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메르 아르고 3세
1. 개요
프린세스의 등장인물.
스가르드의 왕으로 아마도 등장 당시부터 코르시카 왕을 제외하고는 최고령이었으나 4부에서 고인이 되고, 잠시 무조가 왕위에 오르나 아나토리아로 부터 원조를 받은 야파가 그를 몰아내고 왕이 되며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다.
2. 상세
후덕한 몸매가 특징적인 할아버지로 부인 많기로는 아나토리아 토르 왕가의 루텐 토르, 스카데이 토르를 능가하며 현재까지 여섯 명의 비까지 확인되었으나 그 외에 첩이 얼마인지는 언급된 것이 없어서 확인 불가하고 작가가 특별히 정리해주지 않는 이상은 처첩들의 이름조차 알 길이 없다. 스카데이가 에스힐드 바르데르를 탐내자 덩달아 탐내기도 한 전적이 있다. 많은 자식들을 낳아 1세대의 정력왕 포지션을 맡고 있으며 2세대는 스카데이가 잇는 중. 많은 아내가 있지만 야파의 모친이자 제1차비 소피아를 가장 총애했다. 왕비는 란 가 견제를 위해 지체낮은 무이 가에서 맞았지만 소피아는 평민인 그녀를 비로 맞이하기 위해 이름뿐인 공작가에 양녀로 올리기까지 했다. 라라와 비슷한 경우. 란 가의 압박때문에 셋째 차비를 들였으나 소피아에 대한 그의 애정은 식을 줄 몰랐다고 했으니 총애가 정말 대단하긴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토록 총애하던 소피아는 암투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고, 소피아가 남긴 유일한 자식인 야파를 대놓고는 아니지만 은근히 아끼는 모습을 보인다. 헤젤 말에 의하면 아르고 왕의 자식들 중 그를 가장 많이 닮은 자식은 다섯째 비의 딸인 요피나라고 하는데 요피나도 꽤 아끼는 모양이다. 공주들은 일찍 시집가거나 수도원행이라고 하는데 아나토리아 왕비로 고른 사람이 요피나인 것으로 보아 아끼고 있는 듯.
프린세스 1부와 2부에서는 스가르드의 비중이 없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등장하였던 스가르드측 인물이기도 하였다.[2] 3부에서 테오도라 토르가 스가르드로 출가하고 야파 아르고에게서 시집을 가게 되면서는 나머지 스가르드측 인물들과 등장하면서 비중이 조금 늘었다. 3부 초기에는 왕비와 후궁들도 나오게 되었다. 차비만 해도 다섯명인데 첫째 차비와 둘째 차비는 사망한 상태. 원래는 왕자들도 스무명 가까이 있었으나 대다수가 죽고 3부 시점에서는 7명만 남았다. 그나마도 야파와 실라이를 제외한 다른 왕자들은 모두 변방으로 나가있는 상태에다가 어쩌다가 잠시 돌아오기라도 하면 군사들을 재정비할 정도로 자식들을 믿지 못 하는 모습을 보인다. 공주들도 모두 일찍 시집가거나 여의치 않으면 수녀원으로 보내기 때문에 테오도라가 스가르드에 왔을 때 왕궁에는 공주가 한 명도 없었을 정도. 왕자들의 부인도 모두 남편을 따라 외지로 나간 상태라고 한다.
2.1. 그의 대우
세간에는 교활한 책략가로 알려져 있으며 '''혈통으로 통일하자'''라는 독특한 정략관을 가지고 있다. 하렘에 가까울 만큼 비빈들이 득실거리는 스가르드 왕실 특성상 가능한 전략. 애초에 왕의 부인이 많은 것도 스가르드 내부의 정략 목적인 듯 보인다. 왕건과 어찌보면 비슷한 입장. 사실 남아도는 왕자, 왕녀들을 국내에서 결혼시켜 귀족들과 이해관계가 얽히기 보단 각국 왕실에 보내 자리를 잡게 하는 편이 내분의 위험도 적고 훨씬 실용적인 방법이긴 하다.
2.2. 정략의 결실
라미라의 바르데르 총리와 결혼해 아들을 낳은 라리사 카타로스나 아나토리아의 스카데이 토르와 결혼해 데리카 토르를 낳은 요피나 토르가 있으므로 무조건 웃고 볼 일은 아닌 듯 하다. 라미라 쪽은 조카증손주 정도 되며, 요피나 쪽은 외손주.
