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켐베 무톰보

 

'''애틀랜타 호크스 No.55'''
'''덴버 너기츠 No. 55'''
'''이름'''
'''디켐베 무톰보 무폴론도 무캄바 장자크 와무톰보'''[1]
'''(Dikembe Mutombo Mpolondo Mukamba Jean-Jacques Wamutombo)'''
'''생년월일'''
1966년 6월 25일 (57세)
'''국적'''
[image] 콩고민주공화국, [image] 미국
'''출신지'''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
'''출신학교'''
조지타운 대학교
'''신장'''
218cm
'''체중'''
118kg
'''포지션'''
센터
'''드래프트'''
'''1991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4순위
덴버 너기츠 지명'''
'''역대 소속팀'''
'''덴버 너기츠 (1991~1996)'''
'''애틀랜타 호크스 (1996~2001)'''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2001~2002)
뉴저지 네츠 (2002~2003)
뉴욕 닉스 (2003~2004)
휴스턴 로키츠 (2004~2009)
'''등번호'''
'''55번'''
'''수상내역'''
NBA 올스타 8회 (1992, 1995-1998, 2000-2002)
'''올-NBA 세컨드 팀 (2001)'''
올-NBA 서드 팀 2회 (1998, 2002)
'''NBA 올해의 수비수상 4회 (1995, 1997-1998, 2001)'''[2][3]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3회 (1997-1998, 2001)'''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 3회 (1995, 1999, 2002)
NBA 올-루키 퍼스트 팀 (1992)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5)'''
'''1995년 NBA 올해의 수비수상'''
하킴 올라주원

'''디켐베 무톰보'''

게리 페이튼
'''1997~1998년 NBA 올해의 수비수상'''
게리 페이튼

'''디켐베 무톰보'''

알론조 모닝
'''2001년 NBA 올해의 수비수상'''
알론조 모닝

'''디켐베 무톰보'''

벤 월러스

[image]
'''애틀랜타 호크스 영구결번'''
'''No. 55'''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image]
'''디켐베 무톰보'''
헌액 연도
2015년


1. 개요


'''MT. MUTOMBO '''
콩고민주공화국(구 자이르) 출신 미국의 前 농구 선수이자 그리고 현역 시절에는 NBA판 통곡의 벽이었던 전설적인 수비형 센터. 역대 최고의 수비수가 누구냐는 논쟁에 항상 언급되는 디펜스 스페셜리스트다. 93-94 시즌부터 95-96 시즌까지 3시즌 연속 블록 슛 1위를 차지하였다. 통산 블록슛 기록도 3289개로 하킴 올라주원(3830개)에 이은 2위.


2. 생애



2.1. 어린 시절


1966년 6월 25일자이르의 수도 킨샤사에서 10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학교 교장이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에는 성적이 상위권이었으며, 원래 꿈은 의사였다고 한다.
그리고 스포츠 중에 축구를 좋아했고, 학창 시절에는 골키퍼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형은 디켐베와 함께 아버지에게 논의해본 결과 "축구보다는 농구가 낫겠다."라고 하면서 농구를 택하게 되었다.
그는 피나는 연습을 통해 농구 실력을 점점 향상시켰고, 마침내 20살에 형과 함께 자이르 청소년 국가 대표팀에 뽑히게 되었다.

2.2. 대학 시절


[image]
어느 날, 그의 활약을 눈여겨본 미국 대사관 직원이 무톰보의 시합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를 조지타운 대학교 감독인 존 톰슨 주니어에게 보냈고, 이를 본 톰슨 감독은 무톰보를 입학시키게 한다.
1987년에 무톰보는 조지타운 대학교에 입학하긴 했지만, 1학년 때는 영어를 못 하는 바람에 농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NCAA에서는 기준 학력에 도달하지 못하면 어떤 스포츠에도 참가를 못한다.[4] 한편 고등학교 때 공부를 못해서 아예 NCAA에서 못 뛴 선수들도 있었는데 바로 숀 켐프케빈 가넷이다. 켐프는 성적은 못 땄지만 농구 명문교인 켄터키 대학교에 진학해 농구는 안하고 두달 있다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커뮤니티 칼리지[5]로 전학, 농구는 안하고 한 학기 다니다 이후 NBA로 진출했고, 가넷은 아예 진학 자체를 안해 20년만의 첫 고졸선수가 됐다.[6]
그러나 그는 공부에 매진하여 언어학과에서 학위를 땄고, 그 결과 영어 외에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하게 되었다[7]. 그와 동시에 농구 실력도 향상되어 2학년 때부터 활동을 시작, 첫 해에는 1경기당 평균 3.6점, 2년차에 10.7점, 그리고 졸업하던 해에 15.2점을 올림으로써 NBA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끌었고, 1991년에 NBA 드래프트에 신청하게 된다.

