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에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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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Robert Evans
1930년 6월 29일 뉴욕 출생
2019년 10월 26일 사망
1. 개요
2. 배우로서의 커리어 시작
4. 이후
5. 사생활
6. 미디어매체


1. 개요


할리우드의 레전드 영화 제작자 악마의 씨, 러브 스토리, 대부, 차이나타운의 제작자로 유명하다.

2. 배우로서의 커리어 시작


원래 로버트 에반스는 영화와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었다. 자기 형인 찰스 에반스와 여성의류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로스엔젤레스 비버리 힐즈 호텔에서 수영하던 중 할리우드 여배우였던 노마 셰러[1]와 극적으로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된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중 노마 셰러는 당시는 세상을 떠난 MGM의 영화제작자로 무성영화시대부터 레전드였던 자신의 남편 어빙 탈버그 역으로 영화에 출연해 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의를 한다 이 제의를 받아들여 영하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에 출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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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세기 폭스사의 제작담당 대릴 재넉에게 발탁되어 헤밍웨이가 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 역으로 출연할 기회를 얻는다. 이 촬영을 위해 멕시코로 갔는데 기존에 캐스팅된 에바 가드너, 에롤 플륀같은 배우들은 이 신인배우를 별로 탐탁치 않게 봤고 심지어 헤밍웨이조차 안좋게 봤다고.
자기들끼리 파티를 열면서 에반스를 초대하지 않고 영화사에 로버트 에반스가 페드로 로메로로 나오는건 재앙이라고 단체 전보를 치는 등 촬영기간내내 거의 왕따처럼 지냈다고 한다.
결국 대릴 재넉이 촬영지인 멕시코로 날아왔고 자신이 에반스가 투우사를 연기하는 걸 본 뒤 "이 녀석은 영화를 계속 촬영할꺼야. 그리고 누구든 맘에 안드는 사람있으면 관둬도 좋아.(The kid stays in the picture.[2] And anybody who doesn't like it can quit.)"라는 말을 남긴다. 이후 논란 종료.

3. 파라마운트 픽처스에서


로버트 듀발, 프랭크 시나트라 주연의 영화 형사(1968) 판권에 대해 구입을 하며, 당시 걸프 웨스턴 인더스트리가 파라마운트 픽처스를 소속되면서 새로운 제작자를 찾을 무렵에 잠시 뉴욕 타임즈에서 기고하면서 활동 중에 파라마운트 측에서 스카우트를 하게 된다.
그는 CEO로 재임하면서 파라마운트 픽처스를 다시 부활시키는 데 공을 세운다. 악마의 씨, 대부(영화), 차이나타운(1974), 러브 스토리 등의 영화들을 성공시킨다. 그 뿐만 아니라 감독들을 파라마운트와 계약을 한 다음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일할 수 있게 했다.
1974년. 스스로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물러났다.

4. 이후


1980년대 들어서서 코카인 복용 등 사생활 관리 실패하면서 침체기에 들어서게 된다.
오랜동안 뇌졸증을 앓기도 했다.

5. 사생활


결혼을 무려 7번을 하였으며, 기간도 3년 이하를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코카인 밀매 혐의로 재판 받기도 했다.

6. 미디어매체


배리 레빈슨이 연출할 <프란시스 앳 더 갓파더>에서 제이크 질렌할이 맡는다.#

[1] 1902~1983. 캐나다 출신의 여배우로 대표작으로 이혼녀, 마리 앙투아네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42년에 20세 연하의 스키강사와 결혼으로 은퇴하게 된다.[2] 나중에 자신의 자서전 제목이자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