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풋
1. 개요
Michael Foot (1913~2010)
노동당 소속의 영국 정치인이었다.
2. 생애
1913년 7남매 중 다섯째로 잉글랜드 플리머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자유당의 당원이었으며, 1929~1935 6년동안 플리머스시의 시장으로 재임했다.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경제철학을 전공하고[1] 1945년 플리머스, 데본 포트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하지만 1955년 낙선하며 5년간 정계에서 잠깐 떠나 있다가, 1960년 에브 베일 선거구에서 4선에 성공하며 다시 정치 활동을 재개한다.
풋 의원은 의회에서 계속 노동당의 좌클릭을 주도했으며 1974년 윌슨 총리에게 고용 국무장관에 임명, 취임한다. 1976년 윌슨 총리가 갑작스럽게 사임하자 노동당 대표 경선에 출마했으나, 제임스 캘러헌에게 패해 낙선한다.
1979년 제임스 캘러헌이 영국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각불신임결의를 받아 낙마하자 이듬해 열린 노동당 대표 선거에 출마해 당선, 대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노동당의 계속된 분열과, 이미 영국병으로 밝혀진 여러 좌클릭 정책들을 제시한 마이클 풋의 노동당은, 당시 신자유주의를 제시했던 보수당의 마가렛 대처에게 1983년 총선에서 크게 밀린 단 209석만을 획득했고 마이클 풋은 노동당 대표직에서 사퇴한다.
이후 닐 키녹이 대표에 당선되며, 그는 과감히 우클릭을 시도한다.
마이클 풋은 대표직 사임 이후에도 의원 활동을 계속해서 하다가, 무려 '''12선'''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1992년 정계를 은퇴한다.
2010년 사망했다.
[1] 옥스퍼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학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