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당(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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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정당. 2021년 기준 집권여당이며, 여왕 폐하의 정부라고 불리기도 한다.[9] 1832년에 토리당이 이름을 바꾸며 생긴 영국의 정당으로, 전신까지 따져보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으로 간주하기도 한다.[10]'''Build Back Better.'''[8]
다시 더 낫게 세워나가자
보수당의 새로운 슬로건
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보수주의 성향을 띤다. 노동당, 자유민주당과 함께 영국의 3대 정당이다. 당헌에 기재된 정식 명칭은 '''보수연합당'''[11] 또는 '''보수통합당'''이나 '''보수통일당'''(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이다. 현대에 잉글랜드·웨일스의 구 보수당과 스코틀랜드의 통일당이 합당해서 현재의 보수당을 이루었기 때문. 하지만 이 풀네임을 일일이 쓰는 경우보다 Conservative Party 또는 Conservatives로 쓰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면 옛 이름을 따서 Tory Party, Tories라고 쓰든가...
참고로 2016년 3월 기준 영국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보면 그레이트브리튼와 북아일랜드의 정당 명칭 모두 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로 등록돼 있다.[12] 영국 선관위는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의 정당을 따로 등록해서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양 지역에서 모두 활동하는 정당은 각각 따로 등록한다.[13]
2. 역사
2.1. 창당
기원으로 따지자면 1780년대에 小 윌리엄 피트를 중심으로 한 휘그당의 탈당파들로 올라갈 수 있다. 1832년 로버트 필이 토리로 불리던 정당의 이름을 보수당으로 바꾸면서 현재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참고로 1678년부터 1760년대까지 존재했던 토리당과는 이름만 빼고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경쟁 정당이었던 휘그에 비해서 딱히 보수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1840년대 자유무역 역사의 큰 사건으로 불리는 곡물법 폐지 논란을 기점으로 경제적으로 보호주의(보수당) vs. 자유주의(휘그당) 구도가 만들어졌다. 사실 근대 정치가 갖추어진 후에도 크게 정치적 논점이 차이가 난 것은 아니었으며,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입장이 정리되곤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당이 집권할 때 자유당보다 더 큰 개혁이 이루어지곤 하였다.
토리를 근대적인 정당으로서 보수당으로 변화시킨 로버트 필이 막상 자유무역 문제로 수상 임기 말년에 당을 쪼개자 20년 동안 휘그, 그리고 후신인 자유당[14] 에 정권을 내주게 된다.
2.2. 디즈레일리의 개혁과 20년간의 장기집권
이 와중에 보수당을 변화시킨 것은 벤저민 디즈레일리 수상이였다. 그는 이른바 '''진보적 보수주의''', '''일국 보수주의(one-nation conservatism)''' 노선을 견지하여 보수주의를 근대적인 관점으로 끌어올렸으며 민주주의의 개념도 수용하였다. 그의 집권 기간에 보수당은 전통적 젠트리뿐 아니라 부르주아지 중간 계급과 노동 계급에게도 지지를 끌어올린다. 반면 디즈레일리 수상의 사후 보수당(제3대 솔즈베리 후작)과 번갈아 집권한 자유당(글래드스턴 수상)이 아일랜드 자치법안을 강행하자 당내에서도 반발이 생겼다. 자유당 내 아일랜드 자치 반대론자들은 1886년 자유통일당(Liberal Unionist Party)을 창당하여 보수당과 공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 20년 동안 보수당이 정권을 독점하게 된다.
2.3. 자유통일당과의 합당
1912년에는 보수당과 자유통일당이 공식 합당하면서 현재의 보수통일당이라는 당명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Conservative Party라는 당명에 거부감을 느끼는 유권자가 많아 이 해부터는 자유통일당 노선을 따라 통일당(Unionist Party)라는 스코틀랜드만의 정당[15] 이 자매 정당으로서 조직돼 활동하게 되었다. 이로써 스코틀랜드에서는 통일당이 유일한 '토리당'으로서 수십 년 간 활동하게 되었다.[16] 스코틀랜드의 통일당은 1965년까지 존속됐다가 보수통일당에 완전히 흡수된다.[17]
2.4.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각과 재집권
2차대전 직후에는 잠시 노동당에게 정권을 내준다. 2차대전 종전까지 보수당 소속의 처칠의 주도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에도[18] 영국 유권자들은 냉정하게 노동당을 집권시킨 것. 이후 무리한 복지정책으로 노동당이 국민적 반발을 사자[19] 보수당의 처칠이 다시 집권하게 된다. 보수당은 노동당 정권이 추진했었던 주요 산업들의 국유화를 중단하고, 법인세와 소득세 등 각종 세금들을 감면한다. 하지만 NHS(국민건강서비스)와 같은 핵심적인 보건 복지 정책들은 큰 틀에서 기존의 기조를 이어나간다. 아무튼 정권을 탈환한 처칠은 조지 6세의 마지막 총리이자 엘리자베스 2세 재위기의 첫 총리가 되었다.
2.5. 마가렛 대처 취임
보수당의 뚜렷한 정책 변화는 1970년대 후반기에 나타났다. 당시 영국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부지출, 낮은 생산성, 강성노조들의 잦은 파업으로 인해 영국병이라 명명된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고, 보수당과 노동당 그 어느 측도 이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러한 와중에 1978년 연말부터 1979년 연초까지 영국 사회를 강타한 불만의 겨울로 인하여 노동당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고,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던 미들 잉글랜드 출신의 여성 정치인 마가렛 대처가 보수당을 단독 과반으로 이끌며 총리가 되었다.
전통적인 상류층 출신도 아니고, 더군다나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점에서 그녀의 집권은 영국 사회의 변화를 암시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정부지출 축소, 중산층에 대한 감세, 국영기업 민영화, 각종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한 것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과 복지국가형 사회보장체제에 익숙해져 있던 영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정치적 타협을 중시하는 당의 전통과 달리 비타협적이고 과격하게 자신의 정책을 관철했기 때문에 좌파 진영으로부터 더욱 미움을 받았다. 포클랜드 전쟁에서의 승리와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의 성과 덕분에 장기 집권을 했지만 비타협적인 정책이 타협적으로 변모한 것은 아니어서, 1990년에 이르면 인두세를 도입하려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대가 폭동을 일으키는 등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대처는 보수당에서의 당권을 잃고 실각하게 된다.
2.6. 존 메이저 취임
이후 존 메이저 당시 재무부 장관이 총리가 되었고, 1992년 총선에서도 승리하여서 원내 과반수 의석을 유지한다. 이는 당시 인두세를 피하려고 전통적인 노동당 지지층인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선거인 등록을 안 한 탓이 크다. 사실 말이 이긴 거지 노동당한테 1987년 총선과 비교해보면 40석이나 털렸다.(...) 그렇지만 선거 직전 분위기로는 노동당의 승리가 예상되는 상황이었어서 침묵하는 보수 지지층을 설명하기 위해 샤이 토리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 연장 이후에도 연달아 터지는 스캔들과 백벤처[20] 통제 실패로 비틀대기 시작했다. 이 통제 실패가 가장 적나라하게 터진 게 EU 핵심 조약인 마스트리히트 조약 관련 사건이었다. 조약 찬성파인 노동당이 반대를 날릴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그래도 다수당인 자기네 의원들 뿐인데, 반 유럽 통합파 의원들이 대놓고 반대표를 던져 조약 체결에 실패한 것. 얼마 뒤 '''신임 투표'''를 내걸고 다시 걸어 통과는 했지만, 메이저의 체면은 치명적으로 구겨졌다.
