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기

 


'''이름'''
조형기(趙炯基)
'''출생'''
1958년 10월 15일 (65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국적'''
[image] 대한민국
'''본관'''
평양 조씨[1]
'''신체'''
180cm, 85kg, O형
'''학력'''
서울수송초등학교
경성중학교
보성고등학교
'''가족'''
아버지 조항 / 어머니 / 여동생[2]/ 부인 이혜숙
장남 조경준[3] / 차남 조경훈[4] / 사촌동생 조민기[5]
'''데뷔'''
MBC 15기 공채 탤런트
'''종교'''
개신교(장로회) → 가톨릭개신교(감리회)
'''별명'''
'''킬러조''', 조승사자, 차키가져와[6]
1. 개요
2. 활동 내역
3. 사건사고
4. 주요 출연작
4.1. 영화 & 드라마
4.2. 예능
5. 그 외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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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배우, 방송인.
1958년 10월 15일,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보성고를 졸업했으며, 한상대검찰총장과 고등학교 동기 동창으로 매우 친하다고 한다. MBC 15기 공채 출신.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배우였던 '''조항'''[7]이다. 또한 성범죄를 일으키며 몰락한 배우 조민기사촌 지간으로 유명하다.

2. 활동 내역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장남 조경준은 Row Digga란 예명으로 힙합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으며[8][9], 차남 조경훈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배우 활동을 하고 있다. 우여곡절이 있었던 장남과는 달리, 차남이 고등학교 때 대학을 연극영화과로 가겠다고 했을 때 특별히 반대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3대가 배우를 하는 연예인 집안이 되었다.
1982년에 데뷔해 1980년대 중후반 드라마와 영화에서 조역으로 활약했다.[10] 윤흥길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MBC 미니시리즈 '완장'에서는 주인공을 맡아 '완장'에 집착하는 광기어린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그 뒤 에로 영화의 컨셉을 시트콤에 이어가면서 활동했으나 1991년 8월에 후술할 사고를 일으키면서 연예계를 잠시 떠났다. 이후 1993년에 출소한 조형기는 1994년,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스트로 들어가, 초반에는 팝송을 박자도 음정도 없는 콩글리시 발음으로 부르는 기믹 하나[11]로 제법 인기를 끌었다. 또한 콩글리시로 1995년 음반을 냈다. 충격의 앨범. 반드시 알아야 하는 건 조형기가 유명한 팝송을 자기 스타일로 바꾼 '''개그''' 음반이다. 그럼에도 앨범에 대한 붐으로 첫 광고를 데뷔 12년 만에 배우가 아닌 자우지 장지지지로 찍었을 정도.
이후 2000년대와 2010년대 전반기에는 주로 옆집 아저씨 같은 부담없는 기믹에다가 뛰어난 입담 및 순발력으로 남을 보조해주는 스타일로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전반기까지는 예능프로그램을 조금이라도 즐겨본 사람이라면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신동엽, 김용만급의 탑MC급은 아닐지라도 약방의 감초급으로 익숙한 인물이었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MBC 예능계를 양분했던 이경규, 김용만 둘 모두와 궁합이 좋았기에 예능판에서 꽤 롱런할 수 있었다. 야인시대, 명랑소녀 성공기, 술의 나라, 부탁해요 캡틴, 돈텔파파, 마파도 등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도 조연으로 출연하곤 했다.
보통 수사반장 류에서는 피해자, 다른 작품에서는 병풍 연기를 잘 보였다. 비 코믹 연기의 절정은 사랑과 야망 80년대 판에서 폭력 남편 연기였다.[12]모래시계에서의 광주 계엄군 중사 역으로도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그 외에도 2002년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에선 장나라의 속을 썩이는 아빠이자 부부보험 사기단을 연기했다. 영화 코리언 커넥션에서 중후한 악역 연기를 선보였다.
1980년대에 '''''' 시리즈를 비롯한 국산 에로물에 주연으로 출연한 적이 있어 이것을 개그 소재로 많이 썼다. 1997년에는 불륜을 다룬 영화 스커트 속의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세바퀴에 출연했을 때 출연진들이 뽀뽀뽀 노래를 개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때 한 출연자가 '''형기가 말할 때는 뽕뽕뽕'''이라고 개사할 정도로 뽕 드립을 애용했다.[13]
하지만 '''음주운전 뺑소니 상해치사 및 시체 유기 시도'''[14]라는 업보가 있었기에 그의 TV 출연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판은 시종일관 강력했다. 결국 2017년에 나온 황금알을 마지막으로 방송 활동 자체가 끊긴 상황이다.# 그래도 인터넷이 보급된 2000년 이후로도 15여년 이상을 꼬박 버틴 셈.
2020년 1월 6일부터 '''동네형TV'''(링크)라는 채널로 유튜버 활동을 했다. 컨셉은 중장년층 대상의 추억팔이며, 구독자가 약 1,640명이다.(2020년 12월 기준)
물론 대중들의 반응은 좋지 않으며, 그걸 증명하듯이 모든 동영상에는 좋아요보다 싫어요가 압도적으로 더 많고 자신의 대한 비난을 봉쇄하려는 것인지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했다. 결국 반응이 좋지 않은 걸 인지했는지 5월 30일을 끝으로 유튜브 활동을 중단했다.

