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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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tz Lang
1890.11.5.– 1976.8.2.
오스트리아의 영화감독. 본명은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안톤 랑(Friedrich Christian Anton Lang). 출신지는 빈(오스트리아)으로 부모는 보헤미아 왕국 출신이었다고 한다.
1910~1940년대 활동하던 거장감독이자 독일 표현주의 선구자이자 무성영화 후기와 유성영화 초창기를 이끈 감독으로 초기 영화사의 거장으로서 영화의 여러 장르들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후세 영화에 미친 영향이 엄청나다.
원래 화가를 지망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화 회사에 들어가 직원으로 일했다. 이 때 입은 오른쪽 눈 부상으로 시야를 잃고 의안 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시술에 부작용이 있었던지 얼굴 골격이 이상해졌고 말년엔 안대를 쓰고 다녔을 정도. 후술할 강철의 연금술사도 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때 병원에만 있으니, 심심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그러다가 독일의 대형 영화사 프로듀서인 에리히 포먼이 그를 발탁해 당대의 인기 감독 요에 마이의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1919년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감독 데뷔작이자 현대 액션 영화에 큰 영향을 끼친 《스파이더》를 시작으로, 범죄 영화와 스릴러의 고전인 《닥터 마부제》시리즈, SF영화를 창조했다고 평가받는《메트로폴리스》, 유성영화 초기의 서스펜스 걸작 《M》 등, 무성영화 말기부터 유성영화 초기까지 극작가였던 부인 테아 폰 할보우 [1] 와의 공동작업으로 걸작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부인이 나치의 열성적 지지자[2] 가 되면서 이혼하고, 프리츠 랑 감독은 프랑스로 망명한다. 사실 예견되어 있었던 게, 두 사람은 애시당초 쇼윈도 커플이었다고 한다. 랑 감독도 결혼 이후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고 테아도 이에 맞서 인도인 유학생 아이 텐둘카르와[3] 바람을 피우게 되는 등 여러 악재들이 겹친 끝에 이혼했다고 한다. 하지만 랑 감독에겐 마냥 악연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던지, 테아 사후 테아가 남긴 소설인 <인디언 무덤>을 1959년 영화화하기도 했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랑 감독은 생활을 위해 괴벨스에게 영화를 팔 시도를 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사실 랑 감독 자체는 정치적으로 모호한 구석이 있었다. 나치로 대표되는 강력한 근현대 전체주의 정권이 보였던 강력한 추진력과 기술 문명의 발전상에 매혹된 듯한 시선이 독일 시절 영화들에서 자주 드러났으며, 실제로 메트로폴리스는 히틀러가 좋아했던 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동시에 프리츠 랑 감독은 유대계라는 이유로 나치 체제에 편입될 수 없었고, 결국 파시즘에 치를 떨며 나치를 등지게 되는 원인이 된다. 학계에서는 이런 랑 감독의 모호한 위치가 영화적 원동력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이었기에 유대인이라는 인식은 희박했고, 실제로 랑 감독 역시 자신을 가톨릭이라 지칭했다. 자신의 정체성'''으로만''' 보자면 완벽한 오스트리아인이었던 셈. 하지만 그런 말은 나치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일단 족보 뒤져서 유대계 핏줄이 발견되면 즉시 수용소행이었으니 말이다.
이후 다시 미국으로 이주해 B급 영화들을 찍기도 했지만 《격노》, 《암흑가의 탄흔》 등 누아르풍의 걸작들을 만들어냈다. 이 시기 랑이 만든 작품들은 무르나우의 미국 시절 작품들과 더불어 미국 영화계에 독일 표현주의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영화들이라고 여겨진다. 랑의 미국 시기 작품들은 아직 인지도 등에서 독일 시절의 작품들에 밀리기는 하지만, 지지자들 사이에선 높게 평가받는다. 전반적으로 범죄 영화가 중심이며, 나치 독일에 대한 트라우마로 핍박받는 소수자 입장에서 영화를 전개하거나 모호한 윤리와 대비되는 강렬한 폭력/감정 묘사가 두드러지는 편. 1960년 서독으로 귀환해 자신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괴인 마부제 박사》를 마지막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해 197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베벌리힐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독일 시절엔 SF나 판타지, 모험 장르에 관심이 많았고, 스펙타클적 연출에 큰 영향을 끼친 감독이었다. 물론 마부제 박사 같은 걸출한 범죄 영화도 만들었다. 이후 M을 기점으로는 주로 발전된 도회지를 배경으로 거대한 네트워크에 얼기설기 연결된 캐릭터들 간의 드라마를 빛과 어둠을 활용해 차갑고 냉철한 스타일로 그려냈으며 그 와중에 숨어있는 파시즘을 비롯한 인간사의 어두운 면을 잡아내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대표작인 M(1931년 영화)에서 노숙자 집단과 살인자, 경찰 집단 간의 관계 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랑 감독의 이런 특징들은 미국 필름 느와르에 그대로 이식되어 범죄 영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로저 이버트의 "위대한 영화"에 따르면 영화의 촬영 방식이 당시 기준으로는 물론이고 지금 보기에도 상당히 무지막지 했다고 한다. 