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 라이니거
1. 개요
'''Charlotte "Lotte" Reiniger'''
샤를로테 '로테' 라이니거. 흔히 로테 라이니거라고 부른다.[1]
로테 라이니거는 독일의 영화 감독이자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어머니이다. 1889년 6월 2일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1981년 6월 19일 튀빙엔의 근교 데텐하우젠에서 사망하였다.
2. 생애
베를린의 샤를로텐부르크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어릴적 중국에서 온 연극단이 하던 그림자극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자기가 직접 인형과 무대등을 만들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고. 이후 영화에도 큰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조르주 멜리에스, 파울 베게너 등 거장들 밑에서 일하며 실력을 쌓았다. 부모님도 설득해 당시 여성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영화 제작자로 커리어를 쌓게 된다.
파울 베게너의 팀에 합류하게 된 이후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그녀의 실험적인 작품들은 인정받아 문화정책위원회(Institut für Kulturforschung)에 초청받았고 거기서 후일 남편이 되는 카를 코흐와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 여러 예술가들을 만나게 된다.
1919년 그녀는 감독으로서 첫번째 작품, 사랑에 빠진 심장의 장신구(Das Ornament des verliebten Herzens)로 좋은 평을 받으며 영화계에 정식 입단하게 된다. 이후 여러 단편 영화들을 공개했으며, 프리츠 랑의 유명 작품인 니벨룽엔(Die Nibelungen)의 특수효과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독일의 수많은 영화계 인사들과 조우하면서 서로의 기법, 새로운 기술 등을 공유하고 인맥을 다졌다.
그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천일야화에서 이야기를 따와 제작한, 1926년의 아흐메드 왕자 이야기(Die Geschichte des Prinzen Achmed)로, 사실상 실루엣 애니메이션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1초당 24프레임에 무려 65분이나 하는 완전한 작품이며, 인류에게 있어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로테 라이니거는 십년은 더 일찍 월트 디즈니나 어브 아이윅스보다 먼저 다면촬영 기법을 사용해 그녀의 작품들을 촬영했다.
아흐메드 왕자 이야기의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후에 다수의 장편 영화들을 제작해나갔다. 닥터 두리틀과 그의 동물들(Doktor Dolittle und seine Tiere, 1928), 행복을 쫓아서(Die Jagd nach dem Glück, 1929), 어린이와 마법(The Child and the Bewitched Things, 1925) 등이 이 시기에 포함된다. 영국의 문학계와도 교류를 하면서 1931년에는 라이니거의 작품들에 대한 소개 및 비평집이 영국에 출판되기도 하였다.
1930년대 나치가 독일의 정권을 잡자, 좌파 정치계에 속했던 로테 라이니거와 그녀의 남편 카를 코흐는 해외로 이민가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어느 나라도 그들에게 장기거주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아,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여러 나라들에서 단기 체류를 해가며 옮겨 살게 된다. 그 와중에도 그들의 창작 욕구는 꺾지 못했고 파리와 로마의 예술과들과 협력하여 오페라에서 영감을 얻은 카르멘(1933)과 파파게노(1935)를 제작한다. 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라이니거 부부는 친구였던 루키노 비스콘티의 집에 머물렀으며 전쟁이 끝나자 베를린으로 귀국하였다.
1949년에는 런던으로 이민가 영국에서 활동하였다. 그녀는 1972년 독일 영화상을 수상하고 1981년 독일 정부로 부터 독일연방공화국 공로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녀는 82세의 나이로 1981년 6월 19일 데텐하우젠에서 숨을 거두었다.
3. 기타
2016년 6월 2일 구글은 그녀의 출생 117주년을 기려 특별 로고와 동영상을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