2.3. 현역 시절



2.3.1. 덴버 너기츠


[image]
덴버 암흑기의 에이스 무톰보
1라운드 4순위로 지명받고 입단했다.[8] 당시 덴버 너기츠는 알렉스 잉글리시, 키키 반더웨이, 대니 쉐이즈 등 공격농구의 주축들이 떠난 뒤, 성적이 하위권을 맴돌고 있었다. 그는 데뷔 첫 해에 올스타에 출전해 승승장구했고, 프로 데뷔 3년차인 1993-94시즌에는 댄 아이슬 감독의 지휘 아래 라폰소 엘리스[9] - 마무드 압둘 라우프[10], 로버트 팩[11] 등과 함께 42승 40패로 플레이오프에 8번 시드로 출전, 1라운드에서 1번 시드[12]시애틀 슈퍼소닉스를 5차전까지 끌면서 3승 2패로 이김으로써[13][14] '''8번 시드의 기적'''을 이루었으나, 2라운드에서는 유타 재즈에게 7차전에서 패배했다.
[image]
역스윕 승리 후 행복해하는 디켐베 무톰보

1994-95시즌에도 2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처음으로 올해의 수비수상도 받는 등 쾌거를 누렸지만,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1라운드에서 패배, 1995-96시즌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이후 자유계약으로 애틀랜타 호크스로 이적한다.
데뷔 직후인 1991시즌에는 마이클 조던과의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사실 무톰보도 경기장에서는 얌전하지 않은 야수였고, 블록 슛 성공 뒤 검지 손가락을 흔들며 상대를 도발하는 걸 즐기던 선수였다. 그런데 루키시절 원정온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을 상대로 파울을 한뒤 프리드로우 라인에서 "아무리 당신이더라도 눈감고 자유투를 던지진 못할걸?"이라고 트래쉬 토크를 시전했다. 그러자 마이클 조던은 이에 웃으면서 뭐라고 대꾸하고선 '''눈을 감고 자유투를 적중시킨다'''. 보통은 "이건 널 위한거야"[15] 라고들 하지만 저 당시 실제로는 무톰보에게 전설의 명언인 'Welcome to the NBA'라 말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16]
그러나 이렇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마이클 조던이 "네가 덩크나 레이업 슛을 넣으면 소원 하나 들어주지!"라 먼저 도발했다.5분50초부터

2.3.2. 애틀랜타 호크스


[image]
호크스 이적 뒤, 무키 블레이락, 앨런 핸더슨, 크리스찬 레이트너, 스티브 스미스와 함께 우승 대권에 도전하려 했으나, 마이클 조던이 이끄는 무적함대 시카고 불스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97년 시즌 동부 5위로 진출하여 4위팀 그랜트 힐이 이끄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이기고 올라갔으나 세미 파이널에서 불스에게 패배하여 시즌을 마감했으나 올 NBA 디펜시브팀, 올해의 수비선수상, 올스타 등 무톰보에게는 잊을 수 없는 시즌이다.
1998년 시즌 동부 4위로 진출했으나 이번에는 작년과는 반대로 글렌 라이스, 앤서니 메이슨, 블라디 디박의 샬럿 호네츠에게 업셋을 당하여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1999년부터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로 2000-01 시즌 도중에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3.3.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image]
당시 부상으로 트레이드된 테오 라틀리프의 대타로 출전해 개인 통산 4번째 DPOY를 차지했다. 2001 NBA 파이널에도 출전했으나, 아쉽게도 샤크-코비 콤비가 이끄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 시리즈 스코어 1-4로 패하고 만다. 골밑에서 혼자 처절할 정도로 몸싸움을 벌이며 샤크를 막아보려했으나, 샤크는 손쉽게 골밑을 유린했다. 무톰보는 파이널이 끝난 후 만신창이가 되어 한동안 입원해야 했다고(...). 결국 다음 시즌이 끝나고 뉴저지 네츠로 이적했다.

