020년 6월 25일 1년 계약 연장에 서명하면서 20-21시즌까지 뉴캐슬에 남게 되었다.

2.4.2. 2020-21 시즌


17라운드 레스터전에서 상대 수비가 밀어낸 공을 환상적인 논스톱 발리슛으로 연결하며 추격의 득점을 기록했다. 무려 2년 9개월만에 나온 프리미어리그 득점이며, 뉴캐슬 소속으로는 10년 8일만의 득점이다.

3. 국가대표 경력


2020년 기준 9경기 출장에 2골을 득점했다. 2011년 가나와의 친선전에서 첫 득점을 했고 경기는 1대 1로 비겼다. 후에 유로 2012 조별그룹 스웨덴전에서 제라드의 크로스를 받아 멋진 헤딩골을 넣었다. 경기는 3대 2로 이겼다.
유로 2016 이후로 갑자기 화제중인데 뉴캐슬과 웨스트 햄 시절 감독과 선수로 인연이 있는 샘 알라다이스가 잉글랜드의 새로운 감독이 되었기 때문이다. 빅 샘 특유의 뻥축구 방식 때문에 이후 대표팀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중이었으나 서드 파티 스캔들로 사임해서 흐지부지됐다.

4. 플레이 스타일


일단 신체조건 부터가 몬스터다. 191cm의 키지만 온몸이 근육으로 뭉쳐져 있기 때문에 그것보다 훨씬 커보인다. 유소년 선수 시절에는 피터 크라우치를 연상시키는 깡마른 몸매였으나 단련을 통해 근육질이 됐다.
피지컬을 활용한 타겟맨 스타일의 선수로 공중볼을 따내는 능력이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최고이던 뉴캐슬 시절이 있었다. 헤딩능력은 어린 시절부터 돋보였으며, 박스 외곽에서도 머리로 위협적인 유효슈팅을 만들 수 있는 괴물과 같은 능력을 자랑하며 많은 활동량을 통해 동료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각성 후에는 스트라이커 특유의 "골냄새 맡는 능력"을 한 때 보유하던 시기가 있어서 이 때 기회창출도 많아지고 결정력도 엄청나게 좋아졌지만 이와 동시에 좀 무리한 각도에서도 슈팅을 시도하는 경향이 생기기도 했다.
순간 스피드는 빠르지 않지만 주력은 절대 나쁘지 않은 편으로, 일단 뛰기 시작하면 굉장히 먼 거리를 한순간에 돌파할 수 있다. 뉴캐슬 시절 자기가 찔러주고 자기가 뛰어가서 받아먹은 아스톤 빌라 FC 홈 경기 마지막 골이나 선더랜드 AFC전에서 하프 라인서부터 돌파하면서 상대 수비진을 초토화시킨 모습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 더불어서 왜 그런지는 도저히 모르겠지만 '''왼발 크로스가 굉장히 정확하다(...)'''. 어시스트 중에서 머리로 떨군것이 아니라 크로스를 올려서 만든 것이 적지 않다.
반면 일단 스트라이커로서는 필수적인 조건인 "퍼스트 터치"가 상당히 둔탁한 편으로, 위치는 잘 잡았으나 컨트롤을 못해서 놓치는 기회가 꽤 있다. 더불어 공중볼을 잘 따내긴 하지만 경합 상황에서 동료를 보는 눈이 아직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공격을 잇지 못하고 고립되는 경향이 있다. 슛도 파워는 세지만 임팩트가 좋지 않다. 침투능력도 교묘하지 않고 그저 힘으로 때우려는 성향이 강하다. 다만 이 힘으로 때우려는 능력 덕문에 어그로가 쓸려서 케빈 놀란이 득을 보는 효과가 있다.
뉴캐슬 시절에는 공격진영에 기술 좋은 동료들과 침투 능력 좋은 동료들이 많았고 중위권 팀이라 공격시에 공간이 있는 편이라 제법 잘 뛸 수 있었다. 그러나 리버풀 이적 이후 한창 성장해야 할 선수가 잘못된 이적 으로 극딜 당하며 성장을 못한 것도 모자라 스트라이커에게 필수적인 직감과 자신감이 바닥을 치면서 그저 그런 선수가 되고 말았다.

5. 여담


  • 희한하게 유독 프로레슬러와 닮은 사람이 매우 많다. 지금은 은퇴한 프로레슬러 에지와 매우 닮았고 또 프로레슬러인 드류 맥킨타이어와도 닮았다는 소리도 있다.(...) 그리고 또또(...) 프로레슬러인 보 댈러스와도 상당히 닮았다. 특히 웃는 얼굴이... 한편 웨스트 햄의 팬인 트리플 H는 하드웨어를 칭찬하며 프로레슬링하면 대성했을 거라고 발언했다.[13]

