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포이
Δελφοί, Delphi[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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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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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로 오라클과 신탁으로 유명하다. 교역로 근처 파르나소스산에 자리잡은 요충지기도 했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은 기원전 8-6세기 폴리스 성립기에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과 델로스의 아폴론 신전과 함께 그리스의 종교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델포이가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어느 날 문뜩 제우스는 세상의 중심이 어딘지 궁금해져 세상의 양쪽 끝에 서서 독수리 두 마리를 날려보냈다. 양쪽 끝에서 출발한 독수리가 서로 마주친 장소가 바로 델포이였다고 한다.
제우스는 델포이가 세상에 중심이라는 뜻으로 옴팔로스(Ομφαλος)[8] 라는 석상을 세웠다. 옴팔로스는 델포이 이외에도 발견이 되었는데, 신전 혹은 성스러운 장소를 표시하는 이정표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 신화는 한 가지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 델포이가 있는 파르나소스산이 당시 그리스계 주민들이 사는 영역의 대충 중심부쯤 된다는 것. 신들이 산다는 올림포스산은 발칸 반도의 북쪽에 있는데, 이런 먼 거리가 신성함을 강조했다. 그 대신 올림포스산은 그리스 세계의 중심이 될 순 없었고, 파르나소스산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델포이의 더 오래된 이름은 푸톤(Πυθών)이라고 한다. 신화에서 델포이에 살았다는 거대한 이무기 퓌톤의 이름이 여기에서 나왔다. 푸톤이라는 지명은 아마도 '바닥, 깊은 곳'을 뜻하는 듯한데, 파르나소스산에 둘러싸인 지형을 반영한 것 같다.
2. 델포이의 신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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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델포이는 무엇보다 신탁으로 유명했다. 폴리스에서 온 수많은 왕과 현자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신들의 뜻을 알기 위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으로 몰려들었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은 1년 중 가장 따뜻한 9개월 가량만 열렸다고 한다.[9] 신탁도 매번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지라 아폴론 신전이 열린 동안 신탁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무척 붐볐다고 한다. 최초에는 매년 1회씩 신탁을 받았으나 훗날엔 매달 한 번씩 신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신탁을 받기 위해선 도시국가의 대표 개인 상관없이 패리노스[10] 라는 세금을 내야 했다.
신탁을 받는 과정 또한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먼저 성역에 들어가기 전에 카스텔리아 샘[11] 에서 몸을 깨끗하게 씻어야만 했다. 그 다음 패리노스를 지불하고 양 같은 희생 제물을 바친 뒤 예언받고 싶은 사항을 석판 따위에 적어서 신관에게 건냈다. 이렇다 보니 예언은 아무나 의뢰할 수 없었고 보통 국가 차원에서 대표자를 보내어 나라의 중대한 결정사항을 물어는 것이 대부분이였다. 그 외에도 왕가에서 예언을 의뢰하는 일이 흔했다. 질문과 그에 대한 신탁 내용이 기록으로 좀 남아있는데, 초기에는 주로 국가적인 질문들이었고 답변도 상세하였으나 리디아의 신탁을 기점으로 점차 개인적인 질문과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변해갔다고 한다.
아폴론 신전은 도리스 양식으로 건축했는데 전실ㆍ후실ㆍ신실로 총 3개 방으로 나뉘었다. 신실의 제일 안쪽에 아폴론 신의 여사제이자 예언자인 피티아[12] 가 다리가 3개 달린 삼발이 솥 위에 앉아 예언을 했다고 한다[13] . 현재는 크게 파괴되어 기둥 3개만 남았다.
신전 터 앞에는 높이 3 m짜리 제단이 있는데 페르시아로부터 해방 된 히오스 섬 주민들이 세웠다. 제단 앞에는 거대한 아폴론 신상이 있었던 대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예언이 시작되는 신실 안쪽은 아디톤(Άδυτον)[14] 이라 하여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었다.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피티아 여사제와 예언을 기록하는 신관뿐이었다.[15] 피티아가 예언을 하면 신관[16] 이 받아 적어 예언을 의뢰한 인물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피티아는 50대 즈음 여자가 선출되어 맡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린 소녀가 맡았는데 트라키아인 한 명이 그 소녀를 겁간한 후 신의 분노를 사서 노인들로 대체되었다는 전승이 있다.
