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슈퍼소닉스
1. 개요
미국 시애틀에 위치했던 NBA 팀.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던 강호였지만, 2000년대 후반 리빌딩에 돌입한 후 구장 보수를 둘러싸고 구단주와 시 당국이 갈등을 빚은 끝에 재창단하고 비슷하게 팀이 오클라호마 시티로 떠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가 되면서 사실상 팀이 사라진 상황이다.
2. 역사
소닉스의 25주년을 기념해 만든 다큐멘터리 비디오 (1991년 제작)
2.1. 창단부터 오클라호마 이전 전까지
1967년 로스앤젤레스 향토사업가 샘 슐먼과 유진 V. 클라인이 투자자를 모아 시애틀 지역에 팀을 만든 것이 시초다. 팀 명칭은 해당 지역의 보잉 사를 비롯한 항공기 공장이 많다는 점에서 착안을 했다고 전해진다. 초대 단장은 돈 리치먼, 감독은 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주전가드 알 비안치, 선수는 톰 매스체리, 밥 룰, 밥 와이스, 월트 해저드, 로드 쏜 등이었다.
초창기에는 당연히 약체였지만 1968년 애틀랜타 호크스에서 포인트가드 레니 윌킨스를 영입했고, 1969년부터 윌킨스가 감독까지 도맡아 팀을 지휘해 조금씩 팀이 신생팀의 티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1973년 보스턴 셀틱스의 전설 빌 러셀이 감독으로 임명되어 1975~1976년에 각각 두 차례 플레이오프에 연속으로 올랐다.
팀 우승 4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2019, KIRO 방영.)
마침내 NBA의 한 시대를 주름잡는 것은 1970년대 후반으로, 1977년에 졸리 볼초크 단장과 레니 윌킨스 감독이 각각 돌아와 중거리 슛에 능한 테크니션 백인 센터 잭 시크마, 2라운드 잭팟 슈터 데니스 존슨, '더 위저드' 거스 윌리엄스를 중심으로 한 벌떼농구 팀이 강호로 도약하여 1978년과 1979년에 NBA 파이널에 진출한다. 1978년에는 7차전 접전 끝에 워싱턴 불리츠에게 패하지만, 1979년에는 다시 만난 워싱턴에게 5차전만에 설욕하면서 마침내 창단 첫 우승에 성공했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 잭 시크마와 데니스 존슨, 폴 사일러스, 거스 존슨 등 1970년대 말 영광을 만들었던 세대들이 물러났고, 1985년에 윌킨스 감독도 단장으로 승진해 전 워싱턴 불리츠 코치 버니 비커스태프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대신 톰 챔버스와 'X-맨' 자비에 맥대니얼, 데일 앨리스 삼인방을 주축으로 평범한 성적을 내며 침체기를 맞이했다. 경영 면에서 보면 1983년에 슐츠먼 구단주가 지역방송 재벌 배리 액클리에게 팀을 팔았고, 1986년에는 전 새크라멘토 킹스 마케팅부사장 밥 윗지트가 단장이 되었다.