5.1. 사생활


커다란 덩치와 험상굳은 인상에 어울리는 여러가지 사건/사고 경력이 화려(?)하다.
2008년 9월 14일 술집에서 전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여자를 폭행하여 구속되었으나 훈방 처리되었다. 2009년 12월에는 마찬가지로 술집에서 시비가 붙은 남성의 머리를 술병으로 후려쳐 버렸다.(...) 2010년 10월에는 문제의 전 여자친구와 다시한번 폭행 사건이 나서 뉴캐슬 팬들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콩밥먹는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게 되는데...'''팀 주장 케빈 놀란의 집에 동거하는 걸 조건으로 보석되었고''' 그후 폭행 사건 재판은 증거불충분으로 끝났다.[14]
처음에는 무슨 이런 시트콤같은 판결이 다 있나 하고 어이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캐롤이 놀란을 형처럼 잘 따르고 놀란의 가족과 함께 안락한 분위기에서 갱생하면서 성격도 고치는 듯한 모습이어서 최근에는 이 둘의 "동거콤비"가 꽤 지지를 받고 있다. 동거가 시작한 지 며칠 후 전 여자친구의 친지로 추정되는 집단이 놀란의 집에 난입, 새로 뽑은 캐롤의 차를 불태운후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제 리버풀로 이적하면서 동거는 불가능할듯. 근데 웨스트 햄에서 다시 만났다.
[image]

그런데 이제 제라드와 동거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 하다.(...)
'''같은팀 선수하고도 치고받고 싸운적도 있다'''. 2008년 12월에는 훈련장에서 샤를 은족비아에게 "훈련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라는 이유로 시비를 걸어 싸웠다. 하지만 사실 당시 은족비아는 이적을 위해서 정말로 태업을 하고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팬들 사이에서는 "통쾌하다", "나같아도 한대 갈구고 싶겠다"라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2010년 초에는 훈련장에서 팀 동료이자 같은 유스팀 출신인 스티븐 테일러에게 날카로운 라이트 훅을 날리며 '''턱을 부러트리고 시즌 아웃시켜 버렸다.''' 처음에는 캐롤을 비판하는 여론이 많았지만 그 이후 골을 마구 집어넣기 시작하면서 이런 목소리는 사실상 사라졌고, 오히려 장기간 경기에 나서지 못한 피해자 테일러가 잊혀져 버리는 안습한 상황이 되었다. 루머에 의하면 싸움이 벌어진 이유가 테일러가 캐롤의 전 여자친구에게 음란한 문자메세지를 보냈기 때문이라는데, 여기 문제의 전 여자친구가 위 전 여자친구와 동일인물이라면 캐롤은 '''여자하나 제대로 잘못만났다.(...)'''
어린 딸이 하나 있는데, 이런저런 정황으로 비추어 볼 때 딸과 딸의 어머니와는 같이 살지 않는 것 같으며, 위의 여자친구하고도 다른 인물인 것 같다.
그리고 영국쪽 팬포럼에서 저녁만 되면 미친듯이 술 퍼마신다고 까는 사람들이 많은걸 보면 자기관리나 절제와는 거리가 있는 스타일인듯
하지만 확실히 30대에 들고 결혼하고 자녀를 가진지도 꽤 지난 후부턴 다행히 조용하다.

6. 같이 보기




[1] /ˈændruː ˈtɒməs ˈkærəl/ [2] 아래 서술되있듯이 뉴캐슬 인근에 위치한 도시이다.[3] 물론 저메인 데포라는 수준급 스트라이커가 뛰고 있지만 신체조건이 많이 아쉽고 나이가 꽤 있는 편이다. 게다가 루니는 잉글랜드가 바라는 전형적인 원톱형 공격수도 아니다.[4] 물론 AC 밀란에는 협상의 달인 갈리아니가 있었지만서도...[5] 물론 아데바요르는 빈민국인 고향 토고에 기부와 함께 돈욕심에 극성맞기로 악명높은 가족들의 독촉 탓에 항상 돈이 쪼들리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6] 국내에서 잘알려진 이영표의 경우 로마 이적을 거부하고 팀에 남았다가 쩌리 취급을 받았다.[7] 그러나 이영표의 경우, 이적에 거의 동의했고 로마에서도 그의 이적을 기정 사실로 믿고 대체자원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이영표가 기도를 했을 때 로마로 가지말라는 응답을 받았다는 이유로 갑자기 이적을 엎어버렸다. 그 때가 이적시장 마감기한이 다가온 시점이었다. 시점도 황당하지만 이유가 더 황당했으니 팀에서 이후 대우가 나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토트넘과 로마의 황당함이란.[8] 자세히 보면 CA££OLL이라고 쓰여있다.[9] BBC 해설자는 이를 두고 "역대 뉴캐슬의 위대한 스트라이커들과 리버풀의 위대한 스트라이커들이 공히 분노할 만한 한심한 작태" 라고 대차게 까댔다[10] "It's a f****** joke, f*** off"라고 했다고 한다[11] 특히나 리버풀은 과거 로비 킨 사기를 겪은 팀이기에 더욱...[12] 이 골은 알미론이 뉴캐슬에서 27경기만에 기록한 PL 데뷔골이기도 했다.[13] 여담으로 캐롤보다 앞서 리버풀에서 뛴 안드리 보로닌이 트리플 H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14] 체포 당시 캐롤이 진술한 주소지는 뉴캐슬의 호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