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톱 이야기

 

1. 개요
2. 줄거리
3. 문학적 의의
4. 갈밭새 영감의 죄책
5. 리메이크


1. 개요


김정한의 소설. 김정한이 해방 이후에는 문단활동을 전혀 하지 않다가[1] 1966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수능 모의고사에도 자주 출제되는 등 문학성이 높은 작품이다. 조마이 섬이란 곳에 사는 소시민들의 애환을 잘 그려낸 걸로 평가받는다. 2021학년도 수능특강에도 수록되었다.
작중에서 나오는 모래톱과 조마이섬은 현재 부산광역시 삼락동으로 추정된다. 삼락동 일대는 1935년에 낙동강 둔치의 제방을 쌓기도 했고, 농민들이 많이 살기도 했으며 갈대밭이 많았던 삼각주 지역을 매립해 육지로 만든 곳 이라 소설 속 배경과 유사하다.[2]

2. 줄거리


시점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글의 '나'는 관찰자로, 이 글의 실질적 주인공인 갈밭새 영감을 관찰하는 내용으로 쓰였다.
이 글은 '나'가 20년 전에 경험한 이야기다.
K중학교 교사였던 '나'는 나룻배 통학생인 건우(거무)의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유인 즉슨 비만 오면 지각에 결석이 잦아 가정방문을 간다.
건우네는 선비 가문의 후손임에도 자기 땅이 없다. 아버지는 6·25때 "워커라인" 즉, 낙동강 전선에서 전사했고, 삼촌은 원양어선을 타고 삼치잡이를 나갔다가 익사. 건우는 별로 슬퍼하지 않는다. 쥐꼬리 만한 보상금에 어부인 건우의 할아버지 갈밭새 영감의 몇 푼 벌이로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윤춘삼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과거 (서북)청년단에게 송아지를 뺏기지 않으려고 저항하다가 잡혀들어가 '''송아지 빨갱이'''라는 별명을 지닌 인물로, 과거 한때 '나'와 같이 옥살이를 한 경험이 있다.[3] 그의 소개로 갈밭새 영감을 만나 술을 마시며 그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
낙동강의 모래톱에 있는 조마이섬은 농토이자 개발권에서는 나름 중요한 곳으로 유력자가 집어삼키려고 노리는 곳이다. 한때 나병환자촌을 만들기 위해서 나병 환자들을 유기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고[4] 지금은 둑을 통해서 통제하고 있다.
그 해 처서(處暑) 무렵, 홍수가 났다는 말에 건우의"나룻배 통학생임더"라는 말을 상기시키며 허겁지겁 차를 몰고와 다리 앞에서 윤춘삼씨를 만나 갈밭새 영감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홍수 때문에 섬은 위기를 맞는데, 둑을 허물지 않으면 섬 전체가 위험에 처해 주민들은 둑을 파헤친다. 이 때 둑을 쌓아 섬 전체를 집어삼키려던 유력자의 하수인들이 방해를 하게 되고,[5] 화가 치민 갈밭새 영감이 "이놈들아, 사람 목숨이 중하냐 네놈들 욕심이 중하냐!"라는 일갈과 함께 그 중 한 명을 탁류에 집어던졌다. 이 사건으로 갈밭새 영감은 살인죄로 투옥되면서 건우는 학교에 오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 글귀는 "황폐한 모래톱을--조마이섬을 군대가 정지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6]로 어떻게 보면 상당히 찝찝한 결말이다.

3. 문학적 의의


전체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하다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징적인 등장인물이 바로 갈밭새 영감이다.
타인의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의 이득을 위해 무시하는 모습들을 통해 당대 기득권층의 모습들을 비판하고 있다.
이 소설이 발표된 연도가 1966년인데 이 시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상당히 파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나'는 묘사를 할 뿐, 개입이 거의 없으며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감정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당대의 지식인들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소시민적인 지식인들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모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4. 갈밭새 영감의 죄책


소설 거의 끝부분에 둑을 허무는 행위를 방해하는 정치깡패를 갈밭새 영감이 밀어 수장시킨 행위가 법적으로 처벌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의견이 있어 왔다.
소설에서는 갈밭새 영감이 살인죄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섬 주민들의 짤막한 언급만 나온다.
우선 법리적으로 보자면 갈밭새 영감의 행위가 범죄가 아니어야 한다면 정치깡패를 수장시킨 행동이 정당방위 내지 긴급피난 등 위법성조각사유가 되어야 하는데 정당방위로 인정받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정치깡패가 갈밭새 영감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거나 하지 않은 이상 현재의 부당한 침해라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긴급피난을 적용해볼 여지가 있다. 긴급피난은 더 높은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더 낮은 법익을 희생하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맹견이 쫓아오고 있어서 남의 집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행위가 있다.

5. 리메이크


부산지역 극단인 "극단 자갈치"에서 이 소설을 연극으로 만든 <조마이섬>이라는 연극이 있었다. 롱런한 작품은 아니었고 민예총 소속인 극단 특성상 주류 연극계와도 거리가 있었지만 작품의 수준만은 원작 초월이라는 평까지 듣기도 했다.

[1] 학계 일부에서는 그가 친일 작품을 썼다는 논란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2] 강서구 일대와 을숙도로 추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을숙도보다는 삼락동 일대가 더 적절하다. 소설 속에 '구포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다리만 건너면 조마이섬 가까이까지 갈 수 있으리라' 라는 구절이 있는데, 구포와 을숙도는 굉장히 멀어 가까이서 볼 수 없다. 또한, 저 구절 속 '다리'의 존재도 고려를 해야 하는데, 강서구와 을숙도, 부산 사하구를 잇는 낙동강하굿둑이 1987년에 개통되었으니 김정한이 소설을 발표한 1966년 당시에는 낙동강하굿둑이 없었고, 구포교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즉, 을숙도는 더더욱 아닌 것이다.[3] '나'가 왜 옥살이를 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작가의 경험이나 다른 작품을 통해서 보도연맹 관련 건이라는 의견이 있다.[4] 1950년대 중반에 실제 벌어진 일이다. 작품에도 나오듯이 주민과 나병 환자간의 혈투가 벌어져서 사망자와 실종자까지 난 사건이다. 다만 실제 사건에 대해선 주민들의 집단 이기주의로 보는 시각도 있다.[5] 사실 갈밭새 영감은 방해하러온 하수인들에게 이걸 그냥 두게되면 섬사람들 다 죽게 된다며 설득했지만 하수인들은 그걸 들은척도 안하고 오히려 갈밭새 영감의 뺨을 치고 둑을 파헤친 괭이를 빼앗어서 강에 던져버리기까지 했다.[6] 이 작품이 1966년에 쓰여졌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 이 사건을 염두에 둔 듯 하다.