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이젤
1. 소개
ABA의 산 증인이자 80년대 덴버 공격농구의 절반까지 함께했던 덴버의 센터. 2번이나 팀의 감독을 역임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NBA 역대 최초의 8번 시드의 1번 시드 업셋을 이뤄낸 감독.
2. 대학 시절
댄 이젤은 일리노이에서 페인트업을 가업으로 삼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넓은 마당을 가진 집과 운동능력이 뛰어난 친구들을 어린 시절부터 만난 이젤은 일찍부터 스포츠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1]
일리노이 대학교와 위스콘신 노스 웨스턴 대학교 모두가 이젤을 노렸지만 이젤은 아돌프 럽 감독이 있던 켄터키 대학교를 택했다. 대학시절 감독이 '이 아이를 득점기계로 만들 것이다'라고 공언했을만큼 뛰어난 득점력을 보인 이젤은 사우스이스턴 컨퍼런스의 3개 타이틀을 학교에 안겨주고 졸업했고 그의 등번호 44번은 켄터키 대학교에서 영구결번되었다.
3. ABA 커리어
1970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ABA의 켄터키 코널즈와 NBA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관심을 동시에 받았는데 이젤은 대학이 위치한 켄터키를 선택하여 ABA에서 데뷔하게 되었다.
첫 시즌부터 평균 29.9득점이라는 놀라운 활약을 보인 이젤은 루키 시즌인 1970-71시즌에 ABA 올스타에 선정되었고 신인상도 수상했다. 이후 1971-72시즌부터는 평균득점을 30점까지 올렸고 1974-75시즌에 팀을 우승시키면서 ABA 챔피언이 되었다. [2]
ABA팀들은 모두 자금난에 시달리는 팀들이었고 켄터키는 팀 우승의 일원이었던 댄 이젤을 시즌이 끝나자 트레이드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젤은 볼티모어 클로로 트레이드되었고 트레이드되자마자 현금거래로 덴버 너기츠로 건너가게 되었고 데이비드 톰슨을 만나게 되었다.
ABA에서 6번의 올스타, 2번의 올 타임 세컨드 멤버, 1972년 올스타 MVP로 선정되면서 훌륭한 ABA 생활을 보냈다.
4. NBA 커리어
댄 이젤이 덴버에 합류하고 1시즌 뒤에 ABA는 NBA에 흡수되었고 댄 이젤은 덴버에서 9시즌 동안 평균 20.4 득점을 올리며 꾸준히 득점원이 되어주면서 팀을 위해 활약했다. 데이비드 톰슨(82년까지), 덕 모 감독, 알렉스 잉글리쉬, 팻 리버 등과 함께 1978년, 1985년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파이널까지는 가지 못하고 1985년 컨파에서 시애틀에게 패한 이후 댄 이젤은 은퇴했다. 이후 덴버의 황금기는 1990년 멤버들이 해산될 때까지 5시즌이 더 이어졌다.
댄 이젤은 27,000득점 이상을 기록하여 ABA/NBA 득점 종합 11위를 차지했고 15시즌 동안 24경기만을 결장하면서 'Horse'라는 별명을 얻었다. 은퇴 이후에는 켄터키를 빛낸 공로로 '켄터키 시민상'을 수상했다.
1993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덴버 너기츠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5. 감독 커리어
5.1. 감독 1기
은퇴 이후 켄터키에 있는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간 댄 이젤은 켄터키 지역 농구 해설에도 참여하다가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덴버 너기츠 방송사에서 중계를 맡았다.
1990년 덕 모 감독, 잉글리쉬, 리버가 전원 팀을 떠나면서 덴버는 처참한 암흑기로 굴러떨어졌고 1991년 데뷔한 디켐베 무톰보만이 힘겹게 팀을 지탱하고 있었다. 덴버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 코치 경력이 전혀 없는 댄 이젤을 감독으로 지명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1992년 감독으로 데뷔한 이젤은 92-93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으나 1993-94시즌에는 서부 8위로 가까스로 팀을 플레이오프로 진출시켰고 8번 시드가 NBA 역사상 최초로 1번 시드(시애틀 슈퍼소닉스)를 꺾는 기적을 일으키면서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1994-95시즌 때 플레이오프 진출을 끝으로 이젤은 고집불통스런 코칭 스타일 때문에 선수들과의 다툼이 잦아 34경기만에 물러났다.
5.2. 감독 2기
1999-00시즌 댄 이젤은 다시 덴버의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감독으로 있던 2시즌 모두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지 못했고 2001년 12월에는 샬럿 호네츠전 때 히스패닉에 대한 부적절한 언사로 공개 사과를 했으나 덴버의 히스패닉계 시민들의 항의로 본인 스스로 사임을 결정했다.
6. 은퇴 이후
2009년 이젤은 채권자에게 450만 달러를 청구당하면서 파산 신청을 했다. 이 과정에서 ABA 시절의 올스타 반지들이 전부 매각되었다고 한다.
이후 켄터키와 콜로라도 등지에서 석유, 가스 채굴 사업에 종사하다가 2018년부터 켄터키 지역의 농구 협회에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7. 관련 문서
[1] 이 시기 아버지의 친구의 아들이던 켄 앤더슨과 함께 놀았다고 하는데 켄 앤더슨은 후일 NFL 신시내티 벵골스의 레전드 쿼터백이 되며 프로볼 타이틀을 4개나 차지하는 선수가 된다. 그리고 술집에서 사귄 동네 친구 라이언 본 호프는 뉴욕 메츠 소속 마이너리그에서 데뷔하여 야구선수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2] 덴버 너기츠의 영구결번 7명 중 우승 타이틀이 있는 사람은 댄 이젤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