정작 본인은 아들 무조와 야파가 죽기살기 식으로 계승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이건 뭐... 이건 왕 본인의 내부 단속이 문제라기 보다는 결혼한 비들의 세력이 너무나 크고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게 문제다.[3]
제 1 왕자 야파가 처남인 스카데이 토르의 지원을 받아 마침내 스가르드의 왕위에 올랐다. 스카데이의 출정 선언으로 미루어 볼 때 무조에게 시해당한 듯하며 자연사든 살해든 죽은 것만은 확실하다. 진위 여부는 확인 불가능하지만 시에타의 말로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문이 있다.[4] 분명 그의 정략관이 공식적으로는 결실을 거두고 있으나[5] , 3세대는 이미 프리와 시벨 그리고 히로가 꿰차고 있으며 본인 또한 죽은 마당에 더이상 의미가 없다. 왕으로서 국가 외교에는 참으로 힘쓴 셈. 죽써서 개준 꼴이 된게 문제지만.
3. 다른 군주와 비교
프린세스에서 같은 '''노인 캐릭터'''에 속하는 코르시카 왕과 비교하면 코르시카 왕은 외손자가 있는 나라인 라미라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나타냈지만 친(親) 스카데이 및 마메르파에 속하는 신하 때문에 국가적으로 표방하지는 못하고 파라 왕비를 사모했다는 코르시카 장군 갈론만 아-라 전쟁에 참전했다. 마메르도 '''우리나라에도 갈론 같은 용감한 장수가 있었어도....'''라며 갈론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반면 마메르는 아 - 라 전쟁 때 '''스카데이 군대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강화한다'''고 적극적인 표방을 한 적이 있었고 ''' 비욘은 이미 가망도 없으니 우리가 지원해 줄 이유가 없다'''며 일언지하에 스카데이 편을 들어주었고 후에 양쪽의 공주를 교환해 동맹을 공고히 했다.
현실적으로 보면 이 왕이 코르시카 왕보다 훨씬 정치를 잘 하는것이고 그냥 코르시카 왕이 정치호구. 코르시카는 핏줄이나 정 때문에 자국의 군사력을 남의 전쟁에 냅다 퍼주고 아까운 인재인 갈론 장군까지 잃은 꼴이다. 남의 나라끼리 싸우고 있는데 척 봐도 강한 편에 붙는게 이익인 것.
게다가 마메르는 요피나나 라리사의 뒷배를 든든하게 봐주는데 코르시카 왕은 자기 딸이 내연녀 때문에 평생 눈물 신세로 살고 있는데도 뭔 지원 해줬다는 소리도 없다. 약소국이라서 지원을 못해준다 쳐도 자국 공주를 박대한 나라는 정떨어져서라도 표면적인 우호 이외의 다른 친선 교류는 안 할 텐데 오히려 내연녀를 대비 모시듯 부둥부둥 해준 손자를 자국의 국력 깎아먹는것 생각 안하고 핏줄 하나 때문에 그냥 무작정 퍼주고 있다.
같은 대국의 왕인 스카데이 토르와 비교해도 책략에 있어서 꿀리지 않는다. 스카데이가 그렇게 많은 피와 돈을 쏟아부어 기어코 얻은 라미라의 지분을 결혼외교 하나로 상당량 가져갔고, 스카데이가 라미라의 왕자를 아나토리아로 데려가 볼모로 삼으려는 계획[6] 을 편지 한장으로 가볍게 막아내며 스카데이를 한방 먹였다.
4. 인간관계
1,2부에만 했어도 스가르드 내용상에서 독자적으로 나온데다가 왕궁에 머물렀던 일이 많았던지라 인간관계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리고 비욘과 스카데이를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 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편이었다.
4.1. 비욘 카칸 표르도바
직접 만났던 적은 없었지만 언급상 그의 이름을 밝혀왔으며 때로는 그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기도 하였다. 다만 라미라 전쟁 때 '''스카데이를 지원한다'''고 천명하였기에 사실상 적대지간이나 다름이 없다.
