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이라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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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4]
1.1. 선수 생활
1.1.1. 클럽
이라녜타의 커리어는 멘도사#s-2.2의 아구스틴 알바레스 국립 학교의 클럽에서 시작되었다. 그 당시 클럽의 회장이자 이라녜타를 발견했던 프란시스코 모야노는 클럽을 강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고 그의 형제 리토를 포함, 여러 우수한 선수들을 스카웃하여 30년대에 4차례 멘도사 지역 리그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런 이라녜타의 활약에 아르헨티나의 한 명문팀이 손을 내밀었는데 아버지[5] 가 이라녜타의 이적을 반대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라녜타가 은행에서 일하면서 일요일에만 축구를 하길 바랐다. 결국 리버 플레이트는 이라녜타 대신 브루노 로돌피를 영입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라녜타는 1939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1.1.2. 국가대표팀
1934년 월드컵 당시 이라녜타는 19살이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펠리페 파스쿠치가 이라녜타를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하여 멘도사 리그 유일의 대표팀 멤버가 되었다.[6] 처음에는 클럽에서 반대했지만 FIFA의 결정으로 이라녜타는 이탈리아에 갔고 스웨덴을 상대로 대표팀에 데뷔이자 고별전을 치렀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좋은 테크닉과 매우 빠른 스피드, 훌륭한 골결정력을 가진 센터 포워드. 센터 포워드이면서 아웃사이드 포워드처럼 플레이했다고 한다.
3. 여담
- 이라녜타는 1934년 월드컵 출전 선수 중 최연소 선수였다. 그에 걸맞게 아르헨티나 대표팀 내 월드컵 최연소 출전 기록도 72년간 가지고 있었다. 현재의 기록 보유자는 리오넬 메시이다.
4. 수상
4.1. 클럽[7]
- 멘도사 리그 우승 4회: 1931, 1933, 1937, 1939
- 멘도사 리그 준우승 4회: 1932, 1934, 1936, 1938
- 코파 콤페텐시아 우승 2회: 1933, 1938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이라녜타는 힘나시아 이 에스그리마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4] 출처: 위키피디아, 11v11[5] 이라녜타의 아버지는 순수 바스크 인으로 매우 완고한 사람이었다고 한다.[6] 이후 스웨덴 월드컵에서 프란시스코 롬바르도가 멘도사 리그 출신 월드컵 대표팀 멤버가 된다.[7] 이라녜타는 힘나시아 이 에스그리마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