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브리튼 왕국
1. 개요
'''Kingdom of Great Britain'''[1]
제임스 1세의 집권 이후 동군연합 상태던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을 합쳐서 1707년 5월 1일 앤 여왕 시기에 성립된 국가다.
2. 구성국
그레이트브리튼이 성립될 시기에 가까웠던 1700년 잉글랜드, 웨일스의 인구는 5,600,000명, 스코틀랜드의 인구는 1,000,000명으로 합쳐서 6,600,000명이었다.[2]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폐지될 시기에 가까웠던 1800년 잉글랜드, 웨일스의 인구는 9,300,000명, 스코틀랜드의 인구는 1,600,000명으로 합쳐서 10,900,000명이었다.[3]
잉글랜드의 수도였던 런던은 1600년에 인구가 200,000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했고 그레이트브리튼이 성립되었던 1700년에는 580,000명, 폐지될 시기였던 1800년에는 870,000명으로 증가해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가 되었고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핵심적인 도시로 기능했다.
3. 무역
잉글랜드의 역사적인 무역 활동 등의 내용은 잉글랜드/무역 참조.
4. 인구
1750년을 기준으로 영국의 지역별 인구는 다음과 같다.
5. 체제
두 국가는 공동의 군대와 의회를 두기로 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따로 존재하던 귀족 작위도 통합 이후 서임된 귀족부터는 그레이트브리튼 귀족으로 서임되었다. 법률은 스코틀랜드 법체계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1705년에 선출된 잉글랜드, 웨일스 출신 서민원(하원) 의원들 513명은 남은 임기를 그대로 이어갔지만, 독립국으로서의 마지막 선거가 1702년이었던 스코틀랜드 출신들은 1707년부터는 45명만이 통합 의회 의원이 될 수 있었다. 귀족원도 마찬가지여서 잉글랜드, 웨일스 출신 귀족원 의원 168명에다가 스코틀랜드 출신 귀족 16명[4] 이 편입되는 형식으로 통합 귀족원이 출범했다. 1797년 제18대 총선거를 마지막으로 1801년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출범에 이른다.[5]
6. 역사
이 시기 조지라는 왕호의 국왕들이 연달아 즉위해서 조지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에서 초기 7년의 앤 여왕 치세를 제외하면 조지 1세~3세가 다스렸다.
산업 발전이 급격해지기 시작했고 7년 전쟁에서 프랑스의 식민지들을 점령해 본격적으로 대영제국이 시작되기도 했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도 이 때였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발발한 미국 독립전쟁으로 인해 13개 식민지가 독립해 나가기도 했다.
1800년 아일랜드 연합법이 성립되면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속국이던 아일랜드 왕국도 합쳐져 1801년 1월 1일에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되었다.
[1] 연합왕국(United Kingdom)을 국호에 내건 것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성립한 1801년이다. 다만 영국인들도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한다.[2] 참고로 당시 아일랜드 왕국의 인구는 1,900,000명이었는데, 1801년까지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는 일단 별개의 나라였으므로 각주 처리한다.[3] 참고로 당시 아일랜드 왕국의 인구는 5,200,000명.[4] representative peer. 스코틀랜드 귀족 총원은 154명이었는데 인구 비례 등에 맞춰 그 중 일부를 호선해 16명만 귀족원 의원으로 보낸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일랜드 왕국을 합병한 후에도 아일랜드 귀족들끼리 호선해 28명만 귀족원에 대표로 보냈다) 이 제도는 1963년에서야 폐지되고 모든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토니 블레어 내각의 1999년 귀족원 개편 때까지 귀족원 의석을 가지게 된다.[5] 현대까지 이어지는 제57회 영국 총선 같은 대수는 1801년부터 계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