4.2. 스카데이 토르
'''장인어른과 사위 관계, 그러나 왕의 신분에서는 서로간 경쟁관계'''
스카데이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나이면에서 차이가 많이나지만 자신을 뛰어넘으려는 스카데이의 야욕을 유심히 지켜봤던 입장이었다. 라미라 전쟁 때는 스카데이 편에 서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3부 들어서는 장녀 요피나 토르를 스카데이에게 시집보내고 테오도라 토르를 장남 며느리로 맞아들이면서 아나토리아와의 교류가 있자 더욱 관계가 돈독해지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서로 경쟁의식이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4.3. 테오도라 토르
'''시아버지와 장남 며느리'''
1,2부까지는 특별한 관계도 없고 서로 만난 적도 없었으나 3부 들어서 스가르드 왕의 장남 야파에게 시집을 가면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테오도라가 스가르드에서 시집을 갔지만 야파와 함께 혼인식 때 상견례를 하였던 것을 제외하면 둘이 대화하였던 경우는 없었다.
4.4. 바르데르 총리
직접 만났던 적도 없었고 그리 친밀했던 사이는 아니었으나 라미라 전쟁 때 스카데이 지원을 천명하였기 때문에 간접적인 지원자에 속한다. 그리고 자신의 나라 출신인 라리사 카타로스를 정략적으로 시집을 보내서 바르데르 옆에 붙여놓으며 라미라의 동태를 살펴왔다.
4.5. 야파 아르고
'''언제나 술을 마시고 놀음에 빠진 게으른 아들'''
'''장남이지만 왕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입장'''
야파와는 첫째 후궁 사이에서 낳았던 아들이지만 야파가 전처들과 모두 사별하고 폐인이 되면서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들이 술을 마시고 놀음에 빠질 때마다 대노하는 일이 잦으며 항상 게으르고 둔한 자식이라고 여겨왔다.
명목상 장남[7] 으로 있는 편이지만 성격도 게을러보이고 놀음이 심하여 나라를 이끌 능력이 없다고 보기에 왕위를 물려줄 생각은 없었다.
4.6. 무조 아르고
'''믿음직한 아들이었지만 결국 호랑이새끼를 키워놓은 꼴'''
셋째 후궁으로부터 낳은 아들이었고 야파에 비해서 전략적이고 치밀한 성격이 인정되어서 의외로 믿음직한 아들로 여겨왔었다. 그러나 그런 아들의 흑심은 파악하지 못하여서 결국 이 아들의 반란으로 자신이 죽게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4.7. 실라이 아르고
작중에서는 서로간의 접점이 많이 없었지만 엄연히 넷째 후궁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4.8. 요피나 토르
작중에서는 서로간의 접점이 없지만 엄연히 다섯째 후궁 사이에서 낳은 딸이며 아나토리아로 딸이 시집을 간 후에는 서로 서면을 주고 받는 입장이었다. 동시에 서로 아나토리아와 스카데이의 동태를 알려주고 받는 사이이기도 하다.
[1] 프린세스 3부상에서 일부 실체가 알려졌는데 왕비를 제외하고 정식 비로 인정된 차비가 다섯 명이다. 이중 첫째, 둘째 차비는 사망. 공개된 자식들은 첫째 차비의 아들인 첫째 왕자 야파, 둘째 차비의 아들로 국외에 있는 둘째, 셋째 왕자, 란 가 출신인 셋째 차비의 아들인 넷째 왕자 무조와 다섯째 왕자 뮬라, 넷째 차비의 아들인 여섯째 왕자 실라이, 다섯째 차비의 딸인 요피나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일곱째 왕자.[2] 스가르드 대사와 그의 딸 라리사도 스가르드 인물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라미라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3] 멀리 볼거 없이 우리나라 고려 시대 초기 호족의 세력이 너무 강대하여 왕건이 유력 호족과의 적극적인 혼인 정책으로 자신의 시대에는 겨우겨우 반발을 억눌렀으나 왕건 사후 문제가 한번에 터져나와 왕실이 그들의 골육상잔으로 피로 물든 점만봐도 그렇다.[4] 사실이라면 그도 아들 무조에 의해 시해되었으니 인과응보인 셈.[5] 신분 측면에서 가장 정통성있는 3세대에겐 모두 스가르드의 피가 흐른다.[6] 덤으로 데리카도 처리[7] 본래 아르고 왕비의 아들들이 있었지만 모두 살해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야파가 장남격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