2.3.4. 뉴저지 네츠


[image]
네츠에서 골밑보강을 위해 영입되었지만, 그는 팀플레이 적응 실패와 노쇠화로 인해 부상을 당하는 등 부진에 시달림으로써 얼마 못 뛰고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되었다.

2.3.5. 뉴욕 닉스


[image]
전보다 더 나은 적응력과 실력을 보여줬지만, 당시 인기 상승중인 나지 모하메드 때문에 입지를 잃고 휴스턴 로키츠로 트레이드된다.

2.3.6. 휴스턴 로키츠


[image]
로키츠에서는 야오밍의 백업센터로 활약, 출장시간은 많지 않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실력을 선보임과 동시에 야오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고, 2009년을 끝으로 정든 코트를 떠나게 되었다.[17]
2번의 NBA 파이널(2001 필라델피아, 2003 뉴저지)을 경험했으나 아쉽게도 우승과 연을 맺지는 못했다.


3. 기타


1997년에 내전 중으로 인해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비극을 계기로 무톰보는 미국으로 돌아와 '디켐베 무톰보 재단'을 세워 의료지원 등 수많은 사회사업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병원까지 지었다.
2015년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15-16시즌 도중 애틀랜타 호크스 구단은 그를 영구결번했다. 미국 TNT의 농구관련 방송 Inside the NBA에서는 무톰보의 영구결번을 기념하여 패널들[18]이 현역시절 무톰보에게 블락을 먹던 영상을 편집해서 틀어줬다. 기사
블락을 하고 나서 상대에게 검지손가락을 흔들면서 No No No라고 하는 특유의 도발이 있었다. Inside the NBA에서 케니 스미스가 이를 성대모사했는데 아프리카 출신 특유의 걸쭉한 발음을 잘 살렸다. 후대 NBA 선수들도 이 세레모니를 종종 따라하곤 하는데, 서지 이바카는 블록에 성공한 후 코트 사이드에서 관전하던 무톰보를 향해 이 세레모니를 하기도 했다. 마이클 조던이 무톰보에게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하고 역으로 무톰보에게 손가락을 흔드는 영상도 유명하다. 중국의 농구선수 지저(吉喆)는 트레이시 맥그레디에게 손가락을 흔들었다가 팔꿈치에 얻어맞았다.
크리스 락이 2008년 미국 대선기간에 자신의 쇼에서 오바마를 디스하면서 띄워줬는데, '버락 오바마'라는 이름은 미국에서도 엄청 흑인스러운 이름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디켐베 무톰보'와 동급이라고...
2013년 방한한 적이 있다. 디켐베 무톰보 방한 인터뷰
나름대로 인기있던 선수라 본인의 이름을 딴 시그내쳐 농구화 'Mutombo'가 있었다. 나름대로 선수와 어울리는 이미지였지만 시장 트렌드와 맞지않아 인기는 없었다.
아프리카 출신답게, 정확한 나이를 알 수없다. 찰스 바클리는 2007-08시즌 당시 (생일이 안 지나서) 만 41세이던 무톰보가 50세[19]라고 특유의 떠벌이 기질로 호언장담했으며, 많은 이들이 무톰보가 등록된 나이보다 최소 몇 살은 많다고 의심을 해왔다.
그러나 무톰보 본인은 등록된 66년생이 진짜 나이가 맞다고 해왔으며, 2007년에 이에 대해 불쾌감을 공개적으로 표한 적이 있다.[20] 사실은 무톰보 본인은 10년 넘게 계속된 이 의혹에 대해 그냥 웃어넘겼지만 (2007년 기준으로) 몇 년전부터 부인이 "(나이 의혹이) 너무 오래 지속된 것 같다"면서 데이빗 스턴 총재에게 그만해달라고 요청하라고 했다고 한다.
또한 9살이던 딸 캐리조차 이에 대해 얘기한다며 "아이들은 이게 농담인지 아닌지 몰라요. 저는 신경쓴 적이 없습니다만, 제 아내, 특히 제 딸이 질문을 하자 신경 쓰이기 시작하는군요. 딸 아이가 경기 도중 제가 음성 메시지를 남겨서 '아빠, TV에서 아빠 나이 얘기해요. 하나도 안 웃긴데요'라고 하더군요"라고 밝힌 적이 있다.