그러다가 살아난 것은 1989년 드래프트에 나온 탁월한 운동 능력의 소유자 숀 켐프와 1990년 드래프트 1라운드 2번 픽으로 뽑힌 오리건 주립대학교 출신 가드 게리 페이튼의 콤비, 이른바 '소닉-붐'(Sonic-Boom)이 시애틀을 이끌기 시작하였다, 1991/92 시즌 도중에 무명감독 조지 칼이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데틀레프 슈렘프, 샘 퍼킨스 등을 영입한 뒤 균형잡힌 속공 플레이로 1990년대 4차례 지구 우승을 차지하면서 서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도약했다. 하지만 1994년에는 정규시즌 1위를 차지[7] 하고도 PO 1라운드에서 8위 덴버 너기츠에게 패배해 사상 최초로 1위가 8위에게 잡히는 업셋을 당하면서 절호의 우승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고, 여느 플옵 단골팀이 그렇듯 '큰 경기에 약한 팀'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사실 이는 좀 억울한 평가인게 이 팀은 장점과 약점이 극명한 팀이었다. 90년대 소닉스는 슈퍼스타 듀오인 켐프와 페이튼을 중심으로 3-4번을 오가는 다재다능한 장신 포워드 데틀리프 슈렘프, 득점력이 좋은 살림꾼 가드 허시 호킨스 등 포워드와 가드진이 강한 벌떼농구를 펼치는 팀이었다. 문제는 센터. 94년 소닉스와 너깃츠 시리즈에서 평균 20분 이상 출장한 센터는 샘 퍼킨스 뿐인데 그는 206cm 단신에 골밑이 그리 강한 편도 아닌지라 센터 뎁스가 유난히 강했던 90년대엔 파워포워드가 딱 맞는 선수였다. (실제로 커리어 대부분을 4번으로 뛰었다) 스트레치 4번에 가까운 선수였는데, 워낙 센터 자원이 약한 시애틀에서 그를 센터로 기용한 것. 그 외에는 수비형 센터 어빙 존슨 정도가 있었는데, 그나마 사이즈는 되지만 다른 것이 기량미달인 평범 그 자체였다. 즉, 당시 소닉스는 '''센터가 없었다.''' 센터 시대에 센터 없는 농구를 하자니 애로사항이 꽃피웠고, 실제로 90년대 소닉스는 플레이오프 성적이 왔다갔다했는데, 자세히 보면 상대팀에 올스타급 이상 센터가 있으면 부진하는 경우가 많았다. [8]
반대로 상대 팀이 골밑이 약하다면 상성이 잘 맞았는데, 이 덕분에 에이스가 가드고 센터진이 형편없으며 골밑공격력이 없다시피한 시카고 불스를 상대로는 상성이 매우 좋았다. [9] 반면 골밑이 강한 팀을 상대로 외곽이 터지지 않으면 버벅거렸다. 문제는 94년 시리즈 당시 90년대 최강의 통곡의 벽이었던 디켐베 무톰보를 상대해야했던 것. 시리즈 통틀어 8분 뛴 잉여 어빙 존슨을 제외하면 로스터를 통틀어 208cm가 넘는 선수가 없던 소닉스에게 218cm 장신에 긴 팔, 최강의 수비력을 지닌 무톰보는 재앙이었고, 그는 이 시리즈에서 '''6.2개의 블럭슛'''을 기록한다.[10] 엄밀히 말하면 큰 경기에 약하다기보단 스몰라인업 팀의 극단적인 장단점을 보여주는 팀이었던 것이다.[11]
1995/96 시즌에는 역대 최다 승수인 64승을 올리며 17년만에 파이널까지 올라갔지만 이 당시 상대는 돌아온 그 분이 이끄는 정규시즌 72승의 시카고 불스(...). 시카고 불스를 상대로 나름대로 선전했지만[12] , 2승 4패로 패하면서 우승의 적기를 놓쳤고, 그 뒤로는 유타 재즈의 도약과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시대를 지켜보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 사이 2001년에 배리 액클리 구단주가 스타벅스 회장 하워드 슐츠에게 구단을 넘겼고, 2003년에 페이튼마저 밀워키 벅스로 떠났다.
팀의 마지막 불꽃은 2004-05 시즌에 레이 앨런과 랴샤드 루이스의 원투펀치를 앞세워 52승을 거두며 지구 우승을 차지한 것이 전부였으나 이 해 PO에서 팀 던컨이 활약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패하면서 사그라들었고, 리빌딩 모드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리빌딩 모드가 한창이던 시점에서 슐츠 구단주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키 아레나 보수'라는 카드를 꺼내 2006년에 시애틀 시 당국에 2억 5천만 달러를 요구했으나 시 의회가 이를 거절해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때 시 당국은 무리한 요구라며 일축했고, 이로 인해 찬반여론이 일어났으나 소닉스의 편은 많지 않았다. 주민투표로 결정해도 소닉스가 이기지 못할 거라는 의견[13] 도 나온 나머지 슐츠는 구단을 운영한 5년간 순손실만 600만 달러를 남기고 오클라호마 지역 사업가 클라이 베넷에게 팔았다.