3. 사건사고



3.1. 음주운전 사건



1991년 음주운전 사건에 묻히긴 했지만, 2003년에도 음주로 인해 방송을 펑크낸 적이 있었다.(#)

4. 주요 출연작



4.1. 영화 & 드라마



4.2. 예능



5. 그 외


카라한승연은 2010년 3월 20일 세바퀴 방송분에 나왔을 때 그에 대해서 지상파에서 카라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언급해줘서 지금까지도 감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 기사. 여기서 구하라가 방송에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조형기를 디스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관련 영상[17]
사촌동생 조민기가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한 사건으로 인해 고발당하자, 수사 전에 스스로 목을 매서 목숨을 끊었다. 이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다시금 조형기의 음주운전 상해치사 범죄가 재조명되고 있으며, 네티즌들 사이에서 "조형기가 음주운전 뺑소니 상해치사 시신 유기를 저지른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라는 움직임이 점점 커지면서 '''"참 좋은 집안이다!"'''라고 반어법으로 까이기도 한다. 그 때문에 조민기는 '강간조, '만져조'라는 별명이 생겼다. 2017년을 끝으로 방송 활동을 못 하는 것도 사촌동생의 사건에 크게 영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JTBC닥터의 승부에도 나왔으며 이 프로그램에선 별명이 '''조니실린'''이다.
자동차에 관한 광고를 2003년에 촬영한 적이 있다.[18]
[image]
깐풍기와 탕수육을 파는 요식업 프랜차이즈 사업을 차린 적이 있다. 지금도 브랜드 자체는 남아있는데 광주광역시와 경북 영주시에 자영업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다. 전단지나 홍보물에서도 조형기의 얼굴이 없는 것을 보아 조형기가 사업에서 손을 뗐고 프랜차이즈 점포들이 독자생존한 것으로 보인다.
[image]
원조 뽀미 언니왕영은과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김수미가 그를 자신의 프로그램인 '밥은 먹고 다니냐'에 출연시키고 싶다는 발언으로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당시에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고 국민 앞에 사죄시키고 싶은 마음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6. 관련 문서


[1] 30세손으로 기(基)자 돌림.[2] 2012년 병으로 사망.[3] 힙합 레이블 Vismajor Company에서 활동 중이다.[4] 1990년 생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배우로 활동 중.[5] 2018년 3월 9일 자살.[6]별명들은 모두 누리꾼(네티즌)들이 만든 별명들이다. 후술된 '''교통사고를 일으킨 것에 대한 별명들'''이자 사망자가 있는 실제 사건이므로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7]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르는 배우지만, 당시에는 꽤 유명한 영화 배우 겸 탤런트(TBC 공채탤런트 1기)였다.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 '신화가 남긴 해병', '성난 송아지' 등 여러 영화에 출연했으며, 안타깝게도 폐결핵으로 한국 나이 41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1950 ~ 1960년대에 영화나 TV를 접했던 세대들은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경우가 꽤 많다.[8] MBN인생고민 해결쇼 신세계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된 바 있다. 캐나다유학 보낸 아들이 힙합에 빠지는 바람에 아버지 조형기의 걱정이 많았다고... 지금은 그 아들이 이름 있는 아트 디렉터가 되면서 조형기 또한 아들을 인정하는 듯 하다. 해당 방송. 국내 IP 차단 유의[9] 2006년 즈음부터 믹스테잎을 내면서 힙합 뮤지션으로 활동했고, 이 당시 만나 친해진 딥플로우, 우탄과 함께 힙합 레이블 VMC의 창단 멤버이자 공동 대표가 되었다. 현재는 음악을 접고 레이블 운영과 아트 디렉터로서의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10] 무명 시절의 별명 '특집극 전문배우'였다.[11] 희대의 유행어이자 기타 전주 흉내인 '''좌우지 장지지지'''... , 콩글리시 중의 본좌 '''탑 오브더 월드으으'''.[12] 이후 리메이크판에서는 그 역할을 이원종이 했다.[13] 숨겨진 일이지만 장현성장인이자 원로 탤런트 양택조도 이쪽 라인이었고, 가끔 토크쇼에서 그때 이야기를 잘 했다.[14] 법을 조금 공부했다 싶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꽤나 유명한 사건이다.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대한 대법원의 최초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그 판결을 내린 대법관 중 한 사람이 다름 아닌 이회창이다.[15] 지워야 산다, 패널 5인 체재로 개편된 20회부터 66회까지는 고정 패널, 67회부터 130회까지는 MC로 출연했다. 이혁재, 강병규 MC 시절 고정 게스트 중에 최장 기간 활동한 멤버다.[16] 906회에서는 녹화가 끝날 무렵에 허참에게 더 하다 가자고 징징거린 적이 있다.[17] 순수한 사람만 웃는 개그라고 했다. 관련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조형기가 구하라를 살벌하게 노려보는 표정이어서 까이는데, 사실은 조직에 들어올 사람을 오디션으로 뽑는다는 상황극 중에 그 표정이 절묘하게 찍힌 것. 잘 보면 조혜련도 살짝 노려보는 듯한 시선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사람들도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18] 이 때는 뺑소니 사건이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고 조형기가 예능에 많이 나오면서 시청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선보이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해당 모델의 주 수요층인 자영업자들의 연령대가 40대 중반부터인지라 그 연령대이면서도 친근한 이미지였던 조형기를 캐스팅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