피티아의 예언은 아주 난해하고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얼마나 애매했는지는 델포이의 신탁 참고. 영어단어 중에도 Delphic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애매하다.'는 뜻이다.
유럽에 그리스도교가 퍼지면서 델포이 신전도 폐쇄되고 신탁도 중지되었다. 폐쇄 직전 마지막으로 나온 신탁은 4세기 중엽 반그리스도교 정책을 시행한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가 받은 것이라고 한다.
Tell the emperor that my hall has fallen to the ground. Phoibos no longer has his house, nor his mantic bay, nor his prophetic spring; the water has dried up.
내 궁전이 땅으로 추락하였다고 황제에게 전하라. 포이보스(아폴론의 별칭)는 더이상 그의 집에도, 예언의 샘에도, 예언의 월계수에도 기거하지 않노라. 물은 이미 말라버렸느리라.
3. 신탁은 진짜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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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제 피티아의 예언능력에 관해서는 말이 많다.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설은 바로 '가스로 인한 환각'이다. 피티아 여사제의 발 믿으로는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고 하는데, 이것이 유황(또는 에틸렌) 가스라 피티아가 맡고 환각에 취해 예언했다는 것.
또 델포이 근방에 있는 도시가 바로 영화 300으로 유명한 테르모필레인데, 테르모필레는 예부터 유황온천이 유명한 곳이였다. 테르모필레란 지명부터가 '뜨거운 입구'란 뜻인데, 유황온천이 많은 지역으로 가는 입구였기에 붙은 지명이다.
4. 피티아 제전과 폴리스들의 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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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는 그리스의 모든 국가들이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비록 모든 폴리스들이 각자의 개성과 특징 그리고 정체성이 있었는데, 델포이는 이들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장소였다. 델포이에선 4년에 한 번 올림피아 제전처럼 범그리스적인 제전이 열렸는데 바로 피티아 제전이다. 이곳에 모든 폴리스가 모여 태양빛의 신 아폴론이 거대한 괴물 뱀 퓌톤을 죽인 것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제전이었는데, 마치 올림피아 제전처럼 함께 운동경기를 하고 연극을 관람했다고 한다. 스타디움과 김나지움 그리고 그리스식 극장 역시 델포이에 유적으로 잘 남았다.
피티아 제전은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뒤로도 쭉 열려서 424년까지 이어졌다. 가장 오래된 제전 기록이 기원전 580년이므로 최소한 천 년 가까이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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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아테네인들의 금고이다.
피티아 제전 유적과 신전 이외에도 남은 유적이 있는데 바로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자신들의 보물을 저장해둔 금고들이다. 그리스의 각지에서 모인 폴리스들은 신성한 델포이에 자신들의 보물을 바치고 또 저장해 두었다. 이곳에서 나온 유물들은 현재 델포이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델포이 신전을 올라가는 길목 길목에 있는 유적들 대부분이 그리스 폴리스들의 금고이다. 현재 가장 멀쩡하게 남은 아테네의 금고가 유명하고, 한때 가장 화려했다는 시노프스인들의 금고 또한 매우 유명하다. 현재 시노프스의 금고는 기둥 몆개와 터만 남아 있지만 델포이 박물관에서 금고를 장식했던 부조물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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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폴리스들의 부를 보여주는 금고는 아폴론 신전을 향해 올라가는 신성한 길 옆에 나란히 세워졌다. 신전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금고 의외에도 델포이의 옴파로스[17] 델포이의 청동 기둥이 있다. 이스탄불에 다녀왔다면 이 기둥을 보고 좀 놀랄 수도 있는데 이스탄불의 히포드럼 광장에도 완전히 똑같이 생긴 기둥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둥은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 전쟁 중 그리스가 페르시아에게서 크게 승리한 플라타이아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18] 으로 페르시아군으로부터 노획한 청동무기들을 녹여서 만들어 델포이에 바쳤지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약탈해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가져가 히포드럼 광장에 세운 것이다. 즉, 현재 델포이에 있는 청동기둥은 복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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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뱀 3마리가 빙빙 꼬여 올라가고 머리 3개 위에 피티아의 상징인 삼발이 솥과 황금잔이 올려진 기둥이었다고 한다. 삼발이 솥과 황금 잔은 일찍이 사라졌지만 뱀머리는 비교적 최근까지 남아있었다. 이 기둥이나 이스탄불에 있는 기둥이나 머리가 없는데 이스탄불의 히포드럼 광장의 기둥에 뱀머리가 없어진 이유가 상당히 황당하다. 오스만 제국의 폴란드 대사가 술에 취해 히포드럼을 돌아다니다 이 뱀 기둥을 보고 괴물로 착각해 칼을 뽑아 목을 댕강 날려버렸다는 것. [19] 이를 반영했는지 델포이에 있는 기둥도 머리가 없다...