1995년에는 존 레드우드 웨일스장관이 당 대표 선거에 나와 메이저 총리를 상대했지만 218:89로 대패했다.
한편으로는 결국 경제마저 주저앉으면서 1997년 총선에서는 인두세가 폐지된 후 다시 대거 선거인 등록을 한 노동당에게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하며 박살났다.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가 이끈 노동당은 보수당을 상대로 '''418 대 165'''의 만화 같은 압승을 거두고 노동당의 암흑기를 끝내고 장기 집권 시대를 열었다.
2.7. 13년의 야당 생활
메이저의 뒤를 이어 윌리엄 헤이그 전 웨일스 장관이 보수당의 당권을 잡았고[21] 2001년에 그의 첫 총선을 치렀다. 하지만 노동당은 5석만 줄고 보수당은 고작 1석만 늘어나서(413 대 166) 역시 노동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그래도 헤이그와 이안 던컨 스미스의 후임인 마이클 하워드는 2005년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를 상대로 또 지기는 했으나 이전보다는 당세를 회복했다(노동 355 : 보수 198).[22]
2.8. 데이비드 캐머런 취임
하지만 블레어가 2년 뒤에 총리직과 노동당 당수직을 사임하게 되고, 고든 브라운이 그의 후임자가 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브라운 내각은 글로벌 경제위기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데 실패하였고, 이에 따라 민심은 노동당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또 새로 보수당의 당권을 쥔 당내 소장파 데이비드 캐머런[23] 은 보수당의 구태의연했던 이미지를 쇄신하여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정당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한다. 덕분에 보수당은 제55회 영국 총선에서 무려 100석에 가까운 의석을 노동당에게 빼앗으면서 제1당이 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과반은 확보하지 못해 자유민주당(자유당의 후신)과의 연정으로 집권했다.
집권 이후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영국 독립당(UKIP)이 잉글랜드 내 지방선거에서 보수당의 표밭을 잠식하게 되었다.[24] 그러자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한 캐머런은 차기 총선에서 집권할 경우 유럽연합의 간섭을 덜 받는 방향으로 재협상을 시도할 것이며 2017년까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25]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하게 됐다.
2.8.1.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
2014년에는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가 실시됐는데 투표 직전 한 번 찬성이 반대보다 높게 나온 여론조사가 나와 비상이 걸렸다. 보수당뿐 아니라 제1야당인 노동당과 연립정부 파트너인 자민당까지 스코틀랜드에 총출동해서 제발 독립하지 말아 달라며 호소하게 되었다(...).
캐머런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독립이 부결됐으니 망정이지 만약 독립하게 됐으면 총리직과 보수당 대표직에서 사퇴하는 상황에 몰렸을 것이다. 이 주민투표는 캐머런이 동의해 실시됐기 때문.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는 좌파 정당인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은 2007년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총선에 이어 2011년에도 승리해 자치정부에서 재집권하게 되자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중앙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했고, 캐머런은 "어차피 여론상 독립 반대가 우세한데 차라리 이 참에 주민투표를 수용해서 독립론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놓자!" 이렇게 가면서, 결국 2012년 에든버러 합의가 체결되었다.[26]
비록 처음 예상대로 독립 반대로 결정이 나긴 했으나, 기대와 달리 이전보다 찬성론자들의 수가 늘어나[27] 실제 독립 직전까지 갈 지경이었으니, 독립으로 결정났더라면 캐머런은 당연히 사퇴해야 했을 것이다.
2.8.2. 2015년 영국 총선 승리와 브렉시트
2015년 총선에서는 보수당이 단독 과반 의석을 달성하면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캐머런 내각의 경제정책이 상당한 성과를 거둔 데다가, 스코틀랜드 국민당과 노동당과의 연정이 이뤄질 것을 우려한 보수층이 대거 결집한 덕분으로 해석된다. 단독 집권을 해서 자민당을 제외하고 보수당만으로 내각이 구성된 것은 1997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총선 전 영국의 기업인들은 보수당이 이기면 유럽연합 탈퇴 문제로 리스크를 져야 하고[28] , 노동당이 이기면 경제 자체에 리스크를 져야 한다[29] 며 푸념했는데 결국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결정되어 유럽연합 리스크(기업인들의 관점에 따른다면)를 지게 됐다(...). 게다가 친유럽적인 SNP가 이번 총선에서 스코틀랜드에 할당된 전체 의석 59석 중 무려 56석을 차지한 상태라 유럽연합 탈퇴를 빌미로 독립을 재시도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는 중.[30]
뉴욕 타임스 등 미국의 좌파 언론들은 총선 직후 영국이 유럽연합도 탈퇴하고 스코틀랜드도 잃어서 캐머런이 리틀 잉글랜드[31] 의 건국의 아버지(...)[32] 가 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 캐머런 총리는 공약이었던 유럽연합 탈퇴 유무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고 전 세계의 경악 속에 브렉시트가 현실화됐다. 캐머런 총리가 이에 책임을 지고 사퇴함에 따라 테레사 메이가 새 총리로 취임하였다.
2.9. 테레사 메이 취임
2017년 메이 총리는 하드 브렉시트[33] 를 안정적으로 시도하기 위해 조기총선을 실시, 제57회 영국 총선을 치렀는데 선거운동 기간 동안의 각종 실수들로 인해 되려 과반 의석이 붕괴되는 결과를 맞게 되었다. 정권 파트너로 유력한 민주통일당이 하드 브렉시트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결국 메이 총리가 추진 중인 하드 브렉시트는 어럽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메이 총리에 대한 사임 압박도 당내외에서 거세지고 있다.
2.9.1. 2017년 영국 총선 부진
2.9.2. 2017년 전당대회 해프닝
현지 시간으로 2017년 10월 4일 낮, 단상에 있던 테레사 메이에게 사이먼 브로드킨[34] 이 다가와 '보리스 존슨이 전해달라 했다'면서 모조 해고 통지서를 건냈고, 이어서 메이의 기침이 나올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아 연설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더니, 뒤에 붙어있던 문구인 "BUILDING A COUNTRY THAT WORKS FOR EVERYONE"이 한 글자 한 글자 씩 떨어져나가 나중에는 "BUI DING A C NTRY THA ORKS OR RYON"이 되어버렸다.[35] 이를 두고 노동당으로부터 '2017년 총선 때 내세웠던 Strong and Stable Leadership은 대체 어디로 갔냐'는 비아냥이 오기도 했다.
