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여왕

 


'''왕호'''
마여왕(麻余王)
''''''
해(解)
''''''
마여(麻余)
'''생몰 연도'''
불명
'''재위 기간'''
불명
1. 개요
2. 의문점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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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여의 국왕. 간위거왕의 아들. 서자였으나 간위거 왕이 적자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왕위에 올랐다. 모후는 간위거 왕의 후궁으로 추정된다. 마여왕이 죽고 그의 아들 의려왕이 6세에 즉위한 것을 보면 후사를 늦게 얻었거나 요절했을 가능성이 크다.
유일하게 부여 내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왕인데, 마여왕 시기 대사(大使) 벼슬의 위거(位居)가 국정을 주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2. 의문점


박대재 교수는 부여의 왕권과 왕위계승(2008)에서 《태평어람》에 인용된 《삼국지》 위지를 근거[1]로 3세기 부여의 왕위 계승을 간위거 - 마여 - 위거 - 마여로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고작 대사 벼슬인 위거(位居)가 제가(諸加) 이상의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태평어람에 인용된 위지에서 위거는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왕위 정당성이 약한 마여왕을 일시적으로 폐위시키고 왕으로 등극한 것이 아니냐는 설. 다만 어디까지나 설이고 삼국지 부여전의 연도서술이 뒤죽박죽인 점도 있어서 단정짓기 어렵다.

3. 기타


드라마 근초고왕(드라마)에서 위비랑(정웅인 역)과 위홍란(이세은 역)이라는 가상 인물 설정에서 동부여의 재건을 꿈꾸는 마여 왕의 후손으로 잠깐 언급된다.

[1] 遣玄菟太守王頎詣 '''夫餘王位居'''遣大加郊迎. 실제 삼국지에서는 王 부분이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