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농

 


大司農
한나라의 관직으로 9경(卿) 중 하나이다.
원래 진나라 때부터 설치되었는데 이때는 이름이 치속내사(治粟内史)였고, 이후 전한도 이를 계승하였다가 경제(전한) 때에 대농령(大農令)으로, 무제(전한) 때에 대사농으로 개칭하였다. 신나라 때 잠시 의화(羲和)라고 하였다가, 다시 납언(納言)으로 고쳤으나, 후한이 건국되고서 다시 대사농으로 환원되었다. 대농(大農)으로 약칭하기도 한다.
소부가 황실 재정 및 황제의 개인 재산과 황실의 기타 잡무를 담당하는 것과 반대로, 대사농은 국가 재정, 조정의 물자 관리를 관할하였다. 따라서 백관의 봉록, 군비, 각급 관부의 운영경비는 모두 대사농에게서 지출되었다.
전한시대의 속관으로는 태창(곡물 관리), 균수(물자 공급), 평준(물가 조절)[1], 도내(국고 관리)[2], 적전(황제 직할지의 재정관리) 등 4개의 부서가 있었다. 무제가 염철 전매를 관철한 이후로는, 이에 대한 관리 사무도 담당 업무에 추가되었다.
이후 후한시대에는 속관에 변동이 생겨서, 기존 업무중에서 염철 관련 사안은 해당 군현으로, 낙양의 시장과 형양의 오창 관련 사안은 하남윤으로 배속되었고, 균수 등의 업무는 폐지되었다. 태창, 평준의 업무는 유지되었으며, 어미(御米)를 담당하는 도관(導官)과 제사에 쓰일 희생물을 담당하는 늠희(廩犧)가 추가되었다.
한대 이후로 국가 재정 사무는 상서대의 주관 소임이 되었고, 각종 재정 및 물자의 관리 부서도 증설되었기에, 대사농의 업무는 축소되어 단순히 창고 관리의 수준으로 전락하였고, 실질적인 업무는 거의 없어졌다. 또한 기존 한대 대사농의 업무를 담당하는 관직의 아칭으로 쓰였다.

[1] 당나라 때 사마정(司馬貞)이 지은 『사기색은(史記索隱)』에 따르면 천하 군국 물자의 전운과 판매를 고르게 하여 비싸면 팔고 싸면 사들임으로써 귀천을 저울질하여 물자를 경사에 운반한다는 뜻이다.[2] 국가 소장의 화폐나 포백 등 재물을 관장하였다. 전한 후기 매년 백성에게서 징수된 세금(약 40억 전 추정)은 관리의 녹봉으로 지출하는 이외에는 모두 도내가 보관하였고, 한대 대사농이 소장한 돈을 도내전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