5. 델포이 박물관
델포이의 유물들을 상당수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델포이 유적밑에 지어진 박물관이다. 중요한 유물들로는 피티아의 삼발이 솥, 쿠로스(Κούρος) 석상,델포이의 옴팔로스, 옴팔로스를 받치고 있던 기둥으로 추측되는 무희의 원기둥, 낙소스의 스핑크스와 전차를 모는 전사 청동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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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있는 쿠로스 석상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의 석상으로 여기에 내려져오는 신화가 있다. 형제의 어머니는 헤라 신전의 여사제였는데 어느 날 헤라 신전에 급히 갈 일이 생겨 소달구지를 탓으나 소가 밭에 나가 제시간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를 보던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는 직접 멍에를 차고 소달구지를 끌었다고 한다. 두 자랑스러운 아들의 착한 마음에 감복한 어머니는 헤라 여신에게 '두 아들을 가장 행복한 장소로[20] 보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두 아들은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고 한다...가장 행복한 장소 즉 천국으로 간 셈... 이 신화 외에도 두 형제의 쿠로스는 고고학적으로도 매운 중요한데 바로 두 석상에서 또렸이 보이는 아르카익 미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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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 박물관에서 또 다르게 눈에 띄는 유물이 있으니 바로 낙소스의 스핑크스이다. 참고로 보통 스핑크스라 하면 대부분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 있는 스핑크스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이게 진짜 스핑크스이다. 본디 스핑크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이고, 이집트에 있는 스핑크스는 후대 그리스인들이 이 괴물을 이름을 따 붙인 것이다.[21] 이 스핑크스는 그리스 낙소스섬의 대리석을 깎아 낙소스 인이 바친 물건으로, 원레는 높은 기둥 위에 있었다. 스핑크스 밑에는 글귀가 있는데[22] 바로 낙소스인에게 주어진 특권에 관한 것이다. 낙소스인들은 델포이가 지어질 때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델포이는 낙소스인들에게 그 어떤 폴리스보다 제일 먼저 피티아의 예언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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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제일 안쪽에는 청동상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전차를 모는 전사상으로 그 시대에 만들어진 청동상들 중 가장 상태가 양호하다고 한다. 드래스단 묘사와 섬세한 발 근육, 말 고삐를 잡은 손과 팔 근육 묘사가 매우 섬세하게 묘사된 작품이다. 스페인의 한 의상 디자이너는 1907년에 이 청동상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아 델포이 가운이라는 옷을 디자인해 유럽 전역에 유행시킨 적이 있었다. 여담으로 이 청동상의 발굴에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델포이 유적이 발견되었을 당시 유적 위에는 마을이 있어 사람들이 살았다. 발굴작업을 시작되자 유적 위에 살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원하던 원치 않던 이사를 갔다. 그중 한 할머니는 가족 대대로 살아온 집을 떠날 수 없다며 알박기를 시전했다. 나중에 할머니가 죽고 나서야 그 집에서 발굴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 그 집 밑에서 나온 유물이 바로 이 청동상이었다고 한다.