애초에 나이 의혹이 생긴 건 그가 나이에 비해 겉늙었다는 것과 출생 기록이 허술한 아프리카 출신이란 것 때문이지 무슨 근거가 있는 주장은 아니다. 실제로 그의 커리어를 보면 다른 66년생들에 비해 노쇠화 과정이 오히려 더 늦다.(30세 전후에 전성기, 35세에 올해의 수비수상을 마지막으로 수상하고 이후 하락세. 42세에 은퇴) 본인도 싫어하고 근거도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니 그냥 이런 게 있었다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게 좋을 듯.
목소리가 쿠키 몬스터와 비슷, 아니 똑같다. 그리고 약간 듣다보면 울림성음이 츄바카와도 비슷하다.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지미 키멜 쇼에는 유명인들이 자기를 향한 악플 트윗을 읽어보는 유명 꼭지 'Mean Tweets' 가 있는데, Mean Tweets NBA편[21] 무톰보도 출연했다. 이 때 무톰보가 읽은 자기를 향한 악플은 "혹시 쿠키 몬스터 성우가 죽어도 아무 걱정 없음. 디켐베 무톰보가 백업으로 대기중이니깐." 이었다(...). 읽고 복잡한 표정으로 'that's funny'한 무톰보가 하이라이트.
2016년 드래프트가 시작되기도 전에 "필라델피아가 1번 픽이야!!"하고 기뻐하는 트윗을 올렸다가 잽싸게 삭제했다. 그리고 "필라델피아가 확률이 제일 높아서 당연히 1번 픽이 될 줄 알고 나도 모르게 섣부르게 트윗을 올렸다. 하지만 필라델피아가 1번 픽을 가져가면 좋겠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식서스는 정말 무톰보의 예언대로 1번 픽을 얻게 되는데 그게 벤 시몬스다.
유달리 신발장수한테 얻어맞은 적이 많다. 조던과의 눈감고 자유투도 유명한 일화고, 무톰보가 조던에게 "넌 내앞에서 단 한번도 덩크를 성공시킨 적이 없지." 라고 말하자 경기에서 곧바로 무톰보 면전에서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꽂는 등 유독 조던과 굴욕적인 일화들이 있다.[22]
아들 라이언 무톰보도 농구선수의 길을 걷고 있다. 포지션은 아버지와 똑같이 센터. 조지아에 위치한 로벳 고등학교에서 평균 24점 12리바운드 4블록슛을 기록하며 여러 대학의 제의를 받았고, 결국 조지타운 대학교를 선택했다. [23]
[1] NBA 역사상 가장 긴 이름이다.[2] 커리어를 보면 기묘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 디펜시브 플레이어를 받은 1995년 디펜시브 세컨드팀이다(..)[3] 이건 NBA의 시상 체계 때문인데, 디펜시브 팀/올NBA팀 투표는 감독들이 하고, 올해의 수비수/MVP는 기자단이 한다. 물론 아무 기자나 하는게 아니고 오랜 경력을 지닌 어느 정도 권위가 있는 스포츠 기자들을 전미 지역에서 선정해 투표권을 주는 것. 보통 압도적인 선수가 있으면 그 선수로 표가 몰리지만, 이 해의 무톰보나 데이빗 로빈슨처럼 둘 다 너무 뛰어나 격차가 미미한 선수들이 있으면 이렇게 차이가 나기도 한다. 게다가 센터 포지션은 자리가 하나 뿐이니...60년대에 빌 러셀과 윌트 체임벌린도 마찬가지로, 러셀이 MVP를 탔는데 체임벌린이 퍼스트팀에 선정된 바 있다. 다만 당시는 MVP를 다른 선수들이 선정.[4] 이전 서술을 바로잡자면 학업 성적 미달은 Redshirts에 해당하지 않는다. 해당 항목을 보면 공부 외에 부상으로 수업은 참가하지만 운동을 못해서 스스로 1년을 더 다니거나(예, 스티브 커 - 1년 더 다니며 활약한 덕에 NBA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나마 뽑힐 수 있었다. 그는 고교 졸업 기준으론 NCAA에서 스카우트를 거의 못 받다시피한 선수였다), 칼리지 풋볼의 경우 복잡한 전술을 익히고 몸도 키울겸 쿼터백들을 Redshirts 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True Freshman과 Redshirted Freshman으로 별도로 표기한다.