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월폴
[clearfix]
1. 개요
영국 최초이며 의원내각제의 최초 수상. 오포드 백작 로버트 월폴.
2. 생애
잉글랜드 동부의 노퍽 출생으로, 1701년에 하원의원이 되었고, 조지 1세의 지시로 남해거품사건등을 비롯하여 경제문제등을 해결지어 두각을 나타내 해군장관 등을 역임하며 휘그당원으로 활약하였다.
1715년에 10월 제1재무경(First Lord of the Treasury)[3] 겸 재무장관(Chancellor of the Exchequer)[4] 이 되었으나 외교정책면에서 대립, 1717년 물러나서 반(反)정부적 태도를 취하다가, 1720년 남해거품사건을 계기로 재등장하여 사후처리에 비상한 수완을 발휘함으로써 명성을 떨치고, 다시 제1재무위원(재1재무상, First Lord of the Treasury) 겸 재무장관 겸 하원의장이 되었다.
처음으로 수석 장관(Chief minister)이 의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책임내각제를 확립하였으며,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영국의 초대 "수상(Prime Minister)"으로 간주된다. 관습법 국가인 영국에서 오랫동안 "수상"이란 직위는 없었다. 다만 First Lord of the Treasury 직에 있는 인물을 수상이라 부를 뿐이었다.[5] 이 직함은 1714년 10월 신설되었고, 월폴은 3대, 6대가 된다.
그 후 1742년 총선거에 패하고 물러날 때까지 약 20년간 정권을 유지하였다. 그 동안 그의 휘그당 정권은 국왕과 의원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 그 이후로도 30년간 안정되게 집권하였다.
[1] 백작 본인에 대한 경칭[2] 1st Earl of Orford[3] 원래 영국왕의 최측근으로 왕국의 재무를 담당하는 대신이였다. 이 자리가 지금의 영국총리로 바뀐거다. 현재도 관습적으로 영국총리가 이 직위를 영국여왕의 신하로서 겸직하게 된다.[4] 영국왕의 신하로서 전통적 직위인 Second Lord of the Treasury(제2재무경)을 겸직하게 된다. 원래는 Lord High Treasurer의 1인자가 영국총리, 2인자가 재무대신으로 발전된것이다. 그렇기에 관저도 총리와 재무장관이 같이 붙어있다.[5] 사실 이것도 100% 지켜진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대 피트"(재임 : 1766~1768)는 후임 수상이 되는 그래프턴 공작에게 이 직함을 던져버렸으며, "솔즈베리 후작 로버트 게스코인세실"은 이 직위 없이도 수상직을 수행한 대표적 인물(외무장관)이었다. 다만 게스코인세실 수상은 거의 유일한 케이스에 가깝고, 게스코인세실 수상에게 이 자리를 물려 받은 아서 벨푸어가 수상 직에 오르면서 1897년부터 현재까지 모든 현직 수상은 이 직함을 계속 가지게 된다. # 물론 이 직위의 재무적 실권은 초기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