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위거왕
1. 개요
부여(夫餘)의 왕. 위구태왕의 아들. 어머니는 공손도의 종녀로 추정하고 있다.尉仇台死簡位居立無適子有孽子麻餘位居死諸加共立麻餘
위구태왕이 죽자, 간위거가 왕이 되었다. 간위거는 적자가 없고, 서자인 마여가 있었다. 위거가 죽자 제가들이 함께 마여를 왕으로 세웠다.
ㅡ 《삼국지》 권30 오환 선비 동이전
2. 행적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아버지 위구태가 죽자 왕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40년 ~ 248년 사이 위나라의 유주 자사 관구검이 고구려에 침공했을 때 위나라에 협조하여 고구려에 군량을 제공하였다. 다만 선비족이나 오환족이 고구려 원정에 동원된 것과 달리 부여군은 동원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간위거왕은 적자가 없었기 때문에 간위거 사후에는 간위거의 서자인 마여를 추대하여 마여왕이 왕위에 올랐다.
3. 기타
위구태왕 시기인지 간위거왕 시기인지는 불분명하나, 황초(220년~226년) 사이에 부여에 예속되었던 읍루가 반란을 일으켜 부여가 읍루 정벌을 시도했지만 끝내 굴복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경향신문의 1987년 9월 11일자 기사에서 위만의 손자인 우거의 명칭이 고유 명사가 아닌 우두머리를 지창한다는 조승복 교수의 주장에서 언급된다. 우거가 고유 명사라 한 안사고의 주장은 잘못되었으며, 우거에 대한 음운변이를 고구려의 우거, 부여왕 간위거, 위구태 등을 언급하면서 씨족의 생활 공동체를 다스리는 우두머리 또는 우두머리직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라 했다. 그러나 이는 이천 년 전의 인물 이름에 오늘날의 발음을 적용시켜 발생한 오해로, 실제 발음은 ‘우거’는 /*[ɢ]ʷəʔ *[ɡ](r)a/ ‘꿯 끄라’였고 ‘위거’는 /*[ɢ]ʷrəp-s *k(r)a/ ‘끄뤕스 그라’로 큰 차이를 보인다. 우태와 위구태에 나오는 台는 /*lə/ ‘'''러'''’로 더욱 크게 차이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