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호보암
다윗의 손자이자 솔로몬의 아들로 이스라엘 왕국을 물려받는다. 한국 천주교 성경에서는 르하브암이라고 한다. 백성들이 여로보암을 앞세워 부역과 세금을 낮춰 달라는 요구를 하자 3일 뒤 답변하겠다고 한 뒤, 먼저 아버지를 모시던 장로들과 상의했는데, 장로들은 아버지 때 너무 과했으니[1] 여로보암과 백성들의 의견을 들어줄 것을 충고하였다. 르호보암은 우선 장로들의 말을 들어 주는 듯 했으나,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 때문인 건지 그 충고가 의심스러웠던 건지, 자신과 함께 자랐던 귀족 출신의 소장파 신하들[2] 에게 또 자문을 구했는데, 그들은 "내 새끼 손가락은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고[3] ,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대했으나 나는 전갈로 징치하겠다"고 말하라고 조언했다. 약속한 3일이 지나 백성들이 찾아오자 르호보암은 젊은 신하들이 해준 말을 그대로 따라했는데(맨 위의 그림이 그 내용을 그린 것이다),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를 느낀 10지파는[4] 독립을 선언하고[5] 여로보암을 이스라엘의 국왕으로 추대하였으며, 결국 르호보암의 통치 하에는 유다 지파와 벤야민 지파만 남게 된다.[6] 그의 왕국이 유다 왕국이라 불리는 이유이다.[7]
물론 르호보암은 여로보암을 토벌하기 위해 18만 대군을 이끌고 북진했지만 선지자 스마야가 길막을 하자 그의 말을 듣고 북벌을 물린다. 이후 정통 신앙을 수호하는 듯하다가 교만해져서 이방신을 섬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하느님의 노여움을 샀다고 한다.
재위 5년차에는 이집트에게도 침략을 받아 시삭(셰숑크 1세, 재위 기원전 943년 ~ 기원전 922년, 고대 이집트 제22왕조의 창시자.)이라는 파라오에게 탈탈 털려서 왕궁까지 유린당하고, 이후에도 여로보암의 이스라엘 왕국과 분쟁을 이어가는 등 외교적으로 무능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정력은 정말 왕다워서 18명의 아내와 60명의 첩을 통해 28명의 아들과 60명의 딸을 낳았다. 많은 자식들 중 아비얌에게 재위를 넘겨주었으며 결과적으로 이는 르호보암이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었다.
[1] 이스라엘의 황금기였던 절대 군주 솔로몬 통치 당시는 7년 간 성전을 건축하고 13년 간 왕궁을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나라 곳곳에 수많은 성과 요새를 짓는 등 수많은 노역에 시달린 시기였기 때문이다[2] 성경에서는 같이 자란 청년들(소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동네에 흔히 돌아다니는 청년들은 아닐 것이고 귀족 자제 출신 젊은 신하를 말하는 것이다.[3] 즉 자신의 "가장 연약한 것이라도 선왕(솔로몬 왕)보다 강하다"란 의미.[4] 학자들 가운데는, 이미 이전부터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힘을 모은 10지파의 수뇌부가 합심하여 왕국의 분열까지도 각오한 채로 르호보암에게 협상을 하고자 마음 먹고서 나아간 것이었다는 의견도 있다[5] 이때 이들의 선언서는 "우리와 다윗과 무슨 연관이 있나, 이새의 아들에겐 더 기대할것이 없다. 이스라엘 국민들아 모두 자기 고향으로 가자. 다윗 너는 니 가문이나 잘 챙겨라."[6] 그러나 당시의 벤야민 지파는 사실상 유다 지파와 동화된 상태였다.[7] 대하 10:15을 보면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한 것은 하느님이 아히야로 하여금 여로보암에게 10지파를 다스리는 왕이 될 거라고 예언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