배우들을 말 그대로 소품 취급하고 화형 장면에서는 배우 주변에 실제로 불을 붙였다고 하니 말 다 했다. 한 예로《M》에서 살인자 역의 피터 로어를 실제로 범죄자들의 소굴에 던져놓고 찍었다고.. 한술 더 떠 로어에게 진짜 범죄자들에게서 범죄자적인 자질을 배워 오라고 요구한 탓에 기가 막혔던 로어가 차라리 사람도 죽여보라 그러시죠? 라고 비아냥거리자 "그렇다면 더더욱 좋지."라는 반응을 보여 로어를 데꿀멍하게 만들었다.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에서 다른 세계에서의 킹 브래드레이의 모습을 하고 나온다. 그럴듯한 괴수물을 찍고 싶어하지만 조악한 장비들 때문에 난황을 겪다가 결국 진짜 용을 잡으려 한다. 그런데 그 용의 정체는 엔비였다. 작중에서 나치 지지자인 아내 때문에 고심하고 있지만 그 아내를 통해 나치와 접촉하고 있으며 나치당원들에게 억류된 에드워드를 구해 준다. 참고로 용을 촬영하고 있는 영화는 니벨룽의 노래로, 이 영화의 빅 히트로 UFA가 메트로폴리스에 말도 안되는 수준의 자본을 투자하게 만든 계기가 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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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발라를 정복하는 자에서의 프리츠 랑 감독. 자신을 머스탱 대령을 죽이고 넘어온 킹 브래들리로 오해한 에드워드 엘릭에게 자신의 눈을 까보이고 있다.
또한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인 경멸에서 '''실명'''으로 등장한다. 누벨바그 세대에 지지를 받았던 감독이기도 한데, 이중 클로드 샤브롤 감독이 미국 시절 랑 감독 영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평가받는다.
1. 개요
Fritz Lang
1890.11.5.– 1976.8.2.
오스트리아의 영화감독. 본명은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안톤 랑(Friedrich Christian Anton Lang). 출신지는 빈(오스트리아)으로 부모는 보헤미아 왕국 출신이었다고 한다.
1910~1940년대 활동하던 거장감독이자 독일 표현주의 선구자이자 무성영화 후기와 유성영화 초창기를 이끈 감독으로 초기 영화사의 거장으로서 영화의 여러 장르들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후세 영화에 미친 영향이 엄청나다.
원래 화가를 지망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화 회사에 들어가 직원으로 일했다. 이 때 입은 오른쪽 눈 부상으로 시야를 잃고 의안 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시술에 부작용이 있었던지 얼굴 골격이 이상해졌고 말년엔 안대를 쓰고 다녔을 정도. 후술할 강철의 연금술사도 이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때 병원에만 있으니, 심심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그러다가 독일의 대형 영화사 프로듀서인 에리히 포먼이 그를 발탁해 당대의 인기 감독 요에 마이의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1919년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감독 데뷔작이자 현대 액션 영화에 큰 영향을 끼친 《스파이더》를 시작으로, 범죄 영화와 스릴러의 고전인 《닥터 마부제》시리즈, SF영화를 창조했다고 평가받는《메트로폴리스》, 유성영화 초기의 서스펜스 걸작 《M》 등, 무성영화 말기부터 유성영화 초기까지 극작가였던 부인 테아 폰 할보우 [1] 와의 공동작업으로 걸작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부인이 나치의 열성적 지지자[2] 가 되면서 이혼하고, 프리츠 랑 감독은 프랑스로 망명한다. 사실 예견되어 있었던 게, 두 사람은 애시당초 쇼윈도 커플이었다고 한다. 랑 감독도 결혼 이후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고 테아도 이에 맞서 인도인 유학생 아이 텐둘카르와[3] 바람을 피우게 되는 등 여러 악재들이 겹친 끝에 이혼했다고 한다. 하지만 랑 감독에겐 마냥 악연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던지, 테아 사후 테아가 남긴 소설인 <인디언 무덤>을 1959년 영화화하기도 했다. 다른 연구에 의하면 랑 감독은 생활을 위해 괴벨스에게 영화를 팔 시도를 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사실 랑 감독 자체는 정치적으로 모호한 구석이 있었다. 나치로 대표되는 강력한 근현대 전체주의 정권이 보였던 강력한 추진력과 기술 문명의 발전상에 매혹된 듯한 시선이 독일 시절 영화들에서 자주 드러났으며, 실제로 메트로폴리스는 히틀러가 좋아했던 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동시에 프리츠 랑 감독은 유대계라는 이유로 나치 체제에 편입될 수 없었고, 결국 파시즘에 치를 떨며 나치를 등지게 되는 원인이 된다. 학계에서는 이런 랑 감독의 모호한 위치가 영화적 원동력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이었기에 유대인이라는 인식은 희박했고, 실제로 랑 감독 역시 자신을 가톨릭이라 지칭했다. 자신의 정체성'''으로만''' 보자면 완벽한 오스트리아인이었던 셈. 하지만 그런 말은 나치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일단 족보 뒤져서 유대계 핏줄이 발견되면 즉시 수용소행이었으니 말이다.
