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베르시프
1. 생애
1.1. 클럽
루이 베르시프는 1926년부터 로얄 FC 부르주아의 1군팀에서 뛰기 시작하였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코칭스태프의 눈을 사로잡았고, 베르시프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였다.
로얄 FC 부르주아는 디비지옹 도뇌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베르시프는 모든 선수 생활을 부르주아에서 보냈다. 베르시프는 253경기에 출전하여 93골을 득점했다고 알려져 있다.
1.2. 국가대표
1930년대의 벨기에 출신 스타 중 한 명. 한 번의 올림픽과 두 번의 월드컵에 출전하였으며, 34경기 8골의 기록을 남겼다.
1.3. 감독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처음에는 초대 월드컵 때의 스승이었던 제라르 델베케 밑에서 기술 스태프로 일을 시작하였다.
1945년부터는 친정팀 로얄 FC 부르주아의 감독이 되었고, 지도력을 보여 2부 리그에서 팀을 부임 첫해에 바로 승격을 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1부 리그의 벽이 너무 높았을까? 바로 꼴찌로 탈락해버리고 말았고, 2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다시 1부 리그에 올라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번에는 잔류에 성공했지만 팀에서 계약 연장을 하지 않아 베르시프는 친정팀을 떠나야 했다.
멜다 말더험을 거쳐 AS 오스턴더의 지휘봉을 잡은 베르시프. 그는 2부 리그 팀 오스턴더의 승격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시즌 3위로 아깝게 승격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후 벨기에의 국가대표 골키퍼가 되는 레오폴트 헤르나이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경질되고 말았다.
이후에는 3부 리그 팀인 RCS 부르주아의 감독이 되지만 심판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다는 이유로 감독 자리에서 정직 처분을 받고 말았다. 그 이후에 선수 겸 감독 기 티[1] 의 지도 아래 2부 리그에 갓 승격한 부르주아의 감독이 되었고, 훈련 쪽은 기 티에 맡겼다. 기 티는 선수로 잘 나갔고 팀의 강등은 막았지만, 베르시프는 또 잘렸다.
다시 돌아간 AS 오스턴더에서 베르시프는 5년간 팀을 2부 리그로 승격시키기도 하며 1963년까지 오스턴더에서 머물렀고, 이후에는 FC 에클로라는 지역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감독을 그만 둔 이후에는 카페를 운영했다.
2. 플레이 스타일&평가
직접 골을 넣는 것은 물론이고 동료들이 골을 넣는데 도움을 주는 이타적인 플레이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30년대 선수이지만 현대적 윙어의 플레이와도 비슷한 플레이를 펼쳤다.
3. 수상
3.1. 감독
- 벨기에 세컨드 디비전 우승 1회: 1945-46(로얄 FC 부르주아)
- 벨기에 세컨드 디비전 준우승 1회: 1948-49(로얄 FC 부르주아)
- 벨기에 3부 리그 우승 1회: 1960-61(AS 오스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