그러나 베넷 역시 슐츠와 같은 생각이었는데, 역시 새 구장을 짓자고 "만약 요구가 묵살된다면 연고지를 옮기겠다."며 최후통첩 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한 시애틀 시의 답변은 "그래, 갈 수 있으면 가봐라"는 식의 의견으로 배째라를 시전했다. 만약 소닉스가 불스나 레이커스와 같은 빅클럽 또는 인기팀 레벨이라면 들을 수 없는 답변일 것이다.
결국 베넷은 구장 임대 계약이 남았던 상황에서 조기 이전을 위해 팀의 로고, 뱃지, 트로피를 비롯한 권리를 모두 시애틀 당국에 이전시켰고, 자신의 사업기반이자 NBA팀 유치에 적극적이던 오클라호마 시티로 연고 이전을 단행하게 되면서 팀의 역사는 사실상 단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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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케빈 듀란트와 러셀 웨스트브룩은 슈퍼소닉스가 드래프트에서 선발한 선수들인데 듀란트는 2007년 드래프트에 선발되어 루키 시즌을 시애틀에서 보냈고, 웨스트브룩은 2008년 드래프트에 선발되어 드래프트 당시 소닉스 모자와 유니폼을 착용했다. 이들은 구단의 연고이전 이후 오클라호마 시티 소속으로 정규리그 MVP에 오르며 최고의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래서 시애틀 농구팬들은 아직도 '''"오클라호마가 듀란트와 웨스트브룩을 훔쳐갔다"'''면서 분노하고 있다.
2.2. 재유치?
막상 NBA 팀이 진짜로 사라지자 꽤 많은 프로팀을 뺏겨본 프랜차이즈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애틀도 신생팀 창단 혹은 기존 팀의 연고지 이전을 통해 NBA 팀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가장 근접했던 시도는 전 소닉스 구단주 그룹의 일원이었던 스티브 발머가 2013년 새크라멘토 킹스의 연고 이전을 시도했는데, 전 NBA 스타 케빈 존슨이 시장으로 있는 새크라멘토 시의 필사적인 저지로 인해 결국 무산되고 말았으며 스티브 발머는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를 인수해 사실상 소닉스 재건에는 손을 떼었다.
그럼에도 시애틀 내에서 지속적인 재유치 운동이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시애틀을 연고로 한 타 종목 선수들이 지지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시애틀 시호크스의 쿼터백 러셀 윌슨과 코너백 리차드 셔먼 등이 소닉스의 재창단을 지지하고 나섰다.
2018년 10월 1일, WWE RAW에서 일라이어스와 케빈 오웬스의 세그먼트가 진행된 과정에서 평소와 같이 엘라이어스가 어그로를 끌다가 "존 시나와 바비 래쉴리가 팀을 맺는다는 말은 시애틀에 농구팀이 있다는 말처럼 어이 없는 소리다"는 말을 하자마자 관객들이 미친듯이 야유를 보냈는데 야유 받는게 일상인 엘라이어스와 케빈 오웬스도 뜻하지 않은 반응에 상당히 놀란 모습을 보였다. 야유 소리는 갈수록 커졌는데[14] 이 정도 수준의 야유는 최근 몇 년간 WWE에서 없던 것이다. 1분 20초부터 나온다. 이에 굴하지 않고 엘라이어스는 오클라호마는 말이 되는데 시애틀은 말이 안된다라며 한술 더 떠서 도발했고, 케빈 오웬스는 아예 "존시나는 항상 일을 망친다. 마치 시애틀처럼 그래서 너네가 농구팀이 없는거다!" 라며 관중들을 분노케 했다[15] .