2.9.3. 브렉시트 협상 결렬과 일부 의원들의 탈당
테레사 메이는 노딜 브렉시트라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EU 측과 협상안을 타결짓고 본국 의회로 돌아 왔으나, 당내에서는 제이콥 리스-모그가 이끄는 유럽 연구 그룹(ERG) 계열의 브렉시트 강경파들이 반발했고, 야당들도 야당들대로 반발했다. 그래서 협상안을 표결에 부쳤으나 결국 역대급 대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짧은 기간 동안 두 건의 불신임 표결을 당하는 처지가 되는데, 그 중 하나는 보수당에서 브렉시트 강경파들이 상정한 당 대표 불신임 표결이었고(물론 여기서 불신임당하면 총리 자리도 함께 내놔야 한다), 다른 하나는 하원에서 제레미 코빈이 주도하여 상정한 총리 불신임 표결이었다. 다행히 둘 다 부결시켜 자리를 보전하였으나 기존 브렉시트 합의안은 날아갔기에 수시로 브뤼셀로 날아가 계속 재협상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은 점점 촉박하여 노딜 브렉시트라는 불확실한 상황에 닥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나마 [36] 코빈이 메이의 브렉시트안에 동의할 조건을 제시하며 타협의 여지를 보이자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와 노동당 내 반브렉시트파가 동시에 각자가 속한 당의 대표에게 반발하는 분위기이다.
이 와중에 2019년 2월 18일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 7명이 코빈 체제의 좌경화, 소극적인 브렉시트 대처, 반유대주의 확산 등에 반발하여 전격 탈당하고 무소속 그룹(The Independent Group)이라는 모임을 결성하였다. 그 다음날에는 노동당에서 한 명 더 탈당해서 합류했다. 노동당 탈당파들은 탈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수당 내 반브렉시트파와도 교감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니나 다를까 20일 하이디 앨런, 애나 수브리, 새라 월러스턴 하원의원이 탈당, 무소속 그룹에 합류해 11석이 된다. 안 그래도 의회에서 한 표, 한 표가 절실한 메이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상황이 닥친 것. 세 의원의 탈당으로 보수당(314)과 DUP(10) 의석은 합쳐서 324석으로 줄어서, 명목상의 하원 과반(326석 이상)은 이미 깨졌다. 다만 자기 당 출신인 의장 1석과, 영국 총선에 출마만 하고 당선되면 일체의 의정 활동을 보이콧하는 반영(反英) 정당 신페인이 보유한 7석을 감안하고 계산하면, 실질 과반은 아직 겨우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추가 탈당설이 돌고 있는 의원들이 아직도 소수 존재하는 만큼 메이가 풀어야 하는 난제가 한두 개가 아니다. 한 동안 추가 탈당이 없었지만 3월 29일 예정이었던 브렉시트가 한 차례 연기되고 난 직후 4월 1일 닉 볼스(Nick Boles) 하원의원이 탈당하였다. 볼스 의원은 본인이 발의하여 의향 투표(indicative vote)에 상정됐던 브렉시트 후 공동 시장 잔류 방안이 부결되자 좌절감을 표시하며 탈당한 것이다. 볼스 의원은 무소속 그룹에는 참여하지 않고 본인 표현으로 무소속 진보적 보수주의자(Independent Progressive Conservative)[37] 로서 의정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2.9.4. 위기
2019년 5월 1일, 개빈 윌리엄슨 국방장관을 경질하고 페니 모던트 국재개발장관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하였다. 새로운 국재개발장관으로는 로리 스튜어트 법무부 감옥 담당 차관이 임명되었다 [38] . 윌리엄슨 전 장관은 내각 회의 중 화웨이에 대한 내용을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유출하였다는 혐의로 경질되었는데 본인은 완전 부인했고 동료 의원들도 그를 지지해줬다.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자는 윌리엄슨의 요청에서 데이비드 리딩턴 국무조정실장은 이미 조사는 끝났다며 거부했다. 일각에서는 메이가 자신의 심복인 스튜어트를 입각시킬려고 윌리엄슨을 경질했다는 말도 나온다. 어쨌든 이 소규모 개각으로 영국에서 첫 여성 국방장관이 탄생했다.
2019년 5월 치뤄진 지방 선거에서 참패했다. 물론 노동당도 80석 넘게 잃었지만 보수당은 1300석 넘게 잃었다. 오히려 자유민주당과 녹색당 등이 대약진하며 지지 기반을 넓혔다. 같은 달 이뤄지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참패할 것으로 예상된다.[39]
그래이엄 브래디 1922 위원회[40] 위원장까지 메이 총리에게 사임 일정을 밝히라고 했지만 다음 주 중에 사임 계획을 내놓을 수도 있다 하라는 답변을 해 보수당 의원들의 화를 사고 있다. 심지어 내각에서도 분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2.10. 보리스 존슨 취임
하드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보리스 존슨이 압도적인 표 차로 신임 보수당 대표 겸 총리에 선출되었다. 존슨은 선임 장관 도미닉 랍, 국무조정실장 마이클 고브 등의 신임 각료들을 임명하여 자신의 새 내각을 꾸리는 동시에, 보수당의 하원 원내대표로 제이콥 리스-모그를 임명한다.
존슨이 총리로 당선되면서 브렉시트당으로 이탈했던 일부 보수층이 보수당으로 돌아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8월 1일 웨일스 브레콘 앤드 라드노셔 보궐 선거구 보궐 선거에서도 브렉시트당 득표율이 두 달 전 피터버러 선거구 보궐 선거때보다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자유민주당이 크게 치고 올라왔다. 여론조사업체 컴레스가 조기 총선 시뮬레이션[41] 을 돌려본 결과, 비록 보수당이 357석을 획득하여 단독 과반을 확보하기는 하지만, 현재 보수당 의석 중 20석 정도가 자유민주당에 넘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의석들 대부분이 2015년 총선 전에는 자유민주당 텃밭이었다. 물론 2017년 영국 총선 때처럼 여론조사 믿고 선거했다 보수당이 곤욕을 치루는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지만.
테레사 메이 내각 출신의 전직 각료들 중 일부가 거국 내각을 조직하는 데에 야당 의원들과 협력할 가능성이 보인다. 데이비드 고크 전 법무장관, 필립 해먼드 전 재무장관, 그레그 클락 전 산업장관, 로리 스튜어드 전 국재개발장관 등이 대표적 당내 반란파 (rebel) 이다. 올리버 레트윈 전 국무조정실장, 케네스 클락 전 재무장관 등 EU 잔류파 인사들도 야당과 협력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9월 3일, 당론에서 이탈하여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에 찬성표를 던진 윈스턴 처칠의 손자인 아서 니컬러스 솜스 의원을 포함해서 보수당 의원 21명이 당적을 박탈당했다. 그 중 한 명인 필립 해먼드 전 재무장관은 전날 지역구에서 다음 총선 후보로 추대될 것인가에 대해 신임을 확인받았는데 당적이 박탈된 다음날 후보로 추대되지 않기로 결정됐다. 결론적으로 보수당은 필립 리 의원이 대놓고 자유민주당으로 탈당하며 과반을 잃은 후 21명을 추가로 쫓아내며 과반에서 훨씬 멀어진 289석에 머무르고 있다.