[5] 미국의 지역별 단기대학으로 실용적인 지식과 기술을 교육하는 학교다. 학비가 저렴하고 이 학교에서 취득한 학점은 4년제 대학 편입시 인정되는 장점이 있어 미국 현지 학생들이나 한국 유학생들이 이 학교에서 교양과목과 전공기초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편입하기도 한다. 커뮤니티 칼리지로만 구성된 체육리그도 있다.[6] 그의 성공으로 인해 많은 고졸 선수들이 프로에 직행하는 유행을 나았다. 성공한 케이스도 있지만 높은 순위로 선택받았음에도 인성 문제, 기량 미달 등으로 인해 실패한 케이스도 적지 않으며 결국 NBA는 대학교 1학년을 무조건 마치고 프로에 지망할 수 있게끔 규정을 변경했다.[7] 원래 의사지망생이던 성적 상위권 학생이었으니..[8] 1순위 래리 존슨(샬럿), 2순위 케니 앤더슨(뉴저지), 3순위 빌리 오웬스(새크라멘토), 5순위 스티브 스미스(마이애미), 7순위 룩 롱리(미네소타), 9위 스테이시 오그먼(애틀랜타) 등이 지명됐다.[9] 스몰포워드 겸 파워포워드[10] 포인트가드, 본명은 크리스 잭슨이나 수니파 무슬림이 되면서 이름을 바꿨다.[11] 슈팅가드[12] NBA 전체 승률 1위(62승 20패)였다.[13] 문단 위의 사진이 당시 포스트시즌 사진이다.[14] 당시 무톰보의 활약은 놀라웠는데, 시리즈 평균 무려 '''6.2블럭'''을 기록했다. 특히 3연승을 거둔 마지막 세 경기에서 6개, 8개, 8개를 기록하며 소닉스의 공격을 봉쇄했다. 당시 소닉스는 평균 105점을 넣던 팀이었으나 이 시리즈에선 평균 득점이 10점이나 내려간 95점에 그쳤다.[15] This one's for you[16] 이 사건은 nba 내에서 전설적인 일화중 하나라서 이후 슬램덩크 풍전고교vs북산고교 전에서 오마주하기도 한다.[17] 철저하게 망한 뉴저지 시절과 다르게 이때 부활에 가깝게 쏠쏠한 활약을 보인 것은 무톰보의 스타일 때문이다. 무톰보는 218cm의 거구로 인해 막강한 골밑수비력을 자랑했지만 발이 상당히 느렸고,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이 약점은 더욱 두드러졌다. 그러나 뉴저지는 제이슨 키드가 지휘하는 막강 속공이 가장 큰 장점인지라 느린 무톰보가 빛을 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휴스턴은 무톰보 못지 않게 느린 야오밍을 중심으로 공수전략이 짜여져 있기 때문에 무톰보가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18] 샤킬 오닐, 찰스 바클리, 케니 스미스[19] 만약 이 주장대로라면 무톰보는 (당시 생일이 지났다고 치면) 최소 58년생으로 바클리는 물론이고 그보다 반 세대 정도 위인 래리 버드, 케빈 맥헤일, 매직 존슨 또래란 말이 된다. 또한 NBA에 데뷔할 당시 이미 웬만한 사람들은 은퇴할 34세였단 소리. 물론 신빙성이 높은 설은 아니다.[20] http://www.espn.com/nba/news/story?id=2735070[21] 영상 1분 50초 마지막 등장.[22] 사실 조던의 성격 자체가 공격적이기 때문에 기싸움을 하면 반드시 갚아주는 걸로 유명하다. 덩크 관련해서는 97년 올스타전 당시 경기를 준비하면서 무톰보가 덩크를 먹은 적이 없다고 하자 조던이 "말도 안되는 소리 마. 최근에는 너 위에 덩크한 적이 없지. 그건 인정해"라고 하는데, 굳이 "스카티 (피펜) 불러와서 물어봐"라고 하며 끝까지 기싸움을 했다가 다음에 붙었을때 덩크를 먹은 것. 다른 선수들도 이런 조던의 성격에 많이 당했는데 데니스 로드맨의 경우 조던의 레이업을 한번 블럭했다가 잔뜩 약오른 조던에 의해 같은 경기에서 세번이나 블럭당한 적이 있다.[23] 레전드 센터인 패트릭 유잉이 교편을 잡고 있는 것이 라이언의 선택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