2018년 10월 5일, 키 아레나에서 열린 새크라멘토 킹스와의 NBA 프리시즌 경기에서 10년전 소닉스에서 처음으로 데뷔했던 케빈 듀란트가 숀 켐프의 유니폼을 입고 소닉스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레니 윌킨스 등 소닉스의 영구결번 선수들도 초청을 받는 등 소닉스를 떠올리게 하는 여러 이벤트를 개최했다.
NBA 사무국은 2025년까지 신규 구단 창단을 보류할 예정이라 소닉스의 부활은 더 기다려야할 듯 한데, 부활이 현실화될 경우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강력한 라이벌리 형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16]
현재는 WNBA의 시애틀 스톰이 소닉스가 떠난 이후 2번을 우승하면서 시애틀의 농구팀으로서 자리잡고 있으며, 프리시즌 경기도 스톰의 마크가 새겨진 코트 위에서 했다.
3. 영구 결번[17][18]
소닉스의 영구결번은 다음과 같다.
- 1. 거스 윌리엄스(Gus Williams)
- 10. 네이트 맥밀란(Nate McMillan): 1986년부터 1998년까지 선수,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감독으로 소닉스에서 활동한 '소닉스 맨'. 6'5''의 신장으로 슈팅 가드나 스몰 포워드 역할을 맡았다.
- 19. 레니 윌킨스(Lenny Wilkens): 1969년부터 1972년까지는 선수 겸 감독으로, 1977년부터 1985년까지는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1979년 소닉스가 NBA 파이널에서 우승하는데 공헌했다.
- 24. 스펜서 헤이우드(Spencer Haywood): 고교 졸업 후 Hardship Draft의 창설 계기를 제공한 주인공. 케빈 가넷의 선구자같은 인물이다. 이 인물은 1970년 당시 신생 스포츠 업체였던 나이키의 최초의 운동선수 광고모델로 유명한데, 나이키가 출연료로 제시한 나이키 사의 10%의 지분을 거절하고 일시불로 10만 달러를 받았고, 억만장자가 될 기회를 화끈하게 날려 버렸다. 당연히 아직까지도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19]
- 32. 프레드 브라운(Fred Brown)
- 43. 잭 시크마(Jack Sikma): 1979년 우승의 주역이었던 백인 센터. 원조 스트레치형 빅맨으로 빼어난 풋워크와 3점 슛까지 가능한 긴 슈팅 레인지가 특징이었다. NCAA 3부 리그 소속의 약체 대학교인 일리노이 웨슬리언 대학교 출신으로 NBA 명예의 전당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 Microphone. 밥 블랙번(Bob Blackburn) : 1967년부터 1992년까지 소닉스의 전담 캐스터로 활동하신 분. 2010년도에 작고.
4. 역대 G 리그 산하팀
[1] NFL 시애틀 시호크스, MLB 시애틀 매리너스와 공용[2] 마지막 구단주임.[3] 마지막시즌 단장임.[4] 마지막시즌 감독임.[5] 현재 소닉스의 영구결번 배지는 시애틀 시가 소유권을 가져감으로써 시애틀 박물관에 보존해 버렸지만 후신격인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는 이전부터 연고지를 옮겼어도 쭉 자리를 지켜오며 2019년에 영구결번된 닉 콜리슨 혼자뿐이다.[6] 위에 언급된 게리 페이튼의 경우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기도 하며 당연히 영구결번 받을 만한 활약을 펼쳤으나 그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이 되기 전에 팀이 사라지는 바람에 (다른 팀에서도 뛰긴 했지만 영구결번될 정도의 활약을 한 팀은 없다) 어느 팀에서도 영구결번을 받지 못하고 붕 떠버렸다. 물론 소닉스가 부활한다면 1순위로 영구결번 될 것이 유력하지만...[7] 63승 19패, 당시까지 프랜차이즈 최다승 기록.