이후 앰버 러드 고용노동장관도 사퇴 후 탈당을 선언했다. 대부분의 반란파들은 은퇴할 것으로 보이나 도미니크 그리브 전 법무부 장관 등 일부 의원들은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으로 보인다.
2.10.1. 제58회 영국 총선
'노 딜'(no deal) 브렉시트 추진 방침을 폐기한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총선 한 달 앞두고 2년 만에 최고 지지율을 보여줬다.# 3주 앞두고는 노동당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영국 시간으로 11월 19일 밤에 ITV가 주최한 보리스 존슨 당 대표 대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의 맞토론이 열리는 동안, 보수당 홍보실이 자체 트위터 계정(@CCHQPress)의 제목을 factcheckUK로 바꾸고 (ID를 바꾸지는 않았다.) 사실 관계 확인 서비스처럼 위장해 제러미 코빈을 공격하는 글을 여러번 올리다가 걸려 빈축을 샀다. (연합뉴스, BBC (영어))
채널4이 자사가 주관한 기후변화 토론회에 불참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자리에 녹아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지구 모양의 얼음을 놓은 채 방송을 진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보수당은 방송사 운영권 재검토 방침까지 시사하면서 반발하고 있다#. 게다가 마이클 고브 국무조정실장이 직접 방송사를 방문해 토론 참가 의사를 밝혔지만 채널4 측은 당 대표들을 위한 토론이란 이유로 거부했다.
선거 직전인 12월 7일 선거 광고를 내놨다. 이 광고는 전방위로 배포되어 이날 영국 유튜브에 접속한 사람들은 메인 화면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2.10.2. 위기를 기회로, 총선 결과
'''32년만에 보수당의 압승, 대약진.'''
BBC와 각종 언론이 합동으로 진행한 출구조사 영상이다.[42] 2019년 12월 13일 우리나라 시각 오후 2시 7분에 과반수인 326석을 돌파하고 그렇게 '''365석(!)'''이라는 결과와 함께 '''압승'''을 거두었다. 이번 총선 성적은 1987년 마거릿 대처가 당수이던 시절 총선에서 승리한 376석 이후 최대의 승리이다.
아마도 보리스 존슨 총리가 매우 확고하게 브렉시트를 추진했기 때문에,[43] 총리 취임 이후 브렉시트당으로 옮겨갔던 이탈 표심을 다시 흡수했고[44] 존슨의 입장에서 반대했던 브렉시트 온건파들도 브렉시트를 어떻게든 하겠다는 그를 지지하게 되면서 압승한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영국의 조사기관 오피니엄이 각 정당별 지지율을 11월 27일에 조사 했는데, 무려 보수당 46%라는 엄청난 지지율을 끌어올랐다. 결론적으로 이번선거를 계기로 영국의 브렉시트의 가속도는 높아질 전망이다.
이번 총선으로 보수당에서 브렉시트 반대 목소리는 사라지게 되었다. 보리스 존슨은 이번 총선에 출마한 모든 보수당 후보한테 "보리스 존슨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찬성하고 의회에서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질 경우 즉각 제명된다"는 각서를 받았다고 한다.
브렉시트에 반대하여 보수당에서 제명당하거나 탈당한 의원 8명이 이번 총선에 무소속이나 자유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8명 모두 보수당 후보에게 패해 낙선하였다. 8명 중 2명은 지역구를 바꾸었지만 보수당 후보에게 패했고 과거 지역구에서도 보수당 후보가 승리하였다.
2.10.3. 이후
2020년 8월에 장관까지 지낸 현역 의원이 의회 직원을 작년 7월부터 올해 1월 사이 모두 네 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1년 1월 치뤄진 여론조사에서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인해 노동당에게 오차범위 내지만 지지율을 추월당했으며, 현재 상황에서 총선을 치룰 시 81석 가량이 감소하여 보수당과 노동당이 거의 동일한 의석을 얻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자신의 지역구를 지키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
2021년 런던광역시장 선거에서는 자당 후보인 숀 베일리가 안그래도 낮은 보수당 지지율에 각종 인종차별 논란과 막말 논란에까지 휩쌓여 지지율이 20%대 초반으로밖에 나오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만 보면 사디크 칸에 밀려 낙선할 것이 거의 확정된 상황.
3. 역대 당수
역대 보수당 당수 중 총리가 되지 못한 인물은 노동당의 최전성기 시기였던 토니 블레어 총리 당시 보수당의 당수를 맡았던 윌리엄 헤이그, 이안 던컨 스미스, 마이클 하워드 딱 3명이다. 나머지 당수들은 모두 총리직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당수인 보리스 존슨 역시 총리직을 역임하고 있다. 이렇게 보수당이 여당이 된 시기가 더 많은 이유는 영국의 총선은 650석 전부가 비례대표 없는 지역구 소선거구제이며, 노동당의 텃밭인 잉글랜드 북부 지역보다 보수당의 텃밭인 잉글랜드 남부 지역이 의석수가 훨씬 더 많기 때문[45] 이다. 잉글랜드 남부 지역은 흔들림 없이 100년 가까이 보수당만을 지지한 우파 진영의 텃밭이다.
4. 주요 지지 기반
보수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이자 핵심 지지기반은 소위 미들 잉글랜드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중남부 교외 지역의 중산층들이다.[46] 계급적으로 봤을땐 중상류층, 세대별 지지율로 봤을 때는 중장년층의 지지를 좀 더 많이 받는 편. 다만 영국은, 세대 투표의 성향이 매우 강하고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 또한 노년층 이상에서 두드러지는 한국과 달리 계급사회의 전통이 제법 남아있는 나라라 계급 투표의 경향이 세대 투표보다 훨씬 짙은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보수 정당보다는 젊은층의 지지를 좀 더 얻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47] 실제로 영국의 어느 설문조사 업체에서 보수당이 크게 승리한 2015년 제56회 영국 총선이 치러진 후에 사후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2030세대에서 보수당과 노동당의 지지율 격차는 10% 미만이었고, 남성만 따졌을 때는 2030세대에서도 보수당이 우위를 보였다.
지역별 지지율을 따졌을 경우, 잉글랜드, 특히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 사우스웨스트 잉글랜드, 이스트 오브 잉글랜드와 같은 잉글랜드 남부 지역에서 지지세가 강하다. 그 중에서도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South East England)의 보수당 지지세가 압도적이며, 해럴드 맥밀런부터 에드워드 히스, 마가렛 대처,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보리스 존슨까지 역대 보수당 소속 총리들 중 상당수의 지역기반 또한 이 지역이다. 브리튼 섬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보수당의 지지세가 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당을 지지하는 잉글랜드 남부 지역은 첨단기술이 적용되는 고부가가치 제조업과 금융업, R&D, 법률 서비스 등 전문지식 중심의 서비스업이 발달한 지역이다보니 중산층 이상이 많이 거주하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이다. 다만 수도 런던은 예외적이라 첼시[48] , 웨스트민스터[49] , 런던 시티[50] 와 같은 일부 부유한 동네에서는 60% 이상의 압도적 우위[51] 를 차지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노동당에 좀 밀린다.