이후 다시 미국으로 이주해 B급 영화들을 찍기도 했지만 《격노》, 《암흑가의 탄흔》 등 누아르풍의 걸작들을 만들어냈다. 이 시기 랑이 만든 작품들은 무르나우의 미국 시절 작품들과 더불어 미국 영화계에 독일 표현주의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영화들이라고 여겨진다. 랑의 미국 시기 작품들은 아직 인지도 등에서 독일 시절의 작품들에 밀리기는 하지만, 지지자들 사이에선 높게 평가받는다. 전반적으로 범죄 영화가 중심이며, 나치 독일에 대한 트라우마로 핍박받는 소수자 입장에서 영화를 전개하거나 모호한 윤리와 대비되는 강렬한 폭력/감정 묘사가 두드러지는 편. 1960년 서독으로 귀환해 자신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괴인 마부제 박사》를 마지막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해 197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베벌리힐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독일 시절엔 SF나 판타지, 모험 장르에 관심이 많았고, 스펙타클적 연출에 큰 영향을 끼친 감독이었다. 물론 마부제 박사 같은 걸출한 범죄 영화도 만들었다. 이후 M을 기점으로는 주로 발전된 도회지를 배경으로 거대한 네트워크에 얼기설기 연결된 캐릭터들 간의 드라마를 빛과 어둠을 활용해 차갑고 냉철한 스타일로 그려냈으며 그 와중에 숨어있는 파시즘을 비롯한 인간사의 어두운 면을 잡아내는 감독으로 유명했다. 대표작인 M(1931년 영화)에서 노숙자 집단과 살인자, 경찰 집단 간의 관계 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랑 감독의 이런 특징들은 미국 필름 느와르에 그대로 이식되어 범죄 영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프리츠 랑 감독의 주요 작품들
- 스파이더 (1919)
- 마부제 시리즈
- 니벨룽의 노래 (1924)
-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1927)
- M (1931)
- 사형집행인도 또한 죽는다 (1943)
3. 여담
로저 이버트의 "위대한 영화"에 따르면 영화의 촬영 방식이 당시 기준으로는 물론이고 지금 보기에도 상당히 무지막지 했다고 한다. 배우들을 말 그대로 소품 취급하고 화형 장면에서는 배우 주변에 실제로 불을 붙였다고 하니 말 다 했다. 한 예로《M》에서 살인자 역의 피터 로어를 실제로 범죄자들의 소굴에 던져놓고 찍었다고.. 한술 더 떠 로어에게 진짜 범죄자들에게서 범죄자적인 자질을 배워 오라고 요구한 탓에 기가 막혔던 로어가 차라리 사람도 죽여보라 그러시죠? 라고 비아냥거리자 "그렇다면 더더욱 좋지."라는 반응을 보여 로어를 데꿀멍하게 만들었다.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에서 다른 세계에서의 킹 브래드레이의 모습을 하고 나온다. 그럴듯한 괴수물을 찍고 싶어하지만 조악한 장비들 때문에 난황을 겪다가 결국 진짜 용을 잡으려 한다. 그런데 그 용의 정체는 엔비였다. 작중에서 나치 지지자인 아내 때문에 고심하고 있지만 그 아내를 통해 나치와 접촉하고 있으며 나치당원들에게 억류된 에드워드를 구해 준다. 참고로 용을 촬영하고 있는 영화는 니벨룽의 노래로, 이 영화의 빅 히트로 UFA가 메트로폴리스에 말도 안되는 수준의 자본을 투자하게 만든 계기가 된 영화다.
[image]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에서의 프리츠 랑 감독. 자신을 머스탱 대령을 죽이고 넘어온 킹 브래들리로 오해한 에드워드 엘릭에게 자신의 눈을 까보이고 있다.
또한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인 경멸에서 '''실명'''으로 등장한다. 누벨바그 세대에 지지를 받았던 감독이기도 한데, 이중 클로드 샤브롤 감독이 미국 시절 랑 감독 영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평가받는다.
[1] 1888~1954. 참고로 테아는 마부제 시리즈에 등장하는 배우와 이혼하고 랑 감독과 재혼했다.[2] 2차대전 이후에 나치 협력에 대한 비난에 나치 협력이니 지지자가 아니라며 부정하고 인도인들을 도왔다는 변명을 했다. 그래도, 그다지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연금되었다가 소설가로 살아갔다.[3] 당연하겠지만 나치 지지자였다. 독일의 아리아인 우대 정책과 영국에 대한 인도의 반감을 생각하면 크게 이상하진 않지만. 정작 테아와 아이의 결혼은 나치의 인종 차별 때문에 정식으로 하지 못했다는 아이러니한 비화가 있다.[4] 참고로 음악은 독일의 저명한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