6. 관광
이처럼 신화적 역사적으로 유명한 장소이다 보니 당연히 관광객으로 사시사철 붐빈다. 델포이 유적과 박물관 이외에도 가볼만한 장소로는 델포이 유적이 위치한곳 바로 아래에 있는 아라호바 마을이 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촬영지이기도 하며, 아라호바 마을은 그리스인들이 스키를 타러 파르나소스 산을 찾을때 묵어가는 마을이기도 하다. 아라호바의 명물로는 마을 특산물인 파스타와 마늘소스와 함께나오는 대구튀김이 있다. 관광지인 만큼 소매치기도 많으니 주의.
델포이에서 조금 더 가면 바위산위에 세워진 수도원, 메테오라가 나온다. 보통 델포이에서 갔다가 메테오라를 방문하는 일이 흔하다.
참고로 아테네에서 편도 4시간이 걸리는 먼 동네이기에, 아테네 당일치기는 추천하지 않는다는 평이 많다.
7. 관련 문서
[1] 현대 그리스어, 라틴어로는 델피라고 읽는다. 영어로는 델피, 델파이 두 가지 발음이 있다. 한국에서 부르는 '델포이'는 고전 그리스어의 발음이다.[2] 혹은 포키스[3]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4]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5]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6]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7]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8] 그리스어로 배꼽이라는 뜻[9] 디오니소스는 아폴론과 마찬가지로 예언과 치유의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아폴론과 함께 델포이 신앙에서 중요한 신격이었다. 3월부터 10월까지 델포이 신전에는 아폴론과 그 추종자들이 머물렀고, 아폴론이 델포이에서 잠시 떠나는 11월부터 2월까지는 디오니소스와 그 추종자들이 머물렀다고 한다.[10] 보통 금으로 바쳤다.[11] 지금도 물이 샘솟는다.[12] 신화에 따르면 아폴론이 죽인 괴물 뱀 퓌톤의 아내의 이름이 바로 피티아였다고 한다. 아폴론은 퓌톤의 곁에서 떠는 피티아에게 자비를 배풀어 인간으로 만들고 자기 신전의 여사제로 삼았다고 한다[13] 그리스어로 델피키 트리포데스(Δελφικοί τρίποδες)라는 물건으로 현재 델포이 박물관이 보관 중이다[14] '출입금지'라는 의미. 로마 신전에도 아디툼(Aditum)이라고 같은 명칭으로 불리는 곳이 있었다.[15] 혹은 퓌티아만 들어갈 수 있고 신관은 아디톤 밖에서 기록했다는 말도 있다.[16] 델포이의 신관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저자 플루타르코스가 있다.[17] 이 옴파로스는 가짜로 진짜는 박물관에 있다. 가짜는 그냥 옴파로스의 원래 위치를 표시하기위해 새워둔 것이다.[18] 그래서 기둥 밑에는 페르시아 전쟁에 참여한 31개 폴리스의 이름이 적혔다고 한다.[19] 뱀의 머리 일부는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20] 혹은 최상의 행복을 누리게 해달라고 [21] 이집트에서는 스핑크스를 '왕의 형상'이리는 뜻으로 '셰셰프 앙크'라고 불렀다[22] "ΔΕΛΦΟΙ ΑΠΕΔΩΚΑΝ ΝΑΞΙΟΙΣ ΤΑΝ ΠΡΟΜΑΝΤΗΙΑΝ ΚΑΤΤΑ ΑΡΧΑΙΑ ΑΡΧΟΝΤΟΣ ΘΕΟΛΥΤΟΥ ΒΟΥΛΕΥΟΝΤΟΣ ΕΠΙΓΕΝΕΟΣ" 대략 '델포이는 낙소스인 들에게 프로만테이아를 준다 집정관 테오리토스와 에피게네스 시대 이후로'라는 뜻. 프로만테이아는 여사제 피티아가 주는 특권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