그 외에도 인종별 인구 비율 측면에서 볼 경우 앵글로색슨 혈통의 영국인+부유한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및 서유럽 출신 백인들[52] 의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보수당의 지지세가 강하다. 상단에서 언급한 잉글랜드 남부 지역은 해당 비율이 95% 이상인 반면, 대표적인 보수당 약세 지역이자 노동자들의 인구 비율이 상당히 높은 지역인 버밍엄은 남아시아 인종의 비율이 안구의 20%가 넘으며, 맨체스터와 리버풀같은 서북부 지역 대도시들은 아일랜드계[53][54] 이민자들의 비율이 높다.
영국도 한국과 비슷하게 '보수 지지자는 [55] 차별적이고, 도덕적 감수성이 무디다'라는 편견이 있어 특히 대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보수층들은 보수 지지를 숨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보수 성향인 것을 숨기는 자들을 샤이 토리(shy Tory, 수줍은 보수 지지자들)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영국의 한 유명 좌파 코미디언은 이런 '샤이 지지층' 현상을 차별주의로 매도하면 오히려 보수의 힘을 키울 뿐이라며 경계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의 경우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노동당에 비해 밀리기는 했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 지지기반이 있었는데, 마가렛 대처의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에 대한 스코틀랜드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인해 이후부턴 완전히 노동당 텃밭으로 변모했었다. 다만 현재 노동당은 좌파 성향의 분리주의 정당인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의 약진으로 인해 스코틀랜드에서의 우위를 뺏긴데다가, 스코틀랜드 보수당 대표 루스 데이비드슨(Ruth Davidson)의 개인기 아래 2위마저 보수당에게 내어주면서 완전히 스코틀랜드를 상실한 상태이다. 특히 제58회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은 스코틀랜드에서 단 1석밖에 얻지 못한다. 그러나 보수당 또한 '브렉시트 총선'으로 규정된 해당 선거에서 브렉시트 반대 여론이 압도적인 스코틀랜드에서 6석밖에 얻지 못하며 크게 부진한다.[56]
4.1. 신문
- 더 타임스 #: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보수 정론지. 다만 2001년 총선과 2005년 총선에서는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을 지지했었던 바가 있다. 보리스 존슨이 기자로 근무한 바 있으며, 2019년 보수당 당 대표 겸 총리 경선에서 그를 지지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는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했다.
- 데일리 텔레그래프 #: 일편단심으로 보수당만을 지지해온 신문. 미들 잉글랜드 유권자들이 즐겨보는 신문이기도 하다. 캐머런 내각의 재무부 장관이었던 조지 오스본과 현 총리 보리스 존슨이 기자로 근무한 바 있으며, 2019년 보수당 당 대표 겸 총리 경선에서 존슨을 지지했다. 총리로 취임한 이후에도 존슨은 이따금씩 자신의 칼럼을 텔레그래프에 싣곤 한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를 지지했다.
- 데일리 익스프레스 #: 유럽회의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편이며,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도 유럽연합 탈퇴를 지지했다. 다만 제56회 영국 총선에서는 데이비드 캐머런의 보수당이 아닌 나이젤 패라지의 영국독립당을 지지했었다.
- 더 선 #: 머독이 소유한 태블로이드 신문. 다만 1997년, 2001년, 2005년 총선에서는 블레어의 노동당을 지지했었다. 2019년 보수당 당 대표 겸 총리 경선에서 존슨을 지지했다. 또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도 탈퇴를 지지했다.
- 이브닝 스탠더드 #: 2008년과 2012년 런던 시장 선거 때부터 존슨을 도와왔던 신문이다. 역시 2019년 보수당 당 대표 겸 총리 경선에서도 존슨을 지지했다. 다만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는 잔류를 지지했다. 조지 오스본이 2017년부터 편집장을 맡고 있다.[57]
5. 당내 외 관련 조직과 다른 당과의 관계
1990년대 말에 스코틀랜드·웨일스 자치가 시작되고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내 지역 조직을 통솔하는 강력한 지부를 두게 되었다. 명칭도 스코틀랜드 보수(통일)당, 웨일스 보수(통일)당이라고 하며 자체적인 당 대표를 뽑고 지도부를 갖추고 있다. 이 점은 노동당·자민당도 마찬가지이다. 단, 보수당의 경우 북아일랜드에도 비슷하게 현지 조직을 공식적으로 갖추고 북아일랜드에서 치러지는 선거에도 입후보하고 있는데[58] 이 점은 북아일랜드의 선거에 입후보하지는 않는 노동당·자민당과 다른 점이다. 영국 전체에 당 조직을 공식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라리 영국 독립당(UKIP)과 비슷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59]
영국 보수당은 과거에 북아일랜드의 얼스터 통일당(Ulster Unionist Party, UUP)과 자매 정당급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UUP는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원으로 남는 것을 지지하는 중도우파 정당이니 보수당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건 당연했'''었'''다. 하지만 북아일랜드 내 갈등 과정을 겪으면서 양당의 입장이 틀어져 서먹서먹해졌다.[60] 보수당은 아무래도 영국 전체의 정당이다 보니 북아일랜드의 연합주의자(unionist)들만 대변하려 드는 UUP와 이해 관계가 잘 안 맞은 듯. 보수당은 1989년에 북아일랜드에 직접 당 조직을 만들어 영국 총선과 지방선거 등 현지 주요 선거에서 보수당 소속의 후보들을 공천하고 있다. [61]
하지만 보수당과 UUP는 2009년 유럽의회 선거와 2010년 총선에서는 오랜만에 북아일랜드의 보수당과 UUP 간에 선거 연대[62] 가 체결돼 공동으로 선거를 치렀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보수-UUP 연합이 UUP 소속의 후보 1명을 당선시켰으나 2010년 영국 총선에서는 단 1석도 못 건지고 망했어요. 보수당은 원래 북아일랜드에 형식적으로만 공천을 했을 뿐 실제론 별 인기가 없었고, UUP는 2000년대 이후 더 보수적이고 강경한 노선을 취하는 민주통일당(Democratic Unionist Party, DUP)에게 밀리는 상태라 빚어진 참사였다. 이들의 연대는 2012년까지 유지되다가 해체되었고 이후 북아일랜드에서 치러진 선거에서는 보수당과 UUP가 별도로 공천을 했다. 참고로 2015년 총선에서는 UUP가 당세를 조금 회복해 2석을 당선시켜 하원 원내정당으로 복귀했다.
보수당은 UUP와 더불어 모두 유럽회의주의·보수주의 노선의 유럽정당인 유럽보수개혁동맹(Alliance of European Conservatives and Reformists, AECR)에 가입돼 있으며 유럽의회 내에서 AECR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섭단체인 유럽보수개혁그룹(European Conservatives and Reformists, ECR)의 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국제 조직으론 세계 각국의 많은 보수정당들이 가입한 국제민주연합의 일원이기도 하다.[63]
당연히 노동당과는 오랜 맞수이다. 노동당 지지자들을 비롯하여 자유민주당 지지자를 비롯한 중도층이나 진보 정당에서 보수당을 비난하는 멸칭이 'Nasty Tories'이다. 그런데 종종 노동당이 보수당과 뭐가 다르냐고 공격 당하면서 Red Tories(색깔만 노동당 상징인 빨간색으로 칠한 보수당이라는 뜻)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경우가 있는데, 노동당 좌파 블록이 당내 중도파들을 공격할 때, 스코틀랜드 국민당(SNP) 지지자들이 노동당을 싸잡아 공격할 때 애용하는 편이다. 노동당 지지자들은 반대로 SNP를 공격할 때 보수당과 적대적 공생 관계를 이룬다며 Tartan Tories[64] 라고 맞받아 치기도 한다. 보수당이라는 존재가 다른 당에서 모멸의 도구로 활용되는 셈(...). 또, 보수당을 두고 브렉시트 강경파 정당인 영국독립당(UKIP)과 다를 바 없다며 비난하는 멸칭이 '블루킵(Blukip)'이다. 색깔만 보수당 상징인 파란색으로 칠한 영국독립당이라는 비난인 것. 보수당 브렉시트 반대파 하원의원이었던 새라 월러스턴(Sarah Wollaston)이 2019년 2월 트위터에서 Blukip이라는 용어로 당내 브렉시트 강경파들을 비난했다가 논란에 직면했으며, 얼마 뒤 동료 의원 2명과 함께 탈당하여 무소속 그룹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5.1. 의원 모임
5.1.1. 코너스톤 그룹(Cornerstone Group)
사회문화적 보수주의 성향이 강한 의원들의 모임. 기독교에 대한 믿음과 애국심, 전통적 가족관(동성결혼, 낙태 반대)[65] 을 추구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소속 의원으로 현 재무부 장관인 사지드 자비드와 현 보수당 하원 원내대표인 제이콥 리스-모그가 있다.
5.1.2. 유럽 연구 그룹(European Research Group)
유럽회의주의 성향이 강한 브렉시트 강경파 의원들의 모임. 리스-모그가 의장을 맡은 바 있으며, 테레사 메이의 브렉시트 합의안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6. 여담
2012년 당시 소장파 초선의원이었던 보수당 정치인 5명은 자신들의 영국 경제에 대한 비전을 담은 브리타니아 언체인드라는 저서를 저술한 바 있다. 현재 이들 5명 모두 보리스 존슨 내각에서 장차관을 역임하고 있다.[66]
서구권 주요 중도우파 정당 중 북유럽권 중도우파 정당들과 함께 가장 친 LGBT 성향을 가진 보수 정당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당내 공식 성소수자 조직이 있으며 타국 보수정당과 비교해봐도 가장 활성화되어 있다.
7. 둘러보기
[1]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보수당은 별도의 로고를 쓴다. 원내진입을 못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보수당은 독자 로고가 없다.[2] 기본적으로 중도우파고, 당 주류 인사들 또한 대부분 중도우파이다. 전체적으로는 보리스 존슨, 이안 던컨 스미스와 같은 중도우파에서 우파 성향의 인사가 주류이나, 데이비드 캐머런같은 중도파도 있고 앤드루 로신델 등 극우 성향을 띄는 인사도 있다. 인디펜던트와 같은 몇몇 언론들은 존슨 총리의 취임 이후 당에 극우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3] Nordsieck, Wolfram (2019). "United Kingdom" ''Parties and Elections in Europe''. Retrieved 21 January 2020.[4] 여전히 중도우파 정당이고 자유보수주의, 심지어 보수자유주의도 있지만, 보리스 존슨 취임 이후 이념적으로 우클릭했으며, 제이콥 리스모그같은 사회보수주의도 많으며, 심지어 영국 독립당 극우화에 반발해 탈당 후 보수당에 입당한 국민보수주의자도 소수 존재한다.[5] 물론 영국 노동당도 온건 사회민주주의였던 과거와 달리 민주사회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중이다.[6] 과거에는 존 메이저 전 총리 등의 친유럽주의자들도 전면에 있었지만 현재는 비주류로 밀려났다.[7] 북아일랜드 보수당의 경우 Leader는 없고, President와 Chairman이 있다. '의장'이라는 단어는 Chairman이 더 적합하다고 보이므로 President를 부득이 회장으로 번역하였다. 참고로 이 표에서는 보수당 중앙당, 스코틀랜드 보수당, 웨일스 보수당, 북아일랜드 보수당 모두 Chairman에 해당하는 직책을 생략한다.[8]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2020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민주당 조 바이든 캠프의 슬로건과 같다.[9] 영국 서민원에서 여당은 'HM Government' 라고 불리며 직역하면 'Her Majesty's Government(여왕 폐하의 정부)'가 된다. 물론 남자 왕일 땐 'His Majesty's Government(국왕 폐하의 정부)'이다.[10] 재창당 및 재정립된 1834년 이전까지 연원을 올라가면(영국 일부 학계, 및 교계에서는 이 정당이 과거 휘그당과 경쟁하던 '''토리당'''의 적통 정당으로 보지만, 직접적인 연원은 1783년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대중과 언론도 흔히 토리라고 부르고 있다.) 178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아주 거칠게 설정하면 예전 17세기 휘그당과 경쟁하던 1678년까지 올라가지만, 기원과 적통성을 따지자면 윌리엄 피트의 토리당이 더 정확하다. 다만 미국 역사학계에서는 미국 민주당이 세계의 가장 오래된 정당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또한 단일성을 유지한 조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엄격한 기준에서는 미국 민주당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지만, 실질적(역사적)으로 따져 보면 영국 보수당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11] Unionist는 '''연합'''왕국(영국)의 체제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쓰인 단어이기 때문에 보수연합당으로 번역하는 게 적절하다.[12] 한국의 경우 정당의 정식 명칭과 약칭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일일이 등록하는데 영국은 그렇게까지 하진 않는 듯하다. 그냥 적당한 이름 중에 하나만 당명으로 등록하는 식인 듯.[13] 영국의 주요 정당들은 그레이트 브리튼에서만 활동하거나 북아일랜드에서 당원들이 활동하긴 해도 별로 힘을 발휘하진 못하고 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현지의 정당들이 꽉 잡고 있어서 영국 의회에서는 대개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의 성향이 유사한 정당들끼리 정책적으로 손을 잡는다든지 자매 정당의 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14] 휘그, 급진파(Radicals)에 필파(Peelite)가 연합해 자유당이 성립됐다. 이후 20세기에 자유당이 보수당과 신진 노동당에 끼여 몰락하고, 자유당의 잔존 세력과 노동당에서 이탈한 중도파가 연합해 현재의 자유민주당을 형성하게 된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고.[15] 스코틀랜드에서만 활동하기 때문에 Scottish Unionist Party라고 표기하기도 했지만 정식 표기는 그냥 Unionist Party이다. 또한 Conservative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는 스코틀랜드 유권자가 많았어도 Tory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이 당을 스코틀랜드 토리당으로도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16] 본래 자유통일당의 당명에 있는 Liberal에 우호적인 스코틀랜드 유권자가 많았는지 선거 때 자신의 당을 'Liberal Unionist'로 표기하도록 한 후보들도 있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각 정당이 선관위에 자기 당을 설명하는 말(description)을 여러 개 등록해 놓고 그 중에 하나를 자기 이름 옆에 기재하는 식이기 때문에 이게 가능하다. 반면 대한민국은 후보가 소속된 정당의 정식 당명이 이름 옆에 인쇄되도록 정해져 있어서 그렇게 할 수 없다.[17] 이후 1986년에 스코틀랜드의 일부 보수당원들이 마거릿 대처 정권의 북아일랜드 정책에 불만을 품고 탈당해 스코틀랜드 통일당(Scottish Unionist Party)을 다시 만들어냈는데(다만 과거의 통일당과 달리 Scottish라는 단어가 정식 당명의 일부에 포함됨) 현재까지 그냥 이름 없는 군소정당으로 존속 중이다. 하필 탈당해 따로 당을 만들 정도로 북아일랜드 정책을 중시한 이유는 북아일랜드 내 친영(unionist) 주민들이 대부분 스코틀랜드계 장로교도들인 것과 관련이 있다. 스코틀랜드 내 보수주의자들은 이들과 민족적·종교적·문화적으로 유대감이 강하게 있었기 때문. 당시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정부와 협정을 맺고 북아일랜드 내 친영 세력과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의 타협을 모색했는데 이게 스코틀랜드 보수당원 일각의 반감을 샀었다고 한다.[18] 그러나 이 시기에는 전쟁 거국 내각이라 보수당 단독 집권은 아니었다.[19] 다만 이 말은 좀 어폐가 있는게, 1951년 선거에서 당시 노동당은 48.8%라는 역대급 득표율을 보였다. 다만 소선거구제 제도이기 때문에, 노동당 입장에서는 그러한 득표가 실제 의석 획득으로 이어졌어야 했는데, 해당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건 보수당이었다.[20] backbencher. 영국 하원 내에서 뒷쪽 벤치에 앉아있는 일반 의원들을 가리킨다. 반면 맨 앞쪽 벤치에 앉는 의원들은 frontbencher라고 한다. 하원의 프론트벤치에는 집권당의 각료와 제1야당의 예비 각료가 서로 마주 보게 착석하고, 나머지 의원들은 그들보다 뒷자리에 착석하기 때문에 이런 용어가 만들어졌다.[21] 추후 캐머런 정부에서 외무장관과 선임 장관을 역임 후 2015년 은퇴, 남작 작위를 받고 상원의원이 된다[22] 비례대표제 없는 영국 하원의 특성 때문에 의석의 격차가 많이 난 것이다. 전국 득표율로 따지면 노동당이 35.2%, 보수당이 32.4%였으니, 보수당이 이미 지지 기반을 상당 부분 회복했다고 볼 수 있다.[23] 당시 캐머런의 정치적 위상은 한나라당의 원조 소장파 남원정 정도의 위치였기 때문에, 캐머런이 당 대표가 된 것은 매우 큰 이변이었다.[24]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여론이 상당한 편이다. 게다가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UKIP이 영국의 다른 주요 정당들을 제치고 영국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유럽의회 선거는 완전 비례대표제라 비례대표가 없는 영국 총선에서와 달리 지역 기반이 약한 UKIP이 당선자를 내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게다가 유럽의회 선거는 회원국의 정권을 결정하는 선거가 아니라서, 유권자들이 회원국의 집권당이나 유럽연합 자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도구로 활용할 개연성이 크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UKIP은 아직 유럽의회 선거에서만 승승장구하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 외 다른 선거에서는 기존 정당들을 위협하는 정도다.[25] 이것을 브렉시트(Brexit: Britain 또는 British와 exit를 합친 말)라고 한다.[26] 영국 정부와 스코틀랜드 자치정부가 스코틀랜드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협정. 2012년 10월 15일에 체결됐다.[27] 2012년만 해도 독립 찬반이 30% 대 50% 정도였지만 투표 직전에는 찬성이 반대를 넘는 여론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비록 투표 당일 나온 결과로는 10% 정도의 차이가 났지만 2012년에 비하면 찬성자가 늘어난 셈이다. SNP 등 독립론자들이 자신들의 독립 후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홍보할 기회가 돼 버려 더 이상 스코틀랜드 독립이 낭만주의적인 상상의 영역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미래처럼 여겨지게 된 것. 게다가 이듬해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스코틀랜드 의석 59석 중 56석을 SNP가 싹쓸이했으니 말 다했다(2010년 총선에서는 6석 뿐이었음). 하지만 2년 후에 치러진 제57회 영국 총선에서 SNP가 참패한 결과가 보여주듯 근래에 와서는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운동이 어느 정도 기세가 꺾인 듯 싶었으나 2019년 총선에서 스코틀랜드내 보수당과 노동당 의석까지 빼앗으며 다시 의석수를 48석으로 회복했다. 만약 제대로 된 브렉시트가 되어버리면 뒤는 알 수 없게 되었다.[28] 영국이 만약에 EU를 탈퇴하게 되면 유럽 단일시장에서 배제될 수 있는 데다가, EU의 정책에 영국의 입장을 반영할 길이 막히게 된다.[29] 당시 노동당 대표인 에드 밀리밴드가 당내 좌파 라인이라 토니 블레어 시절의 소위 신노동당(뉴 레이버) 시절보다 더 좌파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그래서 기업인들은 노동당의 경제 정책 중 보수당보다 나은 건 EU 탈퇴 리스크가 없다는 것 하나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2015년 5월 2일자 커버스토리였다. 당시 표지[30] 물론 주민투표가 가까운 시일 내에 재실시되기는 쉽지 않다. 주민투표가 실시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명분이 있는 데다가, 2014년에 예상과 달리 독립 직전까지 갔었던 기억 때문에 향후의 영국 총리들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 실시를 받아주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캐머런도 더 이상의 주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상태이고.[31] 영국 국호에 들어가 있는 '그레이트 브리튼'을 비튼 표현이다. 물론 스코틀랜드(약 530만 인구)가 독립해도 웨일스(약 300만 인구)와 북아일랜드(약 185만 인구)가 영국에 남아 있지만 잉글랜드(약 5300만 인구)가 영국 국내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져 버린다(스코틀랜드가 빠진 영국 인구의 약 92%가 잉글랜드 거주자). 따라서 과장을 보태면 스코틀랜드가 없는 영국은 사실상 잉글랜드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32] 이 표현은 당연히 미국 건국의 아버지를 비튼 것이다.[33]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시 단일시장 및 관세동맹 역시 탈퇴하여 영국과 유럽연합의 관계를 초기화 시키는 것이다.[34] 예전에 제프 블라터 당시 FIFA 회장에게 2026년 월드컵을 북한(...)에서 열게 해달라고 모조지폐를 말 그대로 뿌린 사람이다.[35] 처음에는 "FOR" 앞에 있던 F 자가 떨어졌고 , 뒤이어 "EVERYONE" 끝의 E 자가 떨어져나가더니, 나머지 글자도 하나씩 서서히 추락하고 있었다. 떨어져 나간 문구는 메이의 연설이 끝나고 나서 새로 붙였는데, 이 과정에서 글꼴이 바뀌었다.[36] 어차피 코빈은 1970년대에 유럽경제공동체 탈퇴 국민투표에서 탈퇴 운동까지 벌였던 인물이라 기본적으로 브렉시트 지지자이다. 근년의 브렉시트 탈퇴 투표에서는 소극적 반대를 했지만 속내는 소프트 브렉시트일 것이다. 그리고 국민투표 이후 브렉시트를 이뤄내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서 당내 반브렉시트파와 충돌하고 있다.[37] 진보적 보수주의는 벤저민 디즈레일리 이래 보수당 내 한 분파로서 존재해 온 온건 보수주의 노선이다.[38] 스튜어트 장관은 윌리엄 왕자의 개인 교습도 잠깐한 적이 있다[39] 앤 위드컴브 전 의원 등 보수당에서도 많이 브렉시트당으로 넘어가 유럽 의회 선거에 출마한다.[40] 당 대표를 정하는 보수당의 당내 위원회이다.[41] 노딜 브렉시트 가정.[42] 출구조사 예측 결과에서는 보수당 368석, 노동당 191석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보수당이 365석, 노동당은 202석으로 결과가 나왔다.[43] 2019년 9월 5일, BBC의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브렉시트를 추가로 연기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라고 할 정도였으니...[44] 유럽연합을 극혐하는 브렉시트당 지지자 상당수도 하드 브렉시트만 고집하다 브렉시트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보수당으로 결집했다. 브렉시트당의 의석이 0석이 된 것은 덤.[45] 과반에 필요한 의석 326석 중 약 220석을 획득하고 시작한다. 이번 제58회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잉글랜드 북부 텃밭을 대규모로 잃어 겨우 200석을 넘긴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리고 노동당은 북부 잉글랜드를 싹쓸이한다 해도 제57회 영국 총선에서 얻은 의석수인 262석에서 볼 수 있듯이, 스코틀랜드에서 대부분의 의석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단독으로 정권 탈환은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2000년대까지는 스코틀랜드가 노동당의 텃밭이었으나 2010년대 들어서는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부상하여 대부분의 의석을 가지고 있고, 스코틀랜드 노동당은 이들에게 대부분의 지지세를 빼앗겨 제58회 영국 총선에서 '''1석'''만을 얻는 데 그쳤기 때문에, 2010년대 들어서 노동당의 집권 난이도가 보수당보다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46] 2019년 11월에 진행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영국 유권자들의 65%가 보수당을 중산층에 친화적인 정당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ABC1 계층) 유권자의 70%, 보수당 지지층의 84%와 함께, 심지어 노동당 지지층의 66%마저도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1월에 진행된 여론조사 또한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 # [47] 이는 보수당의 간판 노릇을 하는 유력한 정치인들의 연령대가 다른 나라 보수정당들에 비해 낮은 편인 것도 어느정도 작용했다고 보여진다.[48] 영국의 강남 3구라고 할 수 있는 동네다.[49] 한국으로 치면 여의도동 + 종로구 삼청동, 구기동, 평창동, 세종로, 사직동 + 성북구 성북동 정도의 입지를 가진 곳이다. 영국의 정치중심지이다.[50] 한국으로 치면 중구, 종로구, 여의도동 수준의 금융중심지나 부산 남구, 해운대구, 부산 중구, 부산 동구 수준의 금융중심지이다.[51] 비록 영국에서도 지역주의는 있지만 한국처럼 80% 이상의 몰표를 주는 지역은 거의 없다. 즉, 60% 정도면 엄청난 몰표라 할 수 있다.[52] 단 서유럽 출신이라도 아일랜드계 영국인, 아일랜드인들은 보수당보다 영국 노동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영국-아일랜드 관계에서 영국 노동당이 아일랜드에 더 우호적이기 때문이다.[53] 산업 혁명이 진행되던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에 일자리가 풍부한 영국의 대도시들로 이민을 간 아일랜드인들의 후손들이다.[54] 산업 혁명기 당시 맨체스터에는 공장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모여 살던 빈민가가 여럿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의 이름이 '리틀 아일랜드(Little Ireland)'이다.[55] 실제로 반미 성향이 강한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보리스 존슨 총리를 향해 'NHS를 트럼프에게 넘기려는 친미파 매국노' 프레임을 씌우곤 했다.[56] 하지만 만년 10%대 초반 득표를 기록하던 2000년대-2010년대 초중반 상황에 비하면 그래도 스코틀랜드에서 2당 지위는 굳혀나가고 있는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볼 수도 있다.[57] 편집장을 맡을 당시 의원직도 유지하고 있어서 잠깐 논란이 되었고, 이 때문에 테레사 메이가 조기 총선을 발표한 후 불출마 선언을 했다.[58] 북아일랜드 보수당의 경우 1989년대부터 조직이 가동되고 있었다.[59] 단 UKIP은 2015년 현재 잉글랜드 밖에서는 당원 수가 적은 탓인지 보수·노동·자민당처럼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에 강력한 당내 자치권을 누리는 조직을 두는 형태로 발전하진 못했다. 단지 권한이 약한 지역 조직을 두고 있다는 정도에 가까운 듯하다. 참고로 UKIP은 영국 내 다른 정당들과 달리 영국 본토 밖인 지브롤터(영국의 속령 중 유일하게 EU의 일부로 포함돼 있는 지역)에까지도 당 조직을 만들어 놨다.[60] 정확하게는 1972년 서닝데일 합의에 대한 입장차 때문에 두 당의 관계가 나빠졌다.#[61] 북아일랜드에서는 현지 기반의 정당들이 주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영국 주요 정당들은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 그래도 보수당은 선거 때마다 형식적으로나마 북아일랜드에 후보를 내고 있지만, 영국의 다른 주요 정당인 노동당과 자민당은 선관위에 등록된 북아일랜드 내 당 조직도 없고 공천도 당연히 안 한다.[62] 이들의 연합을 통칭 Ulster Conservatives and Unionists라고 불렀고, 영국 선관위에는 "Ulster Conservatives and Unionists – New Force"라고 등록돼 이니셜을 UCUNF라고 했었다. 참고로 영국에서는 한국에서와 달리 정당을 설명하는 문구(description)를 추가로 등록할 수 있는데, 투표 용지에 당명 대신 이 문구들 중에 하나를 골라서 인쇄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두 당은 선관위에 각각 "Ulster Conservatives and Unionists – New Force"를 description 중 하나로 등록해 놓고 투표 용지에 후보자 이름 옆에 기재할 당명/설명으로 이 문구를 사용하는 식으로 연대한 것으로 보인다.[63] UUP는 여기에 가입돼 있지 않다.[64] 타탄은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면직물이다. 즉 Tartan Tories는 스코틀랜드의 보수당이라는 멸칭.[65] Faith, Flag, and Family[66] 도미닉 랍 선임 장관 겸 외무영연방부 장관, 프리티 파텔 내무부 장관, 리즈 트러스 국제통상부 장관, 크리스 스키드모어(Chris Skidmore) 과학기술 담당 차관, 크와시 크워텡(Kwasi Kwarteng) 산업에너지 담당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