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명부인(선덕여왕)

 

선덕여왕(드라마)의 인물이다.
임예진이 맡고 있다. 주요 현대극과 예능 프로 등 다방면으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이 분이 '''처음으로 출연한 사극 작품의 배역''' 되겠다(응?). 워낙 드라마예능 프로그램(특히, 세바퀴)에서 주책 스런 아줌마 이미지가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상당수의 시청자들이 초반에 이미지가 맞지 않고 이 여자만 나오면 세바퀴가 오버랩 되어 집중을 할 수 없다고 원성이 자자했다[1]. 하지만 젊었을 때는 지금의 이미지와 달리 청순한 이미지의 배역을 자주 맡았고 인기도 많았기에 중년 층에선 지금의 그녀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분들이 많다(덧붙여 상대 역이 이덕화 아니면 전영록이었다고 한다).
진평왕과 남매 지 간인 공주였는데, 가야파인 김서현과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해서 인지 신분이 어정쩡하게 붕 떠 있었다. 그러다 십수 년이 지나 남편과 아들인 김유신이 전쟁터에서 사투를 벌일 때 비구니가 된 어머니 만호부인[2]이 있는 절에 가서 눈물의 화해를 하고 이 때 기적적으로 남편과 아들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자, 미실이 어거지로 했던 천명공주의 제안이 효력을 발휘해 남편과 더불어 진골의 신분을 회복했다.[3] 김서현과는 달리 미실이 승인 도장 찍자마자 공주 신분 회복했다고 으름장을 놓는 대범함도 보였다.
그 후 항상 마야부인 곁에서 마야부인을 보좌해 주었다. 천명공주의 사망을 마야부인에게 알린 사람도 이 분. 그러다 마야부인과 더불어 공주가 되려는 덕만의 술수를 눈치채고 마야부인과 함께 혁거세 예언비 탁본 등의 도움을 함께 하기도 한다.
천명공주의 사망과 을제의 해고, 그리고 덕만의 공주 신분 회복과 같은 상황 속에 이제는 진평왕, 마야부인, 덕만, 김서현과 더불어 왕실파 미팅을 함께 하는 귀하신 몸이 되었다. 나름 사랑을 위해 신분을 버린 비련의 여인에서 인생의 획기적인 반전을 이룬 내조의 여왕. 유신의 풍월주 시험 때는 거칠부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두 번째 문제를 푸는데 중요한 아이템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미실의 군사 정변 때는 너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양자로 받아들인 월야랑 집안에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가 덕만이 미실의 난을 수습하고 왕위에 오른 뒤로는 나름 평탄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마야부인이 불가로 들어감으로 인해 김유신과 춘추를 제외하고는 덕만의 유일한 가족[4][5]이며 나름 왕실의 어른으로써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다가 또 월야 때문에 김유신이 대핀치에 빠지자 집에서 발만 동동굴리고 있다. 그러다 자신의 아들이 우산국으로 귀양간다고 하니 오랜만에 입궁 해서 아들 좀 선처해 달라고 무릎 꿇고 애걸복걸 했다.
백제 정탐하다 잡혀 온 김유신을 죽이라는 상소가 속출하는 가운데 감옥에 찾아가서 자기 목숨 구제 못하고 대야성 타령 하는 아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덕만의 계책으로 복야회 문제가 해결되고 김유신이 복직 되어 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다시 평탄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다만 선덕여왕이 비담과 국혼 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비담의 세력이 커지는 것에 대해서는 염려하고 있다.
마지막 회에서는 쓰러진 덕만에게 '왜 말 안 하셨나염' 한 뒤에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1] 지금도 그런 소리를 듣는 편이다. 조형기는 2009년 10월 17일 세바퀴에서 세바퀴 후유증을 얘기하며 임예진이 선덕여왕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세바퀴의 그것처럼 뭔가 일을 저지를 것 같아 불안하다고 얘기해서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2] 정혜선 씨가 특별 출연하셨다.[3] 여담으로 이쪽은 김춘추처럼 원래 성골이였다.[4] 이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작 중 귀족들 대부분이 진골이기 때문에 결국은 다 친척들이고 비담도 덕만이랑은 고작 5촌 차이밖에 안 난다.[5] 단 피가 연결되었다고 다 가족이라면 신라 왕실에 가족이 아닌 사람이 없을 것이다. 피도 섞이면서 정말 서로 가족으로 대할만한 사람이 춘추, 김유신, 만명 그리고 좀 멀리 보면 용춘 까지인 것은 맞다. 언제부터 미실가문을 왕실에서 "가족"으로 생각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