[8] 올스타급 이상 센터가 있는 팀을 이긴 적이 두번 있었는데 93년과 96년 로키츠였다. 93년에는 간발의 차이로 이기긴 했으나 하킴에게 평균 4.3블럭을 허용하는 등 전혀 제어하지 못했다. 사실 하킴은 무서운 실력과 별개로 "사이즈 큰 정통센터"와는 거리가 좀 있긴 했다.[9] 96년 불스는 전 시즌 준우승팀 올랜도 매직을 스윕해버리고 동부 플레이오프에서 닉스에게 연장전 끝 1패를 했다. 그런 불스에게 2승이나 하고 3차전을 제외하면 매번 접전을 펼친게 소닉스.[10] 덴버는 2연패 후 3연승했는데, 무톰보는 3~5차전에서 각각 블럭슛 6개, 8개, 8개씩을 기록했다.[11] 실제로 스몰라인업은 공격이 터지면 정말 무섭지만 터지지 않고 사이즈 큰 정통센터를 만나면 부진하는 경우가 많다. 빅3 시절 마이애미가 유독 인디애나의 로이 히버트에게 약한 것도 마찬가지 원리.[12] 이때 불스는 전시즌 준우승팀이자 60승팀인 올랜도 매직을 플레이오프에서 4대0으로 발라버릴 정도였으니 2패를 안긴거면 정말 선전한 거다.(나머지 1패는 숙명의 라이벌인 뉴욕 닉스) 불스가 3대0으로 앞서다가 2연패를 당하자 유명 해설자 밥 코스타스가 "누군가 슈퍼맨(조던)의 망토를 잡아당기고 있는데 그게 게리 페이튼이다"라고 했을 정도.[13] 왜 경기장 때문에 투표를 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국에서는 홈구장 건설에는 세금이 쓰여지고, 이는 곧 세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이는 대단히 중요한 절차이다. 실제로 과거에 각 종목의 구단들 역시 시민 투표로 유리한 결과를 끌어모은 사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1991년에 텍사스 레인저스가 새 구장을 짓기 위해 당시 구단주인 조지 워커 부시가 '세금 인상'을 들고 나섰다. 그는 알링턴 시를 압박해 찬반투표 캠페인을 벌여 새 구장을 짓기 위해 세금을 인상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알려진 바에 따르면 텍사스 구단이 당시 구장을 짓기 위해 받은 보조금은 약 2천억 원 정도였다.[14] 일라이어스가 "마이크 소리좀 올려! 들리지 않잖아!"라고 할 정도로 엄청났다.[15] 그나마 그 떠난 팀이 성적도 형편없는 듣보잡이라면 모르겠는데 플레이오프에 나갈 만큼의 강팀으로 바뀌었으니 시애틀 시민들 입장에서 보면 뒷목 잡을만한 일이다.[16] 특히 NFL의 인디애나폴리스 콜츠가 볼티모어에서 당했던 것처럼, 썬더 선수들과 팬들도 시애틀 원정을 올 경우 엄청난 야유와 비방 등이 예상된다[17] 현재 소닉스의 영구결번 배지는 시애틀 시가 소유권을 가져감으로써 시애틀 박물관에 보존해 버렸지만 후신격인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는 이전부터 연고지를 옮겼어도 쭉 자리를 지켜오며 2019년에 영구결번된 닉 콜리슨 혼자뿐이다.[18] 위에 언급된 게리 페이튼의 경우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기도 하며 당연히 영구결번 받을 만한 활약을 펼쳤으나 그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이 되기 전에 팀이 사라지는 바람에 (다른 팀에서도 뛰긴 했지만 영구결번될 정도의 활약을 한 팀은 없다) 어느 팀에서도 영구결번을 받지 못하고 붕 떠버렸다. 물론 소닉스가 부활한다면 1순위로 영구결번 될 것이 유력하지만...[19]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에도 나오지만 84년 당시 슈퍼스타들이 신발계약으로 받던 액수가 10만 달러였던 데다가 당시 나이키는 NBA 공식 후원 운동화이자 매직, 버드 등 슈퍼스타들이 모두 신던 컨버스, 조던의 1순위 메이커였던 아디다스 등에 밀리던 작은 회사인데다가 테니스화가 주력이었다. 그런 회사이